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221화
22. Trickery(1)
카터의 돌무덤.
가져온 맥주 두 캔을 부어주고 간단한 안주를 무덤 앞에 놓아준 사무엘이 바위 하나를 밑에 깔고 자리를 잡는다.
“저 왔습니다.”
사무엘은 시간만 나면 이 장소를 찾는다. 그는 미국인이며 미국에 가족과 직장이 있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친구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었다. 이곳에 머무를 때 최대한 많이 찾아오는 것이 우정의 표현 방법인 것이다.
사무엘이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건우를 힐끔 본 후 돌무더기 위에 돌 하나를 더 쌓아주며 중얼거린다.
“그거 알아요? 지금 여기 당신을 죽인 원수가 잡혀와 있는 걸.”
사무엘이 슬픈 미소를 짓는다.
“그때와는 달라요. 당신이 살아 있을 때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지만 지금은 한쪽 눈이 뽑히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될 만큼 심각한 고문을 당한 상태죠.”
사무엘이 자기 손톱을 매만지며 말했다.
“처음엔 나도 놀랐어요. 모의 말을 듣고 감옥으로 달려가서 멱살이라도 쥐고 ‘왜 내 친구를 죽였나!’라고 따져 묻고 싶어 뛰어 내려갔었죠. 그를 죽이고 싶었냐고요? 응, 그런 것 같아요.”
두어 대 때리면 곰도 죽일 수 있을 것같이 생긴 자신의 거대한 손을 펴보는 사무엘.
“맞아요. 난 그를 죽이고 싶었나 봐요. 재미있죠?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살인 충동을 느꼈단 것이. 그러고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 봅니다.”
사무엘이 슬픈 얼굴로 무덤을 바라본다.
“미안해요, 당신의 복수를 해주고 싶지만 난 그러지 못했어요. 나는 의사이기 전에 사람이니까. 나는 살인자가 아니니까. 그러니 이해해 줘요. 당신이라면 그래 주겠죠?”
가만히 무덤을 바라보던 사무엘이 멀리 떨어져 있는 건우를 바라본다. 흐린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건우 역시 머리가 복잡해 보인다.
“카터. 당신 제자가…… 아, 제자가 맞나요? 둘 사이의 이야긴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당신의 또 다른 친구인 모가 지금 아주 혼란스러운 상태예요. 그는 병자를 이대로 죽이는 것으로 복수를 하려는 모양입니다. 무스타파는 반정부군의 포로로 영광스러운 죽음을 선택한 군인이 아닌 한심한 작전 지휘로 포로가 되어 병사한 바보로 기록될 겁니다.”
사무엘이 무덤을 만져보며 말했다.
“어때요? 속이 좀 시원해요?”
그럴 리가 없다. 사무엘은 카터의 성정을 안다. 그는 설사 자신을 칼로 찌른 자라 하여도 일단 환자라면 살리고 볼 사람이다. 물론 그렇다고 인간적으로 친절하게 대해주진 않을 것이다. 그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의사라는 숙명을 받아들이고 살던 카터는 결코 지금 자신과 건우가 하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사무엘이 슬픈 눈으로 말했다.
“알아요. 제가 틀렸죠?”
무덤은 답이 없다. 사무엘이 돌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도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하지만 말이에요. 나는 모를 말리고 싶지 않아요.”
사무엘이 고개를 숙인다.
“어릴 때 난 정의로운 악당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냥 악당도 되지 못한 것 같군요. 바라는 일이 있지만 양심이라는 허울 좋은 그림자 뒤에 숨어 남이 복수하는 것을 방관하는 비겁한 놈. 그게 지금의 나인가 봅니다.”
사무엘이 흐린 눈으로 눈물을 흘린다.
“나는 말리지 못해요. 모가 고집쟁이여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무스타파가 죽길 바라나 봅니다.”
사무엘이 다시 건우를 돌아보며 중얼거린다.
“그러니까 카터. 당신이 모를 말려줘요.”
말을 하면서도 가능성 없는 말임을 알고 있는 사무엘이 긴 한숨을 쉰다.
* * *
사무엘과 함께 카터의 무덤가에서 한 시간여를 보낸 후 숙소로 돌아온 건우. 사무엘은 오늘 머리가 아프다며 일찍 자겠다고 돌아갔다.
샤워를 한 뒤 침대 대신 창턱에 걸터앉아 밖을 바라보는 건우. 그의 눈빛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악독한 눈빛.
