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닥터 프랑켄슈타인-190화 (190/230)

닥터 프랑켄슈타인 190화

19. 나미비아(10)

샤먼이 가리킨 집 앞에 도착한 건우가 나무집을 살핀다.

문 앞에 빨래 건조대처럼 가로로 세워둔 나뭇가지에 짐승 가죽들이 널려 있다. 다른 집에 비해 월등히 많은 가죽이었지만 관리를 안 했는지 반쯤 썩어 있다. 저건 쓸 수도 팔 수도 없겠다.

혜선이 집 주변을 서성거리다 소매로 코를 가리고 나온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죠?”

중곤도 비슷한 포즈로 썩은 가죽이 널려 있는 곳으로 가 냄새를 맡아보곤 고개를 갸웃거린다.

“여기서 나는 냄새랑 다른데?”

건우가 코를 킁킁거린 후 인상을 쓴다.

“똥 냄새잖아, 이놈들아.”

혜선이 코를 막고 인상을 쓴다.

“대변 냄새요? 으, 어쩐지. 아니 부자라서 걸리는 병이라더니 이렇게 냄새나는 집에 사는 사람이 부자는 무슨.”

사무엘이 팔짱을 낀 채 나무집을 바라본다. 건우 역시 비슷한 얼굴로 집을 보고 있다.

사무엘이 어깨로 건우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뭔지 눈치챘습니까?”

건우가 가만히 집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본 혜선이 득달같이 달려와 물었다.

“알 것 같으세요? 무슨 병인데요, 교수님?”

“문이나 열어.”

“제, 제가요?”

“집 꼴을 봐라.”

혜선이 다시 집을 본다. 썩은 가죽이 걸려 있고, 집을 둘러싼 낮은 나무 벽 안쪽에 돌멩이나 풀들이 자라 있다.

“집이 왜요? 집주인이 누군지 청소도 지지리도 안 하는 집이란 거 말곤 모르겠는데.”

건우가 한심한 눈으로 말했다.

“집에 환자 말곤 없는 집이라고. 보호자가 없단 뜻이다. 보호자가 있었다면 집이 이 모양이겠냐?”

“아.”

“문 열어.”

악취가 진동하는 집이다. 밖에서도 이렇게 악취가 나는데 문을 열면 어떨까?

내키지 않는 표정이 역력한 혜선이 소매로 코를 막고 엄지와 집게를 소심하게 내밀어 집 문을 잡아 당기자, 압축되었던 썩은 공기가 밖으로 확 퍼져 나온다.

“악!”

혜선이 코를 막고 도망친다. 중곤이 녀석은 약삭빠르게 미리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가 고개를 내민다. 어두운 안쪽에서 파리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잔뜩 인상을 쓴 중곤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사람이…… 누워 있는 것 같은데요.”

아프리카의 오후 한 시는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이다. 눈을 제대로 뜨기도 어려울 만큼 강렬한 태양 빛 아래에 서서 어두운 집의 안쪽 상황을 파악하는 건 쉽지 않다.

그렇다고 다가가기엔 악취가 너무 심하다. 건우 역시 안의 상황이 파악되지 않아 살짝 눈을 찡그리고 있다.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잡고 여러 번 닫았다 열었다 반복하는 건우. 그 역시 악취를 참기 힘든지 고개를 돌리고 소매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다.

조금 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지수와 은비가 그 모습을 보고 얼른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내민다.

“교수님, 이거요.”

오, 역시 간호사들이 최고야. 언제 어디서든 도움이 된단 말이야. 고개만 까딱인 건우가 마스크를 쓰는 동안 지수 주머니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마스크를 하나씩 받아 들고 착용하는 일행들.

제일 먼저 마스크를 쓴 사무엘이 거구를 움직여 문 앞에 선다. 그래,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곰을 앞 세우는 편이 안전하겠다.

사무엘이 나무집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잔뜩 인상을 구기며 다시 나온다. 건우가 그의 뒤에 있다 물었다.

“똥 있죠?”

“…….”

“바닥에 막 널려 있죠?”

“직접 보시죠.”

“안 봐도 압니다.”

사무엘이 건우를 흘겨본다.

“보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건우가 어깨를 으쓱한다.

“생각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중곤아!”

중곤이 얼른 달려오자, 건우가 병원 쪽을 눈짓하며 말했다.

“가서 환자 이송할 사람들이랑 휠체어 가져와라. 다 마스크랑 장갑 착용시키고.”

