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158화 (158/354)

제158화

쌔애앵!

거친 바람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성윤은 메이스를 소환했다. 미간에 꽂혀 있는 할버드가 점점 가까워져 온다.

베히모스가 따끔한 고통을 느끼고 고개를 움직였지만 성윤의 속도가 더 빨랐다.

할버드가 눈앞까지 다가왔다. 성윤은 떨어지는 속도와 중력 마법으로 더해진 무게까지 이용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콰앙!

메이스의 두꺼운 머리가 거꾸로 꽂힌 할버드의 자루 끝부분을 때렸다.

퍼어억!

질긴 가죽과 딱딱한 두개골에 막혀 깊숙이 꽂히지 않았던 할버드가 푸욱 들어갔다.

하지만 아까보다 깊이 박혔을 뿐, 베히모스를 죽이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두개골을 완전히 뚫기는 힘든 것 같았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 덮친다. 거기에 위기감도 급상승했다. 베히모스는 다시 몸부림치려 했다.

하지만 채 움직이기 전에 성윤의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

스윽!

할버드가 역소환된다. 그리고 쥐어진 건 성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검.

아직 성윤의 몸은 베히모스의 몸에 닿지 않아 낙하 에너지는 잔존한다.

기세가 조금 죽긴 했지만 가속도도 남아 있다. 성윤은 검에도 중력 마법을 걸고 온 힘을 다해 찔러 넣었다.

“으아아아앗!”

할버드가 넓고 깊게 뚫어 놓은 상처 구멍에 검이 박혔다.

콰드득!

뼈를 갈라버리는 감촉이 확연히 느껴졌다.

성윤은 다시 메이스를 들었다. 할버드처럼 검 자루를 쳐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베히모스는 더 이상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아!

녀석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날뛰기 시작했다.

“크으으윽!”

성윤은 꽂힌 검을 붙잡고 버텼다. 주변으로 바람이 미친 듯이 지나가며 풍경이 눈 안에서 휘몰아친다.

카우보이들의 로데오보다도 몇 백 배는 더 강렬한 흔들림이 덮쳤다.

하지만 성윤은 끝끝내 검을 놓지 않았다.

겨우 얻은 기회다. 지금 떨어져버린다면 언제 또 기회를 얻을지 모른다.

‘제발 버텨라!’

그는 당장이라도 빠질 듯 덜그럭거리는 검에 기원하듯 말했다.

그때 베히모스의 움직임이 서서히 둔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의 온도가 확연히 내려갔다.

성윤이 아래를 내려다보자 베히모스의 몸체가 얼어붙고 있었다.

‘그레이스 씨!’

성윤이 고개를 들자 저 먼 곳에서 그레이스가 이쪽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게 보였다.

물론 베히모스의 움직임을 완전히 막은 건 아니다. 하지만 투우소처럼 날뛰던 아까와 비교하면 순한 양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콰앙!

메이스로 검의 자루 끝 부분을 때렸다.

콰앙! 콰앙! 콰앙!

마치 망치질을 하듯 연이어 메이스를 휘둘렀다. 조금씩이지만 분명 검은 두개골을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우어어어어어!

괴성과 함께 베히모스의 몸이 급속도로 기운다.

쿠웅!

힘을 다한 듯 베히모스가 쓰러졌다. 하지만 베히모스는 결코 힘이 다한 게 아니었다.

그저 냉기 때문에 움직이기 힘드니 거머리처럼 머리에 붙어 있는 성윤을 떨어뜨리기 위해 아예 드러누워버린 것이다.

쿵! 쿵!

목이 없으니 상체를 이리저리 움직일 수밖에 없다. 베히모스는 머리를 이리저리 박고 바닥에 문질렀다.

펄럭!

베히모스의 눈에 뭔가가 들어 왔다.

잔해에 파묻혀 아무렇게나 나부끼는 붉은 망토. 분명 자신과 대적하던 빌어먹을 벌레가 두르고 있던 물건이다.

벌레가 떨어졌다. 그렇게 생각한 베히모스는 바로 일어섰다. 그리고 사정없이 망토 주변을 밟아대기 시작했다.

국지적인 지진이 난 것 같았다. 지면이 파괴되며 돌과 부스러기가 튀었다.

그렇게 온갖 분노를 담아 지면을 짓밟기를 얼마. 베히모스는 만족스럽게 동작을 멈췄다. 녀석의 눈가에 뚜렷한 웃음이 보였다.

