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121화 (121/354)

제121화

성윤은 지민에게 불려 회사 사무실 한 구석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조금은 지루한 눈으로 어떤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끔한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가 의자에 앉아 긴장한 눈으로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지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민이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 남자가 대답한다. 중간 중간 말을 더듬었고 논리도 그렇게 깔끔하진 않았다.

그는 이번에 회사에서 낸 사원 모집에 지원한 사람이었다. 성윤은 지민이 자신에게 준, 남자의 프로필을 내려다 봤다.

경기도권에 있는 대학 출신으로 성적도 그럭저럭이다. 연결자 사업과 관련된 자격증을 몇 개 가지고 있는 것만이 나름의 특징을 부여해 주고 있었다.

뚜렷하게 인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성윤은 내심 이런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건 지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큰 회사가 아니니까.’

큰 회사는커녕 성윤이 들어오기 전까지 적자 행진을 계속하던 곳이다. 당연히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오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지원자가 없는 편은 아니었는데, 상당히 높은 월급과 적당히 좋은 대우에 끌린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지원자가 없어 돈이 있어도 뽑지 못 하는 일이 생기진 않아 다행이었다.

그때, 면접이 끝난 것인지 지민이 면접자를 내보내는 것이 보였다. 긴장 때문에 일어날 때 조금 휘청거리긴 했지만 면접자는 깔끔하게 인사까지 끝내고 사무실을 나갔다.

“후우~!”

지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한지 블라우스 단추 하나를 풀어 헤쳤다.

오늘 내내 계속해서 면접을 봤던 그녀이니 충분히 피곤할 만했다. 다행히 저 남자가 오늘 면접을 진행한 마지막 사람이었다.

“저 사람 어떤가요?”

자신 앞에 놓여 있는 프로필들을 정리하며 지민이 물었다.

“글쎄요. 일단 프로필 상으로 문제는 없어 보이는군요.”

하지만 그뿐이다. 그도 회사를 운영하던 사람이다. 막상 괜찮겠다고 뽑아 놓는 작자가 골만 아파지게 만들 폭탄이었던 적은 많다.

‘차라리 그 정도면 낫지.’

더 최악은 거기에 인성마저 썩어 빠진 것들이었다. 그것만큼은 완전히 복불복이다. 프로필에 인성 칸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첫인상과 프로필만으로는 괜찮아 보였다.

“오늘 온 사람들 중에서는요?”

오늘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은 남성이 넷, 여성이 세 명이었다. 그녀의 질문에 성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들고 있는 프로필을 넘겼다.

평소라면 집에서 뒹굴며 신혜와 놀고 있을 성윤이 회사에 나와 면접을 보고 있던 이유가 지민의 부탁 때문이었다.

직원을 뽑는 데 회사 유일의 연결자인 성윤의 의견도 참고하려는 모양이었다.

로스 남매와의 계약이 확정되긴 했지만 아직 정식적으로 계약을 맺은 건 아닌 터라 현재 정범 소속의 연결자는 여전히 성윤 한 명이었다.

“이 사람들 정도가 괜찮은 것 같군요.”

소속 연결자로서 활약하고 있긴 하지만 월석을 취급하는 회사의 직원에게 필요한 사항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게 될 그들과는 달리 성윤과 같은 연결자는 회사와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 신분이니 더더욱 그랬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예전 회사에서의 경험을 살려 나름 괜찮다싶은 사람을 추려내 건네는 정도였다.

그가 건넨 프로필은 총 세 개였다.

지민은 그 세 개의 프로필을 훑어 봤다. 그리고 그것들을 프로필 뭉치에서 따로 빼놨다.

아마 성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입사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될 것이다.

“내일도 잘 부탁드릴게요.”

지민이 말했다.

면접은 오늘로 끝이 아니었다. 면접을 보러 올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정말로 급하다면 오늘 온 사람들 중 가장 마음에 든 사람을 당장 뽑아 일을 시키겠지만 그렇게까지 여유가 없는 건 아니었다.

지민은 최대한 많은 사람의 면접을 보고 직원을 뽑을 생각이었다. 당연히 그때까지 성윤이 쭉 나오길 원했다.

