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150화
15. 소년이 비추는 거울(5)
늦은 밤, 건우의 집.
건우의 집은 단독주택이다. 아빠가 살아 있을 때는 아파트에 살았지만 점점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엄마는 아파트를 팔고 조금 작은 연립 빌라 전세로 들어왔다.
바로 일자리를 구하시긴 했지만 식당 일로 생활비를 충당하긴 턱도 없어 집값과 전셋값의 차액으로 몇 년을 버티다 또다시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하기를 몇 번. 결국 전셋집도 유지할 수 없어 월세로 돌렸었다.
아들이 의사가 되고 남들보다 좀 더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월세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엄마.
그러던 차에 시리아에 봉사활동을 간 아들이 행방불명됐다. 남편을 잃고 힘들게 살아온 엄마가 느꼈을 상실감은 건우로서는 감히 상상해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적같이 돌아온 아들은 본래 병원에서 잠시 근무하다 시골로 좌천되었다. 하지만 병원과 정부에서 받은 보상금과 퇴직금을 더하니 꽤 많은 돈이 남았다.
뒀다 장가갈 때 쓰라고 통장을 만들어줬지만 끝내 아들은 이제 그만 월세에서 벗어나라며 번듯한 단독주택을 전세로 얻어줬다. 그때 기뻐하던 엄마의 표정은 건우를 참으로 기쁘게 했었다.
이제는 연봉도 억대로 올랐으니 대출을 내서 엄마 소원이던 아파트를 사자고 의견을 내어 봤지만 엄마는 수중에 들어온 돈이 아니면 내 돈이 아니라며 대출받길 거부하셨다.
돈을 다 모아서 가신다며 끝내 고집을 부리는 엄마 덕에 건우 가족은 아직 단독주택 전세에 살고 있다.
밤에 집 옥상으로 올라온 건우가 밤하늘을 바라본다.
옥상이라고 해봐야 단층 주택의 옥상이라 시원한 풍경은 없다. 그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감지덕지다. 감성적인 장면이었지만 건우의 입에서 나온 중얼거림은 감성과는 거리가 멀다.
“젠장, 돼지 같은 꼬마.”
건우의 뇌리로 석진의 모습이 떠오른다. 배 아프다며 화장실 가는 동안 아이가 몽땅 먹어버린 고기를 처음부터 다시 구운 건우.
그런데 화장실을 다녀와 속이 좀 편해진 얼굴로 복귀한 석진이 또 무서운 기세로 고기를 비워간다. 조그만 녀석이 먹은 게 다 어디로 가는지.
결국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오고도 계속해서 입에 고기를 꾸역꾸역 넣는 녀석 덕분에 고기 굽는 노예가 되어버린 건우는 소고기 몇 점 먹어보지 못하고 일어났다.
다행히 진용철 회장이 집에 가서 엄마랑 먹으라며 프리미엄 등급 소고기를 4㎏이나 싸줬으니 나중에라도 먹어야지.
옥상 돌난간에 엉덩이를 붙인 건우가 진용철 회장이 준 서류 봉투를 물끄러미 본다. 여기에 혜영 이모에 대한 기록이 있다.
한참 봉투를 바라보던 건우가 서류를 꺼내자, 출생부터 시작한 자세한 정보들이 기재된 서류 몇 장이 보인다.
젠장 망할 대한민국. 개인정보 보호라곤 개미 눈물만큼도 없는 나라. 구시렁거리면서도 진용철 회장이 준 정보를 자세히 보는 건우.
혜영 이모는 사망 당시 47세였다. 3년이 넘게 흘렀으니 지금 살아 계셨다면 50줄에 들어섰겠지.
이모는 충북 괴산군에서 태어났다. 농사짓는 집안에 외동딸이었던 이모는 늦둥이였던 모양이다. 이모가 스물이 되고 얼마 후 부모님이 돌아가셨단다. 이모도 편안한 인생은 아니었을 것 같다.
얼마 없는 밭과 집을 정리해 서울로 올라온 이모는 고시원에 살며 공부해 간호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작은 병원부터 시작해 점점 큰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모의 커리어는 개성대학교 동산병원 간호장을 거쳐, 무릉도원 병원에서 끝난다. 이후부터는 자원봉사 경력이 기술되어 있다.
“전라남도 영광군 송이도, 전라남도 진도군 가사도,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도.”
이모가 다녔던 의료 사각지대들이 명기되어 있다. 이뿐 아니다. 서울이나 경기에 있는 노인정, 고아원 등에도 봉사를 다녔다.
가정간호 봉사도 경력에 보인다. 돈 한 푼 안 되는 자원봉사를 몇 년씩이나 한 혜영 이모의 마지막 경력에서 시선이 멈춘 건우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MSF(국경 없는 의사회) 시리아 파견봉사 중 사망(死亡).”
