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38화 (38/354)

제38화

놀이동산.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이 가득 펼쳐져 있는,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상상하는 메르헨 빛 세계와 가장 가까운 곳.

부모님을 조르든 친구들끼리 가든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가고 싶은 꿈의 세계다.

하지만 어른들의 눈에 비치는 놀이동산은 아이들과는 180도 다르다.

북적이는 인파, 활기찬 걸 넘어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아이들, 비싼 물가 등 어른들을 괴롭히는 요소가 잔뜩 있다.

거기에 만약 전 날에 늦게까지 일을 했다거나 요 근래 피곤한 일이 많다거나 한다면 더더욱 난도는 올라간다.

아이들을 위해서 한두 번 갈 수는 있지만 더 이상은 가기 꺼려지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리고 그 예외에는 지금의 성윤처럼 아이가 좋다면 뭐라도 좋은 아버지도 포함됐다.

“아빠!”

돌아가는 회전목마에서 신혜가 성윤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성윤은 황급히 카메라를 들었다.

렌즈 너머로 신혜의 귀여운 얼굴이 크게 확대됐다.

한 손으로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다른 손으로는 신혜를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목마가 돌아가며 신혜가 사라지자 성윤이 카메라와 손을 내렸다. 환한 웃음을 짓고 있던 그의 얼굴이 평소처럼 무뚝뚝해졌다.

하지만 다시 신혜가 나타나자 얼굴의 미소를 띠고 다시 크게 손을 흔들며 사진을 찍었다. 옆에서 몇 명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물론 무시했다.

곧 회전목마의 회전이 끝났다. 사람들이 우르르 목마에서 내렸다. 성윤은 회전목마의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아빠!”

신혜가 성윤의 발치에 매달렸다. 성윤은 신혜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는 높이 들어올렸다.

“어이쿠, 우리 딸! 재미있었어?”

“응!”

신혜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말이 빙글빙글 돌았어!”

“그래, 빙글빙글 돌았네!”

굉장히 기분이 좋은지 신혜는 계속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성윤은 비행기를 태우듯 신혜를 계속 높이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좋아하던 신혜였지만 얼마 안 가 질려서 내려달라고 발을 버둥거렸다.

“여전히 사이가 좋네요.”

성윤이 신혜를 내려 놨을 때 한 명의 여자가 부녀 곁으로 다가왔다.

“언니!”

신혜가 그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상냥하게 신혜를 받아서 안아 올렸다.

그녀는 선아이었다. 신혜가 고아원에서 나온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던 인연으로 오늘 그녀는 부녀의 놀이동산행에 함께하고 있었다.

“먼저 그렇게 뛰어나가면 어떻게 해.”

그녀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신혜의 코를 꼬집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의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혜도 ‘헤헤!’웃음을 흘렸다.

성윤이 바깥에서 사진기로 신혜의 기록을 남기고 있는 동안 신혜와 놀이 기구를 타는 건 주로 그녀였다.

목마에 같이 앉아 서로 장난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선아와 신혜는 영락없이 나이 차이 나는 자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크게 흔들어 선아의 손에 잡힌 코를 빼낸 신혜가 갑자기 배를 부여잡았다. 성윤의 뛰어난 청각이 작게 들리는 꼬르륵 소리를 캐치했다.

“나 배고파!”

신혜가 성윤의 옷자락을 꾹꾹 잡아당기며 말했다. 당연히 이 딸바보가 딸의 배고프다는 의견에 취할 행동은 하나였다.

“그래, 밥 먹으러 가자.”

시계를 보니 슬슬 점심시간이기도 했다.

성윤은 선아와 신혜를 데리고 인파를 헤쳐나갔다. 다행히 평일이라 사람들의 숫자는 주말보다 적었다.

푸드 코트에 도착한 성윤은 신혜의 등에 손을 대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자, 뭐 먹을래?”

신혜의 눈은 이미 카운터 위에 있는 메뉴판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음~. 핫도그랑, 우동이랑, 돈까스도 먹고 싶고…….”

집게손가락을 입에 대고 인생 최고의 선택을 하듯 눈을 핑핑 굴린다. 먹고 싶은 게 많아서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성윤은 재촉하지 않고 신혜가 느긋하게 고르도록 기다렸다.

“선아 씨도 고르세요. 제가 내죠.”

선아는 성윤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걸까.