“알겠습니다.”

조금 귀찮은 일이었지만 성윤은 투덜거림 없이 부탁을 받아들였다. 성윤도 이제 같이 일하게 될 직원에 대해서 파악해 두고 싶은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시만요, 성윤 씨.”

일어나던 성윤을 지민이 만류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로스 남매 분들의 회사와 협상이 끝났어요.”

“…벌써 말입니까?”

저번 피해보상비를 뜯어낼 때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었다. 한데, 이번엔 사건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협상이 끝난 모양이다.

“저번 사건들은 이번 건과는 다르게 외부에도 알려져 있었으니까요. 암스트롱의 사법체계도 엮여 있던 탓에 회사 마음대로 할 수 없었거든요. 말 그대로 보는 눈이 있었죠. 하지만 이번 사건은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잖아요. 두 회사가 합의하고 도장 찍으면 끝이죠. 무엇보다 상대가 굉장히 몸이 달아 있더군요. 로스 남매 분들이 회사를 나가는 판국에 그 루이스라는 작자조차 잡혀간다면 엄청나게 타격이 클 테니까요.”

“그렇군요.”

그리고 아마도 팀이 촬영해 넘겨준 증거도 커다란 힘이 됐을 거라고 성윤은 추측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회사에 성윤이란 존재는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존재일지 모른다. 유망주 둘을 빼가는 것도 모자라 나머지 한 명조차 연결자 인생이 박살날 뻔했으니.

물론 성윤은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그 일은 철저히 자업자득이고 성윤은 오히려 피해자다.

하지만 자신들의 잘못이니 어쩔 수 없다고 탁 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게 다 성윤 탓이라며 이를 으득으득 갈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끝난 일이고 더 이상 신경 쓸 생각도 없었다. 계약 내용만이 그의 흥미를 끌었다.

“그러면 팀 씨와 로스 씨의 계약은 순조롭게 끊긴 겁니까?”

뜯어냈을 피해보상비보다는 그게 더 신경이 쓰였다.

“네. 두 분의 계약은 두 분에게 아무런 손해도 없이 파기됐어요.”

분명 좋아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지민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웬만하면 디바이스와 젬도 뜯어낼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그것까진 무리였나 봐요. 팀 씨와 에밀리 씨의 계약 파기 건에 밀려서 제대로 얻지 못했어요. 적어도 몇 개는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썩어도 대기업이라고, 지민에게도 썩 만족할 만한 계약은 아닌 것 같았다. 온 몸에서도 불쾌감이 진득진득 새어 나오고 있었다.

“들어온 보상비는 이번에 채취한 월석 값과 함께 성윤 씨의 통장에 넣어놨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걸로 그 날의 용건은 끝이었다. 성윤은 언제나 그렇듯 가장 가까이 있는 은행에 들어가 잔액을 확인했다.

통장 잔액을 표시하는 칸에는 100억이 넘는 돈이 찍혀 있었다. 그 액수를 확인하는 순간, 성윤의 뇌리에 떠오른 건 단 세 글자였다.

‘돈 갚자.’

배신을 당하고 막대한 빚을 뒤집어 쓴 채 인생의 밑바닥에서 굴러 떨어진 지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그의 발목을 영원히 놓지 않을 것 같은 징그러운 빚을 드디어 완전히 갚을 수 있게 됐다.

물론 이제야 갚을 돈이 생긴 건 아니다. 성윤의 통장에는 이미 빚을 충분히 갚을 수 있는 돈이 있었다.

그러나 달에서의 생활이나 만약을 대비한 현금 등 어느 정도의 여윳돈은 갖고 있고 싶었기에 돈을 갚는 걸 미뤘다.

다달이 이자가 붙는 빚도 아니니 금방 갚을 필요가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래도 빚은 빚. 이 정도로 여유가 생겼는데도 계속 붙들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오늘은 신혜랑 맛있는 거라도 먹을까?’

