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127화
13. 아빠의 손(4)
복수(腹水·Ascites)는 사실 우리 복강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액체다.
복막과 장기의 마찰을 줄이는 역할을 하고 림프관으로 들어가 순환한다.
하지만 복수가 정상 범위보다 많아져서 림프관으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고 복강에 고여 있는 상태, 즉 복수가 차게 되면 사망 확률을 높일 만큼 위중한 상태로 본다.
개복을 하자마자 울컥거리며 솟구쳐 오르는 복수를 거즈로 닦아내고 있는 혜선과 중곤.
모니터를 보고 있는 AN(마취의)이 외쳤다.
“환자, 혈압과 맥박 떨어집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울어대는 모니터링 기기를 보고 있던 마취 의사가 재빨리 주사를 준비하며 외친다.
“stroke volume(일회박출량) 55㎖, cardiac output(심박출량) 3,500㏄! 정상치 이하 범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복수를 빼고 있는 혜선과 중곤을 제외하고 건우와 브랜든이 동시에 손을 들고 한 걸음 물러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런 때 집도의가 뭔가를 하고, 그로 인해 환자가 안정되지만 현실에서는 아니다. 이런 때를 대비해 들어와 있는 것이 마취 의사다.
마취만 하고 나가면 될 그들이 수술이 끝날 때까지 수술실에서 모니터링 중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액 줄에 주사를 투여하는 마취 의사가 말했다.
“vasoactive drug(혈관작용 약물) 투여합니다.”
물러나 있는 건우가 물었다.
“초깃값 수축기 혈압 얼마였습니까?”
주사를 놓고 모니터를 주시하는 마취 의사가 답한다.
“수술 직전 표준 관리 수축기 혈압은 80㎜Hg이었으며, 현재 혈압 70㎜Hg입니다.”
“노르에피네프린 투여하세요.”
“네, 닥터.”
현재는 10~40% 내의 혈압 저하 현상을 보이고 있다. 40% 이상 저하되면 위험하다. 그때는 더 강한 약물을 써야 할 것이다.
마취 의사가 처치를 하는 도중 가만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는 건우가 주먹을 쥐었다.
‘불안하고, 두려울 땐. 그럴 시간도 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아빠의 손이 다시 두려움을 느끼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간다.’
몇 분 뒤 마취 의사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혈압, 맥박, 수술 전 9% 하락 수준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수술 가능합니다.”
브랜든이 눈인사를 하며 걸어 나온다.
“수고했어요.”
건우가 걸어 나오며 PA에게 손을 내밀자, 아직 수술대 위에 서지도 않았는데 손부터 내미는 건우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PA.
건우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메스.”
“아, 죄송합니다.”
발판 위로 올라오기 전에 메스를 받아 올라오자마자 복강 내를 보는 건우.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자신들이 할 일을 한 중곤과 혜선 덕에 복강 내를 채우고 있던 복수는 대부분 제거되고 시야가 확보되어 있다.
자신보다 늦게 맞은편 수술 자리로 들어오는 브랜든을 힐끔 본 건우가 말했다.
“duodenal(십이지장)까지 최고 속도로 박리합니다.”
브랜든이 고개를 끄덕이며 PA에게 손을 내민다.
“Octopus 개창기.”
“네, 닥터.”
건우의 손이 로즈의 몸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어느 때는 빠르게, 어느 때는 간결하게.
하지만 그 모든 손짓은 정확하다. 세밀하게 움직이는 메스와 다르게 춤을 추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팔.
개복한 복강을 꽉 붙든 브랜든은 눈을 크게 뜨고 건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보이지 않지만 그의 입은 떡 벌어져 있다.
‘다, 닥터 램지……?’
자신이 그를 처음 만난 건 레지던트 시절이었다.
응급실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 그가 응급 수술을 할 때 보였던 움직임은 마치 발레의 그것과 같았었다. 우아하지만 절도 있고 정확한 동작들의 연속.
자신도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 그와 같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자신보다 한발 앞서간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간극만 느꼈다.
