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마법 저항력. 그게 어떤 개념인지는 안다. 하지만 현우의 말처럼 성윤은 마법 저항력이란 걸 생각에 넣지 않은 채 싸웠다.
“자네의 마법의 젬은 2등급인 오렌지 젬인 녀석과 아까 그린 젬으로 진화한 녀석이지? 일단 그린 랭크 수준의 마법은 켄타우로스에게 잘 통하지 않아. 녀석은 마법 저항력이 상당히 강하니까. 오렌지 랭크 정도라면 조금 비벼볼 만하긴 하지만 그것도 치명상을 입힐 정도는 아니고.”
성윤의 뇌리에 대지의 마법을 발굽으로 부수고 중력의 마법을 대부분 무시해버리며 달려오던 켄타우로스가 떠올랐다.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 상위의 몬스터들을 잡기 시작한 연결자들이 곧잘 범하는 실수야. 아무리 마법 저항력이란 걸 알고 있어도 지금까지 잡은 몬스터들은 마법 저항력이란 게 없었으니, 격렬하게 전투를 하는 와중에 그 개념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리지.”
쿠어어어어!
현우가 설명을 하는 와중에 켄타우로스가 그들에게 달려 왔다.
성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녀석이 자신들의 사정을 봐줄 정도로 너그러운 놈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현우의 설명은 전부 듣고 나서 싸우든 포기하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철컥!
현우의 방패에서 판 두 개가 떨어져 나왔다.
슈우웅!
그것들이 켄타우로스를 향해 총알처럼 날아갔다.
켄타우로스는 날아오는 판에 위협을 느꼈는지 무기로 그것들을 후려쳤다. 켄타우로스의 무기와 현우의 판이 격돌했다.
콰아아앙!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성윤과 켄타우로스가 무기를 주고받을 때 생겼던 것과 비슷한 소리. 하지만 결과는 달렸다.
크에에에엑!
켄타우로스의 괴력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갔던 성윤과 달리 이번엔 두 개의 판에 무기를 휘둘렀던 켄타우로스가 뒤로 멀찍이 날아갔다.
쿠우우웅!
거대한 켄타우로스가 지면에 나뒹굴며 커다란 소리를 낸다. 그 뒤에 현우의 판과 부딪쳤을 때 켄타우로스의 손에서 튕겨 나간 검과 메이스가 지면에 떨어졌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공격하고 지랄이야.”
현우는 투덜거리며 성윤을 돌아봤다.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마법저항력에 대한 생각이 격렬한 전투 중에 사라진다는 것까지요.”
자신이 죽을 뻔한 상대를 마치 귀찮은 모기 때려잡는 것처럼 쳐날린 현우를 성윤은 어처구니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아, 그래, 그랬지. 요는 냉정을 잃지 말라는 거다. 방금 전도 그래. 네가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녀석을 착실하고 냉정하게 상대했으면 그렇게 빨리 위험에 빠지진 않았을 거다. 마법 저항력은 분명 성가시지만 어차피 힘의 한 종류일 뿐이야. 그쯤은 수준이 낮긴 해도 오거와 트롤도 가지고 있어.”
그리고 그 두 몬스터 모두 성윤이 사냥한 전적이 있는 몬스터들이다.
“마법을 사용하려 한 것은 좋지만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황하면 안 돼. 오히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다른 시도를 해 봐야지.”
‘뭐, 평소라면 이 정도로 밀리지는 않았겠지만.’
현우가 보고 판단한 성윤은 그 정도는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연결자였다. 아마도 현우 자신이란 존재가 성윤의 마음 한구석에 방심이란 놈을 심어준 탓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다. 한 번 실패를 경험하면 싫어도 뇌리 속에 박히는 법이다. 게다가 지금은 실패해도 좋은 상황이지 않은가.
‘좋은 경험이 되겠지.’
현우는 손가락으로 몸을 일으켜 자신의 무기를 줍고 있는 켄타우로스를 가리켰다.
“늙은이의 잔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어때. 다시 한번 붙어 볼 건가?”
성윤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손바닥을 한번 짝 부딪치고 현우는 다시 뒤로 물러나 팔짱을 끼었다. 그와는 반대로 성윤은 무기를 들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쿠오오오오!
켄타우로스가 포효를 내지른다. 현우에게 일방적으로 박살난 것을 굴욕이라고 느낀 것일까. 척 봐도 녀석의 기세가 아까보다 훨씬 더 거칠어져 있었다.
타앗!
