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닥터 프랑켄슈타인-201화 (201/230)

닥터 프랑켄슈타인 201화

20. 샤먼의 신탁(8)

수술 시작 1시간 23분 경과.

수술대 위에서 울컥울컥 피가 솟구쳐 오르는 것과 동시에 지선이 보고 있는 모니터가 요란한 알림을 울린다.

지선이 몸을 벌떡 일으키며 외친다.

“환자, blood pressure(혈압) 하강!”

지수가 재빨리 자리를 비운 지선의 자리로 들어와 모니터를 보며 외친다.

“stroke volume(일회박출량) 180㎖로 정상치 초과 상승! cardiac output(심박출량) 3.8L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요란한 알림 소리가 수술실에 울려 퍼지는 현장. 분명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긴박한 장면이다.

하지만 수술실에 있는 그 누구도 당황하거나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중곤만이 슬금슬금 건우의 눈치를 보고 있을 뿐이다.

중곤이 눈치를 보든 말든 출혈 부위만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건우가 수술 부위의 약간 아래쪽에 손을 쑥 집어넣는다. 계속 피가 솟구치고 있어 금세 복강 내가 시뻘건 피에 잠긴다.

지선이 환자 눈을 확인한 후 주사를 준비한다.

“현재 시간부터 ERAS 가이드라인(수술 후 조기회복 프로그램)을 무시합니다.”

ERAS 가이드라인은 수술 후 환자의 빠른 회복을 돕기 위해 수액 과부하를 줄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수술 중 이렇게 출혈이 클 때는 무시되기도 한다. 일단 환자를 살려내는 것이 우선이니까.

지선이 환자에게 바짝 붙어 두 가지 주사를 놓고 수혈 팩을 짜며 말했다.

“3분 안에 잡아야 됩니다, 선장님.”

복강 내에 손을 넣고 있던 건우가 환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선장 소리 안 하면 10초 안에 하죠.”

긴박한 상황임에도 지선은 빙긋 웃는다. 건우가 환자 목숨 가지고 장난칠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건우의 눈이 푸른빛을 토해내고, 쑥 집어넣은 손이 보이지 않는 한 부분을 누르자, 거짓말처럼 멈추는 출혈.

건우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말했다.

“봉합 준비.”

은비는 이미 출혈이 일어날 때부터 손에 봉합 도구들을 쥐고 있다 얼른 전해준다. 혜선과 중곤이 거즈를 마구 뭉쳐 환부에 밀어 넣고 혈액을 흡수시킨다.

건우가 직장 후강 바로 아래에 있는 요관을 슬쩍 거꾸로 뒤집자, 미세한 상처가 난 고환 동정맥이 드러난다.

은비가 전해준 봉합 도구를 붙잡고 서너 바늘 꿰매자 지수가 붙잡은 모니터의 요란한 기계음이 서서히 멈춘다.

발끝까지 잔뜩 긴장했던 지수가 승모근을 늘어뜨리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봉합을 마친 건우가 또 다른 곳에 상처가 난 부분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며 조금 물러나 양손을 들고 눈치를 보는 중인 중곤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네 실수 아니다, 눈치 보지 마라.”

“…….”

“중곤이, 혜선이. 여기 봐.”

중곤과 혜선이 얼른 머리를 들이밀자, 요관 반대 방향을 보여주는 건우.

“Testicular artery(고환 동정맥)가 터졌다. 이건 수술 중에 건드린 게 아니라 원래 약해져 있었던 거야. 장시간 누워 있어서 수술을 못 버틴 거다.”

중곤의 얼굴에 그제야 안도가 서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건우가 손을 들고 물러나며 말했다.

“다시 보비 잡아.”

중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간을 확인한다.

“하지만 교수님. 말씀하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출혈이 일어나도 탓을 하지 않았던 건우가 갑자기 중곤을 째려본다.

그러자 혜선이 눈치 빠르게 나선다.

“선배! 수술 중에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배웠잖아요. 그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순 없어요. 우리가 해결해야죠.”

중곤이 후배인 혜선의 말을 듣고 입술을 깨문다.

“그래.”

다시 시작되는 수술을 지켜보는 건우.

혜선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아마 중곤은 방금 크게 혼났을 것이다. 눈치 빠른 그녀 덕에 건우의 불호령을 피한 중곤이 눈으로 혜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낸다.

