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192화
19. 나미비아(12)
사무엘, 중곤, 혜선, 지수, 은비, 지선을 모이게 한 건우가 검사 결과들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으며 말했다.
“환자 성명, 하지 게브하르트 32세. colorectal cancer(대장암) TNM 4기다.”
환자 이름은 처음 들었지만 병명과 단계는 대충 예상했던 사람들이 역시나 하는 얼굴로 한숨을 쉰다.
건우가 차트를 눈짓하며 말했다.
“신장 172㎝, 체중 40㎏으로 극도의 영양결핍 상태다.”
은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40㎏이요? 성인 남자가요?”
“음.”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들어와요.”
건우의 허락이 떨어지자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시템프와 아미나를 데려온 로이드가 어정쩡한 얼굴로 서 있다.
“저기, 저희는 무슨 일로 찾으셨는지.”
건우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들자,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마주 손을 드는 시템프. 아미나는 수줍은 듯 오빠 뒤로 숨었지만 작게 손을 흔든다.
“두 사람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요.”
건우가 시템프와 아미나 앞에 선 후 말했다.
“너희들, 하지 아저씨 알지?”
로이드가 통역을 하자, 시템프가 아미나를 본다. 소녀 쪽과 무슨 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건우가 아미나를 보며 말했다.
“알아?”
로이드의 빠른 동시통역이 이루어진다.
“네, 알아요.”
“원래 체중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
아미나가 고개를 흔든다. 아, 여긴 체중계가 없지? 킬로그램 개념도 안 잡힌 애들한테 괜한 걸 물었다. 건우가 손을 몸 위에 올려 부풀리며 말했다.
“체구가 이 정도쯤 됐어?”
아미나가 건우의 손을 살피다 조심스럽게 건우의 손을 잡아 더 늘린다.
“이 정도.”
사람의 몸에 대해 파악이 빠른 마취 의사답게 지선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172㎝ 기준으로 그 정도 비만이면 100㎏ 이상이었을 겁니다.”
무려 60㎏이나 체중이 감소했다는 뜻이다. 건우가 아미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고맙다.”
큰 눈을 깜빡이며 건우를 올려다 보던 아미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아저씨.”
“음?”
“하지 아저씨 꼭 살려줘요.”
다시 회의를 진행하려던 건우가 아미나의 말에 허리를 굽히고 눈을 맞춘다.
“친했어?”
“네.”
“아저씨는 혼자 산다던데, 주변 사람들한테 들어보니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던데?”
아미나가 볼을 부풀린다.
“아니야! 하지 아저씨 좋은 사람이야!”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실소를 짓는다. 사실 환자의 평소 생활 습관을 알아보기 위해 로이드를 동원해 마을 사람들에게 환자에 대한 정보를 캐오게 시켰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폄하했다.
욕심꾸러기.
돼지.
사냥만 잘하면 뭐 해, 혼자 다 처먹는데.
이런 환경에 사는 원주민이 잘 먹어야 걸리는 병에 걸린 것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사냥을 해온 고기를 혼자 다 먹어 그런 것 같다.
원주민들은 보통 함께 사냥하고 고기를 나누어 먹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이 환자는 보통의 원주민들과 좀 다른 것 같다. 그나마 제일 괜찮은 평가가 부족 내 최고의 사냥꾼이라는 평가였다.
건우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저씨가 사냥을 잘했다며?”
“응, 오빠도 아저씨한테 사냥 배웠어요.”
건우의 눈이 가늘어진다. 욕심꾸러기 돼지가 다른 사람에게 사냥 기술을 알려줬다고?
이곳은 자연환경상 많은 동물이 사는 곳이 아니다. 하마나 코끼리는 인간의 사냥감이 아니다. 그 반대면 몰라. 총도 없는 원주민들은 아마 영양이나 토끼 같은 초식동물들을 노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는 말은 사냥감이 한정되어 있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밥그릇 싸움을 하게 될 어린 사냥꾼에게 기술을 전한 이유가 뭘까?
“아저씨가 제일 좋아하는 고기가 뭐였어?”
아미나가 순진한 얼굴로 말했다.
“원숭이!”
제일 비위가 약한 혜선의 얼굴이 흙빛이 된다.
“워, 원숭이라니.”
로이드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어릴 때 많이 먹었습니다. 원숭이 골 요리가 제일 별미죠. 골이 빠져나오지 않게 하려고 눈을 뽑지 않고 그대로 스튜에 넣어 끓입니다. 아래턱만 뽑아서 넣는 건데 어떤 맛이냐 하면…….”
