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닥터 프랑켄슈타인-138화 (138/230)

닥터 프랑켄슈타인 138화

14. 사자의 심장(7)

찌르는 듯한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급히 막대사탕을 찾아 입에 넣는 건우. 할아버지를 말리던 할머니가 소년에게 말했다.

“알았으니까 일단 피해라, 동네 어른들이 보면 경을 친다, 석진아!”

석진이라 불리는 아이는 울먹거리며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들을 바라본다. 원망스러움과 갈급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눈빛이다. 그러더니 몸을 휙 돌려 마구 달려간다. 아이가 달려간 자리마다 눈물 자국이 남는다.

할아버지가 악다구니를 쓰며 외친다.

“사람 죽인 놈이 낳은 놈이 어딜 마을을 쏘다녀! 내 이놈의 자식을!”

석진이 몸을 피하자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보며 눈을 부라린다.

“진짜 이럴 거예요?”

부부 사이는 아니고,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이인 듯한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눈빛을 받곤 헛기침을 한다.

“아니, 뭐 나만 그런가? 댁은 솔직히 안 찝찝해? 살인범 자식 놈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거 말이야.”

“아니! 죄가 있으면 부모한테 있지, 왜 애한테 그래요?”

“애가 죄 없는 건 나도 알지! 근데 저놈한테도 살인범 피가 흐를 거 아니냐 이 말이야!”

할아버지를 뜯어말리던 자원봉사자 중 남학생이 흥분해서 따져 묻는다.

“아니, 할아버지! 여기가 조선 시대도 아니고, 고작 열 살밖에 안 되는 애한테 그게 무슨 모진 말씀이세요?”

평소 같으면 새파랗게 어린놈이 어쩌고 할 노인 같아 보였지만 자기 병을 보러 와준 봉사자들에게까지 화를 낼 인사는 아닌지, 입을 닫는 할아버지.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불편하다.

그때 사탕을 문 건우가 나선다.

“아이도 돌아간 것 같은데 이제 그만 집에 가 보시죠.”

“…….”

할아버지는 건우 눈치를 보다 허리를 숙인다.

“소란 피워서 죄송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예, 괜찮으니 어서 가 보세요.”

할아버지가 여러 번 뒤를 돌아보며 허리를 숙인다. 옛 사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노인이긴 해도 은혜는 아는 순박한 사람인가 보다.

홀로 남은 할머니가 한숨을 쉬는 것을 본 건우가 의자를 눈짓하며 말했다.

“앉으세요.”

“…….”

할머니는 자기 진료 차례지만 어지간히 마음이 아픈지 연신 눈에 눈물이 고여 있다.

감기 증상이 있는 할머니에게 약을 처방한 건우가 조용히 물었다.

“방금 그 아이 집이 어딥니까?”

족집게 같은 선생이긴 해도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에 무심한 목소리로 환자를 보기에 그저 실력만 좋은 의사라고 생각했던 할머니는 조금 놀란 얼굴로 되묻는다.

“가, 가 보게요?”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이 너무 크다. 다시 자기 일에 복귀했던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자신 쪽을 향하는 걸 느낀 건우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예, 집 아십니까?”

“알긴 아는데.”

“알려주세요.”

할머니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아이고, 의사 선생님이 사람도 참 좋네. 우리 손녀 사위 삼고 싶다.”

“그건 제가 사양하죠.”

“응?”

“집 모르십니까?”

“알아, 내가 약도 그려줄게.”

“부탁드립니다. 여기 떡이랑 키트 챙겨주세요.”

자원봉사자들이 얼른 떡과 키트를 챙겨드리자, 약도를 그려주는 할머니가 건우 손에 종이를 쥐여주며 부탁한다.

“불쌍한 집 애들이니 잘 좀 부탁해요. 그리고 이거.”

할머니가 종이와 함께 쥐여준 건 꼬깃꼬깃한 오천 원권 지폐였다.

“돈은 못 받습니다.”

할머니는 혹시 돌려줄까 걱정됐는지 얼른 가방을 싸 후다닥 밖으로 뛴다.

“몰라, 안 받을 거면 버려요. 나 갑니다?”

