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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미궁-16화 (16/354)

제16화

우주는 먼 옛날부터 인류의 동경과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푸른 하늘 너머 있는 광대한 공간. 인간의 몸으로는 결코 쉽게 갈 수 없기에 그 염원이 더욱 깊었는지도 모른다.

극소소의 인류만이 인류의 요람이라 불리는 지구를 벗어난다. 어떻게 보면 대기를 벗어나 지구의 중력마저 뿌리치고 컴컴한 우주에서 푸른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그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성윤도 조금 기대가 됐던 게 사실이다. 외국은 꽤 자주 나가본 경험이 있는 그였지만 우주로 나가는 건 처음이다.

우주선의 엔진이 점화되고 몸이 뜨는 느낌이 드는 순간에는 긴장했다. 몸이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고 바깥에서는 굉음이 들렸다.

우주선이 똑바로 전진하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추락이라도 하면 어쩌지 같은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시간이다.

지금 성윤에게 느껴지는 건 지루함이었다.

‘미국으로 출장 갔을 때의 느낌이야.’

그때도 열 몇 시간 동안 줄창 비행기에 앉아 있어야 했다. 자유의 나라 미국에 간다는 기분 좋은 두근거림도 계속 비행기에 앉아 있으니 팍 식는 느낌이었던 게 기억난다.

성윤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옆에 앉은 지민이 눈을 감고 있는 게 보였다.

우주선 안이라 헬멧은 벗고 있어 그녀의 긴 속눈썹이 그대로 보였다. 규칙적인 숨소리를 보니 요령 좋게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녀에게 눈을 떼고 성윤은 이번엔 주변을 둘러봤다. 우주선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걸 생각했더니 별거 없었다.

내부는 영화에서 보던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의 규모를 좀 키워놓은 것과 비슷했다. 여기에 스튜어디스만 있다면 비행기라고 해도 구분하지 못할 것 같았다.

탑승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아무리 퍼스트 클래스의 규모를 키워놓은 것 같더라도 그 크기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마저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조용했다. 성윤처럼 지루한지 대다수가 눈을 감은 모습이었다.

‘이 사람들 모두가 나 같은 연결자인가?’

그러고 보니 젊은 사람들의 비중이 높았다. 아니,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리라. 이제 슬슬 중늙이라고 불려도 될 자신조차 20대의 미끈한 외모를 되찾았는데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를 리 있겠는가.

하지만 군데군데 나이를 먹은 사람들도 보였다. 지민처럼 다른 볼일이 있어 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도 월면도시라고 불릴 정도의 곳이니 상주인원도 얼마 정도는 있겠지.’

턱을 괴고 이번엔 지민이 있는 쪽과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주선 벽면에 밖을 비추고 있는 유리창이 있었다. 그나마 이것 덕분에 지루한 시간을 어느 정도 죽일 수 있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건 비유도 뭣도 아니라 말 그대로 별의 바다였다. 검은 벨벳 위에 다이아몬드를 박아 놓은 듯한 별들은 당장이라도 손아귀에 잡힐 것 같았다.

공해와 인공불빛 그리고 대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부끄러움을 내던지고 환상적인 빛을 반짝반짝 뿌리고 있었다.

처음에 성윤은 자기 나이조차 잊은 것처럼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정신없이 그 풍경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시간이다. 지금은 감흥이 많이 사라졌다. 빨리 도착해서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지루한가 봐요?”

차가운 그러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린다. 성윤이 고개를 돌렸다. 지민이 눈을 뜨고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언제 일어났습니까?”

“지금 막요.”

그녀가 기지개를 작게 켰다. 평소라면 그림 같은 모습이었겠지만 입고 있는 우주복 때문에 조금 웃겼다.

“시간도 있는데 뭔가 궁금하신 건 있나요?”

애초에 그도 그녀도 용건이 없는 이상 먼저 말을 꺼내는 타입이 아니다. 그런데 그녀가 먼저 말을 걸고 있었다. 그녀도 퍽 지루한 모양이었다.

“의외로 우주선 안이 평범하군요. 영화에서 본 우주선과는 많이 달라서 놀랐습니다.”

“보통 그런 데서 나오는 우주선은 초창기 모델이에요. 말 그대로 우주를 탐사하려고 보낸 것들이죠. 당시에는 우주선 하나를 쏘아 올리는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었으니까요. 지금이야 뭐, 달로 가는 사람들도 많고 달 지면에 도시 하나를 유지할 정도로 물자 이동도 빈번하니, 어느 정도 편의성을 추구할 필요도 있었다는 거죠.”

“지금은 가격이 조금 줄어들었습니까?”

