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닥터 프랑켄슈타인-223화 (223/230)

닥터 프랑켄슈타인 223화

22. Trickery(3)

지하 감옥.

홀로 어둠에 숨어 무릎을 모으고 있는 무스타파가 하나 남은 눈가를 떤다.

‘내 목을 딴다고 했다.’

상대는 보잘것없는 의사 나부랭이. 아무리 운동을 많이 했다고 하여도 평생 전쟁터에서 굴러먹은 자신을 이길 순 없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꼴을 보라. 눈 하나는 뽑혔고, 발 한쪽은 완전히 뒤틀렸다. 치료를 받는다 해도 평생 제대로 걸을 수 없을 것이다.

열 발가락, 열 손가락의 손톱이 다 빠져 주먹을 쥐려 하기만 해도 지옥 같은 고통이 찾아온다. 이런 몸으로 그를 이겨낼 수 있을까?

죽고 싶다고 했다.

이제 자신이 바라는 영웅적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고, 이런 인생 더 이상 살아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고 차라리 죽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말을 하는 것과 막상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는 것에는 큰 괴리가 있다.

건우가 자신을 죽이겠다고 공언한 순간. 그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자신이 전쟁터에서 마주했던 살인범들의 희번덕거리는 눈빛이었다면 차라리 의연하게 마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건우의 눈빛은 달랐다.

초점 잃은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무스타파.

“정체를 알 수 없는 푸른빛이 왼쪽 눈에 일렁거렸다.”

사람은 누구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본능적 공포가 있다. 전쟁터에서 평생 살아오며 익숙하게 보아왔던 광기에 찬 눈빛이 아닌, 신비한 푸른빛이 일렁이는 그의 눈빛은 자신에게 공포가 되어 돌아온다.

적막한 감옥 속에 쪼그리고 앉은 무스타파의 뇌리로 건우의 말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내가 직접 네 모가지를 따주마. 카터의 분신과도 같은 메스로. 의사의 복수가 어떤 것인지 두 눈 똑똑히 뜨고 봐. 어느 날 잠에서 깨면 넌 수술대 위에 누워 있을 거야. 그리고 나 같은 의사들이 널 둘러싸고 있겠지. 넌 반항할 수 없어. 몸부림을 치려 해도 그러지 못해. 왜냐하면 넌 전신마취를 당한 상태일 테니까.’

건우가 메스를 잡는 모양을 흉내 낸 손으로 자신의 목을 쓱 긋는다.

‘그리고 난 네 놈의 목을 그을 거야.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겠지. 내 주변의 의사들도 아무도 날 말리지 않을 거야. 왜? 네가 죽인 카터는 그들 모두의 존경을 받던 거인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널 도와주지 않을 거야.’

무스타파가 몸을 부르르 떤다. 하나 남은 눈알을 굴리며 주변을 감시하는 그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중얼거린다.

‘자면 안 돼. 잠이 들면 그놈이 날 데리러 온다.’

모건우는 의사다. 어쩌면 의식이 온전한 상태로 전신마취를 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온몸이 마취된 상태로 꼼짝도 못 하고 목이 잘리는 경험만은 하고 싶지 않다. 죽어도 고통 없이 곱게 죽고 싶다.

자신이 다른 이에게 어떤 죽음을 선사했는진 생각지 못한 무스타파의 불안함이 깊어지는 지하 감옥이다.

한편, 건우의 발언은 금방 아델의 귀에 들어갔다.

감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마침 감옥 경비를 서던 인원 중 영어 소통이 가능한 자가 있었고, 그가 우연히 건우의 발언을 듣고 보고한 것이다.

집무실 책상에 앉아 팔짱을 끼고 보고를 듣고 있던 아델이 이빨로 입 안쪽 살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닥터 모가 무스타파를 죽이겠다고 했다?”

“목을 딴다고 했습니다.”

아델이 턱을 괴고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튕긴다.

“음, 목을 딴다.”

“예.”

아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스타파가 건우의 친구를 죽였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를 죽였다고 자신이 살인마가 된다? 그건 야쿠자 영화에나 나오는 의리를 가장한 살인이다. 건우 같은 현실적인 사람에게 어울리는 선택이 아니다.

또한 그는 의사다. 자신이 본 어떤 의사보다 실력이 있는 의사다. 사령관을 비롯한 기지의 모든 이가 건우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 모두 건우가 얼마나 대단한 의사인지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 시점에 갑자기 친구의 복수를 하겠다?

“말이 안 되는데.”

