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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미궁-49화 (49/354)

제49화

“그나저나 이런 데서 그렇게 큰 소리로 부르지 마. 품위 없이.”

긴 머리의 정숙한 분위기의 그녀, 한아인이 단발머리의 발랄해 보이는 여자, 유희영에게 핀잔을 주었다.

“뭐 어때서 그래? 어차피 시끌시끌하잖아. 그렇게 큰 소리를 낸 것도 아니고.”

“충분히 큰 소리야. 그리고 다른 사람이 떠든다고 해서 너한테까지 큰 소리를 내야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시작한 두 사람의 가벼운 말다툼에 지민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두 분 다 변하지 않으셨구나.’

서로 투닥거리긴 하지만 그건 친한 친구끼리의 장난에 가깝다.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도 충돌하지 않고 서로의 단점을 메우며 지민의 아버지였던 정범을 뒷바라지한, 지민의 안에 있는 이상적인 어머니의 상.

그녀의 친어머니라는 작자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 그게 바로 그녀 앞에 있는 의모들이었다.

‘저분들이 정말로 내 어머니였다면.’

어렸을 때부터 줄곧 느끼던 감정이 다시 한번 조용히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때, 지민의 옷을 살그머니 잡아당기는 손길이 있었다.

“응?”

지민이 옷이 당겨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혜가 조금 낯을 가리는 표정으로 희영과 아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둘도 신혜를 눈치 채 아이에게 눈을 돌렸다.

“왜 그러니, 신혜야?”

“언니.”

신혜가 손가락으로 희영과 아인을 가리켰다.

“저 아…….”

순간 신혜는 입을 다물었다. 입에 손을 대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보였다.

‘언니는 아줌마라고 불리는 걸 싫어했지?’

저 아줌마들은 누구냐고 물으려다가 갑자기 아줌마라는 단어를 굉장히 싫어했던 지민의 일이 떠오른 것이다.

신혜는 다시 희영과 아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조금 나이를 먹긴 했지만 굉장히 예쁜 사람들이었다. 아줌마라고도 언니라고도 불러도 될 것 같은 애매한 모습.

신혜는 결심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저 언니들은 누구야?”

그리고 그 말은 분명 신혜의 최고의 선택이었다.

희영과 아인이 놀라는 모습이 보인다. 혹시 자신이 선택을 잘못한 것일까. 신혜는 몸을 조금 움츠렸다. 하지만 곧 신혜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꺄아악! 뭐야, 뭐. 언니? 지금 언니라고 했니?”

희영이 갑자기 신혜의 몸을 와락 껴안았다. 신혜의 입가에 묻어 있던 스파게티 소스가 볼에 묻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아이의 뺨에 볼을 비벼댔다.

신혜는 정신이 없었다. 만화라면 눈이 뱅글뱅글 도는 표식이 그려졌을 게 분명했다.

“지민아! 이 애 누구니? 누군지 모르지만 부모가 가정교육 정말 잘 시켰구나!”

지민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몇 살이라도 나이에 구애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젊어 보인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요새 슬슬 나이를 먹어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던 그녀들에게 신혜의 말은 꿀보다도 더 달콤했으리라.

‘아마 내가 언니라는 단어를 단단히 강조한 것 때문이겠지.’

지민은 신혜의 내심을 정확하게 유추했다. 하지만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신혜에게 언니란 호칭을 듣기 위해 상당히 마음을 썼던 자신의 처지와 어쩔 수 없이 대비되어버렸다.

“봐봐, 이 애 정말 귀엽지 않아?”

희영이 신혜를 아인에게 보였다. 마치 품 안의 장난감처럼 휘둘린 신혜가 헤롱헤롱대는 게 보였다.

아인은 한숨을 쉬고 희영의 손을 가볍게 때렸다.

“아이가 힘들어 하잖아.”

“어, 어머, 그래?”

그제야 희영이 신혜를 놔줬다. 고개를 몇 번 저어 정신을 차린 신혜가 의자에서 뛰어내리더니 바로 지민의 곁으로 달려갔다. 그대로 지민의 뒤에 숨어 희영을 경계했다.

“저 봐.”

아인의 일침에 희영은 별 말을 하지 못하고 입맛만 다셨다.

