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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미궁-136화 (136/354)

제136화

정말로 걱정하고 있었는지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감정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성윤은 차츰차츰 올라가는 통신료를 조금은 초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포기한 듯 작게 한숨 쉬더니 수화기를 고쳐 잡았다.

통신료를 신경 쓰지 않고 본격적으로 지민을 달래주려 마음먹은 것이다.

애초에 빚도 모두 갚고 수익도 궤도에 오른 성윤에게 통신료는 그렇게 치명적으로 과도한 비용은 아니었다. 지민에게 말하면 경비로 처리해주기도 할 것이다.

이건 순전히 빚쟁이 시절의 짠내 나는 행동이 만들어낸 습관일 뿐이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지진도 얼마 크지 않았고요. 처음에는 암스트롱의 사람들도 꽤 혼란에 빠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만, 지금은 많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 암스트롱 자체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기 때문일 거예요.

성윤의 거듭 괜찮다는 말 때문인지 지민의 말투가 어느 정도 평소의 침착한 말투로 되돌아왔다. 이미 비용은 생각하길 포기한 터라 성윤은 이참에 궁금한 걸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달에도 지진이 일어납니까?”

- 일어나요.

지민이 답했다.

- 지구의 지진과 원인은 다르지만 땅이 흔들리는 건 같죠. 하지만 문제는 이번 지진은 보통의 월진과 다르다는 거예요.

“어떻게 다릅니까?”

- 진원지가 대미궁이에요.

충격적인 사실이 들려왔다.

- 당시 대미궁에 들어가 있던 고위 연결자들이 특수한 마나의 격류를 느꼈다고 하더군요. 애초에 암스트롱은 건설할 때 월진에 대한 대비도 마친 상태예요. 암스트롱의 중력을 유지시키는 월석이 지진 때 충격을 줄이는 역할도 해서 암스트롱에 미치는 영향을 대폭 감소시키는 거죠. 하지만 이번엔 암스트롱 안과 연결되어 있는 대미궁 때문에 그 방법이 효과를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지진이 일어난 이유는 밝혀졌습니까?”

- 조사 중이라고 하네요.

성윤은 입을 다물었다. 그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애초에 연구진이 대미궁에 들어가지조차 못 하기 때문이다.

- 그것 때문에 첼시 쪽도 난리가 난 모양이에요. 당분간 연락할 수 없다는 말만 남기고 지금은 연락이 완전 두절됐어요.

“그건 저도 확인했습니다. 암스트롱의 국제 연구소도 비상체제 같더군요.”

- 역시 그렇군요. 녀석도 고생하겠네요.

눈동자가 돌아갈 정도로 바쁠 친구에게 지민은 조용히 행운을 빌었다.

- 그런데 성윤 씨. 이번에 보낸 월석들은 뭐죠? 갑자기 월석들의 수준이 껑충 뛰었는데요?

“얼마 전에 달에서 성현우 씨를 만났습니다.”

- 현우 아저씨를요?

지민의 놀란 음성이 들린다.

“네. 그분의 호의로 그분 미궁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고위 몬스터들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배웠죠. 거기에 그때 얻은 월석도 전부 주시고 헤어질 때 골드 젬까지 하나 더 챙겨주셨습니다.”

새삼 생각해도 정말로 많이 받았다.

- 그렇게나 해주셨나요. 현우 아저씨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그때는 저도 굉장히 감사하고 있다고 같이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 알겠어요. 그나저나 이번에 성윤 씨가 들여 온 월석 덕분에 자금 사정이 무척 좋아졌어요. 그래서 벼르고 있던 일들을 진행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새 월면주행차를 사는 게 포함되어 있어요.

“새 월면주행차 말입니까?”

- 네. 언제까지 팀 씨와 에밀리 씨의 월면주행차를 렌트로 할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지금처럼 연락이 안 되는 것도 불편하니 이참에 통신 기능까지 넣은, 지금 것보다 훨씬 좋은 걸로 마련할 생각이에요.

“아무리 이번에 얻은 수익이 크다고 해도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로스 남매에게 월면주행차가 확실히 필요하지만 성윤이 끌고 다니는 중고의 월면주행차도 만만치 않은 가격을 자랑했다.

