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36화 (36/354)

제36화

지민은 어처구니없는 걸 넘어서 머리가 아파왔다. 설마 그런 말이 저 여자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지금…버릇이…뭐…어쨌다고요?”

울분이 턱밑까지 차올라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거칠어지는 숨을 필사적으로 골라가며 씹어먹듯 내뱉었다.

제발 저 빌어먹을 여자가 터져 오를 것 같은 자신의 분노를 느끼고 꺼져줬으면 했다. 하지만 아정은 그런 남의 눈치 같은 걸 신경 쓰지 않는 여자였다.

만약 남의 눈치를 보고 살았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뻔뻔하게 살아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버릇! 역시 그 여자들 밑에서 못 배우고 큰 모양이야! 역시 의모는 의모라니까! 친모보다 못하겠지! 그 사람도 그래! 괜히 빨리도 죽어나자빠져서는 널 이렇게 고생이나 시키……!”

쾅!

방 안으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아정의 입이 꾹 다물렸다. 그녀의 머리 옆을 스치고 지나간 명패가 방문에 부딪친 후 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한 번만 더…….”

지민이 입술을 짓씹으며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눈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아정을 노려봤다.

“한 번만 더 그 입으로 그 분들을 욕한다면 정말 가만 안 있을 줄 알아.”

지금까지의 고함이 거짓인 듯 지민의 목소리가 착 낮게 깔렸다. 하지만 그 안에 스며있는 분노는 아까의 고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아정도 대꾸를 하지 못했다. 지민의 기세는 정말로 수틀리면 살인이라도 저지를 법할 정도였다.

달칵!

“무슨 일입니까!”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성윤이 들어 왔다. 괜히 남의 다툼에 끼어들기 싫어서 문 밖에서 대기를 하다가 사무실에서 난 큰 소리에 다급히 들어 온 것이다.

성윤이 들어오자 아정이 이 때다 하고 황급히 입구 쪽으로 걸었다.

오늘은 그만 포기할 생각이었다.

타인인 성윤이 온데다가 더 이상 몰아붙이다가는 살인은 나지 않는다고 해도 뺨 정도는 여러 번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고이 물러나지는 않았다.

“잘 생각해! 엄마가 너 위해서 만들어 준 자리니까! 약속 시간 잡을 테니까 그런 줄 알고 그때 나와!”

“웃기지 마요!”

지민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거절했다. 아정이 잠시 문가에 서서 지민을 노려봤다. 지민도 그녀를 마주 노려봤다.

결국 아정은 콧바람을 내고는 사무실을 쌩하니 나가버렸다.

“하아~!”

털썩!

지민이 의자에 주저앉듯 앉았다. 그녀의 얼굴이 무척 수척해보였다.

“어서오세요, 성윤 씨.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저분이 어머니십니까?”

발치에 굴러다니던 명패를 집어 다시 책상위에 놓은 뒤 아정이 나간 입구를 쳐다보며 성윤이 물었다.

“싸질러놓는다고 다 엄마는 아니죠.”

“그건 동감입니다.”

텀도 없이 들려온 맞장구에 지민이 성윤을 쳐다봤다. 성윤이 왜 그러냐는 듯한 얼굴로 지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아내도 상당한 막장이었지.’

그것 때문에 신혜를 자신과 겹쳐보며 그 아이를 특별취급하지 않았던가.

예전의 조사를 떠올리며 지민은 한 쪽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동병상련이라고 성윤의 이 같은 반응에 호감이 샘솟는 자신의 마음이 우스워 미칠 것 같았다.

성윤은 재촉하지 않고 지민이 스스로 안정되길 기다렸다. 뭔가를 궁금해 하지도 않고 위로의 말을 던지지도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서 있었다.

지민으로서는 괜한 동정이나 위로의 말보다는 차라리 그게 나았다. 어차피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말한 공감의 한 마디로도 충분했다.

“결혼을 하라더군요.”

그래서일 것이다. 필요도 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내뱉게 된 것은.

“결혼…말입니까?”

“그래요.”

성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민과 그녀의 어머니 사이의 일은 잘 모르지만 방금 전의 광경만 봐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건 확실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특히 지민 쪽에서 싫어하는 것 같았다.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저 여자는 성윤 씨의 전 아내 같은 분이에요.”