하지만 베히모스의 만족과는 다르게 성윤은 아직 베히모스의 머리 위에 있었다.

“큭!”

무릎이 휘청거린다. 그의 은빛 갑옷에는 흙먼지가 자욱하게 덮여 있었다. 몸은 아프고 머리는 빙빙 돈다.

베히모스가 뒹구는 와중에 성윤은 지면, 벽면을 가리지 않고 이곳저곳 쳐박혔다. 하지만 정말로 젖먹던 힘까지 다해 계속 매달려 있는 것에 성공했다.

순간 기지를 발휘해 망토를 던져 마치 자신이 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도 주효했다.

망토는 녀석이 지면을 짓밟기 시작한 순간 역소환시킨 후, 재소환 해 자신의 어깨 위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급한 대로 몸에 치유 마법을 걸고 베히모스의 머리에 꽂혀 있는 검을 역소환시켰다. 그리고 다시 소환해서 상처에 찍었다.

카아아아!

계속 느껴지던 고통 때문에 상처 옆에 있는 성윤의 무게감을 느끼지 못하던 베히모스는 그제야 성윤이 아직 머리 위에 있음을 눈치 챘다.

몸을 뒤흔든다. 다시 한번 미칠 것 같은 흔들림이 몸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성윤은 이번에도 검 자루를 쥐고 버텼다. 그 상황에서 메이스를 휘둘렀다.

콰앙!

“흐앗!”

콰앙! 콰앙! 콰앙!

연신 검 자루를 때린다.

성윤은 마법도 발동시켰다.

퍼억! 퍼억!

대지에서 석순들이 솟아올랐다.

쿠웅!

강한 중력이 베히모스의 몸뚱이를 끌어내렸다.

베히모스의 강력한 마법저항력 때문에 별 효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효과를 보기 위해 성윤은 마법은 남발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그레이스의 마법이 강타했다.

베히모스의 몸이 굼떠진다. 녀석의 몸이 크게 기울었다.

다시 한번 아까처럼 뒹굴 모양이었다.

하지만 성윤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계속했다.

“하아아아아앗!”

콰앙!

콰드득!

두개골이 분쇄되는 촉감이 손에 ‘짜릿!’ 하고 울리며 검이 쑥 들어갔다. 단단한 껍질을 지나면 나타나는 부드러운 과육처럼 검은 녀석의 연약한 뇌를 헤집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파지지지직!

지금껏 녀석의 가죽과 뼈 때문에 효과가 격감되던 검의 전격이 자신의 능력을 거침없이 뽐냈다.

“끄어어어어어!”

쇳덩이가 찌르고 전격이 날뛴다. 베히모스의 뇌가 무지막지하게 대미지를 받았다.

상처 사이에서 연기와 함께 고약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할 즈음, 베히모스의 움직임이 멎었다.

쿠웅!

첫 번째로 땅에 닿은 것은 가장 앞다리의 무릎이었다. 그리고 다른 다리들도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스으윽!

거체가 옆으로 기운다. 하지만 아까처럼 뒹굴기 위해 일부러 넘어지는 건 아니었다.

마치 초고속 카메라로 찍은 슬로우 보는 것처럼 녀석의 몸뚱이가 천천히 넘어갔다.

그리고….

쿠우웅!

자신이 만들어낸 거대한 파편의 무덤 위로 베히모스는 쓰러졌다.

털썩!

동시에 성윤도 베히모스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힘없이 지면을 몇 번이나 굴렀다. 그러다 커다란 파편에 막혀 움직임을 멈췄다.

격렬한 전투의 끝에 쓰러진 둘. 이 순간 영국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누구 하나 목소리를 내지 않고 화면만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쓰러진 베히모스가 다시 일어서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쓰러진 성윤에 대한 걱정. 온갖 감정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순간, 움직임이 있었다.

덜그럭!

분명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붉은 망토를 입은 은빛의 기사가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그 순간 전 영국민, 아니 화면을 보고 있던 전 세계의 사람들이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쓰러진 건 둘. 하지만 일어선 건 그들의 편인 은빛의 기사였다.

화면의 기사가 천천히 괴물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할버드를 손에 쥐었다.

그대로 괴물의 감겨진 눈에 찔렀다.

