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181화 (181/354)

제181화

몬스터를 대비하기 위한 연결자들의 대기 지점은 전국에 널리 퍼져 있다.

마력이 고인 장소는 전국 도처에 존재하므로 어느 장소에서 몬스터가 나타나든 빨리 연결자를 파견하기 위해서였다.

성윤이 집과 가까운 서울에 대기 장소를 배정 받은 것은 한국 나름의 배려였다.

나머지는 최대한 연결자들의 의향을 들어줬지만, 경쟁이 치열한 곳은 그냥 뺑뺑이를 돌려 버렸다.

보통 한 대기 장소에는 네 명의 연결자가 배정된다. 주간에 두 명, 야간에 두 명.

그래서 몬스터가 나타나면 같은 시간대의 연결자 두 명이서 몬스터를 요격하러 나간다.

대기 종료까지 고작 30분 정도가 남았지만 그래도 성윤의 시간대에 나타난 몬스터다.

욕지기를 내뱉으면서도 성윤은 디바이스와 젬을 챙기고 바로 옥상으로 뛰어갔다.

아직 헬기는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조종사가 아직 안 온 모양이다. 성윤은 헬기 옆에서 기다렸다. 얼마 안 있어 조종사가 옥상으로 뛰어왔다.

하지만 옥상에 도착한 건 조종사만이 아니었다.

“진수 씨는 무슨 일입니까?”

“저도 갑니다.”

진수가 디바이스를 흔들었다.

“지금은 진수 씨 시간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고작해야 30분 차이인데요, 뭐. 다른 야간 대기 분과는 얘기가 끝났습니다.”

본인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몬스터를 요격하겠다는데 성윤이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곧 둘은 헬기를 타고 몬스터가 나타난 곳을 향했다.

***

그들이 도착한 곳은 경기도 가평의 어느 산자락이었다. 헬기가 서서히 속력을 늦추다 어느 지점에서 정지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이야, 굳이 몬스터를 찾느니 마느니 하는 귀찮은 일은 필요 없겠네요.”

진수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래로 울창하게 우거진 산림이 보인다. 숲 아래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나무가 있었기에 몬스터가 나타났다 해도 쉽게 찾기는 힘들어 보였다.

몬스터를 요격하기 위해 나온 둘로서는 분명 난감한 일. 하지만 지금, 그들은 몬스터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쿵! 쿵!

커다란 나무들 위로 목을 빼꼼 내민 괴물 한 마리가 보였다.

“자이언트네요.”

진수가 몬스터의 이름을 말했다. 이름 그대로 거대한 덩치를 가진 몬스터다.

“그럼 가죠!”

그는 활기차게 외치고 젬에 마력을 주입했다. 얼마 후, 진수의 몸이 갑옷으로 뒤덮였다.

“먼저 갑니다!”

그가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지상까지는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는 높이다.

하지만 대기 인력인 연결자들은 전부 실력이 있는 자들이다. 이 정도의 높이는 장애가 아니었다.

‘젊어서 그런가. 활기차네.’

어차피 주변에 마땅히 헬기가 착륙할 장소도 없다. 헬기 조종사에게 신호를 하고 성윤도 그대로 뛰어내렸다.

쿵!

보통 사람이라면 최소 중상일 테지만 성윤의 갑옷은 충격을 확실하게 막아줬다. 그는 그대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꾸어어어어어!

자이언트가 크게 손을 휘두른다.

콰직! 콰지직!

높이 솟은 나무들이 수수깡처럼 부러지며 휘날렸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를 진수는 유려한 몸놀림으로 빠져나가 창을 휘둘렀다.

서걱!

창날이 자이언트의 손목에 깊은 상처를 냈다. 피가 확 튀었다.

끄아아아아아!

“별것 아니네요! 성윤씨는 거기서 구경이나 해 주세요! 이건 제가 잡을게요!”

진수가 크게 소리치며 창대를 두 손으로 잡고 자이언트를 찔러갔다. 이번엔 자이언트의 옆구리에 큰 상처가 났다.

‘괜찮나?’

뒤에서 전투에 참가하려 전투 지점에 다가가던 성윤은 진수의 외침에 멈칫했다.

정말로 구경이나 해도 되는지 망설임이 들었다. 하지만 진수가 자이언트를 몰아붙이자 그의 말처럼 일정 거리 이상으로 접근하지 않고 관망세로 들어갔다.

‘어때! 대단하지!’

진수는 힐끔 뒤에 있는 성윤을 바라봤다.