한데, 뉘앙스를 보니 성윤이 끌고 다니는 것처럼 중고차로 사겠다는 말이 아니라 아예 새 차를 뽑겠다는 것 같았다. 그것도 지금 것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 성윤 씨의 미궁 공략이 궤도에 오르면서 회사의 자금 사정도 굉장히 좋아져서 괜찮아요. 월면주행차 새 거 하나 뽑는다고 해서 심각하게 자금 사정이 나빠지진 않아요.

물론 지민이 자신에게 오는 수익은 도외시한 채 회사를 꾸려나가고 있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지민이 회사를 세운 이유를 생각하면 적자가 나지 않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무엇보다 성윤 자체가 웬만한 중견업체와 계약한 연결자보다 더 뛰어나다. 당연히 정범의 수익도 여느 영세업체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 새 걸 뽑는 거라서 바로 양도되진 않을 거예요. 대략 한 달 정도를 기다려야 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기대하고 기다리죠.”

그 이후 신혜에 대한 안부와 그 외 몇 마디를 더 하고 성윤은 전화를 끊었다.

***

현우는 지구에 내려와 쉬는 중 동인의 호출을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도 뚜렷이 느껴지는 불쾌한 감정에 그가 좋은 일로 부른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성윤에 대한 일 때문이겠지.’

조금 전 감사 전화를 해 온 지민의 통화를 생각하며 현우는 확신했다.

‘그 녀석도 참 쓸데없는 짓을 하기는.’

현우 자신한테만 통화를 하면 될 걸 고지식하게 동인에게도 감사 인사를 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현우가 동인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니 나름의 예의를 차린 것이겠지만 현우로선 귀찮은 일만 만들어 준 격이었다.

‘뭐, 상관없나.’

지민의 전화를 받을 때의 동인의 표정을 상상하고 그는 피식 웃었다.

목소리로는 죽은 아버지의 자상한 친구인 척하며 상냥한 말투로 온갖 겸양의 말을 쏟아냈겠지만, 피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라 얼굴은 벌겋게 변해 있었을 것이다.

현우는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회사 소속의 거대한 빌딩에 들어가 그는 거침없이 맨 위 층에 있는 사장실로 올라갔다.

문 앞에 서 문을 두드렸다.

“들어 와.”

무척이나 심기 불편한 소리가 들린다. 현우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집무실 안. 동인은 얼굴을 찡그려 안 그래도 주름살로 가득 찬 늙어 빠진 얼굴을 더더욱 학대하고 있었다.

그 추한 몰골에 다시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걸, 현우는 간신히 참았다.

“부르셨습니까?”

현우의 말에도 동인은 입술 하나 꿈쩍 하지 않고 그를 노려봤다.

물론 연결자도 아닌 인간에게 기죽을 만한 현우도 아니다. 현우는 담담한 표정을 한 채 자신을 노려보는 동인을 마주 바라봤다.

“…우성윤, 그놈을 도와줬다며?”

‘역시나로군.’

어쩌면 이렇게 예측을 벗어나지 못할까, 이 수전노는. 방심하면 불쌍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혀를 찰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현우는 답했다.

“네.”

쾅!

동인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무슨 멍청한 짓을 한 거야! 그놈은 1순위 척살 대상인 거 몰라!”

몬스터를 사냥하는 걸 봐주고 월석을 건네 줬으며 젬까지 줬단다. 그것도 골드 젬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호의. 동인의 뚜껑을 열어젖히기에는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넌 수빈이 놈한테도 꽤 친절했었지! 뭐야, 뭐 꾸미고 있는 거라도 있는 거냐! 왜 지민이 그 녀석 회사에 있던 놈들한테 그렇게 잘 대해 주는 거야!”

김수빈 얘기가 나오자 현우는 꽤나 불쾌했다.

‘어디서 그딴 놈과 비교하는 거야.’

우성윤은 지금까지 그가 지켜봐 온 인간들 중 그 누구보다 현우가 바라 왔던 인물상에 가까운 인간이다.

고작해야 자신이 반짝 기대를 품은, 그래서 실망도 더 크게 받게 한 김수빈 그 병신보다 몇 백 배는 더 뛰어난 인물인 것이다.

하지만 현우는 안색하나 바꾸지 않고 입을 열었다.