혼란스러운 눈빛.
연민의 눈빛.
원한에 찬 눈빛.
지금 건우 속에 있는 여러 가지 감정이 눈빛으로 대변되어 나타난다. 한참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건우가 중얼거린다.
“어째서 오늘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나요?”
구름 속에서 환하게 웃음 지으며 농을 건넸던 카터. 하지만 오늘은 한 시간이나 되는 시간 동안 그의 환상을 보지 못했다. 왜일까?
카터가 자신의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웃기는 소리다. 이건 스스로의 문제다. 카터의 환상은 처음부터 자신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니까. 건우가 주먹을 꽉 쥔다.
“내가 나 스스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 답이다.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하기 위해 악한 행동을 억지로 자행하고 있는 자신. 건우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든다.
“그래도 난 복수를 할 겁니다, 카터.”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멀리 떨어진 언덕 위에 납작 엎드려 이마에 뚫린 구멍으로 총알이 빠져나오던 카터의 마지막 얼굴, 그 표정. 위대한 의사의 허무한 결말.
그리고 쓰러지는 카터의 뒤로 드러난 무스타파.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애도는커녕 악독한 표정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추격하던 그의 모습들이 떠오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이 모든 악몽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그를 세상에서 지우는 것. 특별히 살인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살인을 하지 않는다. 그저 방관할 뿐이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머릿속에 천사 한 명과 악마 열 명이 말싸움을 벌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고개를 세차게 저어 잡념을 떨쳐 버린 건우가 침대 위에 풀썩 누우며 하루 종일 충전 상태로 둔 핸드폰을 만진다.
일반 병동과 달리 포로수용소의 경우 핸드폰 소지가 불가하기 때문에 숙소에 두고 다니고 있다.
연락이 되지 않으면 엄마가 걱정하실 테니 매일 밤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는데 아직까진 연락이 없다. 무릉도원 병원에서 열심히 노인들을 치료하고 있다고 믿고 계시는 모양이다.
부재중 전화는 없지만 문자는 몇 개 왔다.
혜선 : 교수님, 우리 다 같이 여행 계획 짜고 있어요. 같이 가실 거죠?
중곤 : 교수님, 몇 달 같이 살다 떨어지니 괜히 보고 싶네요. 아, 저 술 안 마셨습니다. 사실은…… 아주 조금 마시긴 했는데 안 취했습니다, 하하.
중곤의 문자를 보고 실소를 짓는 건우. 중곤과 혜선이란 두 제자는 자신을 웃게 하는 녀석들이다. 더 열심히 가르쳐서 좋은 의사가 되도록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다음 문자를 확인하는 건우의 눈에 꼬마들의 문자가 들어온다.
석진 : 스승님! 아프리카에서 돌아오셨어요? 언제 놀러 오실 거예요?
씩 웃는 건우. 뿌리부터 상남자인 석진은 절대 보고 싶다는 소리는 하지 않는 녀석이다.
문자로 다음 주쯤 가로수길 센터로 찾아가겠다는 답변을 보낸 건우가 연희가 보낸 문자를 본다.
연희 : 아싸! 쌤! 나 완전 좋은 소식 있어요!
응? 무슨 좋은 소식일까? 기분이 꿀꿀해 지금은 가급적 좋은 이야기만 듣고 싶었던 건우가 문자를 한다.
건우 : 무슨 소식인데?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침대 옆에 두고 기다리려던 건우는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지기도 전에 울리는 진동에 실소를 지으며 다시 액정으로 눈길을 보낸다. 역시 요즘 애들은 문자 보내는 속도는 끝내준다.
연희 : 야호! 만나서 이야기하면 안 돼요?
건우 : 나 외국이야.
연희 : 응? 아프리카 봉사활동 끝났다고 하던데요. 휴가 중에 또 해외 간 거예요?
건우 : 뭐, 비슷해.
연희 : 이야, 의사들 연봉 세다더니 진짜구나. 나도 해외로 휴가 가고 싶어요!
건우 : 너도 언젠가 그렇게 될 거다. 근데 좋은 소식은 뭐야?
연희 : 아! 자, 기대하시라! 두구두구~~ 짜잔! 나 출판사랑 계약했어요!
건우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좋은 소식이다. 듣기론 그렇게 인기 많은 것 같진 않지만 등단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첫술에 배부르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중요한 인생의 포석이 된다.
건우 : 그래? 잘됐네. 계약 조건은?