“하여간 나이 얘기 나오면 정신 못 차리기는. 옷 입은 것도 그게 뭐니? 아직도 20대인 줄 알아?”

희영의 옷은 확실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입을 법한 옷이었다. 그러나 아인이 말한 것처럼 주책없다 할 정도의 옷도 아니었다.

발랄하게 꾸며 입었지만 천박하지는 않은, 어디까지나 그녀에게 어울릴 정도의 수준이었다. 아직 미색을 간직하고 있는 동안과 어울려 그녀의 옷은 무척 잘 어울렸다.

“여자가 나이 얘기에 민감한 게 뭐가 나빠?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활발하게 활동해야 더 겉늙지 않는 거야. 너처럼 칙칙한 옷을 입고 다니면 더 나이 들어 보여.”

희영이 볼에 묻은 스파게티 소스를 닦아내며 쏘아붙였다.

아인이 입은 옷은 척 봐도 얌전한 옷이었다. 별로 꾸미지 않은, 수수한 옷차림. 하지만 절대 개성 없는 옷은 아니었다.

수수함 안에서도 그 패션은 확실히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청초해보이는 아인과 잘 어울리는 그런 옷이었다.

이윽고 다시 말다툼이 시작됐다.

지민으로서는 이미 흔하게 겪은 일이라 그 둘에게서 관심을 접었다. 저렇게 다투면서도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즐겁게 웃으며 얘기를 나눌 것이다.

같은 남편을 두고 경쟁하는 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둘이었지만 둘은 그런 걸 넘어 친한 친구 같은 우정을 쌓아 올렸다. 어떻게 보면 그것도 일종의 가족애일지 몰랐다.

둘의 가벼운 말다툼이 끝나길 기다리며 지민은 신혜를 달랬다. 입가에 묻은 소스를 마저 닦아주며 미소를 짓고는 둘이 무서운 사람이 아님을 알렸다.

둘, 특히 희영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던 신혜는 이내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정말 어떤 애니?”

희영이 은근슬쩍 신혜의 옆자리에 앉으며 눈을 빛냈다.

“딸은 아니지?”

희영의 눈에 장난기가 반짝였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놀릴 건수를 찾았다는 눈빛이었다.

그런 희영을 한심하게 바라본 아인도 희영과 지민의 사이에 앉으며 의문 섞인 눈빛을 보냈다.

“아니에요. 이번에 제 회사와 계약한 사람의 딸이에요.”

“회사?”

희영의 안색이 조금 굳었다. 아인의 눈빛도 가라앉았다.

“아직 하고 있는 거니?”

“네.”

아인의 질문에 지민은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정말로 존경하는 분들이지만 그녀들과 이 얘기를 나누는 건 꺼려졌다. 그녀들은 지민이 정범을 찾기 위해 회사를 세우려고 했을 때 내키지 않아 한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그녀들도 역시 자신의 어머니처럼 아버지의 돈을 노리고 결혼을 한 인간들이 아닐까 의심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회사를 꾸려 나가는 게 생각처럼 잘 되지 않고, 피가 섞이지 않은 자신에게도 여전히 애정을 쏟아붓는 그녀들을 보며 지민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녀들은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괜찮아요.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그래서 그 분들이 더 이상 걱정하지 않도록, 그녀는 자신의 결정을 말했다.

“마지막?”

희영이 놀라 물었다.

“네, 아무래도 더 이상 하는 건 쓸데없는 일인 것 같더라고요. 슬슬 돈도 떨어져가고요.”

간신히, 간신히 스스로를 납득시킨 말을 내뱉는다.

희영과 아인이 지민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마치 그녀의 마음속을 샅샅이 훑는 것 같았다. 지민이 조금 어깨를 움츠렸다.

어렸을 적 잘못을 했을 때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어머니의 꾸중에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 자식들의 반응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정했다면 다행이네.”

희영이 지민을 빤히 쳐다보던 눈을 거뒀다. 하지만 납득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분위기가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게 정말 네 마음이니?”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질문이 들렸다. 아인이 그 차분한 눈초리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지민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조금 침묵이 흘렀다.

“언니 괴롭히지 마!”

그 침묵을 깬 건 무척이나 귀여운 목소리였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신혜에게 쏠렸다.

