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닥터 프랑켄슈타인-123화 (123/230)

닥터 프랑켄슈타인 123화

12. Like Dr. Ramsey(12)

아빠가 죽은 후, 지난 몇 년간 제대로 자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요즘 단잠이 너무 행복하다. 몇 시간이나 잔 걸까? 오늘도 아주 푹 잔 것 같다.

누운 채로 천장을 보며 눈을 깜빡이던 로즈가 부스스 일어나 주변을 보았지만 언제나처럼 1인 병실에 혼자 있다. 문이 열린 병실 밖을 지나던 크리스틴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곤 고개를 내밀며 웃었다.

“잘 잤어요, 로즈?”

“…….”

가만히 그녀를 보던 로즈가 물었다.

“오늘도 그가 왔었나요?”

크리스틴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음, 밤늦게 왔다가 새벽에 갔어요.”

로즈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 주먹을 꼭 쥔 후 물었다.

“오늘도 제 손을 잡아줬나요?”

크리스틴이 싱긋 웃는다.

“네.”

그렇구나, 오늘도 그가 잠든 내 손을 잡아주러 왔었구나. 낯선 남자가 허락도 없이 자는 사이에 손을 잡는 건 무척 화가 나야 하는 일이다. 경우에 따라선 고소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 마음은 왜 이럴까? 설마 그를 좋아하는 걸까? 아냐, 사랑의 감정은 아니야. 이게 도대체 무슨 감정이지?

로즈가 손바닥을 바라본다. 아직도 남아 있는 따스한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 다시 주먹을 꼭 쥐는 로즈.

‘마치 아빠가 손을 잡아준 듯한 기분이야.’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짓는 로즈.

‘그럴 리가 없잖아?’

착각일 것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는 로즈를 살피던 크리스틴이 자리를 비우자, 로즈가 침대 위에서 내려와 심호흡을 하며 발을 디뎠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느끼는 빈혈성 현기증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심한 경우엔 잠시 시력을 상실하고 균형감각을 잃어 넘어지는 일도 많았다.

“아?”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일어났는데. 침대 모서리를 꽉 붙잡고 언제든 균형을 잃어도 넘어지지 않을 준비를 했는데. 이상하다. 아무렇지 않다.

혹시 오늘은 늦게 오나 싶어 조금 기다려 봤지만 여전히 아무렇지 않다.

“잠을 잘 자서 그런 걸까?”

마음속 의심을 지우지 못해 아주 천천히 화장실로 걸어간 로즈는 볼일을 마치고 나온 후에도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다.

생각해 보니 아침에 눈을 뜨고 빈혈이 없었던 적은 근래 1, 2년간 거의 없었다. 매일매일 지긋지긋하게 찾아오던 빈혈이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졌나 보다. 오지 않는 쪽이 더 이상한 걸 보니.

슬쩍 어깨를 빙글빙글 돌려보기도 하고, 발목을 풀어보기도 한다. 언제나처럼 나른하고 힘이 없긴 하지만 현기증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쩐지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산책을 하고 싶을 만큼 상태가 좋은 날이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정오가 넘은 시각. 이렇게 오래 자본 적도 오랜만이다.

“잠깐이라도 산책할까? 오후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갑자기 또 안 좋아질 수도 있다. 몸이 좋을 때 조금이라도 즐기는 쪽이 좋다.

병실 문을 열고 나온 로즈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습관적으로 자주 구경을 가는 1층 응급실로 내려가는 도중, 누가 눌러둔 건지 4층에서 문이 열린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였기에 내리는 사람이 없었고, 그렇다고 타는 사람도 없다. 혹여 엘리베이터가 도착한지 모르고 핸드폰만 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고개를 내민 로즈.

하지만 아무도 없다. 주변을 둘러보던 로즈의 눈에 엘리베이터 맞은편에 보이는 병실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그의 얼굴을 본 로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죽음의 그림자.’

아빠가 말했다. 임종을 앞둔 사람에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고. 그땐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러한 사람을 마주한 로즈는 바로 아빠의 말을 이해했다.

나이가 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온 몸에 수분이라곤 없어 보이는 할아버지. 임종 직전의 사람은 가만히 누워 잠만 자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눈을 뜨고 두리번거리고 있는 할아버지. 하지만 눈에는 초점이 없다. 분명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바짝 마른 장작 같은 팔을 공중으로 휘두르며 짐승이 내지르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다.

“으어어어어어어, 으어어어어어어.”

높은 비명은 아니다. 그저 보통의 목소리 크기. 하지만 그가 내고 있는 소리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의 소리 같다.

많이 고통스러운 걸까? 자기도 모르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로즈가 병실 문가에 서서 안을 들여다본다.

보호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인지 홀로 병실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로즈가 침대 아래에 쓰여 있는 환자 기록을 읽어본다.

“말콤 해리슨(Malcolm Harris), 61세?”

로즈가 놀란 눈을 다시 할아버지에게로 돌린다. 저게 61세의 모습이라고? 90이 넘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늙은 모습이다.

검게 변한 이를 드러내고 입을 쩍 벌린 할아버지. 코로 숨을 쉬지 못해 입으로 숨을 쉬고 있는 듯하다.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가래 끓는 소리도 들려온다.

로즈가 다시 치료 기록을 확인하고는 슬픈 눈빛이 된다.

“소장암, 말기…….”

자신과 같은 병이다. 문득 두려워진다. 자신도 저런 모습으로 죽게 되는 걸까?

초점이 없는 눈동자로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할아버지. 무얼 보고 계시는 걸까? 누군가 자신을 데리러 온 걸 바라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계시는 걸까?

만약 저 자리에 누워 있는 것이 자신이었다면 뭘 보고 있었을까? 아니, 뭐가 보고 싶을까?