지금은 의미 없어졌지만 한 때는 정말 자신의 목구멍을 조이고 위협을 했던 빚을 갚는다는 생각에 성윤의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한층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

성윤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혜는 선아와 놀러간 상태였다. 성윤이 일이 있어 참가하지 못한 것을 신혜와 선아는 무척 아쉬워했다.

그는 신혜가 들어오기 전에 집안 청소를 했다. 청소기로 먼지를 싹 빨아들이고 깨끗하게 물걸레질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와 딸, 둘이 사는 집이 아니야.’

청소를 하면 할수록 성인 여성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 나왔다.

서랍 위에 놓여 있는 화장품과 화장실에 있는 비싼 세면도구. 달에 있다가 오랜만에 집에 와서 청소를 할 때는 반드시 여성의 긴 머리카락이 나왔다.

이제는 갖고 갈 생각조차 없는지 지민의 가운이 항상 옷걸이에 걸려 있었고 서랍 한 칸은 완전히 지민 전용이 되어 성윤은 열어 볼 생각조차 못하는 금단의 장소가 되어 있었다.

오히려 이 집의 가장인 성윤의 흔적이 가장 옅었다.

딩동!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성윤은 들고 있던 걸레를 화장실에 휙 던지고 현관으로 갔다.

문을 열자 조그만 물체가 성윤의 다리에 와락 달라붙었다.

“아빠!”

신혜였다.

“잘 갔다 왔어?”

“응! 동물원 갔다 왔어!”

오늘의 경험이 상당히 멋졌는지 신혜의 볼은 발갛게 상기된 채였다.

성윤은 신혜의 머리에 손을 얹어 쓰다듬으며 문 앞에서 옅게 미소 짓고 있는 선아를 쳐다봤다.

“오늘 신혜를 데리고 놀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저도 즐거웠는걸요. 그런데 오늘은 바쁘셨나 봐요. 성윤 씨도 오실 줄 알았는데.”

어떻게 보면 성윤은 선아의 풋풋한 첫사랑의 대상이다. 같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회사에서 이번에 직원을 늘린다고 해서 말입니다. 이래 봬도 회사의 유일한 연결자니 제 의견도 듣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아빠 회사 커?”

듣고 있던 신혜가 물어 온다.

성윤은 입이 궁해졌다.

성윤의 회사는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아니, 굉장히 작은 회사였지만 딸의 기대 어린 눈빛이 입을 쉬이 움직이지 못 하게 했다.

허세의 ‘허’자도 없는 성윤이지만 신혜 앞에서만은 여느 아버지처럼 모든 게 굉장한 슈퍼맨이고 싶었다.

“음, 굉장히 좋은 회사야.”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와~! 아빠 굉장해!”

신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내심 찝찝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 아니었지만 신혜의 존경에 찬 눈초리가 기분 좋았다.

“회사가 커지나 봐요?”

선아가 물었다.

“다른 연결자도 들어올 예정이라서 지금의 체제로는 인력이 부족하게 될 것 같거든요. 알바도 뽑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착각일까. 선아의 눈이 반짝였다.

“성윤 씨의 회사 이름이 뭐죠?”

“정범이라고 합니다.”

잊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녀가 정범이라는 단어를 몇 번 소리 내어 곱씹었다. 그리고 성윤을 보고 웃었다. 그 웃음이 뭔가 의미심장해 보였다.

“그럼 전 슬슬 들어가 볼게요.”

“시간 있으시면 저녁이라도 하고 가시죠.”

어차피 외식을 하려 했으니 신혜를 돌봐준 값도 해서 성윤은 그녀를 초청했다.

평소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오늘은 드디어 빚을 갚을 결정을 한 탓에 기분이 좋았다.

“맛있는 거 먹어?”

“그래. 밖에서 맛있는 거 먹자.”

신혜의 손을 잡으며 성윤은 선아를 쳐다봤다. 조금 고민하는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나타났다.

하지만 곧 결정을 내린 듯 그녀가 함초롬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염치불구하고 끼어들게요.”

선아의 허락이 떨어졌다. 성윤은 집에서 지갑과 핸드폰만 챙겼다. 그 후 세 사람은 외식을 위해 집 바깥으로 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