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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미궁-6화 (6/354)

제6화

선아는 신혜의 손을 꼭 잡고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신혜는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몹시 들뜨고 활달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선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바라봤다.

선아가 신혜와 같이 가는 곳은 신혜의 아빠가 있는 곳이었다.

보육원에서는 신혜의 왕따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꾀를 냈다. 바로 신혜의 아빠를 보육원에 들이는 게 아닌, 신혜의 아빠가 보육원 근처에 오면 신혜를 직접 아빠에게 데려다 주자는 것이었다.

물론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아이들도 눈치를 챌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부녀의 상봉을 직접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막상 신혜를 데려다 주려는 날 일이 생겼다. 아이 몇 명이 독감에 걸려 병원에 데려다주느라 보육 교사의 손이 모자랐던 것이다.

그때 원장의 뇌리에 스친 게 봉사활동을 하러 온 선아였다.

그리고 선아는 신혜를 아빠에게 데려다 달라는 보육 교사의 부탁을 흔쾌히 허락했다.

선아는 신혜의 손을 꼭 잡았다. 어린이 특유의 따뜻한 온기가 손 안 가득 느껴졌다.

“언니 손 차가워!”

신혜가 깔깔 대고 웃는다. 선아는 이렇게 기분이 좋은 신혜를 본 적이 없었다.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빠에게는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어쩐지 조금 질투가 났다.

신혜와 선아는 간간이 얘기를 나누며 길을 걸었다. 목적지인 은행에 도착할 때가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유리문을 열고 일을 보기 위해 들락날락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 입구 옆에 한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아빠!”

신혜가 거의 뿌리친다고 느낄 정도로 선아의 손을 놓고 달려갔다.

신혜의 목소리에 남자가 반응했다.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신혜야!”

그 남자는 달려오는 신혜를 향해 마주 달려갔다.

“아빠!”

신혜가 성윤의 품에 뛰어들었다. 성윤은 ‘어이쿠!’라며 신혜를 받아들였다.

신혜가 갑자기 손을 놓고 달려가자 조금 당황한 선아는 눈앞에서 보이는 따뜻한 부녀상봉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띠었다.

“잘 지냈어?”

“응!”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신혜의 표정은 밝았다. 신혜는 성윤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선아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신혜가 아빠를 만났으니 이대로 조용히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일단 신혜에게 간다는 말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선아는 부녀에게 다가갔다.

“아, 언니!”

오랜만에 만나는 아빠에게 안겨 선아를 의식의 저편으로 날려버렸던 신혜가 선아를 눈치챘다. 성윤의 품에서 빠져나온 신혜는 성윤의 거칠고 커다란 손을 끌었다.

“아빠, 아빠! 오늘 나 데려다 준 언니야!”

성윤이 자신을 바라보자 선아는 성윤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볍게 놀랐다.

손질하지 않아 사방으로 산발한 머리와 고생을 많이 했는지 볼이 쏙 들어가서 광대뼈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얼굴. 그리고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누추한 옷을 입고 있는 그는 분명 초라해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본 성윤의 얼굴은 생각보다 훨씬 더 멋있었다. 잘만 꾸며놓으면 그녀에게 맹대쉬를 하고 있는 동아리 사람들을 전부 올킬할 수준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아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가벼운 인사 한 마디. 그걸로 끝이었다. 선아가 신혜와 친하긴 하지만 굳이 성윤과 통성명까지 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간의 경계심도 있었다. 그녀에게 관심을 보내는 이는 유부남도 적지 않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성윤도 마주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딱 그 뿐, 선아가 걱정하던 것처럼 그녀에게 관심을 보인다거나 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성윤은 선아를 조금 경계하는 것 같았다.

이것엔 선아가 오히려 당황했다. 그녀가 남자에게 저런 눈초리를 받아보는 건 맹세코 처음이었다.

“선생님이십니까?”

성윤의 조금 떨떠름한 목소리에 선아는 당황감을 억눌렀다.

“아뇨. 잠시 보육원에 봉사활동하러 나왔어요. 오늘 아이들 몇 명이 병원에 가서 거기에 선생님 몇 분이 동행하셨거든요. 그래서 대역으로 왔어요.”