녀석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무서운 돌격이었다. 성윤은 아까처럼 방패를 내밀었다.
콰앙!
네 개의 무기가 방패를 후려쳤다. 이번에도 성윤의 몸이 붕 떴다.
하지만 이번엔 아까와는 달랐다. 켄타우로스의 공격을 받기 전 성윤이 스스로 몸을 띄운 것이다.
공중에 뛴 채로 공격을 받았으니 당연히 튕겨 나가는 속도는 아까보다 더 빨랐다.
스윽!
성윤의 방패가 사라지고 할버드가 들렸다.
공중에 떠 있어서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데다가 뒤로 튕겨나가는 중이어서 제대로 된 공격은 불가능한 상태. 하지만 성윤이 노리는 건 녀석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게 아니었다.
성윤이 할버드의 자루 맨 끝 부분을 잡고 쭉 뻗어 켄타우로스의 발에 갈고리를 가져다 댔다.
터억!
갈고리가 켄타우로스의 발에 걸렸다. 성윤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할버드가 움직였고 갈고리가 그대로 켄타우로스의 발 하나를 잡아 당겼다.
휘청!
켄타우로스의 몸이 휘청거렸다. 무기를 바로 휘두른 상태라 균형이 약간 어긋나 있던 데다가 성윤의 몸이 날아가는 기세가 만만치 않아 할버드에 실린 힘도 꽤 컸다.
때문에 켄타우로스의 몸이 급격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족보행 몬스터들과는 달리 네 개의 안정적인 다리를 가지고 있는 켄타우로스는 쉽게 넘어지지 않았다. 기다란 창을 땅에 박아 중심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성윤도 켄타우로스를 넘어뜨리려 한 게 아니다. 녀석이 약간 균형을 잃을 정도면 충분했다.
‘지금!’
성윤의 대지 마법의 젬이 다시 한 번 반짝였다.
투확!
다시 한번 땅에서 날카로운 석순들이 돋아났다.
낌새를 눈치 챈 켄타우로스가 다시 점프를 해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균형이 무너진 데다가 다리 하나는 지면조차 딛지 못한 상태.
퍼억!
이번엔 석순이 그대로 켄타우로스의 몸에 적중했다.
카아아아아아!
고통의 비명이 울린다.
켄타우로스의 몸이 그대로 들렸다. 석순의 뾰족한 끝이 켄타우로스의 하체 곳곳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켄타우로스의 마법 저항력이 높은 터라 석순은 켄타우로스의 몸을 완전히 꿰뚫지는 못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성윤도 이 일격으로 켄타우로스를 완전히 끝장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대미지를 입히면 충분하다.
‘그래도 상처는 조금 더 깊은 게 좋겠지.’
성윤이 이번엔 중력의 젬을 발동시켰다.
켄타우로스의 몸 체중이 불어났다. 2등급 오렌지 랭크의 대지 마법의 젬과는 달리 중력 마법의 젬은 4등급 그린 랭크.
당연히 켄타우로스의 마법 저항력에 막혀 실제 켄타우로스에게 가해진 부하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석순에 꿰뚫린 채 허공으로 솟아오르고 있는 켄타우로스에게 더 깊은 상처를 입히기엔 충분했다.
크어어어어어!
켄타우로스가 허우적댄다. 하지만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칠수록 아래로 빠져드는 개미지옥처럼 켄타우로스의 발버둥은 오히려 그 상처를 키울 뿐이었다.
‘이것 봐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보고 있던 현우가 눈을 빛냈다.
‘마법 저항력에 대해서 들었으면서도 오히려 마법을 써?’
그것도 멍청하게 통하지도 않을 마법을 버리듯 쓴 게 아니라 마법이 통할 상황을 만들어 내 멋지게 대미지를 입히는 데까지 성공했다.
회사 최강의 연결자이자 선배로서 그도 다른 후배 연결자들을 교육시킨 경험이 있다.
지금처럼 마법 저항력에 대해 충고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그의 충고를 받은 연결자 대부분은 마법을 배제하고 접근전으로 몬스터를 상대했다.
하지만 현우가 충고한 건 마법을 쓰지 말라가 아니다.
‘마법을 완전 배제하면 몬스터 사냥 못하지.’
물론 극단적으로 한쪽에 약한 몬스터도 있긴 하지만 마법 저항력이 높은 주제에 육체 능력도 무지막지한 놈들도 많다.
요는 상대의 특성을 알고 당황하지 않으며 자신이 가진 것을 잘 이용해 몬스터를 퇴치하는 것.