성윤의 인상이 대놓고 찌푸려졌다.

“쓰레기군요.”

전 아내를 그는 대놓고 모욕적인 호칭으로 불렀다. 하지만 지민은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 술 더 떴다.

“네, 쓰레기죠. 그것도 재활용조차 되지 않을 핵폐기물 같은 인간이요.”

그러고 보니 성윤은 아까 들었던 목소리에서 미연을 떠올렸던 걸 기억했다. 아무래도 그의 감은 정확했던 것 같다.

“그런 사람이 권유하는 결혼이라…. 축하드릴 일은 아니겠군요.”

자신이라도 미연이 자신과 신혜 앞에 나타나 신혜의 결혼 상대를 잡아놨다고 한다면 당장 그 주둥아리부터 찢어놓을 터였다.

“맞아요. 돈밖에 모르는 여자에요. 아버지랑 결혼한 것도 당시 잘 나가던 2세대 연결자였던 아버지의 돈을 노린 거니까요.”

들으면 들을수록 미연의 쌍둥이 같은 인간이었다.

“아버지의 돈을 흥청망청 쓰고 저는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며 놀러다녔죠. 반드시 달에 얼마씩 머물러야 했던 아버지였으니 결혼 초반에는 지구에 혼자 남은 저 여자를 막을 사람이 없었어요. 뭐, 그것도 다른 어머니들이 들어오시기 전에는 말이에요.”

‘다른 어머니들이라.’

성윤은 지민의 말 속에 특이한 발언을 속으로 되새겼다.

이 시기에 연결자의 중혼은 흔한 일이었다.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른 돈 많은 사람들도 다른 가정을 꾸리는 일이 흔하다지만, 어디까지나 그 사람들은 몰래몰래 하는 일이다. 하지만 연결자의 중혼은 꽤 개방적이었다. 그리고 공공연했다.

물론 사람들은 그 사실을 곱게 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연결자가 백안시되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극렬하게 반발하진 못 했다.

지금 월석은 석유와 함께 경제 전반을 떠받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자원이다. 솔직히 석유가 아직 중요한 자원 취급을 받는 이유도 월석의 생산이 충분치 않기 때문인 걸 감안하면 월석의 중요도는 훨씬 뛴다.

공해도 없고 에너지 생산량은 다른 물질에 비할 바가 아니며 모든 에너지를 뽑아내고 남은 찌꺼기조차 유용하게 쓰인다.

문제는 그만큼 귀하고 필요한 월석이지만 정작 월석을 채취할 사람이 성윤 같은 연결자들로 한정된다는 것이다.

부모가 연결자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 1세대 연결자로 각성할 확률은 고작해야 0.0001%정도.

대략 600만분의 1인 번개를 맞을 확률이나 대략 815만분의 1인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보다는 높다.

하지만 그건 비교 예시가 너무 안 좋은 것이다. 두 예시 다 천문학적인 확률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평범한 인간이 1세대 연결자로 각성하는 확률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낮았다.

하지만 아버지나 어머니 중 한 명이, 혹은 부모 모두가 연결자인 사람이 연결자로 각성할 확률은 80%가 넘어간다.

게다가 수준 차도 있다. 최초로 각성한 1세대의 능력에 비해서 1세대를 부모로 둔 연결자인 2세대부터는 1세대의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수 십 배까지 마력의 질과 양이 증폭되는 것이다. 그게 2, 3세대가 1세대에 비해서 우대받는 이유였다.

실상이 그러니 정부에서는 은근히 연결자의 중혼을 권장했다. 2, 3세대에 비해 능력도 별 볼 일없는 1세대 연결자가 0.0001%의 기적 같은 확률을 뚫고 태어나는 것을 기다리느니 훨씬 능력 좋은 2, 3세대를 늘리는 게 더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중혼은 도덕적 논란만 제외하면 연결자의 자식들을 늘리는 데 아주 좋은 수단이었다.

“다행히 다른 어머니들이 들어오시고 아버지도 그 여자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서 쫓겨났죠. 그때도 얼마나 추하게 돈을 뜯어내려 하는지”

그건 지민의 어린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었다.

“절 거의 인질로까지 대하더군요.”

