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닥터 프랑켄슈타인-213화 (213/230)

닥터 프랑켄슈타인 213화

21. 시리아의 하늘(5)

뚜벅뚜벅 무심한 듯 걷고 있지만 지금 건우는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

반복되는 지겨운 악몽에서 보았던 숙소. 계단을 걸어 올라 한 층을 올라갈 때마다 복도 끝을 지키고 있던 반정부군 군인들이 총부터 들이밀었었다.

얼굴을 확인하기 전까지 총구가 머리를 향해 조준되는 경험은 결코 좋지 않았다. 몇 개월간 반복되는 경험이었음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다 습관적으로 2층을 바라보는 건우. 항상 의자에 앉아 있다 발소리를 듣고 총을 겨누었던 반정부군의 자리가 비어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사실이 건우를 안심시킨다.

안도의 한숨을 쉰 건우가 3층으로 올라간 뒤 배정된 숙소 문을 열었다.

자신이 있던 2층의 숙소와 구조가 다르다. 넓은 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2층처럼 좁지도 않다. 잠시 머물기엔 충분한 크기의 방이다.

가방을 열어 가운과 청진기를 꺼내 다시 숙소를 나선 건우.

병원까지 가는 길에 습관적으로 앞만 보고 걷다 문득 멈춘다.

‘이젠 이렇게 걸을 필요 없잖아.’

사람의 습관이란 것이 이렇게 무섭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인데도 미련하게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보상심리일까? 일부러 더 두리번거리며 걷는 건우. 하지만 그렇게 해봐야 별건 없다. 여전히 같은 위치에 있는 건물들. 경비초소의 위치도 반정부군 점령 시절과 같다.

병원 건물의 앞에 원근감을 무시한 거대한 남자가 손을 드는 것이 보인다. 사무엘이다.

“생각보다 빨리 재회하는군요?”

씩 웃는 사무엘. 하지만 건우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카터의 무덤 위치는 알아냈습니까?”

사무엘이 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

“어딥니까?”

“멀지 않습니다, 여기서 1㎞ 정도 거립니다. 저쪽 언덕 위고요.”

사무엘이 가리키는 방향을 올려다보는 건우가 눈을 파르르 떤다.

그가 가리키는 곳. 자신이 탈출할 때 납작 엎드려 카터의 죽음을 목격했던 병원 건물 뒤의 언덕이다. 하필 왜 저곳이었을까? 탈출 경로를 알아내지 못했을 테니 전적으로 우연일 테지만.

사무엘이 시간을 확인한 후 말했다.

“일과 종료 후에 가 볼 생각입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당연히 갈 것이다. 카터는 당신에겐 친구이지만 내겐 생명의 은인이니까. 또한 나 대신 죽었으니까.

“예, 갈 겁니다.”

* * *

몇 시간 후 병원 뒤 언덕.

주먹만 한 돌멩이들이 쌓여져 있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줄로 묶어 조잡하게 만든 십자가가 서 있는 언덕.

누구의 무덤인지 새겨지지도 않은 작은 무덤을 물끄러미 바라본 사무엘이 천천히 무릎을 꿇는다. 떨어져 나온 돌멩이를 주워 무덤 위에 가지런히 놓은 사무엘이 중얼거린다.

“저 왔습니다.”

무덤은 답이 없다. 금방 하얗게 센 머리를 휘날리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줄 것만 같은 친구의 환상을 보곤 이내 눈물을 훔치는 사무엘. 무릎을 꿇은 채 멍하게 무덤을 바라보는 그가 말했다.

“셰익스피어가 그랬죠, 의술로 생명이 연장될 수 있을지 모르나 죽음은 의사에게도 엄습한다고. 내가 아는 최고의 의사인 당신도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했군요.”

사무엘이 손가락으로 무덤 옆의 흙에 글을 새긴다. 그가 새겨둔 글이 저물어가고 있는 태양 덕에 그림자 속으로 빨려가고 있다.

‘이별의 시간이 왔다. 우린 자기 길을 간다. 너는 죽고 나는 산다. 어느 것이 더 좋은가는 신만이 안다. 세계적인 의사 Dr. Carter Mason Reid 여기에 잠들다.’

