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닥터 프랑켄슈타인-200화 (200/230)

닥터 프랑켄슈타인 200화

20. 샤먼의 신탁(7)

수술 당일 오전 8시 30분.

부산히 준비 중인 수술실을 돌아보고 나온 건우가 밖에 대기 중인 로이드를 보곤 눈인사를 건넨다.

자신이 수술할 것도 아니면서 잔뜩 긴장해 있는 로이드가 가볍게 몸을 풀며 말했다.

“괜찮겠습니까?”

“뭐가요?”

“수술 말입니다. 일반인이 봐도 심각한 수준이던데.”

“일반인 눈으로 보니 그렇죠.”

“별로 안 심각해요?”

“아뇨, 엄청 심각하죠.”

“말장난하시는 겁니까?”

“아닌데요.”

상대를 열 받게 만드는 건우의 어투가 나미비아에서도 빛을 발한다. 인상을 구긴 로이드가 말했다.

“그럼 뭡니까?”

건우가 소독을 하려는 듯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하지는 아주 심각한 상탭니다. 대장암 4기면 대도시 병원 가도 수술하기보단 항암을 하며 죽을 날 기다리라고 할 상태죠.”

로이드가 걱정되는 얼굴로 말했다.

“하, 큰일이군요. 만약 수술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얻는 건 물 건너가는 겁니다. 그럼 나머지 환자들도 못 볼 텐데요.”

건우가 물을 틀며 말했다.

“그렇겠죠.”

“닥터는 걱정 안 되십니까?”

건우가 쏟아지는 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 안 합니다.”

“예?”

건우가 무심한 듯한 눈빛으로 로이드를 본다.

“이 수술의 집도의가 나니까. 그러니까 걱정 안 합니다.”

“…….”

“소독해야 됩니다, 이제 나가세요. 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온 감염균 옮아서 환자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질 겁니까?”

“…….”

마지못해 수술실 복도에서 나온 로이드가 한숨을 쉰다.

“진짜 자신이 있어서 저러는 걸까?”

동양에서 온 싸가지 없는 의사. 막무가내에 하지 말란 행동만 골라서 하는 사람. 먹을 것만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들고, 마을 최고 권위자에게 감히 할머니라 부르는 미친 의사. 그것이 로이드의 눈으로 본 건우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그에 대해 보고, 또 들었다. 마을에 와서 처음 했던 수술. 식도암 환자의 수술을 할 때 건우의 모습을. 그는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는 실력 있는 의사다.

게다가 세계 제일의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무엘이 밤에 맥주를 마시다 이렇게 말했다.

‘닥터 모는 천잽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우리 병원으로 데려오고 싶군요.’

그렇게 대단한 의사면 데려오지 그러냐고 물었더니 사무엘이 허무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은근슬쩍 제의를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말도 꺼내기 전에 거절하더군요. 후, 그를 데려가지 못하면 나머지 사람들도 데려가기 힘들 것 같은데 일이 참 어렵게 됐군요.’

세계 제일의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건우뿐 아니라 그의 스태프 전부를 스카우트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실력이 있는 자들이란 뜻이다. 저 싸가지 없는 행동을 보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말이다.

초조한 손가락을 여러 번 풀어준 로이드가 복도에 있는 벤치에 앉는다.

“감히 샤먼에게 할머니라고 부르는 황당한 의사지만…… 어쩌면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건 상대가 누구든 그저 한 사람의 환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직위가 무엇이든 그저 자신이 치료해야 할 한 명의 환자로.”

그때 중곤과 혜선이 하지를 실은 침대를 밀고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비켜주세요!”

“수술 환잡니다!”

로이드가 얼른 벤치 위로 발을 올리며 스쳐 가는 하지를 바라본다. 샤먼과 함께 봤던 그대로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혈색으로 누워 있는 하지.

가만히 멀어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로이드가 슬그머니 일어나며 중얼거린다.

“당신이 눈앞의 환자를 살려낼 수 있는 의사인지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로이드의 눈이 빛난다.

“샤먼의 신탁이 정말 당신을 말하는 신의 음성인지도.”

* * *

9시 정각.

수술실 문이 열리고 소독한 손을 든 건우가 마스크를 쓰고 들어오자, 준비 중이던 스태프들이 모두 동작을 멈추고 건우를 향해 선다.