아델이 중얼거리며 회전의자를 빙글 돌려 벽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친구를 죽였다. 그래서 복수를 한다. 자, 그럼 어떤 친구냐가 문젠데.”

아델이 익숙하게 머릿속 정보를 조합한다.

건우는 폭격에 휩쓸려 큰 부상을 당한 채 나머지 부상자들과 함께 반정부군 진영에 끌려갔다.

그 와중에 의식불명의 의사와 자원봉사자가 사망하고, 자신을 치료한 의사와 둘만 남았다.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아델이 다시 손가락을 비빈다.

“그 친구라는 사람은 폭격 때 죽었을까?”

아니다. 폭격은 건물을 목표로 1차 타격을 한 뒤 무차별 난사를 하는 공격 방식으로 누가 누굴 쐈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건우는 무스타파가 친구를 죽인 장면을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건우는 귀환 후 함께 끌려갔던 다른 의사들이 전원 사망했다고 했다.

아델이 인상을 찡그렸다.

“젠장, 바보 같긴.”

스스로를 탓하는 아델. 생각을 정리한 그가 보고를 하러 온 군인을 힐끔 본 후 말했다.

“보고 잘 들었다. 정보부 소속이 아님에도 내게 보고해 주러 와서 고맙군. 보상은 적절히 하겠다.”

보고하러 온 군인의 얼굴이 환해지며 경례를 한다.

“아닙니다! 국가를 위해 충성할 뿐입니다!”

아델이 실소를 지었다. 국가를 위하는 군인이었다면 사령관에게 달려갔어야지 자신에게 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돈 밝히는 썩은 군인이 많기에 정보부가 돌아간다.

아델이 고개를 끄덕여 주며 쪽지를 준다.

“여기 계좌번호를 써서 밖에 직원에게 주고 가.”

“감사합니다!”

군인이 절제된 자세로 밖으로 나가자, 홀로 남은 아델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간다. 밖을 물끄러미 보는 아델이 손톱을 깨물며 말했다.

“무스타파가 죽인 건 세계적인 의사, 카터다. 이 사실을 사령관이 알면 그는 당장 총살당하게 될 거야.”

하지만 무스타파는 아직 죽어선 안 된다.

그가 준 거짓 정보 중에 참 정보가 섞여 있었다. 그의 머릿속을 다 헤집어서라도 반정부군의 정보를 더 캐내야 된다. 나중엔 죽이든 살리든 상관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닥터 모. 어쩔 생각인 겁니까? 정말 살인을 할 생각입니까?”

* * *

며칠 후 지하 감옥.

자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던 무스타파가 눈을 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벽을 등지고 쪼그리고 앉아 엄습하는 수마를 애써 물리치고 있었던 기억이 마지막인데 지금 자신은 누워 있다. 그것도 온몸이 묶여 있는 채.

바로 그때 자신의 얼굴에 여덟 개의 동그란 조명이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드리워지는 것이 보인다.

“헉!”

이제야 정신이 번쩍 뜬 무스타파가 몸부림을 치자, 바로 옆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만있어, 이 새끼야.”

멈칫한 무스타파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마스크를 쓴 건우가 무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 엄청난 덩치를 가진 의사를 비롯한 몇 명의 의사가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너, 너……!”

이렇게 빠르게 움직인다고? 적어도 며칠은 애를 바싹 태울 줄 알았다.

못 이기는 척하며 정보 몇 개를 내어놓는 조건을 제시한다면 어쩌면 아델이 이 녀석을 막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움직인다고?

그때 덩치 큰 의사가 건우에게 뭔가를 전해주는 것이 보인다.

하나 남은 눈 때문에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무엇을 전해주는지 확인한 무스타파의 눈이 커진다.

건우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무척이나 긴 바늘이었기 때문이다. 절대 주삿바늘이 아니다. 주사는 저렇게 길지 않다.

저런 걸로 목을 찔린다면, 그것도 인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의사가 찌른다면 즉시 황천길로 가는 거다.

마구 몸부림을 치는 무스타파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너 이 새끼들! 이거 놔! 이거 당장 풀어!”

바늘을 든 건우가 귀를 후비며 짜증 난 얼굴로 말했다.

“하, 더럽게 시끄럽네 그 새끼. 사무엘 이 새끼 입 좀 막아줘요.”

덩치 큰 의사가 거즈를 가져와 솥뚜껑만 한 손으로 턱을 붙잡고 강제로 거즈를 쑤셔 넣는다.

