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닥터 프랑켄슈타인-184화 (184/230)

닥터 프랑켄슈타인 184화

19. 나미비아(4)

하얀 연기가 가득한 내부.

한 남자가 바닥에 깔려 있는 짐승 가죽 위에 누워 있다. 그의 몸은 바싹 말라 뼈와 가죽만 남아 있고, 얼굴 역시 피골이 상접해 마치 거식증 환자 같아 보인다.

그가 누워 있는 짐승 가죽 주변에 먹으려 하다 토한 것 같은 토사물들이 널려 있고, 움직이지 못해 누워서 변을 해결했는지 나무집 안은 악취가 가득하다.

나뭇잎에 물을 적셔 남자의 몸을 닦아주고 있던 젊은 원주민 여성이 갑자기 문이 열리고 생소하게 생긴 동양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놀라 뭐라 외친다.

건우가 물러나며 로이드에게 눈짓하자, 그가 얼른 나서며 여성을 진정시킨다.

누워 있는 남자의 옆으로 가 쪼그리고 앉은 로이드가 여성에게 상황설명을 하는 동안 놀란 얼굴로 남자를 살핀 사무엘이 말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닥터 모?”

건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답한다.

“아까 말했잖아요.”

건우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떠올린 사무엘이 허탈하게 웃는다.

“카터…… 그가 이렇게 했다는 것이군요. 하긴 그는 아프리카를 비롯해 아마존까지 봉사를 갔었으니 이런 지식들을 가진 것이 이상하지 않겠습니다.”

음, 카터 아저씨가 아마존까지 갔었구나. 혜선이가 그 아저씨 제자가 아닌 게 다행이다. 아마존이란 말만 들어도 기겁을 하던데.

쪼그리고 앉아 여성과 대화하는 로이드. 그런데 그의 표정이 이상하다.

뭔가 답답한지 자꾸만 여성을 설득하는 듯한 뉘앙스로 대화하는 로이드를 본 사무엘이 큰 몸을 나무집 안으로 밀어 넣으며 물었다.

“뭐랍니까?”

곰 같은 덩치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 놀란 얼굴이 된 여성이 엉덩방아를 찧는다.

사무엘이 히죽 웃으며 손바닥을 보인다.

“오, 전 무서운 사람이 아닙니다. 안심하세요.”

뒤에서 고개를 내민 건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넌 산에서 야생 곰 만났는데 걔가 나 안 무서운 곰이야 하면 그래 알았어 하고 할 일 하냐? 쯧쯧.

건우가 물었다.

“뭐래요?”

로이드가 어찌 설명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신이 남편을 중히 쓰시기 위해 데려가시는 거라고…….”

아프리카 원주민이니 자신들이 믿는 신이 따로 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수술 안 받겠답니까?”

“아니…… 수술 이야긴 안 했고, 병원에 가자고 했는데 샤먼의 축복으로 충분하다고.”

“축복은 개뿔, 아픈 사람한테 장례미사 드리며 빨리 죽으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다르다고.”

“흠.”

사무엘이 거대한 덩치를 주저앉히며 경계하는 여성을 보았다. 웃음을 지었지만 그 웃음이 더 무서운지 엉덩이를 밀어 조금이라도 멀어지려 노력하는 여성.

입맛을 다신 사무엘이 말했다.

“로이드 통역 좀 해줄래요?”

“예, 사무엘.”

로이드가 여인을 진정시키며 뭐라 말을 하자, 여인이 사무엘을 두려운 눈으로 본다. 히죽 웃은 사무엘이 말했다.

“우리는 미합중국과 대한민국에서 의료봉사를 온 의사들입니다. 당신의 남편을 진료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매우 점잖은 요청. 하지만 로이드를 통해 그것을 전해 들은 여성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뭐라 말한다.

로이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신이 데려가야 할 사람이랍니다.”

“음.”

건우가 사무엘의 거대한 덩치를 밀어내며 옆에 주저앉는다. 새롭게 나타난 동양인 의사를 보고 또다시 두려운 표정이 되는 여인.

건우가 가만히 여인을 노려보다 남편을 눈짓한다.

“이봐.”

“…….”

“당신 남편, 아직 신이 데려갈 때가 안 됐어.”

로이드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거…… 그대로 통역합니까?”

“예.”

“반발할 수도 있는데.”

“그냥 하세요.”

로이드가 할 수 없다는 듯 건우의 말을 전하자 여인의 표정이 사나워지며 삿대질까지 한다.

로이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거 봐요. 당신이 뭔데 신이 데려가고자 하는 성스러운 일을 방해하냐고 하는데요.”