눈꺼풀 사이로 할버드의 날이 부드럽게 들어갔다. 하지만 괴물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몇 번을 찔러도 마찬가지.

기사는 할버드를 없앴다. 그리고 괴물의 미간에 꽂힌 검을 잡았다. 그대로 잡아 뺐다.

역시 괴물은 반응이 없었다.

펄럭!

기사는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베히모스에게서 등을 돌렸다. 더 이상의 상대는 불필요하다는 듯이.

사람들은 그걸로 확신할 수 있었다. 영국과 런던, 시민들을 위협하던 괴물이 쓰러졌다고.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까보다 더 큰 함성이 터졌다. 함성만으로도 주변 건물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사람들은 격한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 보십시오! 베히모스가! 베히모스가 드디어 쓰러졌습니다!

리포터도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얼마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포효를 내질렀다. 하지만 화면에서 시선만은 떼지 않았다. 아직도 화면에 비치고 있는 그들의 영웅을 봐야 했다.

이미 카메라도 죽어 나자빠진 괴물에게는 신경 쓰지 않았다. 카메라가 크게 잡고 있는 건 런던을 구한 은빛의 기사뿐이었다.

터벅! 터벅!

성윤은 무기를 역소환하고 몇 발자국 걸었다. 그러나 더 걷지 못하고 커다란 파편 위에 걸터앉았다.

치유 마법 덕인지 몸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너무 정신이 너무 피로했다. 몸을 마구 흔들어댄 베히모스 때문인지 속도 메스꺼웠다.

“성윤 씨!”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 그레이스가 성윤을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 왔다. 그녀의 표정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단해요, 성윤 씨! 정말 대단해요!”

성윤의 손을 꼭 잡고 그녀가 말한다. 하지만 성윤은 반응하지 않았다.

“…성윤 씨?”

그레이스가 그의 몸을 다시 부른 순간, 성윤의 갑옷이 역소환됐다. 그의 몸이 그레이스의 품 안으로 쓰러졌다.

“서, 성윤 씨? 괜찮아요, 성윤 씨?”

깜짝 놀란 그레이스가 성윤을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성윤은 움직이지 않았다.

‘주, 죽은 건 아니겠지?’

일단 죽은 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레이스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연결자는 원래 심장도 뛰지 않고 호흡도 하지 않는 것이다.

“병원!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해!”

그레이스는 황급히 성윤을 데리고 근처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

성윤은 천천히 눈을 떴다.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잡았다.

‘여긴 어디지?’

눈꺼풀이 무겁고 몸이 축축 늘어지는 게 피곤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성윤은 몸을 일으켰다. 덮여 있던 부드러운 이불이 스르르 내려갔다.

주변은 커다란 객실 같았다. 화려하진 않지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시선을 끌었다. 성윤은 자신의 옷차림을 확인했다.

‘이건 환자복인가?’

편안하고 넉넉하게 지어진 옷이 누가 봐도 환자복처럼 생겼다.

성윤은 자기가 쓰러지기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분명 베히모스를 쓰러뜨리고, 머리가 아파서 근처 돌덩이에 걸터앉았다가….’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았다.

‘거기서 정신을 잃었나.’

지금 생각해도 당시에는 정신적 피로감이 심했었다. 약해졌다고는 해도 베히모스 같은 규격외의 몬스터를 고작 그레이스와 둘이서 잡아야 했으니.

게다가 전투도 굉장히 격렬했던 만큼 연결자의 튼튼한 육체도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듯싶었다.

‘그 후에 어떻게 됐지?’

일단 베히모스에게 확인사살까진 했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성윤이 벽에 붙어 있는 TV를 켜기 위해 리모컨을 찾을 때였다.

벌컥!

“아, 일어나셨네요!”

간호사 한 명이 들어섰다. 그녀는 마치 슈퍼스타를 보는 양 눈을 반짝였다.

“우성윤 씨. 몸은 어떠신가요?”

“괜찮습니다. 다만, 아직 피로가 조금 남아 있습니다.”

“그런 싸움을 하신 후이니 당연하겠죠.”

“그 이후로 어떻게 됐습니까?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죠?”

“우성윤씨가 이곳에 오신 지는 3일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질문에 대해서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더 잘 아시는 분을 모셔올게요.”

간호사는 성윤에 대해 간단한 체크를 하고 나갔다.

얼마 후. 병실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섰다.

그녀는 지민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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