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109화 (109/354)

제109화

“회사에는 이 얘기를 하셨습니까?”

팀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아뇨,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걸 발견했다고 해 봤자 증거는 어머니의 일기에 써 있는 글귀 단 한 줄뿐입니다. 회사가 움직일 증거로는 빈약하죠. 무엇보다 어머니를 우습게 아는 그 작자들이라면, 입만 아플 게 뻔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연락을 했군.’

로스 남매에게 있어 어머니의 일기에 쓰인 이상한 것을 찾기 위해 부를 사람이 성윤 정도뿐이었던 것이리라.

“만약 그 수상한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어머니의 죽음은 그것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그걸 발견한다면 그 작자들도 더 이상 어머니를 무시하지는 못 하겠죠.”

팀은 결의가 가득해보였다. 그건 에밀리도 마찬가지. 하지만 성윤은 조금 곤란했다.

‘그냥 미궁 한번 같이 돌아보자는 게 아니었군.’

“만약 그 수상한 것이 정말로 있다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상당히 능력 있던 당신들의 어머니께서 그것 때문에 돌아가셨다면 그 위험도는 상당히 높을 텐데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렇게 대답하며 팀이 성윤의 눈치를 봤다.

“일단 수상한 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바로 돌아 나올 생각입니다. 어머니도 수상한 것을 목격한 후 한 번 돌아 나와 일기를 쓰기도 하셨으니 그 정도는 괜찮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성윤 씨가 싫으시다면 그만두셔도 됩니다.”

성윤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 다른 때 같으면 당장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제안한 사람들이 대미궁에서 파티원으로 삼고 싶은 로스 남매라는 게 문제였다.

‘있을지 모르는 위험을 피하느냐, 이 남매에게 빚을 지워두느냐인가.’

하지만 성윤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미궁에 도전하려면 믿을 수 있는 동료가 있는 게 낫겠지.’

대미궁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위험부담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그리고 로스 남매가 걱정되어서라는 감정이 아주 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사정은 대충 알았습니다. 그럼 당분간 그 미궁을 이 잡듯 뒤지면 되겠군요.”

모든 사정을 알고서도 성윤이 자신들에게 협력하려 하자 팀과 에밀리의 표정이 무척 밝아졌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역시 성윤 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게 옳았군요.”

“감사드려요.”

“나중에 대미궁을 같이 공략할 때를 대비한 연습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성윤은 넌지시 운을 띄웠다. 조금이라도 이 남매와 대미궁에 가는 것을 확정 짓고 싶었다.

성윤의 간교하다면 간교한 계략이 통했는지 팀과 에밀리는 웃음을 띄웠다.

“물론입니다.”

“그때도 잘 부탁드릴게요.”

로스 남매는 신뢰가 깃든 목소리로 확실하게 답했다.

***

세 명은 월면주행차를 사용해 이동했다. 로스 남매는 오늘을 위해 월면주행차를 한 대 렌트했다. 성윤의 것보다는 조금 더 큰, 침대가 두 개 있는 차였다.

지민의 배려에 마치 자기 차처럼 월면주행차를 끌고 다니는 성윤과는 다르게 로스 남매는 회사 소속의 월면주행차를 개인적인 일로 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거액을 들여야 했다.

미궁은 대략 5일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조그맣게 솟아 오른 둔덕의 비탈길에 미궁의 입구가 보인다. 둔덕의 경사가 그리 급하지는 않아 들어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미궁 앞 비탈길에 차를 세워 놓고 세 사람은 미궁 입구에 섰다. 로스 남매는 감개무량한 눈빛으로 미궁을 쳐다봤다. 바로 그들의 어머니의 미궁인 것이다.

팀이 미궁으로 손짓을 하고 먼저 미궁으로 들어갔다. 성윤과 에밀리도 따라 들어갔다.

미궁에 들어가자마자 몬스터 한 마리가 그들을 맞았다.

‘몬스터가 넘치나보군.’

아무리 누군가의 손을 탄 미궁이라도 주인이 사라진 지 꽤 시간이 지났다.

성윤은 이 미궁 또한, 자신의 미궁처럼 몬스터가 넘쳐나는 상황이 됐다고 짐작했다.

나타난 몬스터는 매드독이었다. 굉장히 살벌한 눈빛으로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녀석을, 일행은 무감정한 눈으로 쳐다봤다. 팀은 코웃음까지 쳤다.

