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화
“에밀리! 성윤 씨 치료해!”
팀은 연신 골렘에게 도끼를 휘두르며 외쳤다. 대미지를 입히려는 목적보다는 성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쫓는 편에 가까웠다.
갑자기 주변이 전쟁터가 되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팀으로서는 차라리 그게 편했다.
“성윤 씨! 정신 차려요!”
에밀리가 성윤의 몸에 손을 댔다가 화들짝 손을 뗐다.
‘차가워!’
성윤의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입김이 뿜어져 나올 정도다. 에밀리는 바로 성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다행히 치유 마법이 효과가 있었다. 성윤의 몸에서 냉기가 사라지고 점차 몸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카드득!
성윤이 아직까지 갑옷에 붙어 있는 얼음을 신경질적으로 떼어냈다.
“감사합니다, 에밀리 씨.”
드디어 자유롭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그가 몇 번 움직여 볼 때였다.
콰앙!
팀이 그의 옆으로 날아와 처박혔다. 그가 부딪친 건물 벽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크윽! 빌어먹을!”
다행히 팀은 크게 다치지 않은 듯 벌떡 일어났다. 새빨간 얼굴이 그가 지금 고통보다는 굴욕감을 더 느끼고 있음을 알렸다.
쿠웅!
골렘이 그들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팀과 성윤은 무기를 내밀어 그것을 경계했다. 에밀리와 그레이스는 둘의 뒤에서 바로 마법을 펼칠 준비를 했다.
기분 나쁜 침묵이 흘러갔다.
먼저 움직인 건 골렘이었다. 녀석의 눈이 이번엔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저건 무슨 공격인지 안다. 성윤이 발을 디디며 동시에 망토를 발동했다.
투확!
네 개의 날개가 펼쳐지며 성윤이 가속했다. 순식간에 골렘의 면전까지 짓쳐들어왔다.
“흡!”
할버드를 휘둘렀다. 도끼날이 녀석의 얼굴 아니, 얼굴로 짐작되는 곳을 찍었다.
카앙!
금속 소리. 안면에 작지 않은 상처가 나며 녀석의 상체가 들렸다.
퍼엉!
화염이 터져 나왔다. 화염방사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멀리 쏘아져 나가는 강렬한 불꽃. 그러나 그것은 다행히 일행의 머리 위로 높이 스쳐지나갔다.
녀석의 상체가 들린 덕이었다. 그리고 불꽃도 외벽까지 뻗어 나가진 못했다.
“하아아앗!”
그 와중에도 성윤은 계속해서 골렘을 공격하고 있었다. 할버드, 검, 방패, 건틀릿 가릴 것 없이 무조건 골렘을 두들기는데 주력했다. 의외로 골렘의 회피 동작은 굼떴다.
퍼어억!
마법이 멈추자 다시 골렘이 반격에 나섰다. 육중한 팔이 성윤을 향해 뻗어 왔다.
성윤은 뒤로 물러섰다.
‘움직임이 달라졌어.’
성윤은 날카롭게 골렘을 살폈다. 마법을 쓰고 있을 때와 쓰지 않을 때의 움직임이 확실히 달랐다.
‘혹시!’
마법을 쓸 때는 움직임이 둔해진다. 그것이 녀석의 약점일지도 몰랐다. 바로 시험을 해보려던 성윤은 멈칫했다.
‘젠장!’
시험을 하려면 녀석에게 마법을 쏘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녀석이 마법을 쓰는지도 모르지만, 녀석의 마법은 암스트롱에 너무 큰 피해를 입힌다.
건물 몇 채의 피해 정도라면 감수를 하겠지만 녀석의 마법 공격 중에는 암스트롱의 외벽을 파괴할 수 있는 공격도 있는 것이다.
‘런던 때 생각나는군.’
좋지 않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그 커다란 사건을 겪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런 사건을 겪고 있다. 상황에 맞지 않은 헛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성윤은 움직이고 있었다.
카앙! 카앙!
성윤과 팀의 협공이 조화를 이룬다. 앞뒤에서 골렘을 포위하면 몰아붙였다.
콰앙!
간간이 그레이스의 마법도 터져줬다. 주변 건물에 피해를 입히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피신해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거 보상하라 그러진 않겠지?’
만약 그렇다면 그게 암스트롱의 상층부든 건물의 주인이든 멱살을 잡을 의향도 충분히 있었다.
터엉!
“우욱!”
골렘의 일격이 성윤의 복부를 가격했다. 충격이 내달렸다. 성윤의 몸이 건물에 처박혔다.
“성윤 씨!”
로스 남매와 그레이스가 깜짝 놀라 외쳤다. 다행히 성윤은 건물 잔해 속에서 걸어 나와 괜찮다고 손을 흔들었다.
‘일격에 이 정도인가….’
에밀리가 걸어준 방어막이 파괴되며 1차로, 갑옷이 2차로 충격을 줄였는데도 내장이 꼬이는 것 같았다.