건우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지랄.”

“그것도 통역해요?”

“지랄.”

“예?”

두 번째 말은 로이드에게 한 말이다. 사무엘이 어색하게 웃으며 끼어든다.

“욕은 통역하지 않는 쪽이 좋겠군요.”

건우가 여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 남편을 데려가려는 건 신이 아니라 병이야.”

로이드가 더듬거리며 말을 전하자, 여인의 얼굴에 처음으로 의문이 피어오른다.

건우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병이 뭔지도 모를 테니 설명은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건우가 남편을 눈짓하며 말했다.

“당신 남편은 신의 부름을 받은 게 아니라 병으로 죽어가고 있어. 그리고 난 남편을 살릴 수 있고.”

로이드가 말을 전하자 여인은 놀란 표정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설득되지 않는 얼굴이다.

건우가 가만히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은 남편이었나?”

로이드가 통역하자 여인이 가만히 남편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건우가 그런 여인의 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프리카에 사니 아마 어릴 때 결혼했겠지, 남편이 이런 상태면 꽤 오래전부터 아팠을 텐데 집의 규모를 보면 부족들 집 사이에서도 꽤 큰 편이야. 그가 건강했을 때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지. 아픈 남편을 열심히 간호하고 있는 당신을 보면 둘 사이가 어땠을지 짐작돼.”

통역을 들은 여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건우가 천천히 일어나며 가운에 손을 찔러 넣는다.

“선택해라.”

“…….”

“신이 아닌 병이 네 사랑하는 남편을 데려가게 둘지, 아니면 다시 그의 웃는 모습을 볼지.”

로이드가 놀란 얼굴로 일어난 건우를 올려다본다. 열어두고 있던 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역광이 되어 어둡게 보이는 건우의 얼굴.

떨리는 눈동자로 건우를 바라보는 여인이 뭐라 중얼거리는 것이 들리자, 로이드가 놀란 얼굴이 된다. 하지만 굳이 통역은 하지 않는다.

건우가 몸을 돌려 집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딱 10분만 기다리지, 그 안에 결정해.”

건우가 집 밖으로 나가자, 다시 여인을 바라본 사무엘이 입맛을 다시며 밖으로 나간다.

로이드까지 밖으로 나와 집 앞에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선 건우 옆에서 엉거주춤한 포즈로 기다린다.

사무엘이 건우 옆에 서서 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득이 될까요?”

건우가 무심한 얼굴로 집을 바라본다.

“신을 믿습니까?”

“당연합니다.”

“무슨 신을 믿습니까?”

“천주교입니다.”

“신실한 교인입니까?”

“물론입니다, 모태신앙이거든요.”

“당신이 믿는 신과 가족을 바꾸자고 하면 바꿀 겁니까?”

“…….”

쉬이 답을 하지 못하는 사무엘. 한 번도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애초부터 궤변에 가까운 질문이었으니 더하다.

건우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가족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겁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여인이 뛰어나온다. 안에서 울고 있었는지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뭐라 외치자, 로이드가 기쁜 얼굴로 외쳤다.

“병원으로 데려가 달랍니다! 치료받겠습니다!”

사무엘이 손가락을 튕기고, 건우는 즉시 위성 전화를 든다.

“중곤, 나다. 바로 수술실 꾸려. 오지선 선생 대기시키고. 그래, esophageal cancer(식도암)이다. 여기 마을 초입에서 왼쪽으로 여섯 번째 집이다. 사람 몇 보내, 환자 옮겨야 되니까.”

간단한 통화를 마친 건우가 위성 전화로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곧 애들이 올 겁니다. 로이드는 여기 있다가 같이 오세요.”

로이드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예, 닥터!”

건우가 몸을 돌려 병원 쪽을 향한다. 아직 몇 집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것을 노려본 건우가 터벅터벅 병원 건물 쪽으로 향한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사무엘이 빙긋 웃다가 문득 아까 여인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로이드에게 물었다.

“그런데 로이드.”

“예, 사무엘.”

“아까 말입니다, 닥터 모가 저 여성을 설득할 때, 저분이 뭔가 중얼거렸잖아요?”

“아…….”

“그때 뭐라고 한 겁니까? 따로 통역이 없어서. 혹시 욕을 한 겁니까?”

“하하…… 아닙니다.”

“그럼요?”

로이드가 멀어지고 있는 건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Voodoo(부두)…… 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눈썹을 꿈틀거린다.

“부두? 그거…… 부두교 할 때 쓰는 그 부두 말입니까? 막 흑마술 같은 거 하고 동물의 뼈로 제사 지내는?”

