소설리스트

달의 미궁-191화 (191/354)

제191화

“…너무 과하게 주시는 것 아닙니까?”

골렘의 습격과 경쟁 도시의 탄생이라는 악재가 겹쳤더라도 암스트롱은 여전히 유일한 월석 생산 기지다.

마비됐던 기능들도 슬슬 돌아왔다.

텅 빈 건물의 가게들은 새로운 주인을 맞아 다시 문을 열었다. 부동산의 가치는 여전히 대단했다.

“솔직히 과한 감은 있습니다.”

시장은 슬쩍 성윤의 눈치를 살폈다.

‘친구의 배신으로 사업을 말아먹은 것 같다지? 아내는 그 친구랑 놀아나 같이 배신한 것 같고.’

성윤은 전 지구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사람이다. 당연히 그의 과거를 국가, 미디어, 인터넷 등이 샅샅이 파헤치고 있는 중이었다.

시장도 당연히 자기 나라의 정보통으로부터 성윤의 정보를 받았다.

‘인간 불신, 특히 여성 불신이 심하다고 했지?’

그것 때문에 그의 유전자를 가지려는 미인계가 근본부터 박살나고 있다고 했다.

‘하긴, 나라도 그럴 것 같긴 해.’

인간적으로도, 그리고 남자로서도 그를 동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설픈 동정을 내비칠 때가 아니다. 저런 사람에게 어설픈 호의는 오히려 독이 된다.

“절반은 성윤 씨가 새 월면도시로 이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우리 암스트롱과 좋은 관계를 가져줬으면 하는 의도입니다. 그리고 절반은 앞으로 행할 시작의 미궁의 골렘 퇴치에도 꼭 참여해주십사 하는, 일종의 뇌물이고요.”

“나중에나 시작할 시작의 미궁 골렘 퇴치 때문에 이렇게까지 준단 말입니까?”

“아뇨. 시작의 미궁 공략은 길어도 두 달 안에 진행할 생각입니다.”

성윤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골렘 퇴치 작전이 고작해야 한 달 전에 끝났는데 너무 서두르시는 거 아닙니까?”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부끄럽지만,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일입니다.”

시장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스쳐지나갔다.

정치적 의도. 그 말과 관련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도시가 떠오른다.

“새 월면도시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골렘을 퇴치해 몇몇 미궁을 안정시켰다는 소리를 듣고 그들도 바로 움직였습니다. 그것도 대규모로요. 이미 몇몇 미궁의 골렘 퇴치가 끝났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엄청나게 빠르군요.”

암스트롱은 고위 연결자들을 모으기 위해 약간의 시간을 필요로 했었다.

그런데 새 월면도시는 암스트롱이 골렘퇴치를 끝낸 지 한 달 만에 몇 개의 미궁에서 골렘 퇴치를 끝냈다니, 무척 빨랐다.

“아무래도 노하우를 저쪽이 빼간 것 같습니다. 나오는 골렘의 수와 미궁 밖에서는 골렘이 굉장히 약해진다는 것 등을요. 그걸 러시아나 중국 특유의 방식으로 밀어붙이는 모양입니다. 뭐, 대가도 상당히 나눠준다는 것 같고요.”

처음부터 연결자에게 도시의 이권을 나눠준다고 천명한 새 월면도시인 만큼 대가는 상당하리라.

“죽 쒀서 개 준 느낌이군요.”

골렘 퇴치 때 성윤도 나름 목숨을 건 각오로 임했기에 그 노하우가 고스란히 빼돌려졌다는 점에서 허탈감을 느꼈다.

“뭐, 저희도 빼앗기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시장이 장난스레 눈을 깜박였다.

“저쪽의 골렘은 굉장히 약하다고 합니다. 저들 도시의 골렘 퇴치가 상당히 빨리 진행되고 있는 건 그것 때문인 감도 있죠. 아마 성윤 씨의 파티와 러셀 경이 겪었던, 시작의 미궁의 골렘 정도의 강함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골렘들의 강함이 지역적으로 다르다는 겁니까?”

절대 좋은 소식이 아니다. 암스트롱에서 퇴치한 골렘보다 약한 녀석들이 존재한다는 건, 보다 강한 녀석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도 된다.

