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186화
19. 나미비아(6)
건우가 Octopus 개창기를 깊게 걸고 미상엽을 당겨 망낭후벽을 넓게 전개하자, 혜선이 위를 좌측으로 견인하는 것으로 위췌주름을 늘린다.
즉시 좌위 동정맥을 정점으로 하는 V자 모양의 후복막 절개를 한 중곤이 메스를 은비에게 넘기려 하자 건우가 막아 세운다.
“더해.”
중곤과 혜선이 놀란 얼굴로 건우를 본다. 중곤이 가만히 복강 내를 보고 있는 건우를 보며 더듬거린다.
“하지만…….”
“하라고, 인마. 자신 없어?”
“…….”
“잘하니까 더 시키지, 못했으면 더 시켰겠냐?”
속으로 ‘못할수록 더 시키면서’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이건 더 배울 기회다. 중곤이 얼른 손을 내밀자, 은비가 웃으며 새 메스를 꺼내 넘겨준다.
“어디까지 할까요? 후위동맥까지?”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중곤이 고개를 끄덕이며 V자로 절개해 둔 환부의 우변을 대동맥열공의 우엽을 구성하는 횡격막각 위를 상행시키고, 소망절개로 연결시킨다.
좌변은 위비간막의 상단, 즉 망낭좌상 구석으로 향하게 하자 후위동맥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심스럽게 절제한 중곤이 슬쩍 건우를 본다. 말없이 복강을 바라만 보고 있는 건우의 모습에서 현재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수술 절차가 옳다는 확신을 가진 중곤이 눈웃음을 짓는다.
그때 건우가 은비를 향해 손을 내민다.
“은비 씨, 보비(Bovie).”
메스가 잘라서 절개하는 도구라면 보비는 지져서 절개하는 도구다.
만년필처럼 생긴 보비를 받은 건우가 손가락 안에서 보비를 빙글 돌린 후 옆으로 내준다.
갑자기 자신에게 들이밀어진 도구를 보고 큰 눈을 깜빡이는 혜선.
“네?”
“잡아.”
“…….”
“언제까지 보조만 할래?”
“하, 하지만 전 레, 레, 레지던트 2년 차인데요.”
“그래서 계속 2년 차 할래?”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잡아, 인마.”
침을 꿀꺽 삼킨 혜선이 할 수 없이 보비를 잡자, 건우가 복강을 턱짓하며 말했다.
“림프절을 포함하는 좌위 동정맥 주위의 지방조직을 자르는 거다.”
“…….”
혜선의 손이 약간씩 떨리는 것이 보인다. 예전처럼 못 하겠다고 하지는 않지만 떨리는 것은 할 수 없는 모양이다.
“정혜선.”
“…….”
“아직도 두려워?”
“그게.”
건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혜선을 바라본다. 가까이에 있기에 얼굴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건우의 무표정한 얼굴을 마주친 혜선이 움찔한다.
“인마.”
“네…….”
“네가 사고 친다고 내가 수습을 못 하겠냐?”
“…….”
“네가 보비로 다른 곳 지져도 내가 어떻게든 수습한다.”
“아…….”
“중곤.”
건우의 갑작스러운 실습 지시로 잠깐 수술 진행을 멈추고 있던 중곤이 얼른 답한다.
“네, 교수님.”
“무릉도원 병원에서 일 기억하지?”
“네, 다 기억합니다.”
“스스로를 못 믿으면 어떻게 하라고 했었지?”
중곤이 혜선을 힐끔 본 후 웃으며 말했다.
“스스로를 못 믿을 땐 교수님을 믿으면 됩니다.”
중곤의 말을 들은 혜선의 표정에 변화가 있다. 그녀의 얼굴 옆으로 건우의 얼굴이 다가와 함께 환부를 본다.
“들었지?”
“…….”
“날 믿어라.”
혜선의 눈빛이 달라진다. 목울대를 여러 번 꿀렁거리긴 했지만 보비를 잡은 손가락에도 힘이 들어간다. 더 이상 떨리지 않는 자신의 손을 노려본 혜선이 말했다.
“시작하겠습니다.”
“근부가 확실히 보일 때까지 간다. 중곤이 너는 동맥 이중결찰 진행해.”
“예, 교수님!”
맹장염 수술 같은 간단한 수술도 아닌 무려 식도암 수술. 게다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달려와 도와줄 다른 의사들도 부족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팔짱을 낀 사무엘이 수술실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환자의 발밑으로 이동해 모니터와 환자의 가슴 부분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오지선.
