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211화
21. 시리아의 하늘(3)
언제나 남을 자신의 아래로 깔아보는 듯한 인상. 잠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사람의 화를 돋우었던 시리아 반정부군의 지휘관.
그의 마지막 모습은 흉악한 인상으로 자신의 위치를 대라며 카터의 뒤통수에 총구를 대고 소리치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꿈에서도 다시 보기 싫었던 장면.
권총으로 카터의 머리를 쏘아버린 후, 자신이 방금 죽인 것이 인간이 아닌 개미라도 되는 듯 죽음에 대한 잠시간의 애도도 없이 총을 허리춤에 차며 소리를 지르던 무스타파.
‘포로가 탈출했다! 가용 가능한 병력 전부 끌고 와! 경비초소 새끼들 다 끌고 내려와서 총살시켜! 쓸모없는 짐승 새끼들!!’
1 대 9 가르마에 아랍계의 검붉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던 남자. 그의 이름은 무스타파 아플라크(Mustafa aflack)였다.
하담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이름을 들었던 건우가 바닥에 떨어진 전화기를 멍한 눈으로 본다. 밤이라 주변이 조용해 그런지 바닥에 떨어진 전화기에서 울리는 하담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모? 전화가 끊어진 건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건우. 잘게 떨리는 손을 물끄러미 보다 주먹을 꽉 쥐어본다.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공포스러운 이름이었지만 지금 상황은 다르다. 그는 정부군의 포로이며 그의 손에는 더 이상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허리를 숙여 전화를 붙잡은 건우가 다시 통화를 이어간다.
“미안합니다, 전화기를 떨어뜨려서.”
-음.
“하담,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어요.”
-그러지.
“조금 전에 옆에 있던 의사가 무스타파에 대해 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가 거기 있다는 것도 들었겠죠.”
-옆에 있으니까.
“거기 있는 의사들은 모두 카터를 존경하던 사람들입니다. 만약 이 일이 소문 나면 그는 병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가 죽길 바란다. 내가 존경하는 이를 죽였으니까.
“하지만 하담. 그를 죽인 의사는 살인자가 되는 겁니다.”
-……일리가 있군.
“그러니 절대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마세요.”
-알아들었다. 하지만 이 의사는 어쩌지?
“그쪽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바꿔주세요.”
잠시 후 사무엘이 다시 전화를 받는다. 카터의 무덤 위치를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한껏 고양된 말투다.
-모, 여기에 온 보람이 있군요. 첫날 바로 찾을 수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기쁩니다.
“…….”
친구의 시신이 짐승 먹이가 되지 않게 해준 것만으로 하담은 그에게 은인이다. 아마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챙겨줄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사무엘.”
-네.
“방금 옆에서 다 들었죠?”
-…….
“솔직하게 묻겠습니다. 당신 마음속에 살인 충동이 없다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
-…….
“우리는 의사이기 전에 인간입니다.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세요.”
-하, 솔직히 충동이 있긴 했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당신은 노련한 의사입니다. 아마 잠시간의 충동이었겠죠. 하지만 지금 그곳엔 젊은 의사들도 있습니다. 의사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살인자가 되면 누구도 알아챌 수 없게 살해하는 것도 가능한 사람들입니다.”
-음.
“그러니 절대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세요.”
-이해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그냥 그대로 두고 보아야 하겠습니까?
“…….”
입술을 깨문 건우가 눈을 질끈 감는다.
“MSF 측을 통해 시리아 정부에 공문을 발송해 주세요.”
갑작스러운 말에 의문스러운 답이 돌아온다.
-갑자기 공문이라니요?
주먹을 꽉 쥔 건우가 슬쩍 닫힌 문을 바라본다. 저 밖에 있는 엄마가 이 소식을 들으면 기절할 것이다. 목소리를 낮춘 건우가 속삭인다.
“제가 시리아로 가겠습니다. MSF 측 인사로 등록해 주셔야 입국이 가능하니 공문을 보내달란 겁니다.”
