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166화 (166/354)

제166화

“다친 곳은 없습니까.”

일행에게 돌아간 성윤이 물었다.

다행히 세 명 다 고개를 저었다. 성윤이 보기에도 상처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역시 대미궁이라고 할까요. 정말로 사람 피를 말리게 하는군요.”

팀이 무빙트리를 거칠게 걷어차며 말했다.

대미궁에 들어갈 자격을 얻은 파티답게 초반에 성윤 일행은 능숙하게 몬스터를 사냥해갔다.

자신들의 힘이 통한다고 팀원들의 안색이 밝아진 것도 잠시, 다른 미궁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미궁 몬스터들의 특성에 그들은 혀를 내둘렀다.

브루탈문웜은 땅 속에서 그들을 기습할 기회를 노렸고 무빙트리는 감쪽같이 나무 행세를 하며 그들이 긴장을 내려놓길 기다렸다.

그 외에 다른 몬스터들도 일행을 위협했다.

몇 번을 깜짝깜짝 놀라다 보니 인간만 보면 정신줄 놓고 달려들던 일반 미궁의 몬스터들이 그리워질 정도였다.

“그래도 수익은 짭짤해요.”

그레이스가 무빙트리가 있던 곳으로 다가갔다. 쭈그려 앉아 무빙트리가 남겨 놓은 월석을 챙겼다.

배구공만 한 그 월석은 마치 무지개를 안에 들여놓은 것처럼 안으로 여러 빛무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대미궁에서만 나는, 마력 효율이 극도로 높은 월석이었다. 당연히 단가도 뛴다.

런던을 재건하기 위해 돈이 많이 필요한 그레이스가 신이 나 주워 보관 젬이 있는 성윤에게 건넸다.

“슬슬 사냥을 끝낼 시간이군요.”

성윤이 말했다. 하지만 그는 평소 미궁에서 시간을 체크할 때 쓰는 손목시계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보는 건 하늘이었다.

뚜렷하게 붉은 빛으로 물든 하늘은 분명 노을이 지는 모습이었다.

태양은커녕 뚜렷한 광원도 없는 이곳에서 왜 노을이란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무수한 미궁의 미스터리 중 하나였다.

문득 팀이 말을 꺼냈다.

“오늘은 미궁에서 지내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미궁을 더 내려갈 거라면 그 정도의 준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대미궁의 입구는 암스트롱 내부에 있고 일행이 공략하고 있는 곳은 대미궁의 1층이다.

당연히 출입이 수월해 그들은 사냥을 끝마치고 암스트롱으로 귀환해 저녁을 보냈다. 하지만 대미궁 아래층으로 더 내려간다면 당연히 그런 방법은 불가능했다.

“일단 저는 찬성인데. 어떻게 할까요, 성윤 씨?”

그레이스가 팀의 말에 동의했다. 에밀리는 파티 전체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성윤은 대미궁 입구로 향하던 발을 돌렸다. 붉은 노을을 배경 삼아 타는 듯 휘날리는 초원을 걷는다.

그 몽환적인 풍경은 메마른 감수성을 가진 사람도 저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을 흘리게 만들 것 같았다.

하지만 성윤 일행은 풍경에는 관심도 없이 사방을 경계했다. 풍경에 신경을 쓰다 몇 번이고 몬스터에게 기습을 당한 결과였다.

다행히 몬스터를 만나지 않고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얕은 둔덕이 사방을 막고 있는 푹 꺼진 대지가 보인다. 개울이 졸졸졸 흐르며 가로지르는 그곳은 둔덕이 주변 바람을 막아 야영하기 딱 좋아 보이는 곳이었다.

그 곳으로 들어가자 몸에 느껴지는 마나가 딱 멎었다. 마력공소였다.

얼마 전 현우가 가르쳐 준 장소 중 하나였다.

주변 지면을 대충 밟아 평탄하게 만들고 그 위로 모포를 깐다. 그 사이 대미궁은 완전히 어둠에 휩싸였다.

마력이 없어 어둠 속에서는 주변을 보지 못하게 된 터라 성윤은 보관의 젬에 넣어 뒀던 랜턴을 꺼냈다. 랜턴의 빛이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거기에 휴대용 버너와 냄비, 프라이팬을 꺼내고 고기와 즉석 식품마저 꺼냈다.

곧 고기 구워지는 냄새라든가 즉석 수프의 냄새라든가, 도저히 미궁과는 어울리지 않는 냄새들이 주변을 가득 매웠다.

