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174화 (174/354)

제174화

외벽이 갈라졌을 때 암스트롱 밖으로 내팽개쳐진 시신 수습은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인력이 달리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성윤은 그 의견을 부정했다.

“세계가 암스트롱이 망하게 두지는 않을 겁니다.”

유일한 달의 도시지. 세계에너지 생산의 주요 원료여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월석 채취에 반드시 필요한 곳이다.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오려고 할까요?”

팀이 물었다.

“아시다시피 우리 연결자들은 달을 떠나지 못합니다. 그러면 일반인들이 문제인데, 그들도 다시 돌아올 겁니다. 물론 떠날 사람은 떠나겠죠. 하지만 그만큼 새로 충원되는 인력도 있을 겁니다. 사건의 원인이 밝혀졌으니 조심을 하면 된다고 생각할 테고, 무엇보다 돈의 힘이란 건 인간이 스스로 사지로 걸어가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니까요. 앞으로 누릴 서비스의 질은 좀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성윤은 예전 희망이란 것이 전혀 없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돈이 되는 것이라면 정말로 목숨마저 걸 수 있을 정도였다.

세계에는 분명 예전의 자신 같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을 거라고 성윤은 확신했다.

하지만 절대란 건 없다. 그래서 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뭐, 다른 요인이 없다면의 얘기입니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된 것일까. 이틀 뒤, 하나의 소식이 전세계를 강타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고 새로운 월면도시를 건설한다는 소식이었다.

***

월면도시 암스트롱은 딱히 어느 나라에 속한다고 볼 수 없는 도시다.

하나, 이름에서 나타나듯 그 건설 주체는 미국이었고, 당연히 미국 및 서방 세력의 영향력이 강했다.

법조차 미국법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미국의 경쟁자인 중국과 러시아가 당연히 좋아할 리 없었다.

‘그렇다고 제2의 월면도시 건설을 선언할 줄이야.’

성윤은 팔짱을 끼고 한창 뉴스가 나오고 있는 TV화면을 쳐다봤다.

암스트롱이 달의 유일한 도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음에도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 세웠던 기지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암스트롱에 비교하기 미안할 만큼 작은 기지였지만 그래도 필요한 건 대부분 비치되어 있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무지막지한 중국의 자본을 투입하여 도시 규모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게 두 나라의 목표였다.

그 계획에 이번 암스트롱의 이변은 분명 엄청난 도움이 됐을 것이다.

“안전한 월면도시인가요.”

성윤과 로스 남매의 숙소에 놀러와 있던 그레이스가 도시 건설 계획의 캐치프레이즈를 중얼거렸다.

암스트롱은 도시 안에 두 개의 미궁을 두고 있다.

시작의 미궁과 대미궁.

그건 초보 연결자를 효율적으로 성장시키고 고위 연결자가 대미궁의 월석을 수월하게 채취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미궁 밖으로 몬스터나 골렘 등이 튀어나오기 시작한 지금, 두 개의 미궁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한 폭탄으로 변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에 비해 이번에 지어질 두 번째 월면도시는 도시 안에 어떤 던전도 넣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소련 기지 자체가 주변 미궁들과는 상당히 거리를 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척 불리한 입지조건이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뛰어난 입지 조건이었다.

“완성되면 옮겨 갈 사람들이 많겠군요. 도시에서조차 언제 몬스터나 골렘이 튀어나올지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니. 솔직히 저도 사양입니다.”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팀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저 정도로 초고위급 연결자들을 끌어갈 순 없을 텐데.’

성윤은 생각했다.

대미궁에 출입하며 대미궁에서 얻은 디바이스와 젬을 가지고 대미궁의 월석을 채취하는 자들. 그들에게는 저 캐치프라이즈가 잘 먹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안전이란 말에 솔깃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대미궁이라는 압도적인 어드벤티지를 버려가면서까지 갈 것인가가 문제였다.

가는 사람은 있을 테지만, 아마 그 사람들은 전부 이번 사건 때문에 대미궁을 포기한 사람들일 것이다. 대미궁 공략을 계속 할 사람은 암스트롱에 남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반 미궁에 출입하는 연결자들만 데리고 운영하려는 것일까.

그러나 정말로 일반 연결자들이 채취하는 월석과 대미궁 공략자들이 채취하는 월석은 그 격이 다르다.