“고맙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끝이었다. 성윤의 눈은 더 이상 선아를 쫓지 않았다.

“귀여운 우리 딸! 오늘 뭐 하고 싶은 일 있어?”

다른 남자 같으면 한두 마디는 더 말을 걸 텐데 성윤의 반응은 담백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선아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자신에게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관심이 없다고.

“음….”

신혜가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성윤은 신혜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 얼굴에 지루하다는 감정은 일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서 성윤이 신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절절이 느껴졌다.

자신에게 한눈 하나 팔지 않고 오로지 딸의 행복만을 바라는 그 모습이 선아에게는 무척 좋게 느껴졌다. 성윤에게 적지 않은 호감을 느낄 정도였다.

물론 애정 같은 감정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화목한 가정을 볼 때 절로 피어나는 흐뭇한 웃음과 같은 류의 감정이었다.

‘오랜만에 부모님이랑 외식이나 할까?’

부녀를 보고 선아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대학 생활에 적응한다고 요새 어울리기 힘들었던 가족들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이 이상은 부녀의 시간이다. 가족도 아닌 자신이 끼어 있을 필요를 못 느낀 선아가 말을 꺼냈다.

“그럼 신혜야, 조금 있다가 여기서 다시 만나자. 알았지?”

“응, 언니!”

신혜가 선아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들었다. 선아도 웃으며 작게 손을 흔들었다.

“신혜를 데리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성윤이 신혜를 데려다 준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숙이자 선아는 조금 쑥쓰러움을 타는 표정으로 멋쩍게 웃었다.

선아가 돌아간 뒤 성윤은 신혜의 손을 잡고 거리로 녹아 들었다. 두 부녀의 얼굴에는 꼭 닮은 환한 웃음이 활짝 꽃피어 있었다.

***

성윤은 오늘 무척 기분이 좋았다. 무거운 빚도 끔직한 과거도 오늘만큼은 아무래도 좋았다.

신혜와의 하루는 그 어떤 휴식보다도 더 기운을 북돋우는 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성윤은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지갑을 꺼내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특이하게 한쪽 면이 잘려나가 있는 그 사진에는 신혜와 그가 찍혀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신혜와 신혜의 손을 잡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성윤.

아마 원래는 신혜를 가운데에 두고 성윤과 다른 한 사람이 양옆에서 신혜의 손을 잡고 찍은 사진 같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있는 부분이 찢겨 나가 신혜의 모습이 가장자리까지 밀려나 있었다.

잘려나간 부위에 찍혀 있던 사람은 당연히 미연이었다. 성윤은 이 사진을 챙기면서 제일 먼저 아픈 기억과 추억을 잘라내듯 미연이 있는 곳을 찢어버렸다.

성윤은 사진을 행복하게 바라봤다. 손을 들어 사진 속의 신혜를 사랑스러운 듯 매만졌다. 하지만 잘려나간 단면 쪽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다.

오늘의 행복한 시간을 되새기며 성윤이 고시원을 향해 발을 뻗을 때였다.

두근!

성윤은 깜짝 놀랐다. 그의 귀에 커다란 심장소리가 들렸다.

두근! 두근!

마치 어디서 커다란 스피커로 볼륨을 최대로 높여 심장소리만을 틀어놓은 것 같았다.

성윤은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 소리가 점점 빨라진다. 그제야 성윤은 알 수 있었다. 이 소리는 바깥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바로 그의 심장이 뛰는 소리였다.

“컥!”

고통이 찾아왔다. 요새 그를 괴롭히던 그 끔찍한 고통이. 하지만 성윤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일어나는 고통은 평소와는 뭔가 다르다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주변이 웅성거렸다. 사람들도 성윤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챈 것이다.

“이봐요, 괜찮아요?”

아줌마 한 명이 성윤의 어깨를 잡았다. 성윤은 고개를 들어 그 아줌마를 쳐다봤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세상이 온통 뿌옇기만 했다.

“허억! 허억! 허억! 우웩!”

결국 게워냈다. 오늘 신혜와 돌아다니며 오랜만에 먹은 맛있는 음식이 그대로 쏟아졌다.

주변에서 새된 비명이 들린다. 사람들이 허둥지둥 성윤의 주변에서 물러났다.