둘이 서로를 보며 윙크를 하는 것을 뻔히 보고 있지만 그냥 넘어가 주는 건우의 눈을 보고 있던 지선이 눈웃음을 지으며 모니터로 돌아간다.

건우가 복강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RS의 높이에서 직장 후강에 들어갔으면, 이번은 구불결장간막을 기저부로부터 잘라 떨어뜨려. 혜선이가 보조하고.”

“네, 교수님!”

건우의 지시대로 진행되는 수술. 중곤이 보비로 후복막 하근막을 얇게 절개한 후 복대동맥신경총의 전면에서 장간막의 지방을 박리한다.

IMA 근부 근처까지 잘라낸 후 잠시 물러나는 중곤. 은비가 얼른 중곤의 땀을 닦아주는 걸 본 건우가 혜선의 팔꿈치를 잡으며 말했다.

“여기서부턴 네가 해.”

혜선이 큰 눈을 파르르 떤다. 보조로 여러 수술을 참관하고 건우가 중간에 메스를 넘긴 적도 있지만 이렇게 어려운 수술을 해보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중곤이 빠르게 혜선과 자리를 교체해 주며 속삭인다.

“방금 봤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교수님이 커버해 주실 거다. 그냥 믿고 가는 거야.”

중곤의 목소리에 힘을 얻은 혜선이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메스를 잡자, 건우가 말했다.

“IMA 근부 처리부터.”

“네, 교수님.”

혜선이 한 손엔 메스를, 한 손엔 보비를 들고 복강으로 진입하자 건우가 말했다.

“좌우의 요내장신경이 동맥근부 부근에서 합류해 하장간막동맥신경총이 형성된다. 거기서부터 동맥을 따라 결장간막 내로 들어가는 신경다발을 보비로 절제하는 거다.”

“네, 교수님.”

조심스럽게 진행되는 수술. 중곤이 수술할 때는 건우만 지시를 내렸지만 혜선이 메스를 잡자 중곤도 바짝 붙어 속삭이며 길을 알려준다.

“IMA 근부 주위 림프절을 포함한 지방조직을 절제 쪽으로 붙이듯이 진행해야 돼.”

혜선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 손이 떨릴 때도 있지만 피를 보고 놀라 굳어버렸던 무릉도원 시절에 비하면 괄목상대의 발전을 이룬 혜선이다.

중곤이 구불결장간막을 양손으로 잡고 신장시키자, 계속해서 장간막의 지방을 변연동정맥 앞까지 잘라가는 혜선.

번뜩이는 눈으로 수술을 지켜보던 건우가 말한다.

“IMV와 LCA가 보일 때까지 들어가서 좌측 1~2㎝까지 진행해.”

“네, 교수님.”

중곤보다 확실히 느렸지만 보다 정확하다. 혜선의 장점은 저것이다. 속도는 느리지만 정확하다는 것.

물론 그것이 초보자의 조심성이라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것을 장점으로 승화시킨다면 그녀의 수술 성공률은 크게 올라갈 것이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정확성이니까.

약 10분가량 수술을 진행하던 혜선이 메스를 놓고 말했다.

“혈관 처리 완료.”

혜선이 시간을 확인하곤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건우가 수술 종료 시점으로 잡은 건 두 시간. 중곤이 수술 중에 예상치 못한 출혈이 있어 잠시 지체되었다곤 하지만 즉시 출혈을 바로 잡은 건우 덕에 그로 인해 허비한 시간은 3분 미만이다.

‘1시간 38분. 교수님이 말씀하신 목표 시간까지 22분 남았다.’

중곤과 혜선은 익숙한 몸짓으로 보조 자리로 다시 돌아가고 건우가 집도의 자리에 서자, 은비의 눈빛이 달라진다.

중곤이나 혜선이 메스를 잡았을 때는 비교적 천천히 움직였지만 은비의 수술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집도의 자리에 건우가 서 있을 때와 다른 의사가 서 있을 때는 완전히 다른 수술이라고 해도 될 만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마스크 아래로 입술을 깨문 은비의 눈빛이 빛난다.

‘잠깐만 집중력을 잃어도 수술에 방해가 된다. 정신 차려, 이은비.’

메스와 보비, 핀셋을 동시에 전해 받은 건우가 복강 내로 양손을 집어넣는 것과 동시에 폭풍같이 진행되는 수술.