혜선이 더 참지 못하고 소리친다.
“그만! 그만해 줘요,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
로이드는 처음부터 혜선을 놀릴 생각으로 말한 것인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원숭이 녀석들은 평생 한 번도 이를 안 닦잖아요? 누런 이빨을 단 위턱이 스튜 위를 둥실둥실 떠다니는데 휘휘 저어서 한 숟갈 꿀꺽.”
“아악!”
혜선이 귀를 마구 때리며 엎드리자, 로이드가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 그만할게요.”
혜선이 흘겨보아도 넉살 좋게 실실 웃는 로이드가 건우를 향해 말했다.
“사실은 아이들과 여기 오면서 환자에 대해 몇 가지 물었습니다. 하지 씨는 원래 결혼을 했었다고 합니다.”
건우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가족력이 있었던 겁니까? 대장암으로 다른 가족을 잃었답니까?”
중요한 정보다. 하지만 로이드는 손사래를 친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 6년 전에 여기 가뭄이 들이닥치며 대기근이 있었답니다. 동물들도 물을 찾아 다 떠나 버렸고 부족은 쫄쫄 굶으며 몇 개월이나 버텼다고 합니다. 하지의 아내는 그 시기에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내가 먹지 못해 젖이 나오지 않아 아이는 신생아 때 죽었다고 합니다.”
좀 전까지 당장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혜선이 금방 눈물을 글썽인다.
“힝, 불쌍해.”
로이드가 말을 이었다.
“하지는 부족 족장에게 찾아가 먹을 걸 나눠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 마을 전체가 기근이라 어느 곳에서도 먹을 걸 찾지 못했죠. 족장 가족들도 풀뿌리로 연명했답니다. 그렇지, 아미나?”
아미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그때 내 동생도 하늘나라에 갔어요.”
참혹한 이야기. 하지만 그들에게 이러한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자식 다섯을 낳고 둘만 지켜내도 부족은 유지될 수 있다. 물론 제 자식이 죽었는데 슬퍼하지 않을 부모는 없겠지만 다른 이들도 다 그렇게 사는 상황 속에 놓이면 인간은 적응을 하게 마련이다.
로이드가 아미나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때 족장 가족이 먹던 풀뿌리에는 독이 있었답니다. 잘못하면 실명할 수 있는 독 풀이었죠. 하지만 안 먹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걸 안 먹으면 굶어 죽으니까요. 죽는 것과 실명 중에 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실명 쪽이겠죠.”
로이드가 환자 사진을 힐끔 보며 말했다.
“하지는 굶고 있는 아내를 먹이기 위해 멀리까지 사냥을 갔답니다. 며칠이 지나 겨우 작은 설치류 한 마리를 잡아 돌아왔을 때 아내는 이미 굶어 죽어 있었다고 하네요.”
혜선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세상에, 다른 사람들은 뭐 하고요? 좀 도와주지…… 남편도 없는데.”
로이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때 굶어 죽은 이가 서른도 넘는답니다. 누굴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하여간 그때부터 하지는 사냥한 고기를 아무에게도 나누어주지 않고 혼자 다 먹었답니다.”
건우가 물었다.
“왜요? 누굴 원망할 일도 아니었는데. 누굴 향한 복수랍니까?”
“복수가 아닙니다.”
“그럼요?”
아미나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로이드가 말했다.
“참혹하게 굶어 죽어간 아내 몫을 대신 먹는 거라고 했답니다.”
장내에 침묵이 감돈다. 문명사회였다면 무식하게 그게 무슨 짓이냐 할 만한 이야기였지만 이곳은 나미비아다. 배움이 없는 자들이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인 것이다.
건우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음, 그러니까 아내 대신 과식을 해 그렇게 됐다는 건데. 아미나, 아저씨가 원래 그렇게 뚱뚱했니?”
“아뇨, 원래 날씬해서 나무도 막 타고 올라가서 활 쏘고 그랬는데 아줌마 하늘나라 간 뒤에 뚱뚱해지고부턴 땅에서만 사냥해요.”
갑작스러운 과식이 원인이다. 하지만 그 갑작스러움은 너무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대기근이 온 것은 6년 전. 해소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계산해도 약 5년 이상 그런 생활을 해왔다는 뜻이 된다.
“음.”
건우가 아미나의 머리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고맙다.”
