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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미궁-128화 (128/354)

제128화

눈이 하나 달린 거인이 그들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2m 50cm의 오거도 충분히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던 몬스터였지만, 이 외눈 달린 몬스터와 비교하면 어린 아이와 같았다.

척 봐도 4m는 넘어 보일 것 같은 신장은 생물이 아닌 커다란 바윗덩이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악몽인데 녀석은 무기까지 들고 있었다. 들고 있는 커다란 망치는 방어한다 해도 방패 째로 찌부라질 것 같았다.

“음, 저 녀석까지 자네한테 맡기는 건 무리겠군.”

식은땀을 주륵주륵 흘리고 있던 성윤한테는 무척 반가운 말이었다.

현우는 검을 가볍게 흔들면서 천천히 사이클롭스에게 다가갔다.

조그만 인간이 감히 자신에게 대적하려 하는 꼴이 우스운 것일까. 사이클롭스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 하나밖에 없는 얼굴로 잘도 저런 얼굴을 한다고 성윤이 그 상황에서도 감탄할 정도였다.

스으윽!

사이클롭스가 천천히 움직였다. 들고 있던 망치를 뒤로 쭉 뻗었다.

하지만 녀석이 느릿하게 움직이는 건 그때까지였다.

후웅!

그 덩치에 걸맞지 않은 스피드로 사이클롭스가 망치를 휘둘렀다. 커다란 체구에서 나오는 긴 리치 덕에 녀석은 아직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걸어오고 있는 현우를 충분히 공격할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현우가 망치에 얻어맞아 피떡이 되어 날아갈 것 같은 상황. 망치가 거의 면전에 이르러서야 현우는 검을 움직였다. 누가 봐도 굉장히 느린 대응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콰아앙!

검과 망치가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믿기 힘든 큰 소리가 났다.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였다.

고막이 아프다고 비명을 내질렀지만 성윤은 귀를 막기는커녕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그의 신경은 온통 현우라는 최강의 연결자가 하는 전투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꿀꺽!

절로 침이 넘어갔다. 눈앞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강맹한 기세를 머금고 날아오던 사이클롭스의 망치가 현우가 가볍게 휘두른 검에 튕겨나가 있었다.

그 기세를 못 이기고 사이클롭스도 꼴사납게 엉덩방아를 찧은 상태였다.

사이클롭스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드는 걸 보니 녀석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크라아아아악!

하지만 사이클롭스는 곧 분노의 괴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튕겨져 나간 망치를 집었다.

하지만 그 망치는 거의 절반이 박살나 있었다. 그러나 사이클롭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번 망치를 휘둘렀다.

콰아앙!

망치가 지면을 강타했다. 망가진 망치라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드디어 작은 인간이 피떡이 됐다는 생각에 사이클롭스의 입이 씨익 올라갔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이른 생각이었다.

“재수 없게 왜 웃어?”

사이클롭스의 발치에서 기분 나빠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사이클롭스가 화들짝 놀라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현우의 움직임을 놓쳤던 성윤도 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봤다.

사이클롭스의 바로 앞에 현우가 있었다.

도대체 언제 이동한 것일까? 하지만 그 의문보다 더 성윤의 신경을 뺐는 것이 있었다.

현우고 들고 있던 플랑베르주 형태의 검이 새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검에서 솟은 불꽃이 길게 뻗어 거의 3m는 되어 보이는 불꽃의 검을 만들었다.

후웅!

현우가 검을 휘둘렀다. 무척 의욕 없어 보이는, 무성의한 칼질. 하지만 그 속도는 질풍과 같았다. 불꽃이 사이클롭스의 허리를 갈랐다.

서걱!

불꽃의 검이 가르고 지나간 허리 부분이 너무도 쉽게 두 동강 났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화아악!

절단된 부분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콰아아앙!

폭발이 일어났다. 절단면에서 뻗어나간 불꽃이 순식간에 사이클롭스의 전신을 삼켜갔다.

미궁에 붉은빛이 만연하며 후끈한 열기가 휘몰아쳤다. 곧 산산이 부서져 불꽃에 타버린 사이클롭스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현우는 그 폭발에서 등을 돌리고 여유 있게 성윤에게 걸어 왔다.

“응? 왜 그러나?”

잔뜩 움츠려 있는 성윤을 보고 현우가 의문스런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내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 레인보우 랭크의 방어구는 내성 능력이 없던가?”