도망치듯 떠나 버리는 할머니. 물끄러미 구겨진 지폐를 보고 있는 건우 옆으로 온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가끔 저런 분들 계세요. 고마워서 뭐라도 주고 싶은데 줄 게 그거밖에 없는 거죠. 그냥 받으세요. 큰돈이면 몰라, 그런 정도는 괜찮습니다. 원래 어른이 주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게 우리나라 문화 아니겠습니까, 하하.”

건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지폐를 내민다.

“가지실래요?”

“예? 아이고, 선생님이 진료 보시고 받으신 건데 제가 왜요. 넣어두세요.”

“연봉 얼마라고요?”

“…….”

단 한마디에 울상이 되어버린 의사.

상처받은 의사를 물끄러미 본 건우가 말없이 지폐를 주머니에 넣고 약도를 챙겨 일어나자, 한성주가 얼른 물었다.

“선생님, 진짜 가 보시려고요?”

상처받아 널브러진 의사를 다독이던 다른 의사가 말했다.

“사정이 딱하긴 한데 왕진 봉사까진 저희 영역이 아니라서요. 이게 말하긴 좀 그렇습니다만, 원래 사람이 한번 해주고 나중에 안 해주면 원망을 하게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저흰 일괄적으로 규칙을 정해서 움직입니다.”

가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한데 나중에 이 일로 곤란을 겪을까 걱정하는 얼굴들이다.

건우가 그들을 한번 쓱 본 후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사단 법인 좋은 사람들에 소속되어 봉사하시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전 아니죠. 그러니 제가 움직이는 건 제 자유의지입니다.”

의사들이 얼굴을 살짝 찡그린다. 마을 사람들은 건우와 자신들이 함께 움직이는 걸 보았다. 그들 입장에선 건우도 좋은 사람들에 속한 의사로 볼 것이기에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후 폭풍을 받는 건 자신들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이 건우를 말리지 못하게 한다.

건우가 가방을 챙긴 후 약도를 들고 말했다.

“여기에 환자가 있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약도를 주머니에 넣은 건우가 몸을 돌려 주민센터를 빠져나가며 말했다.

“적어도 의사라면 환자가 있는 곳을 알고도 외면해선 안 되겠죠.”

뚜벅뚜벅 걸어 나가 버리는 건우. 조용한 주민센터에 남은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를 본다. 그러다 건우에게 연봉으로 상처를 받은 의사가 한숨을 쉰 후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이제 활동 시간 끝났죠? 전 그럼 개인 일 보러 갑니다.”

또 다른 의사도 얼른 가방을 챙긴다.

“저도요.”

뭔가에 쫓기는 듯 빠르게 가방을 챙겨 나서는 의사들. 갑자기 황급히 사라지는 의사들을 본 자원봉사자 여학생이 말했다.

“정리 좀 도와주고 가면 좋을걸. 치, 그냥 가버리네.”

남학생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건 원래 우리 일이잖아, 어서 하자고. 성주 누나, 의자랑 파라솔은 어제 옮겨둔 창고에 그대로 가져다 두면 되죠?”

가만히 의사들이 사라진 정문을 보던 한성주가 말했다.

“어, 미안한데 너희들끼리 좀 해줄래? 나도 가 볼 곳이 있어서.”

“어? 누나? 누나! 진짜 가버리는 거예요?”

“언니! 이거 우리 둘이 언제 다 치워요!”

학생들이 뒤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한성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 * *

잠시 후, 목적지가 주민센터에서 가깝다고 생각한 건우가 차를 놓고 걷기를 30분. 할머니가 그려준 약도를 이리저리 보는 건우가 인상을 썼다.

작은 슈퍼를 지나 큰 나무가 있는 집을 우측으로 끼고 돌아서 잠시 직진하면 파란 대문 집이 나오고, 맞은편에 빨간 대문 집이 있다. 그 집을 지나 좌측 길로 접어들면 나온다는 석진이네 집. 그런데 도무지 어딘지 모르겠다.

“젠장, 뭔 약도를 이렇게 그렸냐.”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주변에 인적이라곤 없다. 손목시계를 보니 어느덧 저녁 여섯 시가 넘어버렸다. 시골이라 그런지 해도 더 빨리 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다시 주민센터로 돌아가 차를 가져오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발걸음을 멈춘 건우가 물끄러미 다시 한번 약도를 살피고 있던 그때 누군가의 손이 쓱 나와 약도를 잡는다.