든든한 자신의 사람들을 눈으로 훑어본 건우가 말했다.

“지금부터 하지 게브하르트 32세. colorectal cancer(대장암) TNM 4에 의한 sigmoidotomy(구불 결장 절제술)을 시작합니다.”

스태프들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장님!”

무게를 잡고 있던 건우가 인상을 구긴다.

“젠장, 선장 소리 좀 하지 말라니까.”

히죽거리는 사람들. 건우가 싫어하면 할수록 더 재미있다는 표정들이 된다.

한숨을 쉰 건우가 환자 우측에 서서 손을 내밀자, 은비가 즉시 메스를 건네준다.

“배꼽 위 3㎝부터 치골상연까지 하 복부 정중앙 절개한다. 소독해.”

중곤과 혜선이 하복부에 소독약을 바르고, 건우의 메스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리 어려운 수술임에도 변함없이 진행되는 중곤과 혜선을 위한 수업. 메스로 복막을 절개 중인 건우가 말했다.

“배꼽 높이까지만 절개하면 어떻게 되지?”

중곤이 얼른 답한다.

“IMA(하장간막동맥) 근부의 처리가 어렵습니다.”

“반대로 위쪽까지 절개하면?”

“소장이 탈출해 버리고 조작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중곤이 정답을 말했는지 건우가 말했다.

“혜선.”

“네, 교수님!”

“하방 복막 절개 시 조심해야 될 건?”

“방광을 절개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다만, 병소 부위나 림프절 곽청 범위에 따라 절개를 축소하는 것도 좋습니다.”

“…….”

말이 없는 건우. 혜선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자 절개를 마친 건우가 메스를 놓고 말했다.

“공부 열심히 했네, 은비 씨, 20번 메스.”

메스를 넘겨주는 은비가 눈웃음을 짓고 시험에 통과한 혜선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하지만 그녀가 웃고 있을 시간은 없다. 즉시 절개된 복강 내에 감염이 없는지 검사를 돌리는 혜선. 중곤은 개창기를 복벽에 거치하고 있다.

건우는 메스를 든 손을 든 채로 물러나 말했다.

“치골상연까지 절개한 거라 절개 하부에서 양측으로 각각 복막을 피부에 고정한다. 정중앙 가까이 실을 걸지 않으면 효과 없어. 제대로 걸어.”

“예, 교수님!”

중곤이 은비 쪽으로 손을 내밀자, 시키지 않아도 외과용 거즈와 Octopus 개창기가 그의 손에 쥐어진다.

빙긋 웃은 중곤이 눈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 후 소장에 거즈를 씌우고 개창기로 머리 쪽으로 당긴다.

그때 건우가 중곤을 멈춰 세운다.

“인마.”

중곤이 움찔 놀라며 멈추자, 건우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소장에 거즈 씌울 때 돌돌 말아서 억지로 담지 말고, 넓게 소장 전체를 감싸듯이 씌워.”

“아, 예!”

“후복막과 소장 사이에 거즈가 확실히 들어가 있어야 된다. 왼손바닥을 컵 모양으로 만들어서 소장을 위쪽으로 충분히 당겨.”

“예!”

“그 상태로 잠깐 정지. 소장이 빠져나오지 않는지 확인이 되면 서서히 거즈를 풀어 헤친 상태로 왼손바닥을 후복막으로부터 띄워. 그 사이 전면에 거즈를 댄 후에 슬쩍 왼손을 뽑아 그대로 소장을 감싸듯이 거즈를 펼치는 거다.”

“네!”

모니터를 보고 있는 지선이 눈웃음을 짓는다.

언제나 보는 광경이지만 건우의 수술은 정말 대단하다. 단지 건우의 수술 테크닉이 대단한 건 말할 거리도 못 된다. 하산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실력이니까.

하지만 그들도 건우가 대장암 4기 환자의 수술 중에 산하 레지던트들의 수업을 병행하는 건 모른다.

만약 알았다면 교수들은 ‘아니, 그런 여유가 어디서 나옵니까? 까딱하면 환자 동맥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칠 텐데?’라고 할 것이고 레지던트들은 ‘와, 나도 그런 교수님 밑에서 배우고 싶다!’라며 들러붙겠지.