신혜가 두 손을 앙증맞게 쥐고는 희영과 아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다섯 살짜리의 시선이 얼마나 무섭겠는가. 오히려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이거 참. 지민이의 보디가드가 너무 무섭네.”

희영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인도 작게 웃음지었다.

지민은 가만히 신혜의 손을 잡았다.

“나는 괜찮아, 신혜야.”

신혜의 커다란 눈이 지민을 쳐다봤다.

“괜찮아? 저 아줌마들이 언니 괴롭히는 거 아냐?”

“아, 아줌……!”

희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어느 순간 언니에서 아줌마로 클래스가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신혜의 눈초리를 보면 신혜가 그녀들에게 다시 언니라는 호칭을 써줄 것 같지는 않았다.

“네가 정말로 납득하지 않았다면 계속 하렴. 정말로 돈이 없는 거라면 우리가 지원해줄게.”

지민이 고개를 돌렸다. 정말로 의외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하지만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말을 한 아인은 물론이고 희영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어머니들은 아버지를 찾는 것에 내키지 않아 하시지 않으셨나요?”

“내키지 않아 했지.”

희영이 말했다.

“네가 고생할 게 뻔히 보이니까.”

그건 가시밭길이었다.

달에 있는, 그것도 괴물들이 득시글대는 곳에서 실종된 사람을 찾겠다고 하는데 쉬운 일이 될 리 없었다.

“네가 보기엔 그 이가 죽었다는데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우리가 매정해 보일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이가 하는 일은 엄청난 위험 부담을 안는 그런 일이었어. 그래서 우리는 각오하고 있었단다. 언제든 그 이가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걸. 그이도 만약 자신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면 죽은 걸로 생각하라고 했고.”

말을 하는 희영의 말에서 착잡함이 느껴졌다.

“네 동생들도 그래. 그 아이들도 연결자잖니. 연결자의 위험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아이들이니 아버지의 죽음도 쉬이 납득한 거겠지. 그러니까 모두 한사코 말린 거란다. 너까지 그 이의 죽음에 짓눌려 사는 게 싫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지원을 해준다고 하는 건가요?”

그녀들의 마음은 충분히 안다. 동생들의 마음도 이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목소리에 조금이나마 반감이 섞이는 걸, 지민은 막을 수 없었다.

“우리는 네가 이렇게 오래 그이를 찾으려 할 줄은 몰랐으니까.”

대답한 건 아인이었다.

“하지만 너는 끈기 있게 몇 년 동안 그이를 찾는 걸 멈추지 않았어.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우린 너에게 무척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 만약 우리가 네 사업을 못마땅하게만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란다.”

아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지민에게 말했다.

“남편의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 고생해주는 아이를 싫어할 리 없잖니.”

그때의 아인의 얼굴에는 남편에 대한 사랑과 지민에 대한 자애가 한가득 넘쳐흘렀다. 그건 옆에 있는 희영도 마찬가지.

지민은 그녀의 말에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반감이 스르르 사라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러니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지원을 요청하려무나. 전폭적 지원까지는 무리지만 어느 정도는 해줄 테니. 네가 만족할 때까지 해봐.”

“……정말 감사드려요, 어머니.”

그녀들의 마음씀씀이가 너무나 고마워서 지민은 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괜찮아요. 돈도 문제지만 저도 많이 지쳤거든요. 평생 이 일만 붙들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칭찬도 비난도 아무것도. 그저 지민의 의견을 담담히 들었다.

“자, 이걸로 지민 언니와 화해하는 거 봤지? 다시 한번 언니라고 불러주지 않으련?”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희영이 신혜를 보며 말했다.

언뜻 초조해 보이는 분위기까지 감도는 그녀의 행동에 아인은 머리를 짚었다. 지민도 쓴웃음을 머금었다.

신혜가 희영과 지민을 번갈아 봤다.

“화해했어?”

“응, 화해했어! 화해했어!”

“언니 안 괴롭혀?”

“응, 응! 안 괴롭혀!”

신혜가 다시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언니.”

“꺄아아악!”

다시 언니라고 불리자마자 희영은 다시 신혜를 껴안았다. 조그마한 아이의 몸이 희영의 폼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쪽팔리게 그러지 좀 마!”

결국 아인의 손바닥이 희영의 등을 세차게 때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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