“연료로 월석을 쓰고 있으니까요. 외부 코팅도 월석을 정제할 때 나오는 찌꺼기인 일명 ‘루나 스틸’을 쓰고요. 만약 지구의 자원으로만 우주선을 쏘아냈다면 월면도시의 유지를 실현시키기까지 최소 50년 이상이 걸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민이 그녀가 앉아 있는 의자의 팔걸이를 툭툭 두드렸다.

“애초에 이 우주선도 승객을 태우기 위해 쏘아졌다기보다는 화물을 운반하는 데 겸사겸사 승객도 태운다는 개념이니까요.”

어쩐지 자신들이 탑승하고 있는 공간에 비해 우주선의 크기가 너무 컸다. 우주로 가기 위한 첨단 장비 때문에 그렇다고 여겼었는데 실제론 대부분이 화물칸이었던 모양이다.

“어느 나라든 대부분의 우주선이 그래요. 물론 아무래도 달 탐사나 미궁 공략에 후발주자라는 느낌이 강한 우리나라는 더하죠. 미궁과 월석이라는 군침 도는 요인들과 월석, 루나 스틸이라는 특수한 자원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달에 우주선을 보내긴커녕 아직까진 로켓 하나 번번이 못 쏘아 올리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지민의 말에 성윤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직 우주에 나가는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할 때 외국한테 삥을 많이 뜯겼다고 했었나?’

어디까지나 명분은 한국의 연결자들을 달까지 운반해주고 채취한 월석을 다시 지구까지 운반해주는 것에 대한 대가였다. 그 대가로 한국은 채취한 상당량의 월석을 다른 국가에 상납해야 했다.

물론 지금은 아득바득 기술개발을 해 혼자서 달로 우주선을 쏘아 보낼 정도가 되었다. 오히려 지금은 아직 우주선을 달까지 보낼 기술이 없는 나라의 연결자들을 태워 역으로 그 대가를 받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과 지민의 설명을 바탕으로 나름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을 때 지민이 툭 물어왔다.

“딸과는 잘 얘기하고 오셨나요?”

지금까지 잘 정리되던 지식들이 일순간에 리셋됐다.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죄송해요. 쓸데없는 걸 물은 것 같군요.”

지민이 황급히 사과했지만 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지민의 질문이 들리지도 않았다. 문을 나서는 자신을 보며 울먹이는 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지민이 소개시켜 준 가정부가 아이를 달래고 있었지만 어디 막 본 아주머니가 아빠와 이별하는 슬픔을 달래줄 수 있겠는가.

당장 뒤로 달려가 딸을 안고 싶었지만 성윤은 애써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잡아떼고 나왔다. 그건 일을 하러 가는 아버지라기보다는 도망치는 범죄자 같은 장면이었다.

성윤은 다시 유리창을 쳐다봤다. 머리에 떠오르는 딸이 우는 모습을 지우려 너른 별의 바다를 쳐다봤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무한히 펼쳐진 별들 하나하나가 자신을 보며 울먹이는 신혜의 눈 같았다. 결국 성윤은 눈을 감아버렸다.

지민도 입을 닫았다. 그렇게 둘의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우주선 안으로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거의 도착한 것 같군요.”

지민의 음성에 성윤이 눈을 떴다. 창문을 내다봤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달…….”

그의 눈에 회색빛의 황폐하고 황량한 천체가 들어 왔다. 대기라는 보호막이 없어 운석에 일방적으로 얻어맞아 생긴 크레이터가 보인다. 풍화작용도 없어 크레이터는 생겼던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 없는 그 죽음의 땅으로 이색적인 무언가가 보였다. 그건 척 봐도 인공물이었다. 모양은 돔구장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일반적인 돔구장과는 그 규모가 차원이 달랐다. 말 그대로 하나의 도시를 돔으로 통째로 덮어 놓은 것 같았다.

돔 외벽에서는 조그마한 불빛들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우주선이 점점 하강하면서 돔의 모습이 점점 커져갔다.

“저게…….”

“네, 월면도시에요.”

성윤이 조그맣게 중얼거리자 옆에서 지민이 대답했다.

“월면도시 암스트롱. 인류의 지구 밖 유일한 생활권이자 월석을 채취하기 위한 중요 거점이죠. 이름은 당연히 최초의 달 착륙자라고 널리 알려진 닐 암스트롱에게서 따온 거예요.”

“직접 보니 정말 놀랍군요.”

높은 곳에서 봐도 그 규모를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높은 곳에서 봤기에 그 도시의 규모가 제대로 보이는 건지도 몰랐다.