성윤의 모습은 TV에서 본 그대로였다. 멋들어진 은빛 갑옷과 붉은 망토.

한국과 영국에서 ‘나이트’란 칭호까지 붙여가며 환장하는 모습이다. 풍문으로는 피규어 발매까지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우성윤이란 존재는 정말로 연결자 중에 배출된 최고의 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이제 대미궁 초입에 도전한 인간이잖아!’

그건 자신도 같다. 그것도 성윤보다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아무래도 파비온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감이 있었지만 어쨌든 자기가 성윤보다 대미궁 공략에 더 앞서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대단하다고!’

절대 저기 있는 우성윤에게 밀리지 않는다. 그 증거로 자신은 자이언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 봐! 이 보라고!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이 녀석을 몰아붙이고 있잖아! 나도 ‘연결자’만큼 할 수 있어! ‘연결자’ 녀석들한테 밀릴 성싶냐!’

푸욱!

창이 자이언트의 허벅지에 꽂혔다. 녀석이 발광하며 날뛰는 걸 본 진수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창을 뽑으려 했다.

‘뭐!’

자이언트의 탄력 있는 근육이 수축되며 창을 강하게 옥좼다. 진수는 자이언트의 허벅지에 두 발을 대고 창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미끈!

‘피가!’

어느새 튀었는지 창대에 자이언트의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성윤에게 잠시 한눈을 판 대가였다.

후웅!

“큭!”

자이언트의 육중한 손이 날아온다. 진수는 어쩔 수 없이 창을 역소환시키고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빨리빨리!’

다시 창을 소환시키려 마력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젬이 발동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자이언트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쿵! 쿵! 쿠웅!

자이언트의 손이 연신 진수를 공격했다. 간신히 피하고는 있지만 자이언트의 주먹이 지면을 헤집는 걸 보면 절로 등골이 서늘해진다. 진수는 식은땀을 흘렸다.

‘젠장! 어떻게든 해야!’

콰앙!

그때, 또다시 진수에게 덮쳐오는 손을 막아내는 방패가 있었다.

천사처럼 펼쳐져 있는 날개가 서서히 축소되며 붉은 망토로 변한다.

“지금부터는 제가 하죠.”

성윤은 뒤에 있는 진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검을 자이언트의 손목 부분에 꽂았다.

캬아아아아악!

녀석이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황급히 손을 빼는 게 보였다. 성윤은 검이 끌려가도록 검자루를 놨다.

검의 전격은 녀석에게 계속 타격을 줄 것이다. 검이 꽂힌 녀석의 팔 근육이 멋대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터프한 놈은 아니군.’

녀석이 계속 전격을 내뿜는 검을 뽑아내려 했다. 터프한 놈들은 전격이고 뭐고 간에 바로 자신을 짓밟으려 드는 걸 생각하면, 이놈은 그나마 귀염성 있는 놈이었다.

성윤은 할버드를 소환하고 대지 마법을 시전했다.

퍼억! 퍼억!

석순들이 솟는다. 물론 달에서보다는 석순의 수, 속도, 파괴력 등 모든 것이 뒤떨어졌다. 당연히 자이언트에게 대미지를 제대로 주지 못했다.

하지만 성윤이 녀석의 머리 위까지 뛰어오를 디딤돌로 쓰기에는 충분했다. 주변 나무도 있었지만 강도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기에 성윤은 마법을 이용했다.

자이언트는 허겁지겁 검을 빼내고 있었다. 성윤은 녀석의 머리로 훌쩍 뛰어오르며 할버드를 강하게 쥐었다.

퍼어억!

녀석의 두개골에 할버드를 힘껏 박았다. 그리고 녀석이 미처 반응도 하기 전에 망치를 소환, 할버드의 자루를 힘껏 때렸다.

콰지직!

할버드가 깊게 틀어박혔다. 거짓말처럼 자이언트의 움직임이 딱 멎었다.

쿠웅!

성윤이 불러낸 석순 위로 기대듯 자이언트의 몸이 쓰러졌다. 성윤은 녀석의 머리에서 뛰어내렸다.

‘베히모스 같은 거대 몬스터들과 싸운 경험이 도움이 됐어.’

예전이라면 훨씬 더 고생을 하다가 잡았을 것이다. 역시 경험은 쌓고 봐야 했다. 게다가 할버드가 쥬얼 랭크로 진화한 것도 도움이 됐다.

아무래도 검의 전격 같은 특수 능력이 없다 보니 강도와 날카로움이 한 랭크 위의 젬 턱밑까지는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동급보다 뛰어난 것이다. 망치도 마찬가지였다.

