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닥터 프랑켄슈타인-209화 (209/230)

닥터 프랑켄슈타인 209화

21. 시리아의 하늘(1)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독일을 경유한 비행기가 장시간 하늘을 유영하는 내내 혜선과 중곤은 반쯤 기절해서 잠이 들었고, 지수와 지선은 가져온 책을 읽었으며, 은비는 휴대용 게임기로 축구 게임 중이다.

몸까지 움찔움찔하며 게임에 집중하고 있던 은비가 한 판이 끝났는지 굳었던 손을 풀어주며 말했다.

“와, 난이도 올리니까 진짜 어려워.”

책을 보고 있던 지수가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재미있어?”

“어, 해볼래?”

“아니, 난 게임은 별로.”

“너 축구도 안 좋아하잖아.”

“응.”

“축구 게임이니 더 권할 필요도 없겠네.”

“하하, 땅콩 먹을래?”

“그래.”

지수가 아까 승무원에게 받아둔 땅콩을 찾으려 앞 좌석 주머니를 뒤지다, 문득 대각선 방향으로 보이는 건우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앉는 좌석이었지만 예약자가 없어 혼자 앉아 가는 건우. 다른 이들은 잠을 자거나, 혹은 자신처럼 책을 보는데 건우는 멍한 얼굴로 턱을 괴고 있다.

초점 잃은 눈동자로 앞 좌석만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건우를 살핀 지수가 은비를 팔꿈치로 툭 치며 말했다.

“교수님 무슨 일 있어?”

은비가 게임기를 치우고 몸을 내밀어 건우 상태를 확인하곤 말했다.

“모르겠어, 아침에 비행기 탈 때부터 계속 저렇게 아무 말씀 안 하시던데?”

지수가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시 건우를 바라본다. 책을 읽고 있던 지선도 건우를 살펴보다 다시 책을 들며 말했다.

“모 교수님이 저러시는 게 한두 번도 아닌걸요. 뭔가 고민거리가 있으신가 보죠. 괜히 귀찮게 해드리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둬요, 우리.”

입맛을 다신 지수와 은비가 한참 건우를 살피다 다시 각자 원래 하던 일을 하기 시작한다.

아까부터 앞 좌석만 보던 건우가 고개를 돌려 비행기 창문의 커튼을 올리자, 눈부신 햇살이 짓쳐 든다.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하얀 구름들을 물끄러미 보는 그의 머릿속에 헤어지기 전에 들었던 사무엘의 말이 떠오른다.

‘행선지를 숨겼던 건 당신이 그곳에서 겪은 일이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을 만큼 참혹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아무 생각 없이 내 행선지를 밝히는 것이 당신에겐 큰 괴로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맞는 말이다. 실제로 시리아라는 말만 들어도 가끔 땀이 흐를 때가 있으니까.

‘당신의 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을 겁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이 시리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다른 곳에서 활약하면 되는 겁니다.’

옳다. 세상에 의학적인 혜택을 받기 어려운 국가는 시리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지금도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니까.

대한민국에도 어려운 이들은 있다. 단체를 통해 국내 봉사를 하면서도 느꼈지만 의료 사각지대는 현재의 발전된 대한민국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료진들이 해외 봉사를 가는 이유는 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대한민국의 건강의료보험은 꽤 안정적이고 진보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또한 병원의 숫자도 꽤 많다. 우리나라의 어려운 사람들은 병원이 있어도 돈이 없어 진료를 못 받는 사람이 태반이다.

당장 고아원에 봉사활동만 가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은 날을 잡아 아이들 이불 빨래나 음식을 해주는 봉사활동보단 양육을 할 수 있는 기부금을 주는 쪽을 훨씬 고마워한다.

즉, 한국의 봉사는 몸으로 뛰기보다 기부금으로 하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Neighbors의 의료봉사는 보통 몸이 불편해 돈이 있어도 병원까지 가기 힘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에 아프리카나 시리아의 경우는 가난한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설령 돈이 있어도 병원이 없다. 병원이 있어도 의사가 부족하다. 완벽한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하기에 자국을 두고 해외 봉사를 하는 의료진들이 많은 것이다.

사무엘이 아무리 인간보다 곰에 가깝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총을 맞아도 안 죽는 건 아니다. 건우는 자신이 겪은 현실을 분명히 말해줄 의무가 있었다.