“바로요?”

“어, 저 환자 바로 데려가야 된다.”

중곤이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건우는 아직 환자를 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보기만 해도 무슨 병인지 알아맞히는 것도 신기했다. 처음엔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다. 이제 좀 익숙해질 만해지니 이젠 환자를 보지도 않고 질환을 맞히려나 보다.

눈치를 보던 중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교수님.”

“왜.”

“무슨 병인지 아시는 겁니까?”

“어.”

“환자 안 보셨잖아요.”

건우가 중곤을 쓱 바라보자 찔끔한 중곤이 자라목이 된다.

건우가 사무엘 쪽을 힐끔 본 후에 말했다.

“야, 누가 보면 평소에 내가 너 때리는 줄 알겠다.”

“팩트로 때리시잖아요?”

“진짜 맞고 싶으냐?”

“하하…… 그건 아니죠.”

건우가 집 주변을 바라보며 말했다.

“집 전체의 악취. 이건 stool(대변)에 의한 악취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건우가 썩은 가죽이 널린 나뭇가지를 가리킨다.

“다른 집들 앞에도 가죽들이 널려 있었다. 그런데 보통 다섯 장 미만이었어. 하지만 이 집엔 서른 장도 넘는 가죽이 널려 있다.”

도망갔던 혜선이 슬그머니 돌아와 말했다.

“집주인이 뛰어난 사냥꾼이었을까요?”

중곤이 고개를 젓는다.

“가죽이 다 썩은 걸로 봐서 사냥으로 얻은 가죽을 계속 널기만 해왔던 것 같은데? 뛰어난 사냥꾼이 아니라 그냥 가죽 관리가 귀찮은 사람 아닐까? 청소 상태도 이 모양인 걸 보면 말이야.”

사무엘이 널린 가죽들을 만져본 후 말했다.

“가죽 상태가 모두 비슷합니다. 잡은 시기가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혜선이 놀라며 말했다.

“아니, 여기 동물들도 많이 안 사는 곳 같던데. 서른 마리를 동시에 잡았다고요? 진짜 뛰어난 사냥꾼 맞나 봐요.”

사무엘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부자 병이라고 했군요.”

혜선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사무엘도 그 병이 뭔지 아시는 거예요?”

사무엘이 허탈하게 웃었다.

“저도 나름 메이오 클리닉 에이스입니다만.”

“아, 죄송합니다.”

“하하, 농담입니다.”

사무엘이 웃어 보인 후 건우를 향해 말했다.

“거동이 불편해 그런 것이겠지만 집 안에서 나는 냄새와 밖의 상황, 그리고 부자 병이란 병명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답은 하나겠군요. 물론 직접 봐야 확실하겠지만.”

건우가 고개를 끄덕인 후 무표정하게 말했다.

“colorectal cancer(대장암)이다.”

중곤이 놀라 외친다.

“암이요? 암이라고요?”

대장암을 앓고 있는 환자는 많다. 수술로 완치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임시 병원에서, 샤먼의 협박을 받아가며 수술해야 하는 건 문제가 다르다.

혜선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대장암이라니, 세상에.”

건우가 놀라고 있는 중곤의 엉덩이를 툭 차며 말했다.

“빨리 사람들 불러와, 인마.”

“아, 예!”

중곤이 달려가는 모습을 우두커니 보던 혜선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근데 교수님.”

“왜?”

“대장암을 왜 부자 병이라고 불렀을까요?”

건우가 다시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환기를 계속한다.

“잘 먹으면 걸린다고 옛날에 그렇게 불렀어.”

혜선도 의사다. 대장암 발병 원인을 떠올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대장암이 발병되는 경우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 염증성 장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단순한 장염이 아니라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이 있다면 대장암의 발병 비율이 높아진다.

둘째. 대장 용종이 있는 경우. 대장내시경에서 곧잘 발견되는 용종은 장 점막의 증식으로 생긴 일종의 혹으로, 추후 대장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셋째. 가족 중 대장암에 걸린 환자가 있는 경우. 흔히 말하는 가족병력을 말한다. 대장암 중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과 유전성 비용종성 대장암은 전체 인구에서 발생 확률은 낮지만 젊은 나이에 많이 발생하고, 유전성 종양 중에서는 발생 빈도가 높아서 가족력이 있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마지막 넷째. 나쁜 생활 습관 또한 대장암의 주요 원인이 된다. 특히 식습관도 중요한데, 여러 음식 중에서도 햄, 소시지, 베이컨 등의 가공육은 대장암의 발병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들이 있다. 또한 흡연이나 음주, 비만 등도 아직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대장암 발병의 주요 위험인자로 꼽힌다.