하지만 다행히도 시장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시작의 미궁과 새 월면도시에서 골렘 퇴치를 시작한 미궁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냈습니다.”

“뭡니까?”

“대미궁 근처에 있다는 거죠.”

시장은 입이 타는지 물 한 잔을 들이켰다.

“암스트롱의 안전을 위해서 암스트롱과 조금 떨어진 곳의 미궁에서 골렘 퇴치를 진행한 저희와는 다르게 저들은 대미궁 근처의 미궁에서 골렘 퇴치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가 우리가 겪은 것보다 약한 골렘들의 등장이죠. 그 정보를 알았을 때 저희는 상당히 기뻐했습니다.”

최강 수준의 연결자였던 현우, 러셀, 브루스조차 1대 1로 감히 상대할 수 없던 슈퍼 골렘과는 다르게 시작의 미궁의 슈퍼 골렘은 러셀 혼자서도 여유 있게 제압할 수 있는 놈이다.

“우리가 시작의 미궁의 골렘들을 퇴치할 때 무척 수월하겠구나 하고 말이죠.”

지금 암스트롱의 최우선 목표는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든 시작의 미궁에 있는 골렘을 퇴치해야 했다.

“좋은 이야기로군요.”

성윤도 그 정보에 만족했다. 아무리 성윤이 대 골렘 최종병기 급의 활약을 보일 수 있더라도 적은 약하면 약할수록 좋다.

“네, 정말로 좋은 정보입니다. 저희가 두 달 안에 새로운 시작의 미궁 공략을 진행하려는 것에는 이 정보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죠.”

“다른 정보는 없습니까?”

혹시 시작의 미궁의 골렘 퇴치를 더 수월하게 만들어줄 정보가 있을 수도 있다.

“시작의 미궁의 골렘 퇴치에 대해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없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정보가 하나 있긴 합니다.”

이번에 시장은, 정말로 질렸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저 녀석들. 대미궁까지 건든 모양입니다.”

“…대미궁의 벽면을 파괴해 어떤 골렘이 나오는지 시험해 봤다라는 말로 알아들으면 되는 겁니까?”

성윤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본 자의 모습이었다.

“정확합니다.”

시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이 정도면 감탄만 나올 뿐입니다. 뭐, 도시가 대미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기에 가능한 실험이라고도 생각합니다만, 대체 뭐가 튀어나올지 알고 그딴 일을 벌인 건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시장은 다시 한 번 물을 들이켰다.

“우리로서는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도시 안에 대미궁이 있는 특성 탓에 그런 시도는 꿈에도 꾸지 못 했으니까요.”

자칫 잘못해서 엄청나게 강한 골렘이나 그 이상의 뭔가가 튀어나온다면 그날이야말로 암스트롱 최후의 날이 될 수도 있다.

“실험 결과는 어떻게 됐다고 합니까?”

그들의 정신 나간 실험정신에 경의를 표하든 멍청하다고 비웃든 그 결과는 분명 암스트롱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성윤 개인으로서도 순수하게 궁금했다.

“못 부쉈다고 하더군요.”

“못 부숴요?”

“네. 성윤 씨도 알듯이 대미궁의 층, 그러니까 초원이나 설원, 고원 같은 곳은 연결자들이 파괴해도 스스로 회복하죠.”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초원의 풀을 불태워보기도 하고, 고원의 지면을 폭발시키기도 하고, 설원의 얼음대지를 녹여보기도 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부서진다고 해서 골렘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흔적들도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 대미궁의 벽은 초원지대같이 층을 감싸고 있거나, 층에서 다른 층으로 가는 통로에 있는 벽으로 한정됩니다. 하지만 그 벽은 무슨 수를 쓰든 부서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우리처럼 고위 랭크의 무기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고 하던가요?”

“정보에 따르면 다이아 랭크의 무기도 사용해봤다고 하더군요.”

다이아 랭크.

쥬얼 1등급.

쥬얼 랭크의 8개의 젬과 레인보우 랭크의 7개의 젬. 총 15개의 젬 중 정점에 있는 젬.

최고위의 연결자라고 하더라도 한 개 갖고 있는 것이 고작이라는 최고위의 젬이다.

