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181화
19. 나미비아(1)
대한민국 인천공항에서 나미비아까지 가는 직항 비행기 편은 없다. neighbors 식구들은 한국 국적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간 후, 다시 독일의 뮌헨으로 이동해 나미비아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장시간 비행으로 녹초가 된 혜선이 뮌헨공항에서 마지막 비행기에 올라탄 후 검게 죽은 눈으로 시간을 보며 중얼거린다.
“세상에, 독일 시간으로 새벽 다섯 시네.”
옆자리에 앉은 중곤도 별반 다르지 않은 피곤한 기색으로 목을 풀어준다.
“진짜 멀다. 미국에 갈 때도 너무 멀다고 생각했는데 여긴 더하네.”
혜선은 아직도 걱정이 가시지 않는지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선배, 혹시 아나콘다라고 들어봤어요? 최대 길이가 6m도 넘는 뱀인데 이름의 뜻이 코끼리를 삼킨다는 뜻이래요. 머, 먹이를 물면 씹지도 않고 통째로 목구멍으로 넘겨 버리는 뱀…… 들어봤어요?”
“영화는 봤지. 막 배도 부숴 버리고 사람들 한입에 삼키는 그 영화.”
혜선이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는 듯 앞 좌석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아무리 장시간 비행을 해도 항상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건우가 책을 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교수님도 아세요?”
뒤에서 뭐라 떠드는지 듣고 있지 않았는지 책에 시선을 둔 건우가 건성으로 답한다.
“뭐?”
“아나콘다요, 아나콘다! 엄청 큰 뱀! 만나면 그냥 죽는다는 그 뱀이요!”
“음.”
“들어보셨어요?”
“알아.”
“힉! 소름 끼치지 않아요?”
팔을 쓰다듬는 혜선을 돌아본 건우가 무심하게 말했다.
“아나콘다처럼 조이는 힘이 강한 대형 뱀들은 포유류의 blood pressure(혈압)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의 압력을 장시간 동안 가할 수 있다. 그 힘으로 먹이의 bloodstream(혈류)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가능하며, 뇌나 심장 등 주요 장기에 공급받는 혈류를 차단해 cardioplegia(심장마비)와 cerebral anemia(뇌빈혈성) 실신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조이는 힘이 더욱 강력해지면 반대로 먹이의 머리 쪽으로 피가 강하게 쏠리게 만들 수 있는데, 이러면 먹이는 레드아웃 현상과 동일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며 hematencephalon(뇌출혈)을 겪고 사망할 수 있다. 또한 강한 압력으로 먹이의 신경 세포를 손상시켜 저항을 둔하게 만들 수 있다.”
말을 걸었던 혜선의 얼굴이 흙빛이 된다. 잔뜩 겁을 먹고 손을 발발 떠는 혜선을 쓱 바라본 건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참혹한 말들을 쏘아댄다.
“대형 그린아나콘다는 먹이의 척추 인대를 파열시켜 척추를 탈구시킬 정도로 강한 힘을 내기도 한다. 4.6m의 아나콘다가 약 50㎏ 정도 나가는 수컷 흰꼬리사슴의 척추를 탈구시킨 사례도 관찰되었고, 4.5m의 아나콘다가 1.8m가량 되는 카이만 악어의 척추를 접어버린 사례도 존재하지.”
말을 걸기 위해 엉거주춤 서 있던 혜선이 좌석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하, 우린 끝났어…….”
건우의 이야길 듣고 있던 중곤도 약간 긴장되는지 묻는다.
“저기 교수님. 설마 저희가 가는 쪽에 그런 뱀이 사는 건 아니겠죠? 안전 검사 완료된 지역 맞죠?”
앞자리에 있던 건우가 한숨을 쉰다. 잠시 뜸을 들였던 건우가 획 돌아보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나콘다는 주로 중남미에 서식한다, 이 무식한 것들아! 아프리카에 있는 아나콘다는 바위 밑 아주 깊은 곳에 사는 비교적 작은 녀석들이라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오히려 사람들한테 잡아먹히는 놈들이 뭐가 무서워, 이것들아!”