‘꼭 거길 가야겠습니까? 반정부군은 어린이도 열 살만 넘으면 총을 쥐여주는 놈들입니다. 어리면 어릴수록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꼬마 때부터 세뇌 교육을 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고 자라는 아이들이라 포로로 잡아도 갱생이 불가능합니다. 풀어주는 즉시 다시 총을 들고 덤벼옵니다.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오직 가두어두는 것뿐입니다.’

건우의 입에서 참혹한 시리아의 현실들이 나오고 있지만 사무엘은 그저 흐릿한 눈으로 바라만 본다. 건우가 답답한 심정으로 입을 연다.

‘묻겠습니다.’

‘말하세요.’

‘당신이 약 삼백 미터 밖에서 거지 꼴을 한 아이가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걸 봤다고 가정합시다. 당신은 어쩔 겁니까?’

‘그 아이 손에도 총이 쥐어져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이는 혼자입니까?’

‘예.’

‘몇 살쯤 되는 아입니까?’

‘여덟 살로 하죠.’

‘음…… 그렇게 어린 아이라면 아까 당신이 말한 총을 든 군인과는 거리가 있군요. 나라면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펴본 후 아이 혼자인 것이 확실하다면 도와줄 겁니다. 혹시 다쳤다면 치료를 해야겠지요. 나는 의사니까.’

‘틀렸습니다.’

‘예?’

‘당신은 아이를 발견한 즉시 군인에게 알려야 됩니다.’

‘왜죠?’

‘아이의 품속에 탱크도 날려 버릴 폭탄이 있기 때문입니다.’

‘…….’

‘군인들은 시리아어로 경고를 합니다. 그 자리에서 멈추고 상의를 벗으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겁에 질려 있습니다. 자신이 죽을 걸 알고 있거든요. 도와달라며 울면서 손을 내밉니다. 걸음을 멈추지 못합니다. 군인들에게 와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이가 불쌍하다고 다가가 안아주는 순간 우리는 저승 구경을 하게 되는 겁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한다는 겁니까?’

‘현실입니다. 제가 직접 이 두 눈으로 봤습니다. 또한 군인의 경고 방송에도 멈추지 않았던 예닐곱 살의 아이가 사살당하는 장면도 봤습니다.’

‘…….’

‘그리고 아이 시신에 조심스럽게 다가간 폭탄 처리반이 아이 품 안에서 무려 스무 개나 되는 수류탄을 제거하는 것도 봤습니다.’

‘하…… 정말 참혹하군요.’

‘전쟁은 사람을 미치게 만듭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됩니다.’

‘그렇죠…….’

‘이런 현실을 듣고도 가실 겁니까?’

‘…….’

말리고 싶었다. 물론 사무엘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는 닥터 카터의 동료였다.

카터를 따라 동료까지 목숨을 잃는 상황은 정말 상상하기 싫다. 또 만약 그가 거기서 죽는다면 하늘에 있는 카터에게 정말 미안해질 것 같기도 하다.

조금 오버한다는 이야길 들을 수 있을 만큼 격양된 얼굴의 건우가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내 눈앞에서 카터가 죽었습니다. 그의 뒤통수에 쏘아진 총알이 이마로 빠져나오는 걸 내 눈으로 보았습니다. 당신은 그런 걸 본 적 있습니까?’

‘하…… 닥터 모. 그건 말입니다…….’

‘당신이 그런 걸 볼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볼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그곳에 가면 그런 걸 보게 될 겁니다. 더 참혹한 건! 점점 그런 장면을 보는 내가…… 죽음을 슬퍼하기는커녕 무덤덤해진다는 겁니다.’

사무엘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런 시선으로 보지 마. 내가 필요한 건 너의 동정이 아니라, 네 생각을 바꾸는 거니까.

약간 충혈된 건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사무엘이 다시 베란다 밖을 보며 말했다.

‘닥터 모.’

‘예.’

‘닥터 카터는 내가 일평생 존경하던 분이셨습니다. 비록 나이 차는 꽤 나지만 나는 그를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사로 경험을 쌓고 처음 Mayo에서 근무하게 된 날. 나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출근을 하기로 한 날보다 하루 전날에 병원으로 달려갔죠. 닥터 카터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

‘나는 그가 쓴 저서와 논문을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 그의 옆에서 인류를 뒤흔들 의학의 발전을 이루고 싶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사무엘이 카터를 얼마나 동경했었는지 알 것 같다. 그런 사람과 같은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그는 많이 기뻤을 것이다.