“아저씨.”
“응.”
“하지 아저씨 좋은 사람이에요. 딴 사람은 안 줘도 애들한테는 고기 줬어요.”
“…….”
“더 먹으라고,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으라고 막 챙겨줬어요. 집에 가지고 가는 건 안 되지만.”
굶어 죽은 아이 생각이 나서 그런 것이구나. 가만히 아미나의 동그란 눈을 바라보던 건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저씨가 사람들 치료하는 거 봤지?”
“응! 샤먼님보다 더 대단했어요, 아저씨도 고쳐줄 거죠?”
“반드시 고쳐주마.”
아미나의 얼굴이 환해진다. 시템프 역시 청년이라곤 해도 순수해서 그런지 얼굴이 펴진다.
건우가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좋아, 오늘 고마웠다. 이제 가 봐. 로이드, 애들 좀 집에 데려다주실래요?”
로이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애들이 절 데려다줘야 될걸요? 특히 시템프는 사냥하느라 여길 다 꿰차고 있는 아인데 무슨.”
“어떤 상황에서도 어른은 애들을 지키는 겁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데려다주겠습니다.”
아이들과 로이드가 나가자, 건우가 지수에게 물었다.
“정맥 영양공급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소화관을 통한 영양소 흡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TPN(완전 정맥 영양)으로 진행 중입니다. 어제는 시간당 50㎖로 시작하여 오늘은 시간당 75㎖로 늘렸습니다.”
건우가 잠시 고민한 후 말했다.
“오지선 선생.”
“네, 교수님.”
“환자 의식 회복 가능하겠습니까?”
“언제까지요?”
“ASAP(최대한 빠르게).”
잠깐 생각에 잠겼던 오지선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편다. 그녀를 바라보던 사무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한다.
‘말기 대장암으로 의식이 흐려진 환자를 고작 5일 만에 깨울 수 있다 장담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실력 있는 의사로군.’
오지선을 본 건우가 지수에게 말했다.
“그럼 오늘부터 CPN으로 바꾸죠.”
“네, 교수님.”
듣고 있던 사무엘이 등받이에서 등을 떼며 물었다.
“CPN? 의식 없는 환자에게 일일 2,000㎉를 섭취시키겠단 겁니까?”
건우가 뭐냐는 듯 인상을 쓴다.
“방금 오선생이 의식 회복시킨다고 했잖아요?”
“아니, 5일 뒤에 일어날 환자인데 당장 오늘부터 CPN을 주면 어쩝니까? 해도 5일 뒤에 해야죠. 너무 조급한 것 아닙니까?”
나미비아 봉사활동 기간은 3개월. 하지만 3개월 내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 총 세 곳의 부족 마을을 도는 일정이라 이 마을에서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3주가량이다.
그랬기에 건우의 마음이 너무 급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 사무엘이 브레이크를 건다.
“아무리 급해도 의식 없는 환자에게 CPN을 투입하는 건 위험합니다, 닥터 모.”
건우가 인상을 쓰며 한숨을 쉰다.
“누가 의식 없는 환자한테 CPN을 쓴대요?”
“아니, 방금 닥터 오가 5일이라고.”
건우가 지선을 바라보자 그녀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다섯 시간이라고 한 건데요.”
사무엘이 멍한 얼굴로 말했다.
“다, 다섯 시간……?”
의식이 흐려진 상태로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를 환자를 다섯 시간 만에 깨울 수 있다고?
전문 분야가 아니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는 사무엘.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를 이해시키는 데 시간을 쓰려는 이는 없다.
건우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지수 씨.”
“네, 교수님.”
“환자의 현재 몸무게가 40㎏입니다. 수술 전 최대한 몸무게를 회복해야 됩니다.”
“얼마까지 올려야 될까요?”
“최소 50㎏.”
잠깐 계산을 한 지수가 말했다.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수술 후 일반 병실로 옮기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2주입니다.”
“가능합니다.”
사무엘이 눈을 크게 뜬다. 가능하다고? 2주일 만에 10㎏ 증량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거야, 지금? 단순히 살만 찌우는 것이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술을 위해 회복해야 하는 환자에게 지방만 늘리는 방식의 증량은 오히려 독이 된다.
건우가 지수를 가만히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겠습니다.”
은비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지수는 최강의 회복 간호사니까요!”
오직 사무엘만이 이해되지 않는 표정으로 지선과 지수를 번갈아 본다.
‘뭐지, 이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