얼마 전 현우가 갖고 있으면 좋을 거라며 선물로 준 것들이었다. 그 덕에 일행은 대미궁에서 따뜻한 음식을 맛보며 즐길 수 있었다.

“설마 미궁 안에서 캠핑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악명 높은 대미궁 안에서 말입니다.”

구워진 고기를 뜯으면서 팀이 말했다.

하지만 팀을 포함해 성윤을 제외한 일행은 조금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성윤이야 현우가 데리고 다니며 미궁에서 술까지 마셔본 적도 있지만 일행들은 취사조차 처음인 것이다.

“저도 처음엔 놀랐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몬스터들은 마력공소에는 절대로 오지 않더군요. 성현우 씨의 개인 미궁에서는 술도 마셨었습니다.”

“전 그것까지는 못 하겠습니다.”

팀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저와 현우 씨도 대미궁에서는 그저 음식만 해먹었습니다. 혼자나 믿을 만한 파티와 돌아다니는 개인 미궁과는 다르게, 대미궁에는 믿지 못 할 다른 연결자도 돌아다닌다고 말이죠.”

그게 아니라면 성윤도 술을 내놨을지도 몰랐다.

미궁에서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식사를 끝마치고 일행은 취침 준비를 했다.

첫 번째 불침번은 에밀리였다.

성윤은 모포를 덮고 누웠다. 하지만 자기 전의 행사인, 신혜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걸 잊지 않았다.

“신혜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기분이 좋아보이시는데요.”

에밀리가 물었다. 성윤은 드물게 작은 미소까지 지어가며 대꾸했다.

“신혜가 제 딸이란 게 새삼 기뻐서 말입니다.”

궁금증을 일으키는 묘한 말.

하지만 성윤은 그 이상은 말하지 않고 다시 사진에 시선을 두었다.

***

성윤과 일행은 대미궁 초원 지대를 돌아다니며 많은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과연 대미궁의 명성답게 몬스터들의 파상 공세는 다른 미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몬스터들은 개개의 능력도 강했고 지형지물을 이용하는데다가 무리지어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역시 짭짤했다.

일행은 개인 미궁에서는 결코 얻지 못 할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성윤 일행은 초원을 빙 두르고 있는 벽면에 뻥 뚫린 동굴 입구 앞에 서 있었다.

“그럼 가 볼까요?”

성윤의 목소리에는 긴장된 음성이 역력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의 얼굴에도 마찬가지의 감정이 보였다.

그들은 대미궁 1층인 초원을 떠나 드디어 다음 층으로 향하려는 것이었다.

초원은 현우의 도움을 받은 성윤이 어느 정도 경험을 쌓고 있어서 그럭저럭 쉽게 공략할 수 있었지만, 이 아래부터는 다르다. 정보야 있긴 하지만 경험이 없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려가고 싶지 않아 하는 이는 없었다. 성윤은 지민을 위해서, 로스 남매는 어머니를 위해서, 그레이스는 나라와 왕실을 위해서.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그들의 뜻은 똑같았다.

성윤이 먼저 발을 내디뎠다. 일행은 천천히 초원을 뒤로하고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쭉 뻗어 있었다. 뒤에서 들어오던 빛이 사라지고 일행은 마력이 전해주는 정보만을 통해 이동했다.

곧 앞 쪽에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궁의 다음 층이 나온다는 소리다.

일행은 뭐가 튀어나올지 긴장하고 무기를 꼭 쥐었다.

후우웅!

동굴을 나오자 그들을 가장 먼저 맞은 건 바람이었다. 성윤의 망토와 에밀리, 그레이스가 입은 로브가 미친 듯이 펄럭인다. 에밀리와 그레이스는 옷자락을 꽉 쥐어야 했다.

“여기가….”

성윤은 눈에 힘을 주고 주변을 둘러봤다.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푸른 하늘과 녹색의 대지가 맞물리는 그 곳은 1층과 같은 초원지대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성윤은 자신이 나온 곳을 뒤돌아봤다. 볼록 솟은 둔덕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둔덕을 지나 몇 걸음 더 걷자 깎아지른 절벽이 그를 반겼다. 주변은 온통 새하얀 구름이 끼어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성윤의 뒤를 따라 온 일행이 혀를 내둘렀다.

“굉장하군요.”