“일단 말씀드리지만…”

팀의 방심이 또 도졌나 하고 성윤이 입을 뗐을 때, 팀이 그의 말을 가로 챘다.

“‘절대로 방심하지 말 것’이죠?”

팀이 알고 있다는 듯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서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의 방패는 성윤이 알고 있던 예전의 방패가 아니었다. 아마 새로 얻은 모양이었다.

“자, 오랜만에 파티 사냥을 해 보죠!”

신이 난 팀의 목소리. 하지만 그의 자세는 한껏 들뜬 목소리와는 달리 빈틈없이 단단했다.

성윤은 에밀리를 쳐다봤다. 그녀가 싱긋 웃었다.

“저 녀석도 조금은 철이 들었어요.”

그녀가 팀을 바라본다. 평소 아득바득 다투는 그녀와 팀이었지만 지금 팀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이 공존했다.

‘그래도 역시 남매라는 거군.’

생사대적처럼 싸우는 것도 남매지만 서로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 또한 남매인 것이다.

성윤은 할버드를 소환했다. 지원이라는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조금 뒤로 물러서던 에밀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기가 바뀌셨네요?”

“네. 자세한 건 일단 저 놈부터 처리하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성윤은 팀의 뒤로 다가갔다. 마침 매드독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팀의 목줄기를 물어뜯으려 점프하고 있었다. 팀도 마주 방패를 휘둘렀다.

캥!

너무나 쉽게 매드독이 튕겨나갔다. 팀은 입맛을 다셨다. 방심하지 않는다고 해도 적이 너무 약했다.

‘씹는 맛도 없으니, 원.’

그가 내심 투덜거릴 때 옆으로 성윤이 튀어 나갔다.

‘어라?’

팀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의 눈이 성윤의 등을 쫓았다. 성윤이 달려나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건 그들이 익숙하게 해 왔던 포메이션의 행동이었다.

팀이 놀란 이유는 성윤의 무장 때문이었다. 지금 성윤의 모습은 그가 예전에 봤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강해보이는 할버드와 단단해보이는 갑옷. 거기에 다른 무장도 충분했다.

성윤이 할버드를 휘두르는 게 보인다. 그 강맹한 기세에 자신에게 오는 공격도 아닌데 솜털까지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서걱!

너무나 쉽게 매드독이 두 동강 났다.

순식간에 끝난 전투는 감흥조차 들지 않았다. 죽어나빠진 매드독에게는 관심도 없이 로스 남매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성윤에게 모여 들었다.

팀이 성윤의 장비를 훑었다.

“성윤 씨, 장비가 무척 많이 바뀌신 것 같군요.”

“그렇게 됐습니다.”

다행히 팀과 에밀리 모두 성윤을 질시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서로가 어떻게 지냈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군요. 성윤 씨의 이야기를 꼭 듣고 싶네요. 겸사겸사 서로의 디바이스와 젬이 어떻게 변했는지도요.”

에밀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성윤의 변화에 대한 호기심이 그녀의 내성적인 성격조차 누른 모양이었다.

어차피 미궁에 진입하면 디바이스나 젬에 대해서는 말할 생각이었다. 앞으로 같이 싸울 사람의 전력은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거기에 로스 남매의 호기심을 풀어주는 말을 덧붙이는 것 정도는 수고랄 것도 없었다.

성윤은 그들의 의도대로 그들과 헤어진 후의 이야기와 디바이스와 젬에 대해 얘기를 했다.

로스 남매의 표정이 재미있게 변해갔다. 경악, 분노, 기쁨 등등 그들이 얼굴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정말로….”

팀이 내뱉었다.

“정말로 성윤 씨 근처에서는 온갖 사건들이 끊이질 않는군요.”

옆에서 에밀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성윤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때문에 에밀리 씨가 주신 방패도 박살났죠. 그것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아, 아뇨! 빅풋과의 싸움에서 도와주신 답례로 드린 거니까요. 게다가 그게 성윤 씨에게 도움이 됐다면 오히려 기뻐요.”

그녀가 살포시 웃었다. 가녀린 미소가 남자의 보호 본능을 직격으로 자극했다.

그 팀조차 한순간 넋이 나갔다가 그게 에밀리의 미소라는 사실을 깨닫고 격렬한 자기부정 및 자기혐오에 빠질 뻔했다. 하지만 성윤은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무척 든든하군요. 성윤 씨가 그렇게 강해지셨다니. 성윤 씨를 초대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본인이 말하고 본인도 동의하는 것처럼 팀이 팔짱까지 끼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성윤이 고개를 돌렸다.