현우의 첫 번째 충고만 듣고 이걸 깨달은 사람은 소수. 그리고 그걸 바로 실전에서 써먹은 자는 극소수다.
‘전투 센스도 타고 났어.’
대체 이 자에 대해서 얼마나 감탄을 한 것일까.
‘지민이가 정말 연결자 하나는 제대로 낚았군.’
하지만 뒤에서 현우가 자신을 엄청나게 고평가하는 걸 알 리 없는 성윤은 연신 켄타우로스와의 전투를 이어나갔다.
켄타우로스가 석순에서 겨우 빠져 나왔다. 하체에 피를 줄줄 흘리는 모습이 끔찍했다.
하지만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건 아니었다. 켄타우로스의 마법 저항력은 그 정도로 뛰어났다. 그러나 대미지는 대미지. 분명 움직임에 영향이 있었다.
쿠어어어어어!
켄타우로스가 다시 한번 성윤에게 달려든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는 게 똑똑히 보였다.
하지만 상처 때문에 움직임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미묘한 어색함이 보였다.
순식간에 성윤 앞에 도달한 켄타우로스가 다시 무기를 휘둘렀다. 성윤은 방패로 막았다.
쾅!
다시 한번 성윤의 몸이 떴다. 아무리 견디려 해봐도 이 괴력은 감당이 안 됐다.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날아간 지금까지와는 달리 성윤은 중력 마법을 자신을 향해 발동시켰다.
무거운 몸이 급격하게 아래로 떨어진다. 성윤은 발이 땅에 닿기 바로 전 마법을 풀었다.
촤아악!
원래대로 돌아온 몸무게로 부드럽게 착지했다. 아까보다 날아간 거리도 얼마 되지 않았다.
탓!
성윤은 켄타우로스를 향해 뛰었다. 켄타우로스는 아직 무기를 회수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할버드를 소환해 녀석의 다리를 찍었다.
퍼어어억!
도끼날이 단단한 근육을 헤집는다. 선혈이 튀었다. 켄타우로스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황급히 두 개의 무기를 아래로 내리쳤다.
하지만 성윤은 이미 앞으로 몸을 피한 상태. 무기는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켄타우로스는 4족 보행의 몬스터이기에 앞으로 피한 성윤의 옆으로 켄타우로스의 뒷다리가 보였다.
망설일 것 없이 도끼를 소환해 휘둘렀다.
콰직!
다시 한번 선혈이 튀었다.
왼쪽 앞, 뒤 다리가 모두 당했다. 켄타우로스의 몸이 휘청였다. 하지만 녀석은 긴 창으로 땅을 짚어 넘어지는 걸 막았다. 그리고 뒷다리를 들었다.
‘젠장!’
이게 어떤 모션인지는 안다. 보통 초식동물들이 맹수에게서 자신을 방어할 때 종종 사용하는 공격이 아니던가. 성윤은 황급히 방패를 들었다.
퍼어억!
뒷발굽이 방패에 틀어박혔다. 위력은 강했다. 성윤은 뒤로 쭈욱 밀려났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켄타우로스를 쳐다봤다. 녀석이 절뚝거리면서도 성윤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있었다.
성윤은 입술을 악 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켄타우로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건 켄타우로스도 마찬가지.
충돌이 일었다. 성윤과 켄타우로스 모두 서로를 죽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투를 벌였다.
얼마 후.
쿠우웅!
거체가 미궁에 힘없이 쓰러졌다.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이 끊어진 켄타우로스를 성윤은 부상 입은 몸으로 내려다봤다.
승자는 그였다.
“쿨럭!”
가볍게 기침을 했다. 목 너머에서 비릿한 피 맛이 올라왔다.
왼팔은 부러졌는지 대롱거렸고 오른쪽 옆구리의 갑옷에 커다란 상흔이 남아 있었다.
켄타우로스를 쓰러뜨리긴 했지만 그도 만만찮은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는 서둘러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치유 마법의 젬이 발동하며 상처가 서서히 나아갔다. 쓸 수 있는 치유 마법의 횟수를 총동원했다.
얼마 후, 다행히도 성윤의 상처는 모두 나았다.
그대로 주저 않아 성윤은 켄타우로스의 시체를 바라 봤다. 녀석을 혼자서 쓰러뜨렸다는 작은 성취감이 심부 깊숙한 곳에서 올라왔다.
“수고했다.”
어느새 다가온 현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