‘이상해.’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성윤은 이상함을 느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이미 진즉에 멈췄어야 할 고통이다. 평소에 이 고통이 이어지는 건 몇 초 남짓. 하지만 지금 고통은 그 이상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터졌구나.’

지금 고통은 심장이 이상을 표현하며 구원의 목소리를 부르짖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죽기 전의 단말마. 종말을 알리는 불길한 종소리였다.

“젠…장!”

털썩!

허탈한 욕설을 남기고 성윤은 쓰러졌다. 주변에서 다시 한번 비명이 들렸다.

“이봐, 이봐요! 정신 차려 봐요!”

누군가 그의 몸을 흔든다. 하지만 지금 흔들리는 게 정말 자신의 몸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성윤의 정신은 아득해졌다.

“119! 누가 119 좀 불러봐요!”

급박하게 돌아가는 주변 상황. 사람들이 허둥댔다. 몇 명은 핸드폰을 꺼내 다급히 119버튼을 눌렀다.

‘안 돼!’

성윤은 심장을 꾹 눌렀다.

벌써 죽을 수는 없다. 적어도 빚은 처리하고 가야 한다. 이대로 죽었다가는 그 막대한 빚이 자동적으로 신혜에게 ‘물려’지게 된다.

신혜가 유산 상속 포기 같은 걸 알 리도 없으니 그의 목을 조르던 빚은 자동적으로 신혜의 목을 조르게 된다.

‘그렇게 둘 순 없어!’

역시 보육원의 원장에게라도 말을 해야 했다.

‘오랜 시간도 필요 없어! 빚만, 신혜에게 빚만 돌아가지 않게……!’

죽음을 느끼는 그 순간까지도 성윤은 오로지 신혜의 미래만을 생각했다.

성윤의 귓가에 크게 울리던 심장 소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뛰던 속도도 조금씩 느려졌다.

하지만 성윤은 알 수 있었다. 그건 심장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징조가 아니다. 마지막 생명까지 모두 불태운 듯 서서히 작동을 멈추려 하는 징조다.

‘아!’

성윤은 직감했다. 이제 자신의 심장은 다시는 뛰지 않을 것이라고.

‘빨리 가겠다고……약속했는데.’

서서히 호흡마저 멈춰간다.

‘그래도……마지막에는 신혜를 볼 수 있었구나.’

그게 그나마 마지막 위안거리였다. 오늘 느꼈던 딸의 온기와 목소리와 표정을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세계의 천사.

“신……혜야.”

그립디 그리운 이름을 끝으로 성윤은 정신을 놓았다.

“이봐요! 이봐요!”

한 남성이 그를 흔들었다. 하지만 의지 없는 나무토막처럼, 바람에 흔들리기만 하는 연약한 갈대처럼 성윤의 몸은 완전히 힘을 잃었다.

두근!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듯 성윤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러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조용하고 적막하게.

이 날 이후로 성윤의 심장이 다시 뛰는 일은 없었다.

***

서울에 있는 대형 종합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김이민 박사는 어느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있었다.

여느 의사가 그러는 것처럼 그에게도 엑스레이 사진은 호기심의 대상도 혐오감의 대상도 아닌, 그의 환자의 치료를 위해 담담히 바라보는 그런 도구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엑스레이를 보는 이민의 눈에는 분명 진한 흥미가 감돌고 있었다.

똑! 똑!

유명한 화가가 그린 명화를 보듯 그 엑스레이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이민은 노크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들어 와.”

눈앞에 놓인, 아직 김이 나는 커피잔을 들며 그는 일어섰다.

문이 열리며 일단의 사람이 들어 왔다. 나이 지긋한 이민과는 달리 그들은 파릇파릇한 얼굴의 젊은이들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어서 와라.”

인사를 대충 받으며 이민은 커피를 입에 댔다.

“부르셨다고 들었는데요.”

“그래. 너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

이민은 한 모금 들이킨 커피잔을 내려 놓고 그가 지금까지 뚫어지게 보던 엑스레이 사진 앞으로 걸어갔다. 다른 이들이 이민의 뒤를 따라 우르르 이동했다.

“니들이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일 거다.”

이민이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켰다. 인턴들의 시선이 엑스레이 사진으로 쏠렸다.