건우가 서류를 쥐고 한숨을 쉰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 다 잃고 사력을 다해 살았잖아요, 이모. 이른 나이지만 은퇴를 했으면 모은 돈으로 하고 싶은 거 좀 하면서 살지. 죽기 전까지 남을 위해서만 살았네요, 이모는.”
이모는 집도 없었다. 돈이 없어도 월셋집은 있어야 사람이 살 텐데 이모는 재단 사무실 한편에 침대를 두고 살았단다.
얼마 전에 찾아간 다 쓰러져 가는 건물 사무실에 이모가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 한숨이 나온다. 바보 같다.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하지만 왜일까? 이상하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런 걸까? 불쌍한 인생을 보고 있음에도 심장은 잠잠하다. 마치 내 인생은 네 생각처럼 불쌍한 삶이 아니었다는 듯.
이모 생각을 하자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시리아 파견 전에는 건우도 담배를 태웠다. 이식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중증 환자로 분류된 3년간 의도치 않은 금연을 하게 되어 이참에 끊자는 생각으로 지금껏 안 태웠는데. 오늘은 생각이 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집에 담배와 라이터가 없다. 그렇다고 편의점까지 가긴 귀찮은 걸 보니 엄청 당기는 건 아닌 모양이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담배 생각을 떨쳐낼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 끄트머리에 서서 심호흡을 하는 건우. 한참 흐린 서울 하늘 아래에서 심호흡을 하는 건우의 심정은 아직 복잡하다.
‘왜 그렇게 살았어요, 이모? 남을 위한 삶을 사는 것도 좋지만 자신부터 돌봤어야지. 사는 집도 없어서 재단 사무실 한편에 침대 펴고 사는 삶이 사람 사는 겁니까?’
아직 건우는 혜영 이모가 이해되지 않는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건우가 그만 집으로 내려가려 몸을 돌렸을 때 조금 전 자신이 앉아서 서류를 보던 자리에 앉아 있는 석진이 보인다.
“뭐야, 소 잡는 돼지?”
건우가 놓고 간 서류를 읽어보고 있던 석진이 고개를 든다.
“소 잡는 돼지가 뭐예요? 소랑 돼지랑 싸우면 당연히 소가 이기지 않아요? 덩치가 엄청 크잖아요.”
“그러니까. 근데 내가 오늘 돼지가 소 잡는 걸 봤거든.”
“우와, 어디서요? 신기하다. 그런 거 있으면 나도 보여주지.”
넌 볼 수 없어, 인마. 그건 네 스스로의 모습이니까. 동영상이라도 촬영해 주랴? 아직도 소고기 때문에 삐쳐 있는 건우가 석진을 위아래로 보며 물었다.
“왜 안 자냐?”
“그냥, 일어났는데 아저씨가 없어서.”
“…….”
건우의 눈빛이 흔들린다. 이 녀석. 불안했던 거구나. 하긴 열 살밖에 안 되는 녀석이 엄마 품 벗어나 친척도 아닌 처음 보는 아저씨 집에 맡겨졌으니 불안하기도 하겠지.
소고기 생각이 저절로 지워진 건우가 석진의 옆에 앉았다.
“서울 하늘 참 개떡 같지?”
“좀 그래요, 너무 흐려서. 비도 안 오는데 왜 이래요?”
“지난번에 말해줬잖아.”
“아, 중국이요?”
“그래, 근데 뭐 중국 아니더라도 여긴 공기가 나빠. 너 사는 곳이 훨씬 좋지. 근데 그렇다고 사람 못 사는 곳은 아니다.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니까.”
“음, 그렇구나.”
“어쩌면 사람이 너무 많이 살아서 그런지도 모르고.”
어린 석진에게 건우의 화법은 이해하기 어렵다. 여러 번 반복되어 그런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서류를 읽어보는 석진.
별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라 읽는 것을 내버려 두고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리는 건우.
한참 시간이 지나자 상념에 잠겨 있던 건우의 귀로 석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멋진 사람이네요.”
건우의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내가 원래 좀 그렇지.”
“아저씨 말고요.”
처음부터 자신이라고 생각하진 않고 농담하듯 말한 건우가 석진을 보자, 서류를 들고 있는 석진이 보인다.
“이 사람이요.”
“이모?”
“여자예요?”
“이름이 김혜영이잖아.”
“이름이 김혜영이라고 여자라는 법은 없죠. 우리 엄마 이름은 김철영인데 여자거든요.”
“…….”
이 자식이 누굴 가르치려고. 근데 이건 맞는 말 같네. 이름으로 사람 판단하면 못 쓰지. 한가한 원장님도 사실 전혀 한가하지 않은 양반이니까.