팀이 말했다. 에밀리와 그레이스도 절벽에 붙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성윤은 보관 젬에서 컵 하나를 꺼내 절벽에서 떨어뜨려봤다. 다른 이들이 성윤의 실험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컵이 구름을 뚫고 사라졌다.

일행은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컵이 지면에 부딪치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저 아우성치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소리의 전부였다.

“…움직이죠.”

성윤은 절벽에서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일행도 똑같이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온 지대는 바로 고원이었다. 주변은 절벽, 절벽 옆에는 저 멀리까지 구름이 잔뜩 끼어 그 아래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굳이 아래를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 역시 들지 않았다.

성윤이 걸으며 파티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여기는 땅만 주의하면 안 됩니다. 비행 몬스터도 있어 하늘에서도 공격이 날아올 테니 주의해야 합니다.”

말이 씨가 된 것일까.

끼이이익!

하늘에서 소름 돋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일행은 하늘을 쳐다봤다. 마치 시체를 찾은 독수리가 그러는 것처럼 다섯 개의 검은 점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포윙벌처군요.”

오랜만에 시각 마법을 사용한 성윤이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를 먹잇감으로 점찍은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다섯 개의 검은 점이 커지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급강하를 한 것이다.

“팀 씨! 에밀리 씨와 그레이스 씨에게 바짝 붙으세요! 공격은 됐고 방어에 집중하시며 두 분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 씨! 마법을 준비해주세요! 종류는 번개나 바람이 좋습니다! 에밀리 씨는 혹시 모르니 방어 마법을 걸어주세요!”

처음 만나는 비행형 몬스터에 처음 겪는 하늘을 나는 적과의 전투다.

성윤은 처음은 안전을 위주로 하며 최대 화력으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성윤의 명령에 일행은 명령받은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행동은 매끄러웠다.

성윤도 검을 빼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점이 점점 커지며 네 장의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는 괴조 네 마리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준비됐어요!”

“쏴요!”

그레이스가 지팡이를 쭉 뻗었다. 지팡이에는 보기에도 섬뜩한 뇌전이 흐르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얻은 쥬얼 랭크 젬의 마법이었다.

쿠르르릉!

번쩍!

빛이 휘몰아치며 공기가 크게 진동한다. 강렬한 섬광에 일행은 눈을 감았다. 섬광이 잦아들자 성윤 일행은 눈을 떴다.

다섯 마리의 포윙벌처는 세 마리로 줄어 있었다. 그들의 옆으로 새까맣게 탄 포윙벌처 두 마리가 떨어져 내렸다.

“두 마리밖에 못 잡았어?”

그레이스가 크게 놀랐다. 성윤도 적지 않게 놀랐다.

전멸 아니면 적어도 네 마리는 떨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공중에 있던 포윙벌처가 날개를 크게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팀 씨! 둘을 보호해요!”

성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팀이 큰 방패를 들어올렸다. 에밀리와 그레이스는 얼른 팀의 방패 아래로 들어 왔다.

성윤도 방패를 들었다.

팅! 팅! 팅! 팅!

방패의 모서리에서 튀어나온 여러 개의 판들이 쏘아진 깃털을 쳐냈다.

팀의 방패도 깃털을 막아내 이번 공격에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포윙벌처는 근처까지 접근해 있었다.

끼이이이익!

괴성을 내지르며 내리꽂히는 속도 그대로 녀석들이 발톱을 치켜세운다.

팀에게 두 마리, 그리고 성윤에게 한 마리가 덤벼들었다.

성윤은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콰직!

지표면이 크게 파이며 날카로운 발톱 자국이 났다. 녀석이 또 날아오를 새라 성윤은 얼른 검을 휘둘렀다.

후웅!

‘피했어?’

날개를 크게 휘두르며 몸을 움직인 녀석의 곁으로 성윤의 검이 허무하게 스쳐 지나갔다.

성윤은 바로 검과 방패를 역소환하고 할버드를 들었다. 그대로 찔러 넣었다.

스칵!

까아아아악!

할버드의 창날이 가까스로 포윙벌처의 날개 하나에 스쳤다. 깃털과 피가 확 튀었다.

‘역시 방어력이 약해!’

기동성과 공격력은 높지만 내구력은 약하다는 정보대로였다.

할버드는 레인보우 1등급인 레드 랭크의 무기다. 레인보우 젬 중에서 가장 고등급의 젬이지만 그래 봤자 레인보우 랭크.

하지만 포윙벌처는 그런 할버드가 정통으로 맞은 것도 아니고 스친 것만으로도 타격을 입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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