그 사진은 평범해 보였다. 아무리 햇병아리 인턴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온갖 교육을 받아 온 엘리트들이다. 이런 흉부의 엑스레이 사진은 질리도록 봤다. 하지만 곧 인턴들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이거 심장이…….”

“응, 좀 이상하지?”

한두 명이 그렇게 내뱉자 다른 인턴들도 곧 이 엑스레이 사진의 이상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사진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사진 가까이로 몰려들었다. 이민은 그들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도록 커피를 다시 들어 올리고서 조금 더 뒤로 물러났다.

“분명 정상은 아닌데…….”

“무슨 증상이지, 이건?”

절대 평범한 심장은 아니다. 그들이 아는, 팔팔하게 뛰는 건강한 심장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 분명 무슨 병에 걸린 심장임이 분명한데 그게 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이건 심장이 아니라 무슨 광석 같은데?”

생명력이 배어 있는 유기물이 아닌, 딱딱하고 차가운 무기물을 보는 것 같았다.

그때, 한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광석? 보석?”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손가락을 딱 쳤다.

“연결자! 연결자의 심장!”

그 외침에 인턴들의 시선이 단변에 변했다.

“확실히……!”

“그러고 보니 교과서에 실려 있던 거랑 비슷하네!”

인턴들은 자신들끼리 얘기를 나누며 엑스레이 사진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봤다. 교과서나 영상으로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실제로 찍은 사진을 보는 건 처음인 것이다.

이민은 인턴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엑스레이 사진을 탐구하는 걸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봤다.

가르치는 자로서 탐구심이 많은 제자들을 보는 건 항상 기분 좋은 법이다. 조금 더 자기들끼리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이민은 참견하지 않고 조용히 커피만 마셨다.

“교수님! 이거 정말 연결자의 심장인가요?”

“그래.”

이민은 인턴들을 헤치며 엑스레이 사진 옆에 가 섰다.

“너희들에게 연결자의 심장을 직접 찍은 엑스레이 사진은 처음일 거다.”

“그럼 지금 이 병원에 연결자가 입원해 있나요?”

“그러니까 엑스레이 사진이 있지.”

이민은 손가락을 펴 사진을 가리켰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연결자의 심장은 특별해. 뛰지 않는 건 물론이고 더 이상 유기체도 아니다. 보통 연결자들은 전용 병원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렇게 진짜 연결자 환자를 보는 것도 희귀하지.”

“이 환자는 그럼 왜 우리 병원에 온 건가요?”

“환자라고 보긴 어렵지만, 일부러 온 게 아냐. 원래 평범한 사람이 쓰러져서 구급차로 실려 왔는데 살펴보니까 연결자였을 뿐이다. 막 각성한, 이른바 1세대 연결자란 거다.”

1세대. 그 말을 들은 몇 명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조금 실망한 것 같았다.

마치 연예인이 왔다고 들어 구경 갔는데 얼굴도 모르고 지명도도 없는 밑바닥 연예인이 온 걸 본 것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그걸 눈치 챈 이민이 피식 웃었다.

“뭐야, 1세대라니까 실망이냐?”

“아니, 그게…….”

미묘한 표정을 했던 몇 명이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1세대라고 해도 미궁에 들어갈 자격을 갖춘 사람이야. 그것만으로도 미래의 너희보다는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 확실히 ‘1인 유전’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정신 나간 수입을 올리는 인간들처럼 되지는 못 하겠지만 네 녀석들이 실망해할 정도로 만만한 사람도 아냐. 그리고 저 사람이 설혹 진짜 유능한 2세대, 3세대라고 치자. 니들과는 상관없는 사람이잖냐. 뭘 실망하고 그래.”

이민의 질책성 발언에 실망한 표정을 지었던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이민도 더 이상 뭐라 할 생각은 없는지 말을 이었다.

“너희들 중 나중에 얼마나 연결자들과 관련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 같은 특이 케이스를 관찰하는 건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이제 막 각성한 연결자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실제로 볼 수 있는 케이스니까. 운 좋게도 이 사람의 담당은 내가 됐다. 너희들은 앞으로 나 따라다니면서 배워.”

“네!”

인턴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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