건우가 눈을 들자, 자원봉사를 나왔던 두 의사 중 한 명이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약도를 붙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뒤로 또 다른 의사도 머뭇거리며 서 있다.

“뭡니까?”

손에 힘을 줘 약도를 빼간 의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환자를 외면한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아서요, 하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가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교수님.”

자기들이 말하고도 오그라드는지 얼른 약도를 분석하는 척하는 두 의사. 그래, 실력이 좀 떨어지면 어떠냐, 대가리에 썩은 물이 고여 돈만 밝히는 의사들보다 너희들이 훨씬 낫다.

생각은 그리해도 남의 칭찬에 인색한 건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약도를 눈짓한다.

“어딘지 알겠습니까?”

의사들은 약도를 뚫어지게 보다 저 멀리를 가리킨다.

“저기 아닙니까?”

“저쪽 같습니다.”

“…….”

의사들을 바라보는 건우가 한숨을 쉰다. 두 의사가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도 그걸 눈치채곤 민망한 얼굴로 약도를 내민다.

“아무래도…… 물어봐야 될 것 같네요.”

“그런데 주변에 인가도 없고…… 이거 원.”

인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논과 밭을 지나 한 삼백 미터 밖에 있긴 하다. 길 묻자고 저기까지 가야 될까?

그때 의사들이 내민 약도를 중간에 채가는 하얀 손이 보인다.

“의사 선생님들은 본인들이 잘하는 걸 하세요. 이런 건 저한테 맡기시고.”

의사들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한성주 씨? 숙소에 안 갔어요?”

어느새 따라온 한성주가 혀를 차며 말했다.

“참나, 아까 슈퍼 아줌마한테 물었더니 한 십 분이면 간다던데. 약도 보고 헤매느라 삼십 분이나 허비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있을 줄이야.”

건우를 비롯한 의사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한성주는 약도와 주변을 여러 번 대조해 보더니 앞서 걷기 시작한다.

“저기네요, 큰 나무가 있는 집. 시골 동네 약도는 제일 눈에 띄는 거부터 찾는 겁니다. 따라오세요.”

신기하게도 건우가 약도를 보고 찾아올 때 그냥 지나쳤던 집들 쪽으로 가는 한성주. 재미있게도 그녀를 따라가며 주변을 보니 약도에 그려진 특징들이 고스란히 나타난 집들이 보인다. 아까는 왜 못 봤을까?

한참 걷던 한성주가 오르막길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네요.”

아스팔트는커녕 시멘트 길도 아니다. 검은 흙을 대충 빗자루로 쓸면 이런 길이 생길까? 양쪽에 너저분한 쓰레기들이 쌓여 있는 길 끝에 있는 집 한 채. 길가에서 50미터 이상 떨어진 외진 집이다.

저곳에 환자가 있다. 대낮에 길을 걷는 것만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욕을 듣는 소년이 주민센터로 찾아왔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거기까지 걸어왔을까? 동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달려왔을 소년을 생각하니 또 심장이 저려온다.

건우가 막대사탕을 물고 앞서 걷자, 다른 의사들과 한성주도 급히 따라붙는다. 허벅지가 살짝 저릴 만큼 경사진 길을 올라가던 건우가 집 앞에 쪼그리고 앉은 석진을 발견했다.

나뭇가지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소년은 조금 전까지 울고 있었는지 얼굴에 얼룩이 잔뜩 묻어 있다.

건우와 거의 동시에 서로를 발견한 석진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엄마를 봐주러 온 천사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보기엔 너무 차가운 표정이니까. 게다가 키도 엄청 크다.

괜히 겁이 나는 인상을 가진 맨 앞에 선 의사 덕에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는 석진.

한성주가 겁을 먹은 석진에게 달려가 친절한 웃음으로 말한다.

“안녕? 이름이 석진이지?”

“네? 네…… 맞아요.”

아이와 친해지려 하는 한성주가 웃으며 물었다.

“성은 뭐야?”

“…….”

“응? 무슨 석진인데?”

석진은 답을 하지 않고 집 쪽을 본 후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말했다.

“성은…… 없어요.”

잔뜩 일그러진 소년의 얼굴. 조선 시대 노비도 아닌데 자신에게는 성이 없다는 소년은 또다시 원망스러운 표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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