사무엘이 베란다 지지대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가 시리아로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실종 뉴스를 봤습니다. 난 절대 믿지 않았죠. 나의 친구이자 영웅인 그가 이토록 쉽게 죽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2년이 지났지만 그의 시신을 본 사람은 없었죠. 나는 더욱 강하게 그가 살아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무엘이 건우를 돌아본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의사가 시리아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을 통해 함께했던 모든 이가 죽었단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열흘도 넘게 술을 퍼마셨습니다. 그제야 친우의 죽음이 현실이 되었으니까요.’

건우가 고개를 숙인다.

처음엔 차라리 그토록 위대한 의사가 아닌 자신이 죽었어야 한단 한심한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위대한 의사가 준 소중한 새 생명으로 또 다른 많은 생명들을 살려내 보답할 것이다. 지금 건우가 고개를 숙인 건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에 대한 애도의 표현일 뿐이다.

사무엘이 짧게 한숨을 쉰 후 말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내 친우가 뭔가 남긴 것이 없는지부터 물었었습니다.’

그랬다. 그는 획기적인 이식수술과 사후관리에 대해 카터가 남긴 지식이 없는지를 물었었다. 사무엘이 고개를 숙인 건우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나는 그때 거짓말을 했습니다. 내가 묻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었거든요.’

건우가 눈을 든다. 눈시울이 붉게 달아오른 사무엘이 슬픔을 참으며 말했다.

‘내 친구의 시신은 어디 묻혀 있습니까? 무덤은 만들어줬나요? 내 친구는 험한 사막 가운데 버려져 독수리 먹이로 온몸이 갈가리 찢겨 사라진 건가요?’

건우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건우보다 더 참혹한 얼굴을 한 사무엘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묻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그 지옥에서 살아나올 때 내 친우를 챙길 여유가 없었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제라도 그곳에 가려 합니다. 물론 나는 비겁합니다. 정부군이 밀고 올라가 안전이 확보된 후에야 친구를 만나러 가니까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가야 내 남은 평생이 죄책감과 자책으로 물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는 결국 나 스스로를 위해 움직이려는 겁니다.’

사무엘이 건우의 어깨를 꽉 잡으며 말했다.

‘당신이 다시 시리아로 가지 못하는 건 절대 비겁한 행동이 아닙니다. 나라도 그랬을 겁니다. 나는 단지 당신과 같은 지옥을 견뎌보지 않아 객기를 부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중에 지금 나를 말려주는 당신의 말을 듣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무엘이 건우와 눈을 마주친다.

‘나는 스스로를 위해 움직이는 겁니다. 그것으로 인해 당신이 고통받을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나를 말려주었습니다. 당신이 해야 할 도리는 다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우리 각자를 위해, 각자가 생각하는 이념을 위해 움직입시다.’

비행 내내 건우를 괴롭히는 사무엘과의 대화들. 더는 말리지 못하고 물러나 버린 것이 과연 잘한 것인지도 고민이 된다.

한숨만 푹푹 내쉬던 건우의 귀로 어느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들려온다.

삼 개월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그리운 한국에 도착한 것이 신이 난 일행들이 웃으며 짐을 챙겨 비행기에서 내린다.

성격상 사람들이 반쯤 내린 후에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는 건우가 비행기 모드로 꺼두었던 핸드폰부터 켜며 비행기에서 내린다.

승무원의 인사를 받으며 도킹 스테이션에 발을 들인 건우.

바로 그때, 꺼둔 휴대폰이 진동을 울린다.

해외에 다녀오면 매번 오는 안내 문자들을 죽 살피던 건우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사무엘에게서 온 문자 한 통이 보였기 때문이다. 시리아에 도착했다는 문자일까?

문자를 누르고 내용을 확인하며 걷던 건우의 걸음이 우뚝 멈춰진다. 눈이 찢어질 듯 커진 건우. 그의 액정 속 사무엘의 문자가 보인다.

[모, 난 시리아에 잘 도착했어요. 당신이 나보다 더 멀리 가니 아직 도착하지 않았겠군요. 나는 얼마 전 대대적인 정부군의 반격에서 발생한 사상자들이 있는 병원으로 배정받았어요. 그런데 닥터 모. 여기 당신을 아는 사람이 있군요? 자신을 하담이라고 하던데. 혹시 알아요?]

하담. 시리아에 있을 때 반정부군 중 유일하게 자신에게 잘해줬던 자신의 환자. 그가 아직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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