“읍! 읍, 읍!”

거즈도 모자라 그 위로 테이프까지 발라 버리는 사무엘.

“미션 완료.”

절망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무스타파. 건우와 이 덩치 큰 녀석은 미쳤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아닐 것이다.

‘너희들은 의사잖아! 나는 지금 전투 능력을 상실한 일반인이라고! 그런데 이런 비인도적인 대우를 하며 처형한다고? 이건 처형이 아니야! 살인 행위라고! 너희들이 그러고도 의사야?’

눈을 부라리며 다른 의사들을 보았지만, 그들은 멀찍하게 떨어져 모니터를 바라보며 롤러 같은 것에 젤을 잔뜩 바르고 있다.

자신의 구원 요청에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 의사들을 향한 무스타파의 눈빛이 간절하게 변한다.

‘제발! 제발 살려줘! 이 미친놈을 내 옆에서 떨어뜨려 줘! 아델, 아델 그 새낄 불러줘! 다 말한다고, 내가 다 말한다고 한마디만 전해줘!’

하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반응한 건 건우 쪽이다.

뚫어지게 자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던 건우가 거칠게 테이프를 뜯어낸 뒤 거즈를 뺀다.

“마지막 할 말은?”

“씨, 씨X, 이 미친 새끼!”

“그게 유언인가?”

건우의 무심한 눈빛. 무스타파는 저런 눈빛을 잘 안다.

‘널 죽여도 내겐 아무 죄책감도, 아니, 일말의 감정도 남지 않아. 널 죽이는 건 길가에 개미 새끼를 죽이는 일과 마찬가지니까.’

자신이 정부군 인사들을 죽일 때 보였던 눈빛. 누구보다 잘 아는 눈빛을 마주한 무스타파가 몸을 부르르 떤다.

가만히 그를 내려 보고 있던 건우가 다시 거즈를 들고 다가온다.

“유언 잘 들었다.”

“자, 잠깐!”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

“아, 아델! 아델을 불러줘!”

건우가 거즈를 든 채 물었다.

“왜, 그자가 오면 널 살려줄 것 같나?”

“…….”

무스타파가 머리를 빠르게 굴린다. 이곳은 병원 건물의 수술실이다. 자신을 이곳으로 옮기려면 지하 감옥에서 빼와야 한다.

하지만 지하 감옥에서 죄수를 꺼낼 권한이 있는 건 아델뿐이다. 사령관이 반정부군 인사들을 모조리 총살시키려 한다는 걸 아는 정부가 아델에게만 권한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건 이 모든 일을 아델이 이미 알고 있고, 묵인하고 있다는 뜻이다.

“제, 젠장…….”

욕지거리를 내뱉은 무스타파가 다시 거즈를 들고 움직이려는 건우를 보고 급하게 말했다.

“정보! 정보를 주겠다!”

건우가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 물었다.

“무슨 정보?”

“…….”

무스타파가 잠깐 침을 삼킨다. 어디까지 말해야 될지 계산을 하는 모양새다. 그러자 건우가 다시 움직인다. 무스타파가 대경하며 외쳤다.

“아, 알레포 북동쪽 74㎞ 지점!”

건우의 움직임이 멈춘다. 거즈를 만지작거리는 건우가 무심한 목소리로 말한다.

“계속해.”

“이달 24일 거기서부터 반격이 시작될 거다!”

“24일이면 모레인데? 공격 규모는?”

“총공세다.”

건우가 슬쩍 뒤를 돌아본다. 건우의 뒤로 검은 유리창이 보이는 걸 본 무스타파가 몸부림을 친다.

“아델! 너 거기서 다 듣고 있구나! 난 정보를 줬다! 이것 말고 정보는 잔뜩 있다! 날 살려주면 정보를 더 주겠다! 내가 약속한다, 아델!”

바로 그때 건우가 자신을 돌아보는 동시에 옆에 있던 사무엘이 링거에 뭔가를 주사하는 것이 보인다.

“그, 그게 도대체 뭐야!”

사무엘이 자신을 내려 보며 씩 웃는다.

“하나, 둘, 셋…….”

갑자기 숫자는 왜 세는 거지? 그때 자신의 의식이 빠르게 흐려지는 것을 느낀 아델이 소리친다.

“안 돼!!!”

그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건우가 손에 들고 있던 긴 바늘로 무스타파의 목을 찌른다.

부릅뜬 눈으로 건우를 노려보는 무스타파의 귀로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걱정 마. 오늘은 안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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