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139화 (139/354)

제139화

월면주행차의 커다란 바퀴가 회전하며 황량한 달의 대지에 긴 바퀴자국을 새긴다. 커다란 차의 움직임에 뒤에 흙먼지가 자욱이 날렸다.

차 안에는 성윤과 로스 남매가 앉아 조금은 긴장된 눈초리로 정면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구원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보상인 쥬얼 랭크의 젬도 탐이 났으며 팀과 에밀리도 공주를 구하는 것에 찬성했다.

무엇보다 성윤에게 그녀는 빚이 있는 상대인 것이다. 안 그래도 기회만 있으면 빚을 갚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그레이스 공주의 미궁인 H-005에 도착한 그들은 차를 세웠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있군.’

성윤은 차에서 내리며 미궁의 입구 쪽을 바라 봤다. 대여섯 대의 차량이 미궁 입구를 중심으로 아무렇게나 주차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 오는 게 보인다. 우주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연결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가 성윤 일행에게 무언가 손짓을 해 보인다. 마치 무언가를 쓰는 것 같은 행동.

‘헬멧을 쓰라는 건가.’

정확히는 말로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일행은 헬맷을 쓰고 헬멧에 달린 통신기의 신호를 사내의 통신기와 맞췄다.

- 들립니까?

바로 앞에 사람이 있는데도 통신기를 사용해 대화를 하는 것은 언제 경험해도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들립니다.”

성윤이 대표로 말했다.

- 구원 요청을 받고 온 분들이죠?

“네.”

헬멧 너머로 보이는 사내의 얼굴이 환해졌다.

-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생각 같아서는 환영식이라도 열어드려야 할 테지만 사안이 급하니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성윤과 로스 남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 실례지만 실력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성윤은 그에게 젬을 보여 줬다. 팀과 에밀리도 뒤이어 자신의 젬들을 내밀었다.

“혼자서 켄타우로스를 잡아 본 적이 있습니다. 뒤의 두 분의 젬은 저보다 수준이 더 높고요.”

성윤의 얘기를 듣고 일행의 디바이스와 젬을 모두 확인한 사내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 꽤 실력이 있는 분들이군요. 정말 환영합니다.

그의 안내를 받아 성윤 일행은 미궁 입구 근처에 서 있는 한 차량으로 이동했다.

차량 안에는 몇몇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내가 차 안에 있는 사람 한 명에게 신호를 줬다. 신호를 받은 사람이 두툼한 종이 뭉치를 건넸다.

- 일단 이걸 받아주세요.

성윤은 종이를 받아 눈으로 가볍게 훑었다. 많은 수의 선들이 일정한 모양을 유지하며 종이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 미궁의 지도입니다.

사내가 말했다.

성윤은 지도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봤다.

“전체 지도는 아니군요.”

지도는 미궁의 일부만 표시하고 있었다.

- 무작정 연결자들을 밀어 넣는 것보다 일단 구역을 배정해서 수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이미 수색한 곳을 또 수색하는 비효율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확실히 그게 더 효율적으로 보였다.

- 이 구역을 모두 조사하시면 다시 한번 올라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조사해야 할 다른 구역의 지도를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성윤은 지도를 품에 넣었다.

- 보상은 섭섭지 않게 해드릴 겁니다. 참여하신 것만으로도 10만 파운드를 드리고 공주님을 구출해주신 분께는 약속대로 쥬얼 젬과 더불어 더 큰 액수의 포상금을 드릴 겁니다. 공주님과 함께 실종된 다른 연결자분들을 구해주신 분께도 상당한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10만 파운드. 한화로 약 1억 4천만 원 상당의 돈이다. 그걸 참가비 명목을 준다는 소리에 그들은 영국 정부가 이 일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보상 금액을 들은 세 사람은 무덤덤했다.

- 공주님의 파티는 공주님을 포함해 총 넷. 그중 한 명은 구조 요청을 보낸 후 숨이 끊어졌으니 남은 사람은 공주님을 포함하여 세 명입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성윤은 바로 미궁에 돌입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단순히 여느 미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조난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으로 인한 사건인지를 알아야 했다.