자신을 방치하고 욕하고 때리더라도 그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엄마란 존재는 세상의 전부다.

그녀의 아버지가 달로 일을 떠나 집을 비우는 일이 많으니 그녀가 엄마에게 더더욱 의존하게 된 건 필연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까지 뿐이었다. 자신의 팔을 억세게 쥐고는 아버지를 향해 바락바락 소리 지르며 돈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친 그 순간부터, 어머니에게 자신의 존재 의의는 오로지 돈을 위한 물건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은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어머니란 존재를 지웠다.

“결국 학을 뗀 아버지가 던져준 돈으로 제 친권까지 포기하고는 떠났죠. 그 이후로 삶은 나쁘지 않았어요. 어머니들은 굉장히 좋은 분이셨고 아버지도 절 많이 신경 써 줬거든요. 그런데 한 10년쯤 지나고부터 어머니랍시고 슬금슬금 제 주위를 맴돌더군요. 그 많은 돈을 흥청망청 다 써버리고 온 거예요.”

지민은 벌떡 일어나 사무실 한편에 있는 냉장고를 열었다. 목이 타는지 물 한 병을 꺼내 컵에 따르지도 않고 병째로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 옆으로 한 줄기 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윽!

병에서 입을 떼고 입가로 흐른 물을 거칠게 소매로 닦았다. 평소 품위 있고 냉정한 그녀답지 않았다.

그만큼 그녀의 마음이 심란하다는 증거였다.

“그 이후로 쭉 저 꼴이에요. 어떻게든 돈 몇 푼 더 뜯어내보겠다고 승냥이처럼 제 곁을 어슬렁어슬렁 맴돌고 있죠. 예전에 아버지 장례식 때 뻔뻔하게 얼굴을 내밀고 유산 운운했을 때는 진짜 뺨을 날릴 뻔했어요. 다른 어머니들이 말리셔서 못 했지만.”

그때 지민의 표정은 어머니들이 말려줘서 다행이라는 표정이 아닌, 그때 못 때린 게 원통하다는 표정이었다.

성윤은 지민의 말을 열심히 들었다. 사장님의 이야기라서나 동정 때문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겪은 일은 자신과 신혜가 겪은 일과 놀랍게 유사했다. 혹시라도 앞으로 미연이 헛수작을 부린다면 어떻게 될지 충분히 참고가 될 것 같았다.

“그 여자가 엄청 싫겠군요.”

“싫어요. 애초에 그 여자도 절 싫어했는걸요. 동생들과는 다르게 전 연결자가 아니니까요. 혹시라도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자기에게 돈을 갖다 바칠 수 없는 저는 필요가 없었겠죠.”

어렸을 적 불쾌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걸 기억한다. 그때 그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연결자도 되지 못한 쓰레기 자식.’

“3세대 연결자가 되지 못했다고 방치한 작자가 이제 와서 엄마 노릇을 하면서 거기에 결혼을 추천해? 흥, 돼먹지 않은 여자 같으니라고.”

지민의 혼잣말에는 그녀가 느낀 울분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자식이 연결자가 되지 않은 게 불만인가?’

성윤으로서도 그 여자의 행동은 불쾌하기만 했다.

성윤의 딸인 신혜는 2세대 연결자가 될 수 없다. 부모가 연결자일 때 태어난 아이만이 2세대의 자질을 타고 난다.

신혜는 성윤이 연결자로 각성하기 전에 태어난 아이. 신혜가 성윤과 같이 0.0001%의 확률을 뚫고 1세대 연결자로 각성할 확률이 제로는 아니지만 ‘1세대 연결자 우성윤의 자식’인 ‘2세대 연결자 우신혜’가 될 순 없다.

하지만 성윤은 오히려 그 사실을 반겼다. 그는 애초에 신혜에게 이런 위험한 일을 시킬 생각이 개미 눈곱만큼도 없었다.

‘돈을 많이 버는 연결자’가 못 됐다고 자식에게 폭언을 하는 아정을 성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생각도 없었다.

“정말로 쓰레기 같은 여자군요. 사장님이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성윤이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평소의 무뚝뚝한 목소리와는 달리 지금 성윤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씩씩대던 지민이 성윤을 쳐다봤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