약 30분간 친구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 사무엘이 한참 만에 고개를 돌렸다. 건우와 함께 왔었다는 사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건우 역시 자신처럼 죽음에 대한 애도를 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던 사무엘의 눈이 커졌다.

“모? 지금 뭘 하는 겁니까?”

그의 눈에 작은 테이블을 무덤 앞에 두고 그 위에 하얀 종이가 깔려 있는 것이 보인다.

종이 위에 일회용 그릇들이 나열해 있고, 그 위에 음식들이 놓여 있다. 처음 보는 크고 길쭉한 술병도 보인다.

자그마하고 긴 나무 조각을 들어 펜으로 종이에 뭔가를 정성스럽게 써 붙이는 건우를 본 사무엘이 몸을 일으켜 그의 뒤로 온다.

나무 조각에 써 붙인 글을 읽고 싶었지만 한자로 쓰여진 것이라 읽기를 포기한 사무엘이 물었다.

“뭐라고 쓴 겁니까?”

건우가 향에 불을 피우며 말했다.

“현신의신위(顯神醫神位)라고 쓴 겁니다.”

“무슨 뜻입니까?”

한자의 뜻을 영어로 전달하긴 어렵다.

“현(顯)은 존경의 의미를 담는 말이고, 신의(神醫)는 신이 내린 의사란 뜻입니다. 신위(神位)는 여기 모신다는 뜻이고요.”

사무엘이 슬픈 얼굴로 미소를 짓는다.

“신이 내린 의사라. 내 친구가 기뻐하겠군요.”

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경건한 표정으로 절을 올린다. 두 번 절을 하고 한 번 반절을 하는 걸 지켜본 사무엘이 물었다.

“동양식의 장례입니까?”

건우가 술잔에 정종을 따라 빙글빙글 돌린 후 무덤에 뿌리고 말했다.

“장례가 아니라 제삽니다. 동아시아에서는 국가 간에 방법만 다르고 비슷한 행위를 하고요.”

사무엘은 동양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식을 따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무덤 위에 두려고 꺾어 온 자신의 들꽃에 비해 너무나도 정성스러워 보이는 건우의 제사를 지켜보던 그는 엉거주춤 어색한 포즈로 절을 한다.

난생처음 해보는 것이라 절하는 방법도 다 틀렸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건우와 비슷하게 해보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향을 피우고 술을 부어준 후에 무덤의 양옆에 쪼그리고 앉아 하늘을 보는 두 사람.

가만히 석양을 보던 사무엘이 입을 연다.

“고맙습니다, 모.”

“뭐가요?”

“내 친구를 애도해 주어서.”

“그는 내게 생명의 은인입니다.”

“하하, 그랬죠.”

단지 이곳을 거닐고 있는 것만으로 과거의 기억이 살아나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이곳으로 오겠다고 결정한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생명의 은인에게 한잔 술을 올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카터, 천국에선 편한가요?’

석양의 진한 빛을 받아 붉은색으로 물든 구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카터가 답을 하는 것 같다.

‘하나도 안 편해, 모! 여긴 왜 환자가 없는 거야?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환청처럼 들려오는 카터의 답에 실소를 짓는 건우.

‘여기서 평생 환자를 치료했잖아요. 이젠 그만 쉬어요.’

‘죽음은 늙어서 갚아야 할 오랜 빚과도 같다던데, 빚을 갚을 환자가 없으니 심심하군. 재활은 잘되고 있나?’

죽어서도 환자 걱정을 하는 카터의 목소리. 건우가 자기 손과 눈, 심장을 한 번씩 만지며 하늘을 본다.

‘당신이 제대로 수술해 줘서 전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하하!’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우. 직접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시리아에서의 일이 기억났다. 지뢰를 밟아 온몸이 터져 실려온 아이가 결국 수술을 해보기도 전에 죽었다.

눈앞에서 어린 생명이 너무나도 참혹한 몰골로 죽어가는 것을 본 건우는 무척 충격을 받았었다.

한국에서도 의사로 사는 이상 죽음과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었지만 병마와 싸우다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너무나도 어린 아이가 저토록 만신창이가 되어 죽어가는 건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멍하게 이미 숨을 거둔 아이의 시신을 내려다보는 자신의 등을 툭 친 카터가 말했다.