중곤은 찔끔했지만, 혜선은 여전히 넋이 나가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작은 뱀들로 뱀술 담가 먹는다고 뱀이 안 무서운 건 아니잖아요, 힝.”
“그건 독이 있으니까 그렇지 이놈아! 아나콘다한테 독 있단 소리 들어봤냐, 엉?”
“힝…….”
이놈의 자식들이 그렇게 가기 싫으면서 왜 오겠다고 억지를 부린 건지.
비행 내내 아프리카에 살지도 않는 동물 이름들을 나열하며 그런 아이들을 만나면 어떻게 도망을 가야 하는지, 어찌 유인하고 어찌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대해 토의하는 두 사람이다.
그럴 시간에 나미비아 사람들이 어떤 질병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봐야지, 이 한심한 것들이. 아직 한참 더 성장해야 할 두 사람이다.
혼자 씨부렁거리며 욕을 내뱉던 건우의 눈꺼풀도 잠을 이기진 못했다.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것이 그만 나미비아 빈트후크 호세아 쿠타코 국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자버렸다.
하지만 일행의 여정은 끝이 아니었다. 이곳은 나미비아의 수도이다. 의료봉사를 갈 지역은 의료 사각지대이니 당연히 이곳이 아니다. 다시 대형 버스에 올라탄 사람들이 여덟 시간이 넘는 장거리를 달린다.
창밖으로 보이는 사막 지형들을 살피던 혜선은 어느새 겁먹었던 것도 잊고 신이 나서 외친다.
“선배! 저기 봐요! 아기 영양이에요! 와, 엄청 귀여워!”
“선배, 선배! 저거 설마 코뿔소예요? 내 눈으로 살아 있는 코뿔소를 보다니!”
가끔 도로에서 아주 먼 곳에 사자무리들도 보이고, 치타도 보인다. 하지만 한낮에 움직이는 동물들이 아니라 바닥을 뒹굴며 하품만 하고 있으니 별로 무서운 기분이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네가 차에서 내리면 다 달려올 거다, 이놈아. 침을 질질 흘리면서.
공항에서 버스로 갈아탈 때 함께 차에 오른 나미비아인 현지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영어로 설명 중이다.
“나미비아는 인구의 대다수가 자급 농업과 목축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몽골 다음으로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적은 나라라서, 사람보다 동물을 보는 쪽이 더 쉽기도 합니다. 총인구는 약 180만 명입니다.”
음, 180만 명이란다. 경기도 인구가 1,341만 명인데. 우리나라 여덟 배가 넘는 크기인데 인구가 그 모양이면 가이드 말처럼 사람 구경하기 힘든 나라가 맞는 것 같다. 가이드가 다시 말을 잇는다.
“나미비아의 법적 공용어는 영어지만,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비율은 별로 높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각 부족의 언어를 사용하며, 우리가 찾을 카방고족은 그들의 고유 언어를 사용합니다. 전체 인구의 9%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카방고족은 나미비아의 북동부에 있습니다.”
가이드는 유창한 설명을 하며 특이 지형이 나올 때마다 마이크를 들고 관광 온 여행객들을 상대하듯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물론 그가 자원봉사자가 아닌 사단법인에서 고용한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참을 더 달려 카방고 근처를 지나는 버스의 창문에 찰싹 달라붙은 혜선이 반가운 얼굴로 외쳤다.
“오! 강이다! 강이 있어요! 아프리카에도 강이 있구나!”
중곤도 놀란 얼굴로 창문에 붙는다.
“뭐야, 꽤 큰 강이네? 여긴 물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비행기에서부터 버스까지 내내 잠만 자던 은비와 지수도 부스스한 눈으로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그때 가이드가 씁쓸한 말투로 말했다.
“오카방고 강은 남부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로 긴 강으로, 앙골라에서는 카방고 강이라고 부릅니다. 원주민들의 언어로 카방고 강은 ‘결코 바다를 찾지 못하는 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코 바다를 찾지 못하는 강? 무슨 뜻일까? 가이드가 설명을 잇는다.