팔불출에 딸바보 느낌으로 신혜에게는 온갖 미소와 애정을 다 보여주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 같은 타인을 보는 순간 저렇게 표정이 사라지는지.

불쾌감보다는 강력한 호기심이 일었다.

“아니에요. 저도 돈은 가져왔는걸요.”

이미 성윤이 입장권부터 여러 가지 비용을 대신 내줬다. 그녀가 성윤 부녀에게 점심을 사줄지언정 이것까지 받아먹기는 꺼려졌다. 하지만 성윤은 단호했다.

“괜찮습니다. 신혜를 돌봐주신 대가입니다. 이번에 수익도 꽤 올렸고요.”

‘그러보니 연결자였지, 이 사람.’

선아는 새삼스럽게 성윤을 쳐다봤다. 처음 만났을 때의 꾀죄죄했던 음침한 중늙이는 사라지고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제법 잘생긴 남자가 거기 있었다.

고아원에서 원래 있던 원생들에게 물려받은 헌 옷을 입고 있던 신혜도 지금은 꽤 값나갈 것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분명 예전 둘을 처음 만났을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아빠, 나 저거!”

신혜가 메뉴를 골랐는지 손가락을 쭉 폈다. 신혜가 고른 건 돈까스와 핫도그였다.

아이가 모두 먹기에는 확실히 많은 양이었지만 성윤은 두 말없이 OK 했다. 남으면 자신이 먹으면 그만이었다.

“선아 씨는 뭘 드실 거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며 성윤이 물었다. 더 거절하면 오히려 그게 더 실례일 것 같아 선아는 메뉴를 하나 골랐다.

셋은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신혜는 이미 기대되는 표정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두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음식이 나왔다는 번호가 뜨자 성윤과 선아는 각각 음식을 가지러 일어났다. 당연히 신혜의 음식은 성윤이 가져 왔다.

“잘라줄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돈까스를 본 성윤이 물었다. 하지만 신혜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잘라 먹을 거야!”

나이 먹고 경험 많은 어른들에게 스테이크나 돈까스를 썰어대는 행위는 귀찮은 노동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였다. 혹시라도 빼앗길세라 신혜는 포크와 나이프를 쥔 손에 힘을 꾹 넣었다.

“지민 언니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걸.”

돈까스를 신나게 썰어 연신 입에 넣던 신혜가 문득 그런 말을 내뱉었다.

진짜 기대하고 있었던지 아이의 표정에 실망의 기운이 역력했다.

“언니도 할 일이 있으니까.”

성윤은 신혜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지민의 엄포 때문인지 그는 지민에 대해 꼬박꼬박 언니라는 칭호를 썼다.

“지민 언니?”

“응! 나랑 친한 언니야!”

신혜가 소스범벅인 입을 열심히 움직여 말했다. 그나마 예전처럼 입 안에 음식을 넣고 말하지는 않았다. 유치원에서 배운 예절을 열심히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선아가 핸드백에서 티슈를 꺼내 신혜의 입을 닦아줬다.

“그래? 친한 언니야?”

“응!”

선아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그럼 그 지민 언니랑 언니 중에 누가 더 좋아?”

신혜의 움직임이 딱 멎었다.

“어. 음. 그러니까…….”

신혜의 눈이 선아를 봤다가 허공을 쳐다봤다가 식탁을 쳐다봤다가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아이의 고뇌가 그대로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응? 응? 누가 더 좋아?”

재미가 들렸는지 선아가 미소를 더욱 짙게 하고는 재촉했다. 신혜에게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수준의 질문이었을까. 결국 신혜가 울상을 지으며 성윤을 올려다봤다.

“그쯤 해주시죠, 선아 씨.”

“어머, 죄송해요. 신혜가 너무 귀여워서.”

선아가 살포시 웃으며 신혜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신혜는 삐쳤는지 콧방귀를 한 번 뀌고 돈까스를 공략하는데 집중했다.

선아가 몇 번 더 말을 걸었지만 신혜는 ‘흥! 흥!’거리기만 할 뿐 고개를 들지 않았다. 결국 선아는 5분 정도 신혜를 살살 달래야만 했다.

겨우 신혜를 달랜 선아가 성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혹시 달은 어땠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자신의 몫인 라면을 열심히 비우던 성윤이 선아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빛이 빛나는 게 보였다.

“실례라면 죄송해요. 하지만 제 목적이 달에 가는 거라서요.”