-…….
그토록 참혹한 일을 겪은 시리아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의사. 건우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는 사무엘이었지만 방금 하담의 말을 듣고 나니 만약 자신이었더라도 달려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는 덩치와 다르게 매우 신중한 사람이다.
-공문 발송은 어렵지 않습니다. 당신은 신원이 보증된 사람이니. 하지만 그전에 나는 당신에게 약속받을 것이 있습니다.
무슨 약속인지 뻔하다. 살인자가 되지 말라는 뜻이다. 남의 손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기 위해 오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은 매우 합리적 의심이니까.
“사무엘.”
-네.
“나는 의사입니다.”
-…….
“내가 이 손으로 사람을 살리지 않고, 도리어 죽인다면 하늘에서 슬퍼할 사람이 많습니다. 나는 결코 살인자가 되지 않을 겁니다.”
잠깐 침묵한 사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즉시 공문을 요청하겠습니다. 두 시간 후엔 처리되도록 해두죠.
“부탁합니다.”
-공항으로 차를 보낼 테니 출발할 때 도착 시간과 항공편을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전화를 끊는 것과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린 건우가 휘청거리며 침대에 털썩 주저앉는다.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러뜨린 건우가 초점 없는 눈동자로 중얼거린다.
“무스타파…… 카터를 죽인 원수가 살아 있다.”
그는 현재 포로의 신분이다. 아무리 지휘관급이라고 해도 자신이 무스타파가 MSF 소속 의사를 처형했다는 말을 정부군에 전하는 즉시 그는 처형될 것이다.
손대지 않고 코 풀 수 있는 방법. 손을 더럽히지 않고 복수할 방법이 있다. 사무엘과의 약속은 지킬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살인을 저지르진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 자리에 반드시 자신이 서 있을 것이다. 이 두 눈으로 그의 죽음을 지켜볼 것이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방의 어딘가를 노려보던 건우가 아직 풀지 않은 짐 가방을 그대로 들고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온다.
통화를 하는 동안 시간이 흘러 어느새 12시에 가까워지고 있는 시간.
엄마는 아침부터 자신에게 해줄 저녁을 준비하시느라 무척 피곤하실 테니 주무시겠지. 엄마는 모르는 편이 낫다. 나중에 다 설명하면 된다.
발소리를 죽이고, 가방을 끄는 소리가 나지 않게 무거운 가방을 안아 들고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고 다시 한번 집을 바라보는 순간 건우는 얼음처럼 굳을 수밖에 없었다.
안방 문이 열려 있고 팔짱을 낀 엄마가 문지방에 기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건우가 침을 꿀꺽 삼킨다.
“어, 엄마.”
다 들었던 걸까? 방에서 통화를 했으니 들렸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통화가 영어로 진행되어 엄마는 못 알아들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도둑처럼 여행 가방을 들고 멈춰 있는 아들을 바라보곤 실소를 지은 엄마가 걸어 나와 건우 앞에 선다.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아들을 위아래로 보던 엄마가 말했다.
“또 무릉도원 가는 거야?”
“……어?”
“말년 할머니랑 최씨 할아버지 노래를 부르잖아. 세 달이나 못 보니 그렇게 보고 싶었어? 밤 열두 시에 내려갈 만큼?”
“…….”
엄마가 한숨을 쉬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아이고,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어. 그저 환자만 졸졸 따라다니고. 이젠 내 자식이 아니네.”
건우가 당황하며 가방을 내려놓고 엄마 손을 잡는다.
“아냐, 엄마. 나 엄마 아들 맞아.”
엄마는 삐친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으며 건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내 아들이 아니고, 모두의 의사잖아 이젠.”
“…….”
“엄마는 그게 자랑스러워.”
미안해, 엄마. 난 의사로서의 일을 하러 가는 게 아냐. 하지만 지금은 절대 말할 수 없어. 엄마가 걱정할 테니까.