결국 닥터 램지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포기했던 움직임. 그런데 지금 동양에서 온 의사가 그것을 펼쳐내고 있다. 그것도 자신의 눈앞에서.
“아, 아아…….”
그때 감상에 빠져 있는 브랜든의 귀로 벼락같은 외침이 들려온다.
“liver(간) 위로 당겨! 정신 안 차리나!!”
퍼뜩 정신이 든 브랜든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Yes sir, Dr. Ramsey!!”
말을 하고 스스로 놀란 브랜든. 자신도 모르게 건우에게서 램지의 그림자를 보게 된 그는 결국 입으로 말을 내뱉어 버렸다.
하지만 건우는 눈치를 채지 못한 듯 인상을 쓰고 복강 내를 눈짓한다.
“Kocher maneuver(십이지장 수동) 실시.”
“예!”
건우가 PA에게 손을 내밀자 그의 손에 보비가 쥐어진다.
“빠르게 간다.”
“예!”
어느새 ‘Sir’라는 존칭까지 붙이며 보조에 열을 올리는 브랜든. 지금까지 단지 동양에서 초대한 의사였기에 예를 다했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닥터 램지와 함께하던 시절의 레지던트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건우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눈동자를 떠는 브랜든이 그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일반적으로 Treitz fusion fascia(췌두십이지장부가 후 복막의 충돌에 의해 생긴 근막)를 복벽측에 남기고, 장측근막과의 틈으로 박리해야 하는데, 닥터 모는 fascia를 절제 측에 붙여서 박리하고 있다.’
건우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유나 의심을 할 겨를이 없다. 너무나도 빠르다.
눈을 의심할 만큼 빠른 속도로 파고드는 건우의 보비와 메스 덕에 보조를 보는 것만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
무려 MGH의 더블보드인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잠시나마 GS와 CS 더블보드라는 사실과, 세계 순위 50위 바깥 병원의 의사보다 자신의 실력이 우위라 착각했던 것이 부끄럽다.
대망과 횡행결장간막의 사이를 박리해 결장 부착부에 절제하고, 십이지장 수평부의 전면으로부터 횡행결장간막을 박리하는 건우의 손놀림을 넋 놓고 바라보는 브랜든.
하지만 그는 감탄 대신 한탄을 내뱉는다. 드디어 드러난 십이지장의 모습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로즈의 종양 타입은 carcinoid(유암종). 정상적인 표면 점막을 가진, 경계가 매끄럽고 약간 융기된 무경성의 상피하병변으로 노란 색조 변화가 있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암 환자와 동일하다. 문제는 십이지장 전반에 걸쳐 밀알처럼 퍼져 있는 병변이다.
브랜든이 슬픈 눈으로 말했다.
“metastasis(전이)…….”
중곤과 혜선도 몸을 굳힌다. 도구를 쥐고 복강을 벌리고 있던 브랜든의 손에서 힘이 빠져간다.
이런 정도의 전이라면 생존 확률은 더욱 낮아진다. 소장암 4기의 낮은 생존 확률에서 50% 이상이 상실되는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진 브랜든.
그때 다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직 환자 안 죽었어!!”
자기도 모르게 몸에서 빠져나가던 힘이 돌아오는 느낌이 든 브랜든이 퍼뜩 정신을 차린다.
자신과 중곤, 혜선 모두가 포기하려던 순간에 끝까지 복강 내를 뚫어지게 보던 건우가 고함을 지른 것이다. 한쪽 눈만 파란 동양 의사가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을 잡아먹을 듯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쏘아본 건우가 말했다.
“포기를 해도 내가 한다.”
중곤과 혜선이 동시에 답한다.
“예!! 부교수님!!”
브랜든도 얼결에 답한다.
“Yes sir, Doctor…….”
건우가 PA에게 새 메스를 받은 후 시간을 보았다. 수술이 시작된 지 두 시간.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바로 tumorectomy(종양절제술)를 시작한다.”
* * *
세 시간 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로즈의 복강 내를 바라보고 있는 브랜든의 눈동자가 지진을 만난 듯 흔들리고 있다.
‘이, 이게 가능하다고?’