“만난 건 순전히 우연입니다만, 확인을 하고 싶었습니다. 녀석이 정말로 대미궁까지 다다를 만한, 그래서 정범이의 흔적을 찾아 나설 깜냥이 있는 인물인지 말입니다.”

현우의 변명이 그럴 듯하게 들린 것일까. 동인의 성난 기세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아직 전부 가라앉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확인 결과는?”

현우는 정말로 기쁜 마음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말했다.

“대미궁까지는 충분히 도전할 수 있을 만한 놈입니다.”

“그럼 거기서 죽였어야지!”

동인이 꽥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현우는 오히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많이 흥분하신 것 같군요, 사장님. 제가 우성윤을 데리고 나간 걸 암스트롱의 수많은 CCTV가 찍었을 텐데, 거기서 죽이면 제가 가장 먼저 의심 받을 게 뻔하잖습니까? 제가 용의자로 잡혀 동기를 수사할 때, 만에 하나라도 정범이의 일까지 꺼내지면 어쩌려 하십니까?”

동인은 입을 다물었다. 흥분한 상태라서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뿐, 현우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현우의 모든 행동을 긍정한 건 아니었다.

“그럼 그 녀석에게 골드 젬은 왜 줬어?”

“최대한 빨리 녀석을 대미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입니다.”

동인의 눈가가 크게 씰룩였다. 하지만 이번엔 고함을 치지 않았다. 어디 변명이라도 들어보자는 태도로 현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녀석의 실력을 보건대 녀석이 대미궁에 진입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이미 쥬얼 젬도 두 개나 모은 상태고, 동료도 모았더군요. 실력 좋은 3세대로, 아예 지민이의 회사에 편입까지 된 동료 말입니다.”

그건 동인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대미궁에 빨리 들여보내는 게 낫습니다. 아시다시피 대미궁은 굉장히 위험한 곳이죠. 사람 몇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현우가 비릿하게 미소 지으며 뒷말을 덧붙였다.

“정범이가 그랬던 것처럼요.”

동인이 신음을 흘렸다.

현우의 말은 대부분 이치에 맞았다. 하지만 바로 맞장구를 치진 못했다.

대미궁에서 녀석들을 처리한다. 그건 동인이 생각한 최후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우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밖에 방법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 전에 녀석을 처리할 방법은 없는 건가?”

“시간을 들이면 가능할 겁니다. 녀석의 죽음에 대한 다른 명분을 만들고, 함정을 팔 시간 말입니다. 거기다 계획이 수립될 때쯤이면 지금 녀석에게 향하고 있는 눈도 하나 둘 씩 사라질 테니까요. 하지만 제가 판단하기로 녀석은 그만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대미궁에 진입할 겁니다.”

“지금 지진 때문에 달이 혼란스럽지? 지금의 기회를 살리면 어때?”

동인은 어떻게든 지금 성윤을 처단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편집증 같은 모습에 현우는 내심 질려했다.

“혼란을 이용하려 해도 너무 늦었습니다. 아무리 암스트롱에까지 영향을 미친 지진이라 할지라도 실질적인 피해는 없으니 혼란은 대충 가라앉은 상태입니다.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이것들은 이미 동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정도도 모른다면 이런 거대 규모의 회사를 이룰 수도 없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일단 내뱉고 보는, 일종의 투정에 가까웠다.

“빌어먹을!”

쿵!

동인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에 상당히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인물이다.

그랬기에 성윤에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이 더욱 짜증날 것이다.

더구나 그 대상이 연결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애송이이기에 더더욱.

하지만 평소보다 더 광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기분이 조금 과하게 나쁘신 것 같은데, 뭔가 안 좋은 일이 또 있습니까?”

“지진 때문이야.”

현우는 웃을 뻔했다. 아주 크게. 저 수전노의 면상이 일그러지는 꼴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하지만 참았다.

“평소의 지진과는 다른 지진이라죠?”

“그래. 진원지가 대미궁이라 겁먹은 몇 놈이 잠시 대미궁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더군. 정부 그 무능력한 것들도 우리가 대미궁을 공략하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니 무슨 정보 없냐고 들들 볶아대기도 하고. 아주 골치야.”

그는 이마를 손으로 덮었다.

“그딴 걸 내가 무슨 수로 아냐고!”

현우는 안다. 그 지진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진으로 인해 앞으로 무슨 변화가 일어날지.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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