성윤은 에밀리에게서 방어 마법을 재부여받고 다시 전투로 뛰어 들었다.
일행은 한참을 골렘과 싸웠다. 골렘과 직접 맞붙는 성윤과 팀의 몸에 자잘한 상처가 늘어났다.
당장 치료해주고 싶었지만 에밀리는 꾹 참았다. 저런 자잘한 상처에 일일이 회복 마법을 사용해서 한정된 횟수를 모두 소모해버리면 정작 필요할 때 치유 마법을 사용 못할 수도 있다.
“팀 씨, 느꼈습니까?”
골렘과 잠시 거리를 벌린 성윤이 말했다.
“네. 이 녀석, 약해지고 있네요.”
그건 정말로 반가운 사실이었다.
‘분명 로스 여사가 골렘과 싸울 때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약해졌다고 했지.’
녀석은 장기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다른 요인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골렘에 대한 분석은 이 전투가 끝난 다음에 할 일이었다.
“그레이스 씨! 냉기 마법 한 방 부탁드립니다!”
그레이스가 지팡이를 높이 들고 젬에 집중했다. 성윤은 혹시나 녀석이 그레이스에게 덤비지 못하도록 골렘에게 파상공세를 가했다.
“두 분! 피하세요!”
성윤과 팀이 동시에 골렘에게서 떨어졌다.
마법이 발동했다. 아무래도 속도가 느린 팀을 쫓아가려 움직이던 골렘의 몸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렇지!”
팀이 크게 외쳤다. 지금까지 골렘의 무지막지한 마법 저항력 때문에 그레이스의 마법은 별 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눈에 보일 정도로 골렘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었다.
마법 발동이 끝났지만 골렘의 몸에 엉겨 붙은 얼음은 계속 골렘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흐아아앗!”
팀이 도끼를 휘둘렀다.
콰득!
얼음이 깨지고 골렘의 표면에 손상이 갔다.
성윤도 끼어들었다. 검을 들어 두 손으로 자루를 꼭 잡고 머리를 중점적으로 찔렀다.
콰드득!
도끼가 떨어지며 단단한 몸체를 찍어 내고.
우득!
안면 부위를 검이 집요하게 찔러 댄다.
터엉!
방패 모서리가 복부를 강타하는가 하면.
콰직!
할버드의 갈고리가 어깨를 타격했다.
골렘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성윤과 팀은 정말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골렘을 난타했다.
그건 전투가 아닌 작업 같았다. 하지만 둘은 필사적이었다.
그그그그극!
골렘의 손 움직임이 배터리가 다 된 로봇처럼 서서히 멎어간다. 여섯 개의 눈도 빛을 잃어갔다.
쿠웅!
골렘이 무릎을 꿇었다. 상체도 기울어지며 땅바닥에 엎어졌다.
그리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끄, 끝났나?”
팀이 도끼를 거두지 않고 중얼거렸다.
성윤이 쓰러진 골렘에게 다가갔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할버드를 소환했다.
콰악!
그대로 내려찍었다. 골렘의 등에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골렘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아, 젠장!”
성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팀과 에밀리, 그레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세 시도 안 됐군.’
성윤은 시계를 들여다봤다. 평소라면 대미궁에 들어가기 위해 푹 수면을 취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이게 뭔 날벼락이야.’
이미 잠기운은 완전히 달아났다. 지금 잠자리에 누워도 잠은 안 올 것 같았다.
“사이렌은 이 녀석 때문에 울린 걸까요?”
팀이 골렘에 접근해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글쎄요. 그러면 다행입니다만.”
만약 암스트롱에 경보가 울린 이유가 성윤 일행이 쓰러뜨린 골렘때문이라면 암스트롱의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하지만 성윤은 못내 불길했다. 아까 본, 동시에 터진 마법이 자꾸 걸렸다.
‘이 녀석이 마법을 동시에 발동할 수 있던가?’
만약 그렇다면 전투 중에는 왜 사용하지 않았던 것일까. 혹시 약해졌기 때문에 그 능력도 사용하지 못한 걸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군.’
하지만 성윤이 내심 짐작한 대로, 사건은 끝난 게 아니었다.
콰앙!
멀리서 폭음이 들린다. 일행은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커다란 화염이 솟구치는 게 보였다. 그리고 화염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흙더미가 건물들을 덮치고 있었다. 번개가 떨어지고 돌풍이 불어 닥친다.
“혹시 말이죠.”
에밀리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암스트롱에 지금 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건, 골렘이 아니라 골렘들이 아닐까요?”
사람들의 등허리가 서늘해졌다. 한 마리만으로도 네 명이 죽을 고생을 해서 잡았는데 그게 몇 기나 더 있다면.
“미치겠네!”
팀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지금 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게 다른 골렘이든 아니면 전혀 다른 종류의 위협이든 아직 암스트롱의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요?”