지선의 눈에 건우의 가르침을 따르는 중곤과 혜선이 보인다. 주로 가르치는 것은 중곤 쪽이지만 혜선의 공부도 만만치 않다.

현재 하산병원에 적을 두고 있는 레지던트 2년 차 중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혜선이다.

다른 교수들 사이에서도 꽤 소문이 나고 있을 만큼 부쩍 성장 중인 혜선의 현재 모습은 모두 건우가 만들어낸 것이나 진배없다.

중곤도 마찬가지다. 레지던트 4년 차에 응급실 메인 치프.

차기 응급의료센터를 지휘하게 될 것이 확실시되는 건우의 오른팔로 소문이 난 그는 그토록 바랐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전문의 시험이 끝나면 즉시 임상강사로 임명될 것이다. 이 역시 스승이 힘이 있고, 뛰어난 가르침을 베풀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너무 힘들다며 투덜거리기도 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도 안다. 지금 이 가르침이 얼마나 큰 것인지.

빠르게 수술을 마치고 잠깐이라도 휴식해야 할 교수가 자신들을 위해 얼마나 큰 것을 내어주고 있는지.

그래서 둘은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많이 노력하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거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두 사람 역시 미래의 거인이 될 공산이 크다.

중곤과 혜선이 처치를 마치자 건우가 한 걸음 나서며 수술을 속행한다.

“tumor(종양)가 rectum(직장)에 가까이 있다. S1도 중간까지 절제 후 횡단해 marginal artery(변연동맥)를 길게 확보한다.”

건우의 메스가 정확한 곳에 이르러 딱 필요한 만큼만 절개한다.

바로 저기에 비밀이 있다. 보통의 교수들보다 더 빠르게 수술을 끝내면서도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는 비밀.

단 한 번도 실수 없이 절개하고 정확한 종양의 위치를 미리 알고 있다는 듯 파고드는 기술. 그것이 여유를 만들어낸다.

지선은 항상 저것이 궁금했다. 사람 눈에 네비게이션이 달리지 않고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언제 보아도 신기한 노릇이다.

안쪽부터 구불결장 박리를 시작하기 위해 직장 후강 내로 진입하는 건우.

혜선이 RS(직장구불결장 이행부)를 좌측 바깥으로 견인해 장간막 우엽을 신장시킨다.

건우가 SRA(상직장동맥)를 포함한 인대의 2~3㎝ 아랫부분에 보비로 얇게 복막절개를 가한다.

복막을 절개하자, 바로 아래에 얇은 후복막하근막이 모습을 드러낸다.

건우의 메스가 근막을 절개하자, 다시 여러 가닥의 가는 신경과 혈관이 장관을 향해 주행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보비로 지지고, 메스로 자르며 소성 결합조직이 보일 때까지 파고들어 간 건우가 우 하복 신경을 박리면 아래로 떨어뜨린다.

“여기 거미줄로 둘러진 것 같은 공간이 직장 후강이다. 직접 봐.”

건우가 손을 들고 물러나자, 중곤과 혜선이 얼른 복강 내로 얼굴을 들이민다.

“와, 진짜 거미줄같이 생겼네요. 사진으로만 봤는데.”

“이렇게 생겼구나.”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경험이다. 물론 다른 직업들도 마찬가지지만. 두 사람은 가장 중요한 수업을 나미비아에서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라면 치를 떨 만큼 싫어하는 혜선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여기까지 따라온 것도 바로 이런 수업을 염두에 두고 움직인 것이리라.

건우가 슬쩍 시간을 보며 말했다.

“중곤.”

“예, 교수님.”

“나 이 수술 2시간 내로 끊을 거다.”

“예, 알겠습니다.”

“보비 잡아.”

“예!”

수술을 2시간 내로 끊겠다 공언한 후 중곤에게 보비를 넘겼다는 의미. 그건 여기서부터 네게 기회를 주되 수술 시간을 제한한다는 뜻이다.

결국 단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보비를 빼앗아 시간을 지키겠다는 뜻이 된다.

결연한 표정으로 보비를 쥐는 중곤. 그리고 부러운 시선으로 선배를 보는 혜선.

바쁘지만 아주 조용한 나미비아의 수술실에서 또 다른 진짜 의사들이 탄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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