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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미궁-176화 (176/354)

제176화

대미궁 2층인 고원. 비행 몬스터라는 새로운 존재 때문에 파죽지세로 대미궁까지 온 성윤 일행의 발목을 잡은 곳이다.

단기간에 무지막지한 성과를 이룬 성윤도 태세를 점검할 겸 상당히 오래 머물게 될 거라고 생각하던 곳.

하지만 그 2층의 고원도 결국 성윤 일행의 전진을 오래 잡아두진 못했다.

퍼억!

포윙벌처가 허공에서 급강하한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일행의 귀에 소름끼치게 울렸다.

하지만 성윤 일행은 이미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성윤이 할버드를 쥔다. 그리고 급강하 하는 녀석들에게 집어던졌다.

상당히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해 있던 포윙벌처들이 다급하게 날개를 펄럭이며 대열을 흩트렸다.

성윤은 할버드를 역소환시켰다가 다시 소환시킨 후 바로 녀석들에게 뛰어갔다.

아무리 날개를 퍼덕여도 급강하하던 속도를 바로 죽일 수는 없었다. 녀석들은 이미 지면에 맞닿을 정도로 내려온 상태였다.

“흡!”

성윤이 할버드를 휘둘렀다. 미처 자세를 잡지 못한 녀석들 중 한 마리를 손쉽게 베어냈다.

카아아아아!

정면으로는 승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녀석들이 고도를 높이려 다시 날갯짓을 했다.

성윤은 할버드를 거꾸로 쥐고 도망치는 녀석들 중 한 놈에게 던졌다.

콰직!

꾸에에에엑!

아직 가속이 제대로 되지 않은 놈의 몸통에 할버드가 정통으로 쳐박혔다.

‘이걸로 두 마리.’

숫자를 줄인 성윤은 바로 일행에게 달려갔다.

팀은 에밀리와 그레이스를 보호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포윙벌처의 공격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던 팀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 자식들!”

팀을 빙 돌아 그레이와 에밀리를 공격하려던 한 마리의 포윙벌처에게 방패 모서리가 날아왔다.

끼이이이익!

다급히 피하려던 녀석이었지만 결국 날개 하나가 방패에 닿았다.

우지직!

안 그래도 힘이 강한데 이번 새로운 젬의 영향으로 근력, 속도 모두 상승한 팀의 공격을 방어력이 약한 포윙벌처가 버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날개의 뼈가 부러지며 녀석이 바닥에 떨어졌다.

콰직!

녀석에게 팀의 강철 부츠가 떨어졌다.

바닥에서 부들부들 떨던 녀석이 쥐포가 되어 숨이 끊어졌다. 그 와중에도 팀의 도끼와 방패는 포윙벌처들을 완벽하게 견제했다.

그때 성윤이 들이닥쳤다.

서걱!

팀과 에밀리, 그레이스에게 신경을 팔고 있던 포윙벌처 한 마리가 성윤의 검에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났다.

성윤의 난입을 눈치챈 포윙벌처들이 다급히 날아오르려 했지만 성윤과 팀은 녀석들이 도망가게 두지 않았다. 순식간에 닥쳐온 성윤과 팀의 무기들이 녀석들을 토막 냈다.

일행은 그런 식으로 서로를 보완해가며 날아 온 포윙벌처를 모두 도륙할 수 있었다.

“이제 상당한 양도 잡을 수 있네요.”

그레이스의 말처럼, 이번에 달려든 포윙벌처는 상당히 많은 수였다.

총 여덟 마리. 예전에 다섯 마리의 포윙벌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위기를 넘기며 간신히 이길 수 있었던 때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들은 월석을 회수하고 다시 이동했다. 짧은 풀들이 살랑이며 고원지대 특유의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저 멀리서 바람이 어디서 헛도는지 짐승의 울음 같은 소리를 내기도 했다.

지형이 평탄하지 않아 높이 솟은 언덕 위로 올라간다. 곧 다시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성윤은 잠시 언덕 위에서 시각 마법을 시전하고 주변을 둘러 봤다.

곳곳에 몬스터가 보인다. 어느 쪽으로 가볼까 하고 성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몬스터가 옵니다.”

성윤의 시선이 언덕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의 시선도 성윤을 따라갔다.

검은색의 덩치 큰 고양잇과 동물 비슷한 게 달려오고 있었다.

“퀵블랙퓨마인 것 같습니다.”

성윤이 녀석을 자세히 관찰하며 말했다.

“위쪽에서도 오는데요?”

그레이스의 말에 이번엔 일행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다섯 마리의 포윙벌처가 빙빙 도는 것이 보였다. 대미궁 특유의 몬스터 협공이 시작된 것이다.