연희 : 응, 나 아직 미성년자라 부모님이 대신 계약하셨는데 7:3이래요. 플랫폼 수수료 떼고 나머지 수익에서 7:3이요.
건우 : 네가 7이야?
연희 : 네! 멋지죠!
건우 : 소설 한 편 보는 데 얼만데?
연희 : 100원.
건우 : 플랫폼 수수료는 얼만데?
연희 : 플랫폼마다 다른데 보통 30%고, 50% 받는 곳도 있어요.
건우 : 그럼 30%로 가정하고 70원에 70%를 가져가는 거야?
연희 : 아뇨, 원천징수 3% 떼고.
건우 : 그럼 70원에 67%네. 그럼 대강 편당 45원 조금 넘는 정도구나. 에게, 그게 뭐냐. 공중전화도 못 하겠네.
연희 : 치! 너무해.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봐주면 된다고요! 전업 작가도 얼마나 많은데.
연희는 놀리는 재미가 있다. 초승달 같은 눈으로 웃는 건우가 대충 계산을 때려본다.
마지막에 연희 팬 수가 800명이라고 들었으니 그중 유료 전환이 20%쯤 된다고 치면 160명. 160 곱하기 45는…… 7,200원이네. 별거 아니지만 하루에 7,200원의 수익이라면 연희 과잣값쯤은 나오겠다.
저 나이에 부모 등골 뽑아 먹느라 바쁜 아이들도 많은데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본다는 건 중요한 경험이다.
하물며 연희는 이중 장애가 있다. 자칫 삼중 장애가 될 뻔했지만 자신이 하나는 막아냈으니까.
장애가 있는 아이는 경제활동을 하기 매우 어렵다. 지금 연희가 하는 일들은 부모 입장에서 하루 수익 7,200원짜리 일이 아닌 72억짜리 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연희 어머니가 부디 기뻐하시길 빈다.
건우 : 그래? 대단하네. 그럼 언제 유료 되는 거야?
연희 : 표지 만들고 나서요.
건우 : 표지도 있어?
연희 : 당연하죠, 유료 연재는 표지가 있어요.
건우 : 네가 직접 그려?
연희 : 아뇨, 표지 작가님이 따로 계세요.
건우 : 오, 대단한데? 그럼 표지는 언제 나오는데?
연희 : 한 달쯤 걸린대요.
건우 : 그림 한 장 그리는 데 한 달이나 걸려?
연희 : 자세한 건 저도 모르지만 보통 표지 작가님들은 그것만 하는 게 아니래요. 게임 회사 일러스트 전문가가 부업 개념으로 하는 거라 시간이 좀 걸린다고 들었어요.
건우 : 그렇구나. 내용은 얼마나 진행됐어?
연희 : 이제 거의 막바지예요.
건우 : 응? 유료 연재 시작도 안 했는데?
연희 : 연재 시작한 지 오래됐잖아요. 원래 계획했던 마무리가 있는데 유료 연재한다고 글 질질 끄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원래 생각대로 마무리하려고요.
건우 : 그렇구나. 그래서 닥터 프랑켄슈타인은 어떻게 됐어? 어떤 마무리야?
글에 대해 물어 그런지 연희는 한참이나 뭔가를 쓰고 있다.
잠시 액정을 보며 기다리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핸드폰을 침대에 올려두고 냉장고로 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돌아온 건우. 하지만 연희는 아직도 뭔가를 쓰고 있다. 자신의 글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예상이 간다.
하지만 빙긋 웃으며 액정을 보고 있던 건우의 눈에 연희가 보낸 장문의 문자가 보이는 순간 그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진다.
연희 : 주인공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왔던 의사란 거 기억하죠? 그는 여러 나라를 돌며 아픈 사람을 고쳐주다 우연히 전쟁터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원수를 만나게 돼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죠. 왜? 그도 사람이니까요. 사람이라면 자신의 원수가 잘되길 바라지 못하잖아요. 이 감정에 대해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하다 원작 소설인 닥터 프랑켄슈타인을 보게 됐어요. 거기서 괴물은 자신을 만든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피의 복수를 해요. 박사의 주변 인물까지 전부 죽이고 사라지죠. 어쩌면 독자들은 시원한 복수로 결말을 맞길 바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 그러지 않을 거예요.
연희의 문자 말미에 쓰여 있는 단 한마디. 그것이 건우의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나는 내 주인공을 괴물로 남게 하지 않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