엄마가 건우 등을 두들겨 주며 말했다.
“밤 운전 조심하고, 얼마나 있다 올 거야?”
“어…… 휴가 때 내려가 있으려고.”
“9일 내내?”
“아마 그렇지 않을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더 있게 될 수도 있고.”
“음, 오랜만에 휴가라서 같이 놀러 갈까 했는데 안 되겠네?”
“미안, 엄마. 다음에 꼭 같이 가자.”
엄마가 눈을 흘기는 모습을 본 건우가 얼른 말했다.
“다음 휴가 때 해외로 가자. 내가 쏠게.”
“해외 어디?”
“하와이 어때?”
“싫어, 거기 비싸.”
“나 돈 많이 벌잖아.”
엄마가 건우 등을 후려치며 말했다.
“잘 벌 때 아껴야 잘 살지, 이놈아. 동남아 정도면 충분해. 그러니 태국 정도로 용서해 줄게.”
“…….”
“다녀와. 엄만 9일 동안 태국 여행 코스나 짜둘 테니까.”
“응…….”
미안, 엄마. 거짓말을 해서. 이해해 줄 거지? 정말 미안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뒷걸음질 쳐서 나오는 건우.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문 앞에서 배웅을 하고 있는 엄마 얼굴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 시리아는 안전하다.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 그곳은 지옥이다. 거기 갔던 아들이 어떤 꼴로 돌아왔는지 분명히 기억하고 계실 테니까. 그러니 지금은 말할 수 없다. 아무리 안전해도 말할 수 없다.
닫힌 문 앞에서 가방을 들고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건우가 중얼거린다.
“미안해, 엄마. 다녀와서…… 다 설명할게.”
* * *
다음 날, 시리아 다마스쿠스 국제공항(Damascus International Airport).
MSF의 국제 공문이 가진 힘은 대단했다. 시리아는 내전 지역이라 입국 절차가 까다롭지만, 건우의 여권을 보고 국제 공문에 표기된 신분이 확인되자 일사천리로 입국 절차가 완료되었다.
입, 출국을 하는 이들이 비교적 적은 시리아였기에 인천공항에 비해 매우 한산한 입국장 문이 열리자, 커다랗게 ‘MSF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닥터 모!’라고 쓴 피켓을 든 키 작은 시리아 남성이 보인다.
건우가 가방을 끌고 다가가 물었다.
“영어 할 줄 아십니까?”
160㎝ 초반 정도로 보이는 작고 인상 좋은 남자가 활짝 웃으며 악수를 청한다.
“물론입니다, 닥터 모 되십니까?”
“네.”
“반갑습니다, 캠프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건우의 가방을 받아 자신이 끌고 가는 남자를 따라 주차장으로 가자, 지프 한 대가 기다리고 있다.
트렁크에 짐을 실은 후 운전대를 잡은 남자가 뒷좌석에 타 굳은 얼굴로 주변을 살피고 있는 건우를 보며 웃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지역은 한 번도 반정부군에게 탈환된 적 없는 안전 지역입니다.”
차가 출발하고, 건물들을 스쳐 지나며 달리는 남자가 룸 미러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시리아는 입국하기 쉽지 않으니 첫 방문이시겠죠? 봉사활동을 오셨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가는 길에 보이는 주요 관광지만이라도 설명해 드릴까요?”
친절한 남자였지만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창밖을 노려보고 있는 건우는 그의 호의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가만히 유리창 밖에 펼쳐진 붉은 사막을 노려보는 건우가 말했다.
“내가 이 지옥에 온 건 두 번째입니다. 그러니 관광은 필요 없습니다. 나는 이미 여기서 태어난 당신도 보지 못했던 것들까지 다 봤으니까.”
운전대를 잡은 남자의 얼굴에 당황이 서린다. 하지만 룸 미러 속에 있는 무표정한 남자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보니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한다.
침묵 속을 달리는 지프가 시리아의 사막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