‘그런 다이아 랭크의 젬으로도 부술 수 없었다면 일단 연결자의 힘으로는 부술 수 없다는 소리군.’

그렇다면 적어도 대미궁에서 골렘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암스트롱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행이군요.”

“네, 정말로 다행이죠. 이제 우리가 암스트롱의 안전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시작의 미궁의 골렘을 퇴치하는 것뿐입니다.”

시장이 성윤을 부른 용건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럼 나중에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성윤 씨는 대미궁에 들어간 후 얼마 만에 올라오시죠?”

“대략 한 달 정도 걸립니다.”

“그럼 성윤 씨가 대미궁에 올라올 즈음해서 연락을 넣겠습니다. 성윤 는 이대로 쉬다가 다시 대미궁에 들어가실 건가요?”

“아뇨. 며칠 지구로 내려갈 겁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죠.”

성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사정이 있음을 짐작한 시장은 별말 않고 묵묵히 성윤을 배웅해줬다.

***

암스트롱 시청에서 시장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윤은 지구로 내려 왔다.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귀환이었기에 예전처럼 카메라 군단이 서 있지는 않았다.

신혜와 오랜만에 만나 즐거웠지만, 이번에는 느긋하게 딸과의 시간을 보낼 여유는 없었다. 다음 대미궁 진입 때까지는 달에 돌아가야 한다.

‘그 전에 끝내야지.’

성윤의 눈에 날카로운 살기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는 지민과 함께 카페에 들어갔다. 내부는 한산한 편이었지만 성윤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성윤과 지민이 두런두런 잡담을 하며 시간을 죽이길 얼마.

“먼저 와 있었네?”

우득!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성윤은 주먹을 쥐었다. 성윤의 분노를 그대로 표현하듯 그의 주먹에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났다.

성윤은 천천히 소리가 들린 곳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화려한 복장. 명품 로고가 뚜렷이 박힌 핸드백이 그녀의 손에 달랑거린다.

그가 예전에 봤던 핸드백은 아니었다. 또 바꾼 모양이었다. 그를 팔아먹은 돈으로.

성윤은 감정을 억눌렀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오랜만이다.”

한 마디를 덧붙였다.

“반갑진 않지만.”

“그래? 나는 굉장히 반가운데. 내 전남편 씨.”

그녀는 미연이었다.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쳐 앉기나 해. 이래 봬도 굉장히 참고 있는 중이니까.”

그는 목이 타는지 남아 있던 아이스커피 뚜껑을 열고 그대로 들이켰다. 커피와 함께 반쯤 녹은 얼음들이 그의 입으로 들어왔다.

으드득!

성윤은 그 얼음들을 거칠게 씹었다. 그나마 조금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미연은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이죠?”

지민이 물었다. 미연은 대답하지 않고 성윤과 지민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녀가 오기 전부터 둘은 같은 자리에 어깨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그런 사이가 되신 건가요? 이거 축하를 드려야 하나 모르겠네요.”

미연이 빈정댔다. 하지만 성윤도, 지민도 반응하지 않았다.

성윤이 선글라스를 벗었다.

“헛소린 그만하고 용건이나 내뱉어.”

미연은 성윤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녀가 그를 배신하기 전 잘게 진 주름살과 툭 튀어나온 아랫배를 가진, 어디에나 있을 중년인은 없었다.

충분히 잘 생겼다는 평을 들을 만한 얼굴과 옷 너머로도 보이는 탄탄한 몸.

그녀가 알던 20대 때의 성윤이 거기 있었다. 거기에 예전과 비교해서 훨씬 날카로워진 눈은 여성들의 시선을 충분히 빼앗을 것 같다.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져서 딸 뒷바라지나 평생 하다가 비참하게 죽을 거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지금의 성윤은 세계에서도 가장 유명한 ‘영웅’이 되어 있었다.

거기다 그가 모은 돈 또한 엄청나다고 했다. 못 해도 수백억에서 수천억은 갖고 있을 거라는 미디어에서의 정보가 떠올랐다.

미연은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버린 성윤은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쭉 태연함을 가장했지만 미연으로서는 억울하기도 하고 충분히 후회되는 일이었다.

그저 그녀의 자존심이 그걸 드러내지 못하게 하고 있을 뿐.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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