화끈거리는 열기가 날뛰며 주변을 마치 오븐처럼 만들고 있었다.

철컥!

현우의 방패에서 소리가 났다. 엇박자 모양으로 겹겹이 붙어 하나의 방패를 만드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던 다섯 개의 판 중 하나가 스르르 떨어져 나왔다.

공중에 둥둥 뜬 방패의 일부는 성윤에게 날아가 성윤의 팔에 착 달라붙었다.

성윤을 괴롭히던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후우!”

고생하던 성윤이 겨우 살았다는 것처럼 허리를 폈다.

“미안하군. 동료들이랑 다닐 때는 신경을 쓰지 않던 일이라.”

그가 넉살 좋게 사과했다. 하지만 성윤은 그것보다 자신의 팔에 달라붙어 있는 방패를 쳐다봤다. 아마 그게 주변에서 날뛰는 높은 열기를 막아 주고 있을 것이다.

‘과연 쥬얼 랭크의 젬이라는 건가. 방패도 그냥 튼튼하기만 한 게 아니군.’

방패뿐만이 아니다. 분명 무기인데도 무슨 마법 같은 능력을 펑펑 날려대는 현우의 검도 경악을 금치 못 할 정도였다.

‘이게 현 최강의 연결자 중 한 명.’

지금의 성윤은 감히 범접할 생각조차 못 할 수준이었다.

“현우 씨는 몇 세대라고 하셨죠?”

“나? 2세대. 아버지가 1세대셨지.”

현우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기분 탓일까. 마치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고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성윤은 사이클롭스 아니, 사이클롭스라 불렸던 잔해를 내려다 봤다. 현우에게 말 그대로 순살을 당하긴 했지만 사이클롭스는 절대 성윤 정도가 무시할 몬스터가 아니었다.

“이 미궁에서는 사이클롭스가 1층에 포진합니까?”

“아니. 지금이 마나 스트림 시기라서 1층에서 튀어나온 것뿐이지, 평소에는 꽤 깊은 곳에 있어.”

아무래도 예전 자신의 미궁 1층에서 빅풋을 만났을 때와 같은 상황인 모양이었다.

“대미궁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까?”

“이런 일?”

“층계와 맞지 않는 수준 높은 몬스터가 등장하는 일 말입니다.”

성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은 현우가 피식 웃었다.

“애초에 대미궁은 마나 스트림이 1년 내내 몰아치는 곳이야. 마나 스트림이 끝난 후의 다른 미궁들처럼 ‘어느 층계에는 어느 몬스터가’ 같은 식의 분포는 당연히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수준이 완전히 뒤죽박죽되어 있는 것도 아냐. 대미궁의 가장 아래층에 있는 괴물 같은 것들이 1층에서 튀어나온다면 그만큼 끔찍한 일도 없으니까.”

아직 대미궁은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최하층에 대체 어떤 무지막지한 놈들이 돌아다니는지 알 수 없다. 그런 놈들이 층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면 대미궁 공략이 진행될 리 없다.

“몬스터들은 강함 수준에 따라서 일정 층계 이상에서는 나타나지 않아. 뭐, 그래도 다른 미궁들처럼 층계에 맞춰 몬스터들의 수준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위험도가 높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성윤은 대미궁에 대한 위험도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

쾅! 쾅! 쾅!

연신 거센 폭음이 튀어나온다. 몬스터의 커다란 주먹이 성윤의 방패를 두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성윤은 안정적인 자세로 공격을 잘 막아냈다.

“흡!”

성윤이 날아오는 주먹에 맞서 방패를 휘둘러다.

쿠웅!

성윤이 충격 때문에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몬스터도 충격을 받아 공격이 끊겼다.

성윤의 손에서 방패가 사라지고 할버드가 들렸다. 할버드의 긴 리치가 몇 걸음 뒤로 밀린 거리의 불리함을 메웠다.

그대로 할버드를 휘둘렀다.

푸우욱!

할버드의 도끼가 몬스터의 팔뚝을 찍었다. 몬스터가 비명을 지른다.

성윤은 할버드를 역소환시켜 몬스터의 팔뚝에 깊이 박힌 할버드를 빼낸 후 다시 손에 쥐었다. 그리고 바로 다시 공격을 가했다. 이번에는 창날을 이용한 찌르기였다.

푸우욱!

이번엔 몬스터의 배에 깊은 상처를 냈다.