성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퀵블랙퓨마, 포윙벌처 모두 높은 기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빠르고 잽싸다. 무엇보다 땅과 하늘, 양쪽에서의 협공은 정말로 골치 아팠다.

“일단 저것들부터 떨어트리죠.”

성윤이 하늘의 포윙벌처를 가리켰다.

“그레이스 씨?”

“알겠어요.”

그녀는 성윤이 말한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콰지직!

그녀의 지팡이에서 섬뜩하게 번개가 튀긴다. 이미 경험이 있는 터라 사람들은 눈을 감고 귀를 막을 채비를 했다.

“쏠게요!”

그렇게 외친 후 그레이스는 마법을 발동시켰다.

번쩍!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시전된 번개는 역시 예전보다 강한 위력을 가지고 위로 뻗어 갔다.

콰르릉!

번개에 뒤이어 천둥소리가 하늘을 울린다. 섬광과 소리가 사라진 후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역시 위력이 달라졌군요.”

고작해야 두 마리를 떨구는 게 고작이었던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네 마리가 하늘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도 하늘을 나는 모양새가 무척 고되어보였다.

“저 녀석들도 처리할까요?”

강해진 마법 위력에 신이 났는지 그레이스가 지팡이를 흔들어 보이며 달려오는 퀵블랙퓨마를 바라봤다.

하지만 성윤은 부정했다.

“아뇨. 마법은 아껴야죠.”

성윤은 위를 올려다봤다. 남은 한 마리의 포윙벌처는 상당히 부상을 입은 와중에도 계속해서 강하하고 있었다.

다시 시선을 내렸다. ‘Quick’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게 당연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퀵블랙퓨마는 빨랐다.

하지만 아무래도 포윙벌처가 퀵블랙퓨마보다 더 일찍 도착할 것 같았다.

성윤은 할버드를 들었다.

휙!

포윙벌처가 사정거리에 접근하자 그대로 던졌다. 녀석은 회피하려고 했지만 부상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퍼억!

할버드의 창날이 몸통을 꿰뚫었다.

“자, 이제 저 녀석들을 상대해보죠.”

성윤은 검과 방패를 들었다.

퀵블랙퓨마의 덩치는 무척 컸다. 높이만 1.7미터를 넘겼다. 그 큰 덩치가 속도까지 빠르니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크아아아앙!

가장 먼저 도착한 녀석이 앞발을 휘둘렀다. 팀이 침착하게 앞으로 나가 방패로 막았다.

쿵!

녀석의 앞발이 방패를 강타했다.

하지만 팀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퀵블랙퓨마를 위협했다. 그리고 도끼로 우회하려던 녀석을 견제했다.

녀석들은 무척 민첩했다. 팀을 우회해서 뒤를 노리거나 에밀리와 그레이스를 공격하려 이리저리 움직였다.

하지만 팀도 예전과 달리 상당히 민첩하게 움직이며 모든 공격을 차단했다.

성윤은 팀의 뒤에서 뛰쳐나갔다.

크아아앙!

웬 떡이냐며 퀵블랙퓨마가 달려든다. 성윤은 크게 입을 벌리고 자신을 물어뜯으려 오는 녀석의 입 안에 검을 꽂아 넣었다.

케에엑

부드러운 속살을 검이 헤집고 안으로 전격이 날뛴다. 퀵블랙퓨마의 눈이 뒤집어졌다.

성윤은 옆에서 덤벼오는 다른 녀석을 방패로 막고 다시 검을 재소환 해 견제했다.

자기에게 검이 휘둘러지자 퀵블랙퓨마가 뒤로 뛰었다. 그 순간 성윤은 할버드를 던졌다. 녀석이 날아간 할버드를 황급히 피하는 게 보였다.

성윤은 녀석이 자세를 잡기 전에 빠르게 따라잡아 검을 휘둘렀다.

서걱!

질긴 가죽이 저항을 하긴 하지만 어렵지 않게 목을 베어냈다.

둘을 끝장낸 성윤은 바로 팀에게 돌아갔다. 팀은 두 마리를 잡아두고 잘 버티고 있었다.

성윤이 퀵블랙퓨마들의 뒤로 치고들어가자 팀도 마주 한 걸음 나왔다. 둘의 협공에 퀵블랙퓨마들이 모두 죽어 나자빠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얼마 전 같았으면 힘들었겠습니다.”