로이드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양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지만 사실 부두는 아프리카 신의 이름입니다. 불멸의 존재가 되어 죽을 수가 없는 신. 모든 질병에 면역력이 있고 어떤 부상을 입어도 회복된다는 전설이 있죠.”

로이드가 멀어지는 건우의 뒷모습을 보곤 기도를 올리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남편을 신이 데려갈 것이라 말했던 여인이 닥터 모를 남편을 살려줄 신으로 본 겁니다.”

“하, 하하…….”

로이드가 건우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다 물었다.

“그런데 사무엘.”

“네.”

“아까 닥터 모가 식도암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암 수술을 여기서 할 수 있을까요? 스태프는 충분한 겁니까?”

사무엘이 아까 봤던 중곤과 혜선을 떠올리며 말했다.

“글쎄요, 일단 의사는 충분합니다. 간호사들도 많고, 문제는 AN(마취의)인데…… 이런 환경에서 마취 및 환자 관리를 제대로 할 마취의사가 있을지…….”

“MSF엔 없습니까?”

“네, 저흰 없습니다.”

“음…… 큰일이군요.”

* * *

급히 꾸려진 수술실.

미리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음을 예견하고 오자마자 수술실부터 준비한 은비와 지수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위성 전화를 받는 즉시 식도암에 관련된 모든 도구들을 준비해 놓고 기다린 은비와 지수는 건우가 돌아오자마자 소독 및 복장을 점검한다.

뒤늦게 돌아온 사무엘이 급히 수술복을 입으며 말했다.

“저도 참관하겠습니다.”

마스크를 쓴 건우가 인상을 쓴다. 췌장이식외과 의사가 식도암 수술엔 왜 들어온다는 걸까? 뭐, 메이오 클리닉 의사인데 설마 방해가 되진 않겠지.

건우가 수술복을 입고 급히 들어오는 중곤과 혜선의 뒤를 바라본 후 물었다.

“오지선 선생은?”

“준비 중이십니다. 곧 오실 거예요.”

“음.”

한국어로 오간 이야기라 알아듣지 못한 사무엘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마취가 관건이군요. 경험 있으십니까?”

사실 사무엘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상대가 EM(응급의학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도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가지고 있는 것이 EM 전문의였기에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때 환자를 데리러 간 의료진들이 바싹 마른 남성 환자를 태운 침상을 밀고 수술실 바로 옆방으로 들어와 안을 향해 외쳤다.

“환자 도착했습니다!”

건우가 중곤과 혜선에게 눈짓을 하자, 얼른 옆방으로 가는 중곤과 혜선.

그때 안경을 쓴 여의사가 마스크를 쓰고 수술실로 들어와 건우에게 눈인사를 한다.

또 다른 수술 스태프이겠거니 한 사무엘이 중곤과 혜선이 밀고 들어온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의 감은 눈을 억지로 뜨게 한 후 흰자위를 확인한다.

“음, 의식이 없군요. 의식 없는 환자는 마취 반응이 없을 텐데 괜찮겠습니까?”

건우가 몸으로 사무엘을 툭 밀치며 말했다.

“방해되니까 비켜요.”

“…….”

그때 안경을 쓴 여의사가 빠르게 링거를 걸고, 주사를 준비하는 것이 보인다. 저 의사가 마취하는 걸까? 사무엘이 물러나며 여의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의식이 없는 환자를 마취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확실히 마취가 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울 텐데.’

링거의 줄에 주삿바늘을 연결한 여의사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마취 시작합니다.”

얼마나 걸릴까? 아마 마취를 하고 통증 확인을 마치려면 20분은 넘게 걸릴 것이다. 상대의 의식이 온전치 않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의사는 주사 두 개를 놓은 후 가만히 환자의 머리 쪽에 서서 호흡을 관찰한다. 마취 전문의인가?

그리고 5분도 안 된 시간이 흐른 후 여의사가 건우를 바라본다.

“마취 완료.”

사무엘이 놀란 얼굴로 감탄성을 내뱉는다.

“Oh, My…….”

가만히 기다리던 건우의 반응이 더 황당하다. 수술대 위에 선 건우가 무심하게 말한다.

“평소보다 오래 걸렸네요.”

오지선 선생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Sorry, Captain(미안해요, 선장).”

별일도 아니라는 듯 모니터링 기기를 끌어오는 오지선. 두 사람을 보는 사무엘만이 놀란 얼굴로 두리번거린다.

‘뭐야, 이 말도 안 되는 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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