“그래, 하여간. 이모가 뭐가 멋지냐?”
석진이 서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자기를 위해 살았잖아요.”
건우의 눈썹이 일그러진다.
“너 솔직히 한글 읽을 줄 모르지?”
석진이 발끈한다.
“알거든요! 여기 이거 다 읽을 줄 알거든요! 여기 사망 옆에 한자 쓰여 있는 거 빼고.”
건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서류를 눈짓한다.
“아는 놈이 그 서류에 쓰여진 거 보고 뭘 자기를 위해 살았대? 평생 남 위해서만 산 바보 같은 사람인데.”
석진이 억울한 표정으로 건우를 째려보곤 볼을 부풀린다. 삐쳐서 고개를 획 돌려 버린 석진이 입을 닫아 버리자, 도대체 왜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진 건우가 석진을 쿡쿡 찌른다.
“야, 삐쳤냐?”
“쳇.”
“삐쳤냐고.”
“삐친 거 아니고 화난 거거든요!”
“그게 그거지, 인마.”
“아니거든요! 삐친 거랑 화난 거랑 다르거든요!”
귀여운 자식. 자기도 모르게 무심한 얼굴이 무장해제된 건우가 실소를 짓는다.
“알았어, 내가 미안하다.”
석진이 눈을 흘긴다.
“됐거든요?”
토라진 아이를 달래줄 방법 따윈 모르는 건우가 고개를 돌려 버린 석진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다 씩 웃는다.
“야, 너 오늘 소고기 맛있었냐?”
“…….”
“엄청 맛있지? 그거 프리미엄 등급이거든. 엄청 비싸. 아마 다시 먹어보기 힘들걸? 의사라서 연봉 많이 받는 나도 사 먹기 부담스러운 가격이니까.”
“아! 그게 뭐요! 이미 다 먹었는데.”
“No, No. 소인에겐 아직 소고기 2㎏이 더 있사옵니다, 전하.”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석진이 어느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또 있어요?”
“어, 내가 잘 모셔놨지. 또 먹고 싶지?”
“네!”
“그럼 화 풀어. 그거 꽁꽁 숨겨놔서 나밖에 못 찾아.”
진용철 회장이 준 소고기는 4㎏이었지만 이 꼬마 돼지가 그걸 다 먹어버릴까 봐 용의주도하게 2㎏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건우.
그의 속셈도 모르고 이렇게 화를 풀면 약간 모양 빠지지 않을까 잠시 고민한 석진은 결국 소고기의 유혹은 뿌리치지 못하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요.”
젠장, 이렇게 귀엽기 있냐, 너? 심장이 아프진 않은데 간질간질하잖아, 너 때문에. 건우가 웃을락 말락 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이제 이모한테 왜 평생 자길 위해 살았다고 했는지 말해줘. 내 눈으로 보기엔 평생 남을 위해 산 사람인데.”
석진이 잠시 서류를 물끄러미 보다 말했다.
“나 자원봉사가 뭔지 알아요.”
건우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뭔데?”
“돈 안 받고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거잖아요.”
피식 웃은 건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녀석 막연히 남 돕고 사는 사람들을 착한 사람들, 멋진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었구나.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이 된 건우가 다시 하늘이나 보자는 생각으로 고개를 드는 순간 석진의 말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건 결코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고 했어요.”
건우가 다시 아이를 본다. 서류에 눈길을 주고 있는 석진이 말했다.
“남을 돕고 살겠다는 마음을 가진 건 이모잖아요. 그러니까 이모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던 거 아닐까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건우의 미간이 좁아진다.
‘혜영 이모에게 남을 위한 삶을 강요한 이는 없다. 선택은 이모가 했다. 결국 이모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다 간 거다…….’
건우가 놀란 얼굴로 석진을 본다. 아이는 자기가 말한 것이 옳다는 걸 모르는지 오히려 눈치를 본다. 괜한 말을 해서 또 비웃음거리가 될지 모른다 생각한 모양이다.
젠장, 이렇게 어린 꼬마도 생각할 수 있는 걸 왜 자신은 떠올리지 못했을까?
가만히 눈치를 보는 석진을 보던 건우가 그답지 않게 너털웃음을 흘린다.
“그래, 네가 나보다 낫다.”
건우의 말에 얼굴에 기쁨이 번지는 석진. 귀여운 꼬마 얼굴을 바라보던 건우가 미소 지으며 일어난다.
“야식이나 먹자, 라면 어때?”
“좋아요!”
“좋아, 내 실력 한번 보여주지. 앞장서라, 소 잡는 돼지.”
“네! 어, 근데 소 잡는 돼지라는 거 나 말하는 거였어요?”
“아냐, 아무것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