-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 저희도 사태를 파악 중에 있습니다. 공주님과 파티를 짜고 다니는 연결자에게 통신이 들어와 공주님이 위험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끊기더군요. 우리가 허겁지겁 도착했을 때는 피투성이로 통신기 앞에서 죽어 있던 연결자만 발견했을 뿐입니다.

“즉, 사태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단 말이죠?”

- 좋은 정보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의 얼굴이 미안함에 찌들었다.

“진입한 연결자들 중 돌아온 팀은 없습니까?”

- 몇 팀이 다시 올라오긴 했는데 그들의 말에 따르면 별 다른 이상은 없답니다. 그저 그런 중급 미궁이라고 하더군요.

그나마 안심이 되는 내용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돌입하겠습니다.”

-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사내는 또 미궁 근처로 접근하고 있는 월면주행차로 뛰어 갔다.

“그럼 갈까요?”

성윤의 말에 로스 남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차에 쓰고 있던 헬멧을 벗어 놓고 미궁 안으로 들어갔다.

미궁 내부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었다. 단단한 암반으로 이어진 커다란 통로가 계속 되고 또 계속 된다.

“후~! 역시 공기가 있는 게 좋군요.”

대화가 통하지 않은 게 퍽 답답했던 듯 팀이 기쁘게 말했다. 에밀리는 신중한 눈으로 주변을 계속 살폈다.

“적어도 지금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마나도 잔잔하게 흐르고 있고 위험한 몬스터도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에밀리의 미궁만큼 위험한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역시 흔히 미궁에 있는 사고 아냐?”

“그럴지도 모르죠.”

팀의 말에 성윤이 답했다.

하지만 이렇게 입구에서 죽치고 얘기만 나눠봐야 아무런 소득이 없다. 일행은 천천히 미궁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통로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자 이내 갈림길이 나왔다. 성윤은 지도를 펴 표시되어 있는 통로로 나갔다.

앞을 가로막는 수준 낮은 짐승형 몬스터들을 쓰러뜨려가며 그들은 계속 전진했다.

일행에게 배정된 구역은 상당히 넓었다. 아무래도 미궁의 규모가 상당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몇 층을 주파한 그들은 시간이 늦어 일단 밤을 보내기 위해 숙박 준비를 했다.

“하루 이틀로 끝날 작업은 아닌 것 같군요. 이렇게 고생했는데 공주님을 구한 게 다른 파티면 김이 좀 새겠습니다.”

바닥에 모포를 깔며 팀이 말했다.

“각오는 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다른 파티라도 공주님이 구출되면 좋은 일이죠.”

“그래. 사람 구하는 일에 김 좀 새면 어때.”

성윤과 에밀리의 말에 팀은 수긍했다.

그레이스 공주를 구출하는 이번 임무는 공주를 직접 구하지 않는 이상 그들에겐 봉사활동이나 마찬가지다.

참가만 해도 10만 파운드를 주긴 한다지만 그들이 사냥을 하지 못하게 되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손해다.

지금 그들은 그 정도의 수익은 얼마든지 낼 수 있었다. 보상은 순전히 쥬얼 젬이 아니라면 가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반드시 공주를 자신들이 구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 명 모두 보상만 보고 온 게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조금은 어설픈 생각은 바로 이틀 후에 깨졌다.

그들이 12층에 진입해 수색을 할 때였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요.”

성윤이 곤혹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들의 앞에 끔찍한 참상이 벌어져 있었다.

시체가 있었다. 그건 분명 사람의 시체였다. 하지만 정상적인 시체가 아니었다.

시체는 완전히 조각 나 사방에 뿌려져 있었다.

혈액은 이미 메말라있고 살점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지옥도를 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웁!”

에밀리가 황급하게 고개를 돌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평소 담대하던 팀의 안색도 하얗게 질려 있다. 성윤은 아마 자신의 안색도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나마 사람 한 명을 죽여 본 게 경험이 된 것일까. 둘 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그것도 경험이긴 하단 건가.’

속으로 조소하며 성윤은 둘에게 고개를 돌렸다.

“두 분은 잠시 쉬고 계세요. 저는 시체를 확인해 보죠.”

“저,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팀이 재빨리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안색이나 떨리는 음성을 보면 상태가 무척 안 좋아 보였다.