‘죽은 자를 위해 울지 마. 아이는 휴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야. 휴식을 방해하지 말고 살릴 수 있는 자를 살려. 그게 의사가 할 일이야.’

건우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이미 숨을 거둔 아이 곁에서 떠나 또 다른 위급 환자를 살피고 있었고, 결국 그 환자를 살려냈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린 건우가 가만히 구름을 바라본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카터의 표정 속에 네가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머물러 있다.

‘슬퍼하지 마, 나는 쉬고 있을 뿐이야.’

천천히 눈을 감은 건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슬퍼하지 않되,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세계 최고의 의사였던 당신을.’

건우가 제사 음식을 하나 집어 입에 넣고 정종을 마시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무엘.

“그…… 죽은 자에게 바치는 음식을 먹어도 되는 겁니까?”

건우가 입을 우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원래 이렇게 하는 겁니다.”

죽은 자에게 바쳤던 음식을 산 사람이 먹는다는 것이 께름칙한 모양인지 사무엘은 머뭇거린다.

“음복(飮福)이란 겁니다. 조상이 내리는 복을 받는다는 뜻이죠. 제물에 정성을 담아 조상에게 드리고, 조상은 이를 흠향한 다음, 다시 제물에 복을 담아 후손들에게 돌려주는 과정이니, 드세요.”

“복을 다시 돌려준다고요? 하지만 우린 카터의 후손들이 아닌데.”

건우가 정종을 들며 말했다.

“그래서, 술 안 마실 겁니까?”

술이란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무엘은 결국 술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정종이란 술을 처음 마셔보는 그는 안줏거리까지 풍부하니 점차 기분 좋은 얼굴이 된다.

술 한 병을 다 비우고 살짝 취기가 돈 얼굴로 무덤을 힐끔 보는 사무엘이 웃었다.

“동양의 문화는 정말 좋군요. 죽은 이와 음식과 술을 나눠 먹는 문화라니. 나도 앞으론 이렇게 해야겠습니다.”

건우는 말없이 이젠 어두컴컴해진 하늘을 바라보다 제사상을 치운다. 건우를 도와 상을 정리한 사무엘이 숙소 방향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이야긴 들었습니다, 반정부군 포로에 접근금지 명령을 받으셨다고요.”

하,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괜찮다. 그리웠던 카터, 미안했던 그 사람에게 술 한잔을 올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니까.

“예, 그렇게 됐습니다.”

“음, 사실 예상은 했습니다. 저와 달리 당신은 그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이 있었으니까요. 그 정보부 직원…… 이름이 아델이었나요?”

“예.”

“이미 그가 하담과 당신이 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조치도 그래서 내려진 걸지도 모르겠군요.”

시리아 정보부가 이렇게 일을 잘했던가? 그런 나라가 왜 맨날 내전이나 벌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담은 좀 어떻습니까?”

“subscapular cutting(견갑골 아래 부위 절단)입니다. 발견 당시 심각한 다발성 출혈도 있었고요. 하지만 현장에서 즉시 angiorrhaphy(혈관봉합)을 진행해 생명엔 문제가 없습니다.”

“팔은 못 찾았습니까?”

사무엘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폭발 잔해 밑에서 찾아내긴 했는데 이미 골든 타임을 놓쳤습니다. 팔을 되살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양팔을 잃은 군인. 만약 다른 국가의 군인이었다면 정부에서 주는 연금이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퇴역 군인이 되었겠지만 그는 반정부군이다. 아마 평생 감옥에 있게 되겠지.

잘 풀린다면 반정부군 전술에 대한 정보를 흘리고 보상을 받는 정도일 것이다.

생각에 잠긴 건우의 옆모습을 힐끔거리던 사무엘이 말했다.

“그런데 모.”

“예.”

“그게…….”

뭔가 어려운 말을 해야 하는 모양이다. 앞을 보며 걷던 건우가 사무엘을 돌아보며 물었다.

“뭔데요?”

“무스타파 말입니다.”

“…….”

“어쩔 겁니까?”

뭘 어쩌긴 어째, 만날 수가 있어야 죽이든 살리든 하지.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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