“그럼 저건 어떻게 할까요?”

그가 가리킨 곳에 매드독이 죽고 남긴 월석이 보였다.

“말씀 드린 것처럼 제게 보관의 젬이 있습니다. 그걸 사용할까요? 아니면 예전처럼 자루에 넣을까요.”

민감한 문제다. 서로간의 신뢰가 없다면 보관의 젬은 사용은커녕 갖고 있어도 안 된다.

괜히 성윤이 저번 임시 파티에 보관의 젬을 월면주행차에 놔두고 움직인 것이 아니다.

팀과 에밀리는 잠시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시선을 다시 성윤에게 돌렸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그게 있다면 사냥이 더 편해질 테니까요.”

“무겁게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겠네요.”

단 한 줌의 의심도 없이 둘은 월석을 성윤에게 맡겼다.

“…알겠습니다.”

대체 어째서 저들은 자신을 이렇게까지 믿을 수 있을까. 성윤은 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월석에 손을 대 월석을 젬 안으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아예 팀과 에밀리의 짐도 젬 안으로 집어넣었다.

로스 남매는 그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해 할 뿐, 의심하는 기색은 없었다.

“충고 하나 합니다만.”

성윤이 문득 입을 열었다.

“사람을 너무 믿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게 아무리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죠.”

진하게 우려낸 에스프레소마냥 씁쓸하기 이를 데 없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충고.

팀과 에밀리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조용히 웃었다.

“걱정 마세요. 저희도 멍청이는 아닙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고릅니다.”

“적어도 성윤 씨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은 그런 말은 하지 않아요.”

“…그렇습니까.”

멍청한 소리다. 정말로 믿었던 두 사람에게서 배신당한 성윤에게 남매의 말은 무르디 무른 말이었다.

하지만 성윤은 부정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남매가 표현하는 무한한 신뢰가 성윤의 마음에 일말의 발을 디뎠다.

***

성윤은 팀과 에밀리의 새로운 젬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완전히 뒤바뀌다시피 한 성윤의 디바이스와 젬과는 달리 그들의 젬은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팀이 오렌지 랭크의 방패와 그린 랭크의 갑옷을, 에밀리가 그린 랭크의 방어 마법의 젬을 얻은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 하급 미궁을 공략하기에는 충분했다. 무엇보다 성윤이 무척 강해져 있었다.

투확!

할버드가 쏜살 같이 내려꽂힌다. 블러디라이노의 미간에 정확히 틀어박힌 할버드의 창날이 녀석의 머리를 사정없이 헤집었다. 몸을 한 번 부르르 떤 블러디라이노의 거체가 쓰러졌다.

“휴우, 이제 이 녀석은 그냥 밥이군요.”

팀이 휘파람을 불며 블러디라이노의 몸을 걷어 찼다. 그 말을 들으니 성윤도 조금 감흥이 일었다.

시작의 미궁의 4층에서 성윤의 발을 돌려 세워 놓은 녀석이 이 녀석이다. 하지만 지금 그 위험한 돌진과 단단한 뿔, 질긴 거죽은 성윤에게 별 방해가 되지 않았다.

블러디라이노의 월석을 집고 일행은 다시 길을 나섰다. 아무렇게나 가는 건 아니었다.

팀의 손에는 그들의 어머니인 로스 여사가 예전에 제작한 지도가 들려 있었다.

모든 수상한 곳을 뒤져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행은 미궁의 구석구석을 뒤졌다.

하지만 어느 곳이든 일반적인 미궁의 모습이었다. 그저 갈래길에 붙어 있는, 로스 여사가 만든 오래된 표식만이 이 미궁에 특징을 부여했다.

그렇게 미궁 구석구석을 탐험한 지 얼마나 됐을까. 그들은 7층의 입구에 섰다.

“이 미궁은 6층부터까지는 시작의 미궁의 몬스터가 나옵니다. 하지만 7층부터는 달라요. 시작의 미궁에서 나오는 것보다 강한 몬스터가 나오기 시작하니 주의해주세요.”

팀이 말했다.

‘드디어 보는 건가.’

시작의 미궁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일단 몬스터로 분류되긴 하지만 조금 더 강한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다. 시작의 미궁을 청소할 때 일부러 그런 몬스터를 남기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맞닥뜨릴 몬스터는 다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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