스윽!

석순이 사라지고 자이언트의 몸이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쓰러졌다. 나무들 몇 그루를 동반한 채 쓰러진 자이언트의 거구는 울창한 숲 사이로 거대한 공터를 만들었다.

“굉장하네요!”

진수가 성윤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이 자이언트와 성윤 사이를 헤엄쳐 다녔다.

“과연 세계에서 나이트라고 칭송 받는 분이시군요!”

“과찬이십니다.”

성윤은 겸양의 말을 하고 통신기를 들었다. 몬스터를 처리했다고 보고를 보냈다.

진수는 싱글싱글 웃는 낯으로 성윤이 보고를 보내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한껏 머금은 미소와는 다르게 그의 눈빛은 추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

두 달의 임무를 끝내고 성윤이 다시 달로 올라갈 때가 됐다. 언제나와 같이 신혜와 아쉬운 이별을 하고 달로 올라가는 성윤이 탄 우주선을 지민은 신혜와 함께 올려다봤다.

“갈까?”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듯 신혜는 울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의젓하게 성윤과 이별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아이의 슬픈 감정이 어디로 가진 않는다. 새빨개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신혜를 그녀는 다정히 안아줬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회사가 바쁘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다시 안정화에 접어들었다.

오늘 정도는 아이와 함께 있어 주겠다며 신혜의 손을 잡고 성윤의 집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죠?”

지민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목소리가 착 깔리는 게, 그녀의 차가운 카리스마와 더해져 무척 위협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정범의 사장이신 한지민 씨죠? 절 알고 계시는 것 같네요. 그러면 이야기가 빠르죠. 엄마가 딸을 만나러 오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닐 텐데요?”

그러며 그녀는 신혜를 보며 웃었다.

“오랜만이야, 신혜야.”

그녀는 미연이었다.

신혜가 얼른 지민의 뒤로 숨었다. 그건 분명 딸, 그것도 한창 엄마 손을 그리워할 여섯 살짜리 아이가 보일 행동이 아니었다.

“어쩐 일이냐고 물었어요.”

“어쩐 일은요. 엄마가 딸 만나러 왔다는 데 뭔가 잘못된 거라도 있나요?”

“엄마 아냐!”

신혜가 큰 소리를 지른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신혜는 다시 한번 말했다.

“엄마 아냐….”

“신혜야. 내가 엄마가 아니면 누구니?”

다정한 목소리로 미연이 신혜를 불렀다. 하지만 지민은 미연의 눈이 한순간 날카로워진 걸 놓치지 않았다.

신혜에게 향하는 다정함이 마치 악마의 유혹처럼 보였다. 아니, 악마의 유혹 자체였다.

“엄마가 아니라네요.”

지민이 이죽댔다. 하지만 미연은 태연했다. 철면피. 역시 예상대로 미연이란 여자는 자신의 친어머니보다 한 끗발 더 위의 여자가 확실하다고 지민은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이를 그렇게 버려 놓고 이제 와서 데려가겠다고요?”

“어머, 설마 제 전남편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들은 건가요?”

마치 성윤이 근거도 없는 악담을 했다는 것처럼 미연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을 믿다니. 유능해 보이던데 역시 아직 젊어서 견문이 짧은가 봐요. 말은 양쪽에서 들어 봐야죠.”

“그래도 신혜의 태도를 보면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명백해 보이는데요.”

“아이들은 아직 미성숙해서 어른들의 말을 쉽게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죠. 전남편이 아이에게 어떤 생각을 불어넣었을지는 안 봐도 뻔해요. 역시 내가 아이를 맡았어야 했는데…. 자기는 달로 가면서 혼자 될 아이가 어떻게 될지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지, 원.”

정말로 뻔뻔하기 그지없는 여자다.

지민은 예전부터 했던 생각이 더더욱 확고하게 굳어지는 걸 느꼈다.

이 여자는 적이다.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성윤은 과거의 일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신혜와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것만을 바라고 있었다.

때문에 지민도 성윤의 의견을 존중했다. 하지만 그 과거가 행복한 미래의 발목을 잡으러 온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좋아. 안 그래도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명분을 만들어 주네.’

성윤과 신혜라는 이상적인 가족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욕망 때문에 그 모든 걸 내팽개친 여자.

이미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성윤의 언질은 받았다. 미연이 신혜를 노려 온 이상, 그녀는 자동적으로 적이 된다.

더 이상 사양할 필요 없다. 조용한 살기가 지민 안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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