카아아아악!

몬스터가 다시 비명을 내지른다. 하지만 이번엔 몬스터도 반격을 가했다. 한 손으로는 할버드의 자루 부분을 쥐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성윤을 공격했다.

성윤은 고민할 것도 없이 다시 할버드를 역소환시켰다. 그리고 몸을 숙여 공격을 피했다.

파공음이 머리 위를 스쳤다. 하지만 성윤은 기죽지 않고 오히려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도끼가 들려 있었다.

성윤을 공격하느라 몬스터의 옆구리는 훤히 빈 상황. 성윤은 눈앞에 나타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도끼를 때려 박았다.

퍼어어어억!

배틀 액스의 날이 몬스터의 뱃가죽을 사정없이 들쑤셨다.

다시 몬스터가 몸부림친다. 하지만 이미 그 기세는 한껏 꺾여 있었다.

성윤은 이번엔 물러나지 않았다. 미친 듯이 팔을 휘두른 몬스터의 공격을 방패를 들고 방어하며 회수한 도끼를 다시 휘둘렀다.

퍼어어어어어억!

안 그래도 치명상을 입은 옆구리에 다시 한번 공격이 틀어박혔다. 당연히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덜렁거리는 옆구리 살들 사이로 내장들이 흘러나왔다.

몬스터가 두 손으로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고통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 공격 수단이던 두 팔을 전부 상처에 가져간 대가는 참혹했다.

퍼억!

망설일 것도 없이 할버드를 소환한 성윤이 몬스터의 목에 할버드를 날렸다. 도끼날이 목에 반쯤 파고들어가고 피가 확 튄다.

끄르르르륵!

쿠웅!

기괴한 소리를 내며 몬스터가 쓰러졌다.

움찔! 움찔!

몬스터가 미세하게 경련한다. 성윤은 냉정한 눈으로 할버드를 치켜세워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푸욱!

창날이 머리를 관통한다. 조금이나마 숨이 붙어 있던 녀석이 완전히 뻗었다.

성윤은 확인사살까지 한 후 새삼 몬스터를 확인했다.

녀석은 2m정도 되어 보이는 신장에 녹색의 우둘투둘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비대한 체형이 녀석의 덩치를 더욱 크게 보이게 만들었다.

“이제 트롤 정도의 수준은 잘 잡게 되었군.”

뒤에서 멀뚱히 구경을 하던 현우가 다가왔다.

성윤과 현우가 현우의 개인 미궁을 돌아다닌 지도 벌써 3일 째. 성윤은 상당히 좋은 경험을 쌓고 있었다.

강해진 자신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생각만 했던 전술도 연습했다. 그리고 여러 몬스터의 특성을 몸으로 체험할 수도 있었으며 최강의 연결자라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도 확실히 인식할 수 있었다.

“역시 대단해. 하루하루 움직임이 좋아지는 게 보여.”

“아직 멀었습니다.”

성윤의 말은 겸양이 아니었다. 성윤이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가 나타날 때 현우가 보여주는 힘은 정말로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지금 자신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그의 실력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우웅!

성윤의 디바이스에서 떨림이 일며 빛이 일렁였다. 성윤과 현우의 시선이 빛이 나는 곳으로 돌아갔다.

진화의 젬과 같은 디바이스에 꽂혀 있던 블루 랭크의 젬 두 개에서 은색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스윽!

곧 두 개의 젬의 색이 변했다. 파란 색에서 녹색으로.

“진화했군.”

현우가 말했다.

“형태를 보니 마법의 젬이로군.”

“그렇습니다.”

중력 마법의 젬과 치유 마법의 젬이었다. 성윤은 두 개의 젬을 발동시켜 능력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했다.

‘중력 마법은 위력이 늘었고, 치유 마법은 횟수가 늘었나.’

본래 여덟 배의 부하를 가하던 중력 마법의 위력이 열여섯 배로, 정확히 두 배 늘었다. 그리고 한 번에 네 번 치유 마법을 걸 수 있던 치유 마법의 젬은 여섯 번으로 늘어났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하지만 왜일까. 뭔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성윤은 그 이유를 알았다.

‘저런 엄청난 능력을 눈앞에서 계속 봐 왔으니 당연히 부족하게 느껴질 수밖에.’

현우가 들고 있는 무장을 흘끔 보면서 성윤은 입맛을 다셨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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