팀이 혀를 내둘렀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특기인 팀에게 퀵블랙퓨마 같은 타입은 정말로 끔찍했다. 얼마 전에 얻은 젬이 아니었다면 몇 마리를 놓쳐 뒤를 잡혔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잘 잡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팀은 성윤의 말에 조금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거면 된 겁니다. 이제 잘 하시게 됐으니까요.”

움직임이 둔하던 팀이 저 정도까지 퀵블랙퓨마의 움직임을 따라잡게 된 건 큰 수확이다.

성윤은 팀을 칭찬하며 월석을 확인하러 갔다.

“젬이 나왔군요.”

성윤은 월석 옆에 있는 젬을 들어올렸다.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는 그 젬은 일자 형태를 하고 있었다.

실버 랭크 무기의 젬. 밑바닥인 실버 랭크이긴 하지만 쥬얼 랭크라는 사실이 변하진 않는다.

쥬얼 랭크를 잔뜩 얻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바로 쥬얼 랭크의 젬이 나오다니, 분명 기쁜 일이었다.

성윤은 젬을 들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어떤 젬이죠?”

그레이스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젬을 보며 물었다.

성윤은 자신의 디바이스 중 새로 얻은 브로치에 젬을 옮겨 지금은 비어 있는 만능 실버 홈에 젬을 끼우고 발동시켰다.

성윤의 손에 커다란 망치가 들렸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문양이 새겨진 자루는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망치 머리의 한쪽은 평평했으며 다른 쪽은 스파이크같이 여러 개의 뾰족한 징이 박혀 있었다.

척 봐도 공구가 아닌, 전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기였다.

“그대로 성윤 씨가 쓰시면 되겠네요.”

젬의 내용을 알고 그레이스가 말했다. 다른 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성윤도 별 말 없이 받아들였다.

망치 같은 무기는 보통 성윤 아니면 팀이 쓸 무기다. 하지만 팀은 이미 쥬얼 랭크의 도끼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팀이 성윤처럼 무기를 바꿔가며 싸우는 타입도 아니니, 자연스럽게 망치는 성윤의 차지가 됐다.

이번에 성윤이 젬을 구입할 권리를 모두 일행에게 넘긴 것도 젬을 양보 받은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럼 다시 이동하죠.”

성윤의 전력도 늘어났겠다 일행은 다시 이동했다. 만나는 몬스터들을 족족 처리했다.

간간이 망치를 섞어 쓰기 시작한 성윤은 꽤 만족했다. 무기 특성상 외피가 단단한 놈들에겐 역시 망치가 더 잘 통했다.

일행은 며칠을 고원에서 지내며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그리고 드디어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는 동굴을 발견했다.

“각오는 됐습니까?”

성윤의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거친 고원의 바람을 등지고 어두운 동굴 안으로 사라졌다.

***

동굴을 나와 대미궁 3층으로 접어든 성윤 일행을 가장 먼저 맞이한 건 시리도록 차가운 냉기였다.

동굴의 출구로 접근할수록 급격하게 떨어지는 온도가 그들을 반겼다. 입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몸을 움츠렸다.

출구를 나온 그들이 본 건 압도적인 흰색의 설원과 하늘에서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는 눈이었다.

“여기가 대미궁 3층. 설원이군요.”

성윤이 눈 내리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으, 추워요.”

그레이스가 옷깃을 여미며 투덜거렸다. 그에 비해 팀과 에밀리는 추워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레이스보다는 훨씬 더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마 영국과 캐나다의 기후 차이 때문일 것이다.

성윤도 상당히 추웠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미리 얻은 정보 덕에 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오기도 했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추울 때는 굉장히 추운 나라여서 익숙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갑옷이 차가워지거나 하진 않는군.’

만약 갑옷이 날씨의 영향을 받았다면 살갗이 갑옷에 달라붙어 부상을 당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

성윤은 깨끗한 눈 위로 발자국을 찍었다. 많은 연결자들이 이 입구를 지나쳤겠지만 계속 내리는 눈이 그 흔적을 지워버린 듯 눈에는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죠.”

성윤의 말에 일행은 천천히 이동을 시작했다. 계속 내리는 눈 때문에 시야는 좋지 못했다. 일행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히 내딛었다.

퍼석!

좋은 귀가 그들의 발자국과는 전혀 다른 소리를 들었다. 저 멀리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비대한 덩치가 척 보기에도 위험하게 보인다. 시야가 굉장히 좋지 않았던 탓에 그것은 일행에게 상당히 가까이 접근하고서야 발견된 상태였다.

“아이스베어로군요.”

서리가 낀 것 같은 하얀 털과 그에 비교되는 붉은 눈동자를 가진 곰 형태의 몬스터가 눈밭을 헤치며 그들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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