저 의사는 아까부터 단 한 번도 다른 짓을 하는 걸 못 봤다. 시선은 오직 모니터와 환자 사이를 오간다. 무서운 집중력이다.
지금은 집도의 자리에 선 중곤의 옆에 바싹 붙어 있는 은비. 저 간호사는 정말 대단하다.
건우야 능숙하니 그럴 수 있다손 치지만 능숙하지 못한 중곤이 도구를 건네받을 때도 단 한 번도 손을 더듬거리지 않도록 정확히 건넨다.
또한 도구를 전해준 즉시 다음 전달할 도구를 손에 쥔다. 웬만한 의사들보다 수술 절차를 잘 꿰뚫고 있는 것이다. 저렇게 되기까지 아마 스스로 어마어마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집도의 자리에 선 중곤. 도저히 레지던트 4년 차라고 믿을 수 없다. 물론 메이오 소속의 의사들도 레지던트 시절에 집도의 자리에 서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식도암 수술을 맡기진 않는다. GS(일반외과) 출신이라면 보통 여러 수술에 끌려다니며 보조를 하고 최종 봉합 정도를 하러 다닌다.
만약 집도의를 할 기회가 있다면 보통 항문 수술이나 맹장수술일 확률이 가장 높다.
가르치는 사람이 달라서일까? EM(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마치 GS의 전문의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저 의사는 나중에 더블 보드를 따도 충분할 것 같다.
다음으로 보비를 쥐고 신중하게 절개를 진행하고 있는 혜선. 그녀를 보고 있으면 문득 자신이 레지던트 2년 차일 때 어땠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의대 시절처럼 피를 보고 토하는 수준은 지났지만, 수술 중 위급한 상황을 맞이했을 땐 당황해서 환자 생명이고 뭐고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었다.
만약 그때의 자신에게 식도암 수술 중 보비를 맡겼다면 긴장 때문에 손을 달달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혜선은 다르다. 잠시 긴장했지만 끝내 자신이 해야 할 몫을 해내고 있다.
사무엘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 모든 것을 지휘하고 있는 건우를 보았다. 자신의 상식 안에서 저런 의사는 처음 보았다.
‘아무리 카터와 함께 있었다곤 하지만 2년 남짓. 닥터 모는 그 기간 동안 카터에게 배웠던 모든 것을 마음에 짊어지고 있다.’
원주민이 토속신앙 때문에 큰 병을 얻었을 땐 그저 죽음을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을 카터에게 배웠다고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한 카터는 환자의 보호자를 그런 식으로 설득하진 않는다. 보호자를 설득하는 과정은 오롯이 건우 스스로의 의지로 한 것이란 뜻이다.
절개를 하는 도중 제자들에게 메스와 보비를 넘겼지만 번뜩이는 눈빛은 쉴 새 없이 제자들의 수술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체크하고 있다.
두 사람이 빠르게 진행하는 수술을 일일이 모두 확인 중이란 뜻이다. 무엇보다 못 미더워하는 제자들에게 메스를 넘길 수 있는 용기가 대단하다.
만약 자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레지던트들에게 메스를 넘길 수 있을까?
‘거대한 의사의 뒤를 따르는 또 다른 거인들의 탄생.’
닥터 모라는 거함이 이끄는 배를 탄 선원들이 성장해 또 다른 배를 몰고 항해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배들은 점점 많아지고 커져, 더욱 많은 사람들을 살려낼 것이다.
사무엘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인다.
‘대단한 의사다. 그리고 이 팀도.’
사무엘의 눈이 유일하게 이 수술실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지수가 보인다.
만일을 위한 스태프라고 생각하고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저 간호사도 좀 이상하다. 수술 내내 뭔가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도 아닌 간호사가 수술 도중에 뭘 기록하는 걸까?
사무엘이 소리를 죽이고 지수 옆으로 다가가 노트를 본다. 한국어로 쓰여져 무슨 글귀인지 알아볼 수 없었던 사무엘이 속삭인다.
“저기.”
거대한 덩치가 소리를 죽이고 온다고 모를 리 없었던 지수가 고개를 들었다.
“네.”
“뭘 쓰는 겁니까?”
볼펜을 놓은 지수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느 부분에 메스를 가져다 대고, 어딜 자르는지 기록 중입니다.”