“강은 넓고 깊은 데다가 끊임없이 유유히 흐르지만 절대로 바다와 만나지 못하는 운명의 강입니다. 강이 가진 운명은 ‘소멸’. 바다를 향하는 강이 아니라 천천히 서쪽으로 흘러 칼라하리 사막과 광활한 평야 위로 강물이 퍼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바다로 흘러나가지 못하는 대신 칼라하리 분지의 사막 모래밭 안이나 평야의 초원 아래로 스며드는 강. 결국 강의 운명은 점차 사라지는 것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멋진 강이 얼마 후에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약간 저리다.
가이드가 버스 기사에게 방향을 지시한 후 다시 마이크를 든다.
“자, 이곳에서의 안전 수칙은 하나입니다. ‘아무리 더워도 절대 물에 들어가지 말라’ 다들 꼭 기억해 주셔야 합니다.”
중곤이 손을 들며 물었다.
“물에 악어가 삽니까?”
가이드가 웃으며 말했다.
“물론 악어도 삽니다만, 제일 경계해야 하는 건 하마입니다. 여러분 슬리퍼에 그려진 귀여운 하마를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그들은 달리는 보트도 한입에 물어뜯어 두 동강을 냅니다. 성격도 매우 포악하고 덩치답지 않게 엄청나게 빠르지요. 이곳에는 주로 코끼리와 하마들이 많으니 두 동물을 가장 조심하셔야 합니다.”
기사가 천천히 버스를 멈추는 것이 느껴진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여행의 끝이 보이려나 보다. 가이드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도착했습니다. 다들 내리세요. 절대 통제 구역을 벗어나시면 안 됩니다. 짐을 다 내릴 때까지 버스 주변 3m 내에서 대기해 주세요.”
잔뜩 굳은 몸을 빨리 펴고 싶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하지만 건우는 그들을 바라보며 가만히 기다린다. 건우의 성격 때문이다.
그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나서도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난 뒤에야 천천히 일어난다.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부대끼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느긋하게 기다리다 마지막으로 내린 건우가 아프리카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매우 건조한 기후였지만 그래도 별로 덥진 않다. 한국의 10월 초 기온과 매우 흡사한 것 같다.
물론 너무 건조하고 공기 중에 미세한 모래들이 섞여 있어 상쾌한 기분은 들지 않지만.
카방고도 도시지만, 의료 사각지대는 도시 외곽으로 나가 한참을 달려온 곳에 있다.
건물은커녕 나무로 만든 삼각형 집들만 드문드문 늘어서 있는 곳이다. 가이드는 짐을 내리는 사람들을 독려하며 농담을 던진다.
“아아, 걱정 마세요. 저희 숙소는 저곳이 아니니까. 저긴 부족민들이 사는 곳입니다. 저희 숙소는 훨씬 좋아요.”
알게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는 스태프들이 보인다.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 할 수 없이 엄청난 양의 짐들을 손수 옮기는 스태프들의 눈에 회색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지저분하고 열악해 보이긴 하지만 다행히 유리창이 있다. 사막 기후에 유리창 없는 집에 살면 아침에 콧속이 모래 먼지로 가득 찬다. 유리창의 존재만으로 훌륭한 숙소다.
짐을 들고 낑낑대며 숙소로 가 방을 배정받은 건우가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대부분 2인 1실이었는데 교수라고 특혜를 주는지 혼자 1인실이다. 그래 봐야 침대 하나 달랑 있고, 화장실이 딸린 작은 방이었지만. 샤워기는 없다. 아까 가이드 말이 공용으로 사용해야 한단다.
유리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끄트머리에 사막과 같은 색의 붉은 흙산들이 펼쳐져 있다.
이런 척박한 곳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이런 곳에 살고 있으니 의료혜택을 못 받을 수밖에. 겉으로 보면 아름답지만 내면을 보면 위독한 환자인 아프리카. 이곳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근데 어떤 놈이 문을 두드리길래 문이 부서져라 두들기는 거냐? 좀 살살 두드리지.
“누구십니까?”
건우의 목소리가 울리자 문이 부서져라 벌컥 열린다.
“오오!! 이 목소리는! 진짜 닥터 모, 당신이 온 겁니까? 으하하!”
호탕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문턱이 다 담지 못할 엄청난 덩치의 남자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타노스…… 아, 아니, 사무엘?”
뭐야, 이 아저씨 왜 여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