처음 건우가 시행한 것은 소장과 십이지장에 발생한 tumor(종양) 중 큰 덩어리를 절개하는 것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종양을 파내 버리고, 봉합을 마친 건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십이지장과 소장을 뒤덮은 밀알 크기의 tumor(종양)들을 무서운 속도로 파내고, 봉합해 버리는 건우. 육안으로 찾아내기 힘든 매우 작은 크기의 tumor(종양)들도 그의 눈을 피해가진 못했다.
‘도, 도대체 어떻게 저걸 다 찾아내는 거야? Lupe(수술용 확대경)도 착용하지 않고 있잖아!’
무섭게 치켜뜬 눈. 무서운 집중력. 수술이 시작되고 다섯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단 한 번도 손목이나 어깨를 풀어주는 움직임도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복강 내를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스쳐 가는 종양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절개하고, 봉합한다.
저게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밀알 같은 종양을 벌써 마흔 개가 넘게 절개했다. 절개 자체는 어렵지 않다. 봉합도 한 바늘쯤만 꿰매면 된다. 문제는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의사는 마치 투시를 하듯 모든 종양을 찾아 제거 중이다.
‘사람이 아니야! 이건 말도 안 돼!’
다시 시간을 확인하는 브랜든. 그의 머릿속으로 수술 전 혜선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수술실 예약 시간을 두 배로 늘린 것에 대해 질문했던 것에 대한 그녀의 대답.
‘저희도 몰라요. 일일이 설명해 주며 움직이는 타입이 아니시거든요. 하지만 모 쌤이 이렇게 하셨다는 건 반드시 이유가 있는 거예요. 토 달 시간에 수술 준비나 해놓는 편이 건설적일 겁니다.’
브랜든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진다.
‘어쩌면 이 사람은 처음부터 이런 상황이 될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까의 박리도 이 과정을 염두에 두고 움직인 거야.’
브랜든이 고개를 돌려 혜선과 중곤을 보았다. 자신처럼 놀라지도, 의심하지도 않고 묵묵하게 자신들이 할 일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대, 대단해! 이 팀은 도대체 뭐야?’
신의 손을 가진 의사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가진 팀은 항상 모자라다.
의심하고 반대하는 팀원을 설득하기 위해 시간을 써야 하는 의사는 얼마든지 있다.
이토록 아무 의심 없이 집도의를 믿고 수술에 임할 수 있는 팀을 가지는 건 그야말로 꿈과 같다. 하지만 지금 브랜든의 눈앞에 그런 팀이 있다.
침을 꿀꺽 삼킨 브랜든의 귀로 다시 건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브랜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브랜든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예!”
메스를 놓고 양손을 들고 있는 건우가 무심한 눈으로 말했다.
“봉합 맡겨도 되겠죠?”
“……예??”
건우가 살짝 인상을 쓴다.
“더블보드가 설마 봉합도 못 하는 겁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브랜든이 급히 복강 내를 보곤 뭐에 홀린 사람의 얼굴이 된다.
‘수, 수술이 끄, 끝났다고?’
눈에 보이는 모든 종양이 사라져 있다. 밀알처럼 소장과 십이지장을 덮고 있던 모든 곳들이 절개 후 봉합되어 있다.
브랜든이 마취 의사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모니터를 보고 있던 마취 의사가 엄지를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환자 V/S 관리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저, 정말 이걸 해냈다고?”
브랜든이 고개가 부러질 듯 꺾으며 건우를 돌아보자,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는 건우가 말을 던진다.
“못 하면 중곤이 시키고.”
침을 꿀꺽 삼킨 브랜든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제,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건우가 혀를 찬 후 혜선과 중곤을 보았다.
“너희들도 도와.”
“예, 부교수님!”
“예, 선생님!”
건우가 몸을 돌려 마취 의사의 모니터를 한번 쓱 보고 수술실을 벗어나려 하자, 혜선과 중곤이 큰 소리로 외친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여전히 굳어 있는 브랜든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수, 수고하셨습니다…… 닥터 램, 아니, 닥터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