안쪽으로부터 장간막 박리가 시작되고, 아까 출혈이 났던 고환 동정맥이 나타난다. 자기 입으로 혈관이 약해졌다고 말해놓고 무지막지한 속도로 혈관에 바짝 붙어 박리해 가는 건우.

너무 빠른 속도에 넋을 놓을 뻔했던 은비가 급히 정신을 차리며 거즈를 내밀자, 중곤이 낚아채 동정맥 아래에 거즈를 밀어 넣는다. 중곤도 확실히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건우의 수술은 보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되지만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너무 많은 진행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중요한 대목을 놓치기 일쑤다. 매 순간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그저 감탄만 하고 끝나는 수술이란 뜻이다.

다시 시작되는 장간막의 바깥쪽 박리. 혜선이 얼른 구불결장을 건우 쪽으로 들어 올리자, 생리적으로 유착한 후 복막도 함께 올라온다.

구불결장간막 좌엽과 경계선을 확인하고 약간 장관 가까이로 복막을 절개해 유착된 복막 위층까지 들어가는 건우.

아까만 해도 수술을 진행할 때마다 중곤과 혜선에게 설명을 해주던 건우는 지금 아무 말 없이 수술에 집중하고 있다.

마치 여기서부턴 너희 노력 여하에 따라 배우고 말고가 정해진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듯하다.

다행히 보비로 후복막을 절개하고 통과시키는 동시에 중곤과 혜선의 손이 동시에 끼워 두었던 거즈를 쑥 잡아 뺀다.

수술 보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집도의의 수술 리듬을 방해하지 않는 것. 그것은 타이밍에 맞게 움직이는 것에 비밀이 있다. 두 사람이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주면 건우의 손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건우의 왼손은 계속 수술 중인데도 오른손은 계속해서 은비에게 새 도구를 요구한다. 아키야마식 장겸자와 단단겸자, 메스를 동시에 넘기는 은비.

건우가 아카야마식 장겸자로 결장을 잡고 단단겸자로 5㎝ 위를 단단히 붙잡은 후 메스로 장관을 절제한다.

혹시 문합부의 과도한 긴장이 있을까 좌측 비장굴곡까지 절개하여 비결장간막을 절제해 하행결장을 넉넉하게 박리할 수 있도록 하는 건우.

은비에게 도구를 받아 Albert-Lembert 봉합으로 문합을 실시한 건우가 L자형 장겸자를 수술대 위에 놓으며 시계 방향으로 고개를 획 돌리며 말했다.

“수술 시간 1시간 59분, 세이프.”

아까부터 호흡을 참고 있던 혜선이 숨을 터뜨린다.

“후아!!! 시간 안에 못 끝낼 줄 알았어요.”

건우가 지선 쪽을 바라보자,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던 지선이 건우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엄지를 들어 보인다.

수술 종료 후 지선에게 경과를 묻는 것은 일상이기에 이제는 질문이 나가지 않아도 답이 돌아온다.

건우가 양손을 든 채 중곤과 혜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느려.”

중곤과 혜선이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건우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내가 그 말 싫어하는 거 알지?”

혜선이 얼른 크게 외쳤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교수님!”

중곤도 엉겁결에 같이 외치는 걸 본 건우가 혀를 차며 중곤을 째려본다.

“네가 혜선이보다 선배다, 이놈아.”

찔끔한 중곤이 입술을 내민다. 건우가 은비를 보며 눈인사를 한다.

“수고했어요.”

은비가 밝게 웃는다. 한 번도 수술 중에 건우가 손을 더듬거리지 않았다. 한 번도 이것 말고 다른 도구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PA 간호사에게 최고의 기쁨이다.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건우가 지선을 바라보며 슬쩍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뚜벅뚜벅 걸어 구석에 서 있는 지수 앞에 섰다.

“이거 참. 부메랑도 아니고 자꾸 지수 씨한테 환자가 돌아가네요.”

지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제 일인걸요, 교수님.”

건우가 복부 봉합을 마무리할 준비 중인 중곤과 혜선을 돌아본 후 다시 지수를 본다.

“그럼 부탁합니다, 여기서부턴 지수 씨가 해줘야 하니.”

지수가 허리를 숙이며 웃는다.

“분명히 인계받았습니다, 교수님. 반드시 살려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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