“선아씨도 연결자입니까?”

“아뇨. 국가고시를 봐서 달에 파견 나가는 게 목표예요.”

성윤은 지원소의 접수원을 떠올렸다.

그녀의 신분은 한국 정부에서 파견된 공무원이다. 아마 선아가 목표하는 바가 그런 것일 터였다.

“달이라…….”

뭣부터 말해야 할까 고민되는지 성윤의 눈이 위로 향했다. 선아는 조금 긴장한 눈초리로 성윤을 쳐다봤다.

애초에 선아가 오늘 나온 이유는 무척 친해진 신혜와 놀기 위함도 있었지만 달에 갔다 온 경험이 있는 성윤에게 달에 대해 물어보기 위함도 있었다.

“일단, 동화 속에서 나오는 꿈 같은 곳은 아니죠.”

성윤은 그 회색빛 풍경과 높은 물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조금은 들었어요. 꿈과 희망이 넘치는 곳은 아니라고요.”

“뭘 어떻게 들으셨든, 아마 들은 것 이상의 곳일 겁니다.”

성윤도 어느 정도 달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한 달이란 곳은 더 자비없고 무서운 곳이었다.

성윤의 단호한 말에 선아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음, 역시 조금 더 각오를 해야 할까요? 그래도 달에서 올려다보는 지구랑 우주는 꼭 한 번 보고 싶은데 말이죠.”

“그건 추천할 만합니다.”

별이 가득 박혀 있는 어둠의 공간과 그 공간 사이로 푸르게 빛나는 지구를 본 감격은 아직도 성윤의 뇌리에 남아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달 여행은 굉장히 돈이 많이 든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직업도 얻을 겸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나 돈이 많이 드나요?”

“제 첫 미궁 탐색 기념으로 사장님이 밥을 한 끼 사주신 적이 있지요. 스테이크였는데, 그 요리가 천만 원 대였습니다.”

자기가 시킨 파스타를 포크에 빙글빙글 휘감고 있던 선아의 몸이 딱 멎었다.

“어, 얼마라고 하셨죠?”

“천만 원대요.”

성윤은 이미 그 무식한 물가에 익숙해져 담담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관광 목적이라면 많이 어려울 겁니다. 월면도시 암스트롱이란 도시는 그런 곳이니까요.”

성윤은 그렇게 말하며 라면을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선아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집안도 부자라고 할 수 있는 집안이었지만, 한 끼에 천 만 원대의 관광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그게 아주 비싼 음식이 아니었나요?”

마지막 희망을 담아 선아가 물었다. 하지만 들려온 답변은 매정했다.

“암스트롱의 평균 물가는 그 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결국 선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비싼 정도가 아니네요. 성윤 씨는 어떻게 생활하고 계세요?”

그녀가 알기로 성윤이 연결자가 된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아무리 연결자가 많이 번다고 해도 저렇게 끼니마다 천만 원 대의 음식을 사먹을 정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라에서 초보 연결자에게 지원해주는 게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 물과 영양제를 지원해주죠. 지금은 그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선아로서는 지금 먹고 있는 파스타가 목에 막힐 것 같은 말이었다.

“그, 그렇군요.”

‘이 사람이 사준 걸 과연 먹어도 되나’, ‘지금이라도 돈을 내야 하나’라고 고민을 시작한 선아를 내버려 두고 성윤은 신혜를 돌아봤다.

신혜가 성윤의 무릎을 탁, 탁 치며 달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둘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당연히 성윤은 미소 띤 얼굴로 달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하지만 그 얘기는 선아에게 해줬던, 현실에 찌든 진짜 달의 모습이 아닌,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 상상해 봤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공상 속의 달이었다.

방금 전까지 달에 대한 환상을 팍팍 깨버렸던 인간이 자기 딸에게는 온갖 상상 속의 달의 모습을 주입시키는 모습을 선아는 조금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그 부녀의 모습은 분명 그림에서나 나올 법한 다정한 모습이었다. 선아는 결국 피식 웃고는 부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니까.’

남자와 같이 있는데도 이렇게 편한 마음이 드는 건 아버지 말고는 처음이다. 그랬기에 선아도 이런 자리에 고민 없이 나올 수 있었다.

온갖 과장과 행동으로 달을 표현하는 성윤과 그걸 감탄하며 듣는 신혜를 그녀는 조용히 바라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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