혜선이 아직도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냄새들을 피해 조금 떨어진 후 말했다.

“그래서 잘 먹어야 걸리는 병이란 말이 나오는 거군요.”

이송 인력들이 올 때까지 계속 환기를 하고 있던 건우가 마스크와 장갑으로 무장하고 있는 봉사자들이 도착하자 말했다.

“일단 밖으로 데리고 나오세요. 갑자기 햇빛 보면 눈 다칠 수 있으니 눈은 가리고.”

“예, 교수님!”

봉사 인력들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스크를 쓰고 있긴 하지만 악취 때문에 숨을 참고 있는지 끙끙거리며 환자들을 바퀴 달린 침대에 싣고 밀어서 나온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거친 숨을 토해낸다.

“헉헉.”

“와, 냄새 진짜.”

환기를 꽤 오래 시켰는데도 저 지경이다. 건우가 실려 나온 환자에게 다가가자 사무엘도 얼른 환자가 누운 침대 옆으로 다가와 눈으로 상태를 살핀다.

“음, 무척 말랐군요. 나이는…… 아마 30대 초반 정도일 것 같죠?”

얼굴은 30대가 아니라 60대 같다. 병마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노안으로 남은 것이다. 사무엘이 흐물흐물 늘어진 피부를 살짝 잡아본 후 말했다.

“피부조직이 심각하게 늘어져 있습니다. 단기간에 급격한 체중 감소가 일어났을 때의 증상입니다.”

어찌나 피부가 늘어져 있는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환자의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보일 지경이다.

중곤이 환자를 살피며 말했다.

“여기 와서 본 부족민들은 대부분 말라 있었는데 이 사람은 무척 뚱뚱했던 것 같네요.”

늘어진 가죽들과 상반되게 복부는 심각한 팽만을 보이고 있다. 오랫동안 먹고 마시지 못했는지 피부가 다 갈라져 있다.

사무엘이 환자의 어깨를 붙잡고 옆으로 밀자 환자의 몸이 옆으로 휙 돌아간다. 저 곰은 생긴 것뿐 아니라 힘도 곰이랑 비슷한가 보다. 한 손으로 환자를 옆으로 굴리다니.

환자의 엉덩이를 가리킨 사무엘이 말했다.

“항문에 혈흔이 있습니다.”

건우가 팔짱을 끼고 물었다.

“색은?”

“검은색입니다.”

“음.”

“어렵겠군요.”

선홍색 피가 아니라 검은색 피라는 말을 들은 혜선이 얼굴을 감싸 쥔다.

“하, 미치겠네요. 샤먼 할머니 진짜 무섭던데.”

직접 몸을 만지지 않지만 쉴 새 없이 푸른빛을 토해내는 눈으로 환자를 노려보는 건우.

누가 보면 청결하지 못한 환자를 만지기 싫어 저러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번에 파견 온 의사들의 상당수가 하산병원의 의사들이기에 건우가 본래 저런 식으로 환자를 살핀다는 것을 알고 있어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사무엘이 건우 옆에 서서 물었다.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아무래도 TNM 4기로 보입니다.”

얼마 전에 수술한 식도암 환자는 2기였다. 2기와 4기는 난이도가 하늘과 땅 차이다. 좋은 환경에서 수술해도 실패 확률이 높다. 보통의 병원에선 4기로 판정을 받으면 수술 불가로 판단하는 경우도 많을 정도다.

중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건우에게 말했다.

“교수님. 가능할까요?”

건우는 당연히 수술을 할 것이다. 중곤이 아는 건우는 항상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건우는 신이 아니다. 모든 환자를 살릴 순 없다. 하지만 눈 앞의 이 환자를 살리지 못하면 다른 환자들을 진료할 기회를 잃게 된다. 눈앞에 환자를 두고 그냥 물러나야 한단 말인가?

건우가 환자를 노려보다 병원 쪽을 눈짓한다.

“환자 옮겨. 가서 검사 돌리고.”

“하…… 그래야겠죠.”

환자가 이송되기 시작하자, 가만히 멀리 떨어진 샤먼의 집을 노려본 건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를 간다.

“내가 망할 무당 할망구 따위한테 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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