월면도시의 정보는 어느 정도는 시중에 풀려 있었다. 사진으로 몇 번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정보가 풀려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옆에서 지민이 암스트롱에 대해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람을 달에 보낸 미국은 가장 먼저 미궁을 발견했어요. 놀라운 발견이었죠.”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하늘 위의 우주로조차 세력권을 확대한 인류에게 신화 속의 존재 같은 장소가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든 소련에게 이 ‘위대한 업적’을 뺐기지 않기 위해 미국은 달 자체에 기지를 세울 계획을 짰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당시 기술로는 달에 기지를 세우기엔 무리가 따랐죠. 당장 기지를 세울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계획을 조금 늦췄어요. 이 업적을 소련에 빼앗기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달에 기지를 세울 능력은 소련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그 생각은 철저한 오산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스푸트니크 1호와 최초로 생물체를 우주로 내보낸 스푸트니크2호, 그리고 최초로 사람을 우주로 내보낸 보스토크 1호에 이어서 또다시 거하게 뒤통수를 맞았어요. 소련이 먼저 달에 소규모긴 하지만 기지를 세운 거예요.”

그건 분명 전 세계를 경악시킬 일이었다. 달에 사람을 보내 겨우 다시 우주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았다고 생각한 미국의 예상이 와장창 깨진 것이다.

“그때 소련이 동원한 자들이 그 당시 막 등장하기 시작했던 성윤 씨 같은 연결자들이에요.”

지민의 아름다운 눈이 성윤을 응시했다.

“호흡이 필요 없고 음식도 최소한만 섭취하면 되는 인간. 심지어 달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연결자의 심장에서 나오는 에너지도 늘어나서 피부 겉면에 얇은 자기장 같은 걸 만들어낸다더군요. 그게 우주 방사선이나 태양풍 같은 걸 모두 차단해버려요. 즉, 연결자들은 우주에서 일을 하기에 최적의 존재들이었죠. 성윤 씨가 우주복을 입고 있지 않은 이유도 똑같은 이유 때문이에요.”

성윤은 주먹을 한번 꽉 쥐어봤다. 어쩐지 달에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힘이 더 강해지는 느낌이 들던 참이었다.

“당연히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죠. 소련과 똑같이 한창 연구를 하던 연결자들을 모아 달에 파견해서 기지를 지었어요. 기지에 암스트롱이란 이름을 짓고 말이죠. 누가 뭐라고 해도 달에 먼저 착륙한 건 자기들이란 자존심을 담아서요.”

입이 마르는지 지민은 물 한 잔을 마셔 입 안을 적셨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달 탐사 경쟁이 일어나고 미궁에서 몬스터와 월석, 디바이스, 젬 등이 발견됐죠. 특히 월석의 발견은 달 탐사에 커다란 한 획을 그었어요. 그 무엇보다도 월등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광석.”

석유로 인해 흘린 피만도 엄청나다. 그런데 그보다 더 훌륭한 에너지원이 발견됐으니 그 뒤의 상황은 뻔했다.

“당연히 미국과 소련은 미궁에 대한 투자를 늘렸죠. 그리고 다른 나라들도 미궁 탐색에 뛰어들기 시작했어요. 당연하죠. 이제 달 탐사는 국가의 자존심을 건 경쟁만이 아닌, 실질적으로 이득을 줄 수 있는 사업이 됐으니까요.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우주개발에 뛰어든 것도 그 즈음이에요.”

지민이 창 너머로 이제는 완연하게 커진 암스트롱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경쟁은 조금 어이없게 끝났죠. 소련이 붕괴되고 공산권이 같이 붕괴되면서 미국은 달 탐사에서 완연한 승리자가 됐어요. 그들은 동맹국까지 끌어들여 암스트롱을 확장시켜나갔어요. 수월한 월석 채취를 위해서요.”

그리고 월석은 현대 사회에 무수한 이득을 안겨주었다.

“얼마 안 있어 암스트롱은 기지라는 이름을 붙이기 곤란할 정도로까지 커졌죠. 그때 미국은 자신감 넘치게 암스트롱의 격을 올렸어요. 기지가 아닌, 인류의 유일한 외계 생활권인 월면도시로요.”

월면도시 암스트롱은 그렇게 탄생했다. 성윤은 이 이야기를 나름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살펴보니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 몇 몇도 지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게 보였다.

“혹시 다른 궁금한 점 같은 게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꽤 유익한 얘기였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지민은 그렇게 말하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성윤은 다시 유리창 너머의 월면도시를 쳐다봤다.

‘암스트롱이라고 했지.’

지민이 해준 설명 때문일까. 회색빛의 거대한 무기질 덩어리인 도시의 돔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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