아무리 일반 연결자들을 많이 끌어간다고 해도 월석 매출은 암스트롱의 연결자들이 압승을 할 것이다.

하지만 뒤이어 뉴스에서 나온 소리에, 성윤은 물론 일행도 깜짝 놀랐다.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기지 근처에서 대미궁과 비슷한 미궁을 발견했으며, 이것이 제2의 대미궁이라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각계에서는….]

‘저러면 사정이 달라지지.’

정말로 어쩌면, 암스트롱의 몰락이 현실화될지도 몰랐다.

***

성윤과 일행이 심각하게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을 때, 누군가 초인종을 울렸다.

“잘 지냈나.”

방문한 사람은 현우였다. 그는 지금 필요할 것이라며 보관의 젬에서 식료를 잔뜩 꺼내 줬다.

도시 기능이 반 쯤 마비된 지금의 암스트롱을 보면 무엇보다 큰 선물일지도 몰랐다.

성윤의 보관의 젬에도 아직 남은 여유 식량은 있었지만 지금의 암스트롱에서 식량은 많을수록 좋았다.

“어쩐 일이십니까?”

성윤은 그에게 커피를 타주며 물었다. 그는 커피로 목을 축였다.

같은 최고위 연결자라도 홍차가 아니면 투덜대고, 홍차를 줘도 맛이 없으면 투덜대는 러셀을 생각하며, 이런 쪽은 주는 대로 잘 마시는 현우가 낫다고 성윤은 몰래 생각했다.

“알려줄 것도 있고, 겸사겸사 맡은 의뢰도 있어서 말이야.”

현우는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에 좌르르 흘려 냈다.

“자네들이 구입한, 장 파라도의 디바이스들과 젬들이네.”

그건 다섯 개의 디바이스들과 십 여 개가 넘는 쥬얼 젬들이었다.

이번 암스트롱에 엄청나 피해를 가져온 죄로 장 파라도는 무거운 벌을 받게 됐다.

암스트롱의 피해에 대한 배상으로 재산을 압수당했고, 디바이스와 젬도 예외는 아니었다.

암스트롱 상층부는 골렘들을 막아 암스트롱의 피해를 줄여준 사람들에게 압수한 디바이스와 젬의 구입 우선권을 줬다.

실제로 성윤 일행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괜히 골렘을 적대해 어떻게 보면 피해를 더 늘린 셈이기도 했지만, 일단 그들은 선의로서 그런 일을 한 것이니 구입 우선권을 준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은 없었다.

성윤 일행으로서는 대미궁에 자신 있게 들어섰음에도 고작 2층 고원 지대에서 발이 묶여 있는 현 상황을 타파할 좋은 기회였다. 장 파라도는 고위의 연결자였고 고급 젬도 많았다.

성윤 일행은 가장 높은 랭크의 젬은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했다. 성윤 일행은 아직 그렇게까지 높은 쥬얼 젬은 필요 없었고 무엇보다 너무 비쌌다.

성윤 일행의 양보를 받은 사람들은 일행에게 고마워하며 그들도 양보를 했다.

다른 골렘을 쓰러뜨린 둘은 성윤 일행보다 더 고위의 연결자였기에 꼭 필요한 고위 랭크의 쥬얼 젬만을 갖고 대부분의 쥬얼 랭크는 성윤 일행에게 양보한 것이다.

그게 바로 눈앞에 놓인 십 여 개의 쥬얼 젬이었다. 이 때문에 로스 남매는 대부분의 재산을 탕진해야 했고, 한 번 돈을 써 젬을 새로 맞췄던 그레이스는 성윤에게 빚까지 져야 했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다.

젬들이 빛을 받아 환상적으로 빛났다. 그 가치를 아주 잘 알고 있기에, 일행은 침을 꿀꺽 삼켰다.

“확인들 해봐.”

현우의 말이 떨어지자 성윤을 제외한 일행은 바로 디바이스와 젬들에 손을 갖다 댔다.

그것들을 착용하고 바로 발동을 시켜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을 했다.

“다루지 못 하는 젬은 없는 모양이군.”

다행히도 깨진 젬은 없었다. 여기에 쏟아 부은 돈이 천문학적인 터라 로스 남매와 그레이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는 구입하지 않았나?”