사무엘이 눈을 깜빡인다.
“왜요?”
“네?”
“그걸 왜 기록하시냐고요.”
지수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몰라 잠깐 당황하자, 수술 중인 건우가 답을 한다.
“거, 방해하지 말라니까 자꾸 스태프들한테 말을 시킵니까?”
사무엘이 머리를 긁으며 미안한 얼굴을 한다.
한숨을 쉬면서도 혜선이 쥔 보비가 제대로 된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건우가 말했다.
“회복 간호사가 환자가 어딜 어떻게 수술했는지 모르면 어쩝니까? 내 스태프들이 그냥 모니터나 보다가 V/S 이상 생기면 쪼르르 달려가 의사 불러오는 사람들인 줄 아십니까?”
“…….”
건우가 몸을 일으키며 사무엘을 돌아본다.
“내 팀에 그런 인간은 없습니다.”
“하, 하하…….”
완벽한 팀이다. 의사들뿐 아니라 간호사들까지 자신의 역할을 다 해내는 최고의 팀.
* * *
표준 수술 시간 5시간.
하지만 이 팀은 무려 3시간 만에 수술을 종료해 버렸다.
무서운 실력의 집도의가 메스를 휘두르며 빠르게 끝내 버린 것이 아니다. 제자들에게 일일이 가르치며 실습을 하게 했음에도 세 시간 만에 끝낸 것이다.
황당한 얼굴로 웃음밖에 안 나온다는 듯 실실 웃고만 있는 사무엘.
오늘은 특별히 혜선에게 최종 봉합을 맡긴 건우가 손을 늘어뜨리고 끝까지 환자를 주시한다.
마지막 봉합을 마치고 중곤이 실을 잘라주자, 안도의 한숨을 쉬는 혜선이 말했다.
“봉합 완료.”
건우가 시계를 슬쩍 확인 후 말했다.
“이름은 모르지만 하여간 원주민 아저씨 식도암 수술 종료.”
건우의 마지막 말에 스태프들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건우가 왜 웃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중환자실 준비는?”
지수가 미리 밖에 전화를 해 상황을 파악해 두었는지 즉시 답한다.
“다른 의료진들이 수술 도중에 준비하셨습니다. 이동 가능하답니다.”
건우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했다.
“옮겨.”
“네!”
중곤과 혜선, 지수가 침대를 밀고 나가자, 지선과 은비에게 눈으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곤 수술실 밖으로 나가는 건우.
사무엘이 얼른 그를 따라가며 함께 마스크와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넣는다. 방금 수술에 대해 질문을 하려던 사무엘이 문밖에 서 있는 원주민의 아내와 로이드를 보곤 물러난다.
환자의 보호자에게 수술 경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로이드와 함께 수술실 앞에 앉아 있던 원주민 아내가 문의 작은 창으로 건우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벌떡 일어나 문을 열려 하자, 로이드가 말린다.
“수술실은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원주민의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뭐라 울부짖는다. 세상 어딜 가나 환자의 가족 심정은 모두 마찬가지인가 보다. 처음 그녀 앞에 나타났을 때와 같은 무표정으로 그녀 앞에 선 건우가 경과를 전하려다 입맛을 다신다. 원주민 아내가 계속해서 뭐라고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건우가 속사포 같이 말을 쏟아내는 그녀를 바라보다 인상을 쓰며 로이드를 본다.
“뭐라는 겁니까?”
로이드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는다.
“우리 남편 살아났냐고, 진짜 병이 데려가는 걸 막았냐고, 나한테 거짓말 한 거 아니냐고 그러는 겁니다.”
건우가 인상을 구긴 후 원주민 아내를 바라본다. 아직도 울며 불며 속사포 같은 말을 쏟아내는 아내에게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추자, 그때서야 말이 멈춘다. 가만히 그녀의 눈을 바라보던 건우가 말했다.
“내가 여기 있는 한.”
건우가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로이드를 돌아보는 아내. 하지만 건우의 말이 다 끝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로이드는 다시 건우를 보라며 눈짓한다. 아내가 다시 자신을 바라보자 건우가 몸을 바로 세우며 말했다.
“신도, 병도. 내 환자를 데려갈 순 없습니다.”
로이드의 얼굴이 환해진다.
“성공하신 겁니까?”
건우가 몸을 돌리며 가운을 펄럭인다.
“당연하죠, 누가 수술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