그레이스가 물었다. 성윤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녀석들은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쿠우웅!
그들의 앞으로 무언가가 또 떨어져 내렸다. 골렘일까. 성윤 일행은 다시 전투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건 골렘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성윤 일행이 아는 골렘이 아니었다.
“…저건 뭐야.”
나지막한 팀의 목소리가 모두의 마음을 대변했다.
그건 여덟 기의 골렘과 함께 출현한, 다른 골렘들과는 형태가 전혀 다른 두 기의 골렘 중 하나였다.
“슈퍼 골렘이라고 부르면 되겠군요.”
팀이 야유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없었다. 공포심을 몰아내기 위해 억지로 쥐어 짜낸 허세였다.
스윽!
그 슈퍼 골렘의 눈이 팀을 향했다. 움직임을 보고 성윤은 소름이 돋았다.
일반 골렘은 빠르고 강하긴 했지만 움직임이 둔탁했다. 하지만 슈퍼 골렘의 움직임은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겉모습을 보면 일반 골렘과 재료는 비슷할 것 같은데….’
단단한 광석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저런 부드러운 움직임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슥!
슈퍼 골렘이 잠시 자세를 잡는 듯싶었다. 성윤 일행은 긴장했다.
콰아앙!
갑자기 폭음이 들렸다. 성윤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팀이 건물 벽에 처박혀 있다. 그의 단단한 방패는 중앙이 크게 함몰되어 있었고 방패를 들고 있던 왼팔은 이상한 모양으로 꺾여 있었다.
“쿨럭!”
팀의 입에서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방패로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이 팔을 부러뜨린 것만도 모자라 내장까지 건드린 것이다.
식은땀이 흘렀다. 성윤은 어느새 팀이 있던 자리까지 이동해 있는 슈퍼 골렘을 바라봤다.
단 일격. 단 일격 만에 슈퍼 골렘은 팀을 전투 불능으로 빠트렸다. 뭔가 특수한 공격을 한 것도 아니다. 팀에게 접근해 주먹질을 한 것뿐이다.
그저 그 속도는 미처 반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고, 그 힘은 방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을 뿐이다.
스윽!
슈퍼 골렘의 고개가 또다시 움직였다. 녀석이 시선이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에밀리와 그레이스에게 향했다.
‘안 돼!’
성윤은 가속했다. 그대로 슈퍼 골렘과 에밀리, 그레이스의 사이에 방패를 들고 몸을 우겨 넣었다.
콰아앙!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시각은 계속 정보를 보내온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주변 풍경이 비현실적이었다.
쿠웅!
풍경이 지나가는 게 멎었다. 살펴보니 무너진 건물 잔해에 몸이 부딪친 모양이다.
지면에 뒹구는 자신의 몸이 보인다. 마치 꿈을 꾸는 거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곧 몸에서 올라온 격통이 이것이 현실이라고 확인시켰다.
“크으으으윽!”
이를 악물고 신음을 냈다. 그는 얼른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이상하게 구부러져 있다. 게다가 몸통의 뼈도 상당히 부러진 것 같았다.
성윤운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든 상대를 바라봤다. 슈퍼 골렘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성윤 씨!”
“서, 성윤 씨….”
그레이스와 에밀리가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하고 성윤을 불렀다. 성윤은 급히 치유 마법을 시전했다.
격통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곧바로 회복이 되는 건 아니다. 얼기설기 뼈가 붙자 바로 몸을 일으켰다. 당연히 통증이 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에밀리 씨, 팀 씨를 치료…!”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슈퍼 골렘이 움직였다. 그것은 성윤에게 근접해 주먹을 날렸다.
아까 슈퍼 골렘의 공격을 막은 것도 우연이다.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녀석의 공격을 막을 수단은 없었다.
강맹한 위력을 품은 녀석의 주먹이 성윤의 얼굴로 날아온다. 조금만 있으면 저 주먹에 의해 그의 머리는 터져버린 석류처럼 붉게 변할 것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성윤은 그 동작이 느리게 보였다.
두근!
예전에 멈춰버린 심장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투확!
성윤은 놀랐다. 분명 대포에 맞은 것처럼 터져버려야 했을 자신의 얼굴이 멀쩡했다. 놀랍게도 자신은 그 빠르고 강맹한 슈퍼 골렘의 공격을 목을 꺾어 피한 것이다.
하지만 놀랄 사이도 없이 슈퍼 골렘은 2차 공격에 들어간 상태였다. 아까 같은 감각은 느껴지지 않는다. 슈퍼 골렘의 주먹이 다시 성윤의 얼굴에 다가올 때였다.
콰아아앙!
슈퍼 골렘이 날아갔다. 건물 몇 개를 뚫고 사정없이 처박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뇌가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성윤은 최대한 머리를 짜내, 눈앞에 나타난 인물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러셀 경.”
영국의 최강 연결자, 찰리 러셀이 거기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