현우와 같이 다른 사람들이 젬을 발동하는 걸 구경만 할 뿐, 성윤은 젬에 손대지 않았다.

“저는 쥬얼 젬을 상당히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얻을 기회도 많고요.”

성윤의 쥬얼 젬의 수는 동료들보다 상당히 많았다. 솔직히 대미궁 2층에 묶인 이유도 성윤 때문이라기 보다는 성윤을 따라 올 수 없는 동료들에 의한 감이 있었다.

그만큼 성윤의 쥬얼 젬 보유수는 독보적이었다. 때문에 성윤은 이번 기회를 전부 동료에게 양보했다.

시간만 있으면 쥬얼 젬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양보한 이유였다.

“그런가.”

현우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뭐, 암스트롱 상층부에게 받은 의뢰는 이걸로 끝났고 이젠 자네에게 알려 줄 게 남았어.”

성윤이 현우를 쳐다봤다.

“자네가 슈퍼 골렘을 죽일 때 겪은 상황 말이야.”

성윤의 눈빛이 달라졌다. 새로 얻은 디바이스와 젬을 만지작거리며 좋아하고 있던 일행의 시선도 대번에 현우에게 쏠렸다.

“알아내셨습니까?”

밑져야 본전이라고 예전 현우에게 전화를 했던 게 신의 한 수였을까.

“확실한 건 아냐. 하지만 자네와 공통된 경험을 겪은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야. 분명 현실감 없이 주변 속도가 느려지는 것 같고, 멈춰버린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지?”

“예.”

“찾아보니 간간이 그런 현상을 겪는 연결자가 있다더군.”

“어떤 연결자입니까?”

“1세대. 그것도 대미궁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격을 가진 강력한 연결자가 그런 현상을 겪었다고 하더군.”

1세대. 그리고 대미궁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격을 가진 자.

전부 성윤과 맞아 떨어지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어.”

“뭐가 말이죠?”

“그들은 자네처럼 강력한 일격을 날리지는 못했네. 그리고 자네가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꼈지.”

“무슨 감정 말입니까?”

“공포.”

성윤은 입을 다물었다. 그만큼 뜻밖의 말이었다.

“대미궁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격의 1세대는 그저 그런 미궁만을 돌고 나라의 지원을 받아가며 종마 노릇을 한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 별로 다른 말은 아니야. 실제로 1세대는 그런 생활을 하고 그 생활에 만족하니까. 하지만 정말로 이유가 그뿐일까? 자네 같은, 무조건 대미궁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한 1세대 괴짜가 자네뿐일까?”

“1세대가 대미궁에 들어가지 않은 다른 요인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1세대가 대미궁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까지 격이 올라가면 가끔 자네가 겪은 것 같은 현상을 겪는다더군.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냐. 그때 같이 들리는 심장 소리지. 자네는 그 소리를 듣고 뭘 느꼈나?”

성윤은 기억을 되짚어봤다.

“당시 머리가 멍해 제대로 된 상념을 갖진 않았습니다만, 다시 제 심장이 뛰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게 자네와 다른 연결자의 결정적인 차이점이야.”

현우는 상체를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

“다른 1세대는, 그 심장 소리를 들을 때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더군.”

주변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심장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주 미쳐버릴 것 같다고 해. 그리고 서서히 대미궁에서 멀어져가지. 그 소리는 쥬얼 젬을 사용하고 있을 때 들린다고 하니까.”

그리고 1세대들은 쥬얼 젬을 포기하고는, 다른 미궁에도 최대한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고 현우는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자네는 정말 특이한 거야. 그런 공포를 느끼지 못 하다니. 아니, 공포를 느끼지 못 하는 건지 공포를 무시하는 건지, 원.”

현운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마치 자신이 경험하신 것처럼 얘기하시는군요.”

“모든 1세대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포기할 정도면 말 다한 거지. 이제는 자네라는 예외가 등장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말한 현우는 몸을 일으켰다.

“뭐, 내가 들른 용건은 이걸로 끝이네.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다른 1세대를 찾아 봐. 한국이나 영국에도 1세대는 많으니, 자네의 부탁이라면 어떤 나라든 들어줄 거야. 어려운 부탁도 아니니까.”

그 말을 끝으로 현우는 현관으로 향했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밥이라도 한 번 사.”

현우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손만 한 번 들어보이고는 집을 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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