“저, 저도….”

에밀리도 같이 가겠다고 대답하려다 다시 입을 막고 고개를 돌렸다.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조금 죄송한 말이지만 에밀리 씨 같은 상태로는 도저히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쉬실 때예요. 그리고 팀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혹시나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상황에 에밀리 씨를 보호해야 할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두 분은 쉬세요.”

성윤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두 사람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성윤 씨는 시체를 회수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그럴 생각입니다.”

보관 젬이 있으니 과거처럼 시체를 방치해두지 않아도 된다.

음식도 넣어 놓는 보관 젬에 시체, 그것도 완전히 조각난 시체를 넣는 게 꺼려지기도 하지만 방법이 있는데 시신을 저렇게 둘 수도 없다.

두 사람도 반대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일도 해야죠.”

“중요한 일이요?”

팀의 의문에 성윤은 한숨을 한 번 쉬고 시체의 조각들을 보며 말했다.

“저 조각난 시체에 공주님이 끼어 계시는지 확인하는 거요.”

팀과 에밀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두 사람이 쉬도록 조금 떨어진 곳으로 보낸 성윤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시체를 수습하고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성윤은 시체 조각 하나를 들었다. 피에 흠뻑 젖은 그 부분은 팔뚝 부분인 것 같았다.

‘이빨 자국.’

무언가가 뜯어먹은 것 같은 날카로운 이빨 자국이 절단 부위에 있었다.

‘몬스터에게 먹힌 건가.’

아무래도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유력한 추측일 것이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다니며 조각들을 모으면 모을수록 ‘먹혔다’라는 추측에 의문이 남았다. 남은 부위가 꽤 많았던 것이다.

아니, 많은 걸 넘어 신체가 갈기갈기 찢어지긴 했지만 없어진 부분이 적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먹으려고 찢어 놓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분노나 장난기 때문에 찢어 놓았다는 게 더 설득력 있었다.

성윤이 모은 시체는 얼추 두 구 분량이었다.

모두 여성. 하지만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두 개의 머리 모두 그레이스 공주 특유의 빛나는 금발을 가진 머리는 없었다.

다행히 이 시체 중에 그레이스 공주는 없는 모양이었다.

발견된 건 시체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는 디바이스와 젬, 그리고 많은 월석이 있었다.

일단 성윤은 디바이스와 젬을 살폈다.

발견된 젬은 의외로 적었다. 대미궁에 들어갈 자격을 얻기 직전이라는 그레이스 공주와 파티를 맺었던 그녀들이 고작 이 정도의 젬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폭주시켰겠지.’

그리고 젬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장시간 전투를 해서 깨져나갔을 것이다.

그나마 디바이스는 꽤 많았다. 그 중 성윤은 하나의 디바이스에 눈독을 들였다.

골드 젬을 끼울 수 있는 동그란 만능 홈 두 개를 가진 목걸이가 하나.

‘이거라면 내 골드 젬을 모두 사용할 수 있어!’

몰래 훔쳐갈 마음은 없지만 공주를 구하기 위해 잠깐 빌리는 건 괜찮을 것이다.

목걸이를 따로 챙긴 후 성윤은 마지막으로 월석을 살폈다.

‘상당히 커.’

그 말은 곧 월석을 뱉어낸 몬스터가 상당히 강하다는 걸 뜻했다.

‘이 정도면 켄타우로스 급. 아니 그보단 약한가.’

월석은 사방에 뿌려져 있었다. 그녀들이 예전에 모은 월석이 어떤 이유로 인해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고 해도 이렇게 넓은 방향에 뿌려져 있을 수는 없다.

‘그만한 몬스터를 상대했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성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도에는 그 층계에 나타나는 몬스터가 표시되어 있다.

이 층계에는 켄타우로스보다 조금 낮은 정도의 강함을 가진 몬스터가 나오는 층계가 아니다. 게다가 그들이 처리하고 온 몬스터의 수준을 봐도 그렇다.

그런데 지금 월석을 보면 그런 놈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다.

‘뭔가 있군.’

아무래도 이번 사건은 성윤과 로스 남매가 바랐던, 미궁에 흔히 있는 연결자의 실종은 아닌 것 같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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