가만히 할아버지를 바라보던 로즈가 고개를 숙였다.

“애초부터 내가 보고 싶은 걸 본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래, 어쩌면 인생에 가장 괴로운 순간을 보며 고통스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저 할아버지가 내는 신음 소리는 그 소리만으로도 귀를 막고 싶을 지경이니까.

남인 자신도 이런데 가족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할 가족이 없다는 것이.

그때 로즈의 뒤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동양에는 주마등(走馬燈)이란 말이 있습니다.”

남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감상에 젖어 있는 것은 실례다.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 때문에 화들짝 놀란 로즈가 뒤를 돌아보자, 언제나처럼 가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건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하, 놀랐네요.”

“놀라게 해드릴 마음은 없었습니다만.”

“일 안 하세요?”

“점심시간입니다.”

말투는 여전하다. 하지만 얼마 전 아빠의 이야길 해준 그 날부터 적의는 사라지고 호감만 남은 로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그녀가 물었다.

“아까 뭐라고 하셨어요? 주마…… 뭐라고요?”

“영어로는 ‘Phantasmagoria’라고 합니다.”

“그게 뭔데요?”

건우가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로즈뿐 아니라 제 나이에도 보기 힘든 옛 물건입니다. 등롱에 그려진 그림이 마치 움직이는 듯이 보이는 장식용 등불입니다.”

“등불이요?”

“등롱이 이중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투명의 바깥 등롱 안에 회전하는 원통형의 속 등롱이 있죠. 안쪽 등롱 윗부분은 바람개비로 되어 있어 촛불이나 전구에서 나온 열의 대류작용으로 원통이 천천히 돌아가고 원통 면에 그려진 그림이 바깥 등롱에 투영되는 겁니다. 그럼 애니메이션까진 아니지만 파노라마식 연속 그림이 빙글빙글 돌며 움직이는 그림 같아 보이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대충 등불 속에 있는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효과가 있단 소리인가 보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요?”

건우가 할아버지를 눈짓하며 말했다.

“자신이 죽을 걸 자각한 뇌가 어떻게든 살 방법을 찾기 위해 보유한 모든 과거의 정보를 뒤지는데 그 정보들이 자신의 머리에 투영되는 과정을 주마등이라 표현합니다.”

로즈가 슬픈 눈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본다.

“살 방법을 찾기 위해…….”

“다른 뜻으로도 쓰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주마등처럼 되돌아보게 된다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자기 인생을…….”

좋은 표현인 것 같다. 죽는 순간에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 그것이 꼭 좋으리란 법은 없지만 그러한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생을 돌아볼 시간도 갖지 못하고 갑자기 죽어버리는 사람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니까.

“그렇군요…….”

가만히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로즈. 말없이 그녀와 함께 서서 할아버지를 지켜보던 건우는 한참 만에 속삭였다.

“이제 그만 자리를 피해야 되겠습니다.”

응? 무슨 말이지? 로즈가 주변을 보자 할아버지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퉁퉁 부은 눈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가족들.

아, 저들의 가족이 누군가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건 참 싫겠구나. 닥터 모건이 아니었으면 큰 실례를 할 뻔했다.

얼른 물러나 다른 곳에 시선을 던지려다, 가장 자연스러운 그림은 이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이라고 판단한 로즈가 건우와 마주 선다.

별 할 말은 없지만 일단 마주 보는 로즈. 그녀의 뒤로 앞 상황을 못 본 가족들이 지나간다.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 의심받지 않을 텐데.

로즈가 무슨 이야길 해야 할지 고민하며 건우와 눈을 맞추는 순간 그가 먼저 말을 꺼낸다.

“질문 하나 합시다.”

“네, 하세요.”

“왜 수술을 안 하겠다는 겁니까?”

“…….”

“확률이 작아서?”

“…….”

“죽는 게 두려워서? 어차피 수술 안 하면 그대로 죽습니다.”

로즈의 고개가 숙여진다.

“나도 알아요.”

건우가 가만히 그녀의 답을 기다린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로즈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무서워서.”

“…….”

“무서워서요.”

건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 확률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건 반쯤 비꼬아 일부러 꺼낸 이야기였다.

떠난 아빠가 그리워 아빠 품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로즈의 생각은 달랐다.

무서워서. 수술이 무섭다는 게 아닐 것이다. 몇 개월 남지 않은 목숨이지만 수술 중 사망하면 그 몇 개월도 없는 것이 된다.

고작 스무 살. 법적으로 성인이라고 해도 십 대와 다를 것 없는 어린 나이의 로즈는 아빠 없는 세상에 혼자 남겨지는 것도, 수술 중 사망하는 것도 모두가 두렵기만 했던 것이다.

로즈가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닥터가 내 팔에 황색 테이프를 감아줬는데. 수술만 하면 살 수 있다고 위로해 줬는데. 그래도 난 무서워요.”

어젯밤에 샤워를 하고 새 환자복을 갈아입을 때 황색 테이프는 뗐다. 이젠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팔을 들어 보인 로즈가 말했다.

“시간에 따라 테이프가 바뀌기도 하나요?”

로즈를 가만히 바라보던 건우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겠네요.”

잠깐 고개를 숙인 로즈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나 오늘 아주 잘 잤거든요? 그래서 기분이 아주 좋아요. 산책하러 나왔다가 우연히 여길 들렀는데 이제 다시 산책을 해야겠어요. 이렇게 몸이 좋은 적은 오랜만이라 이 시간이 소중하니까요. 잠깐은 즐겨도 괜찮잖아요?”

가만히 로즈를 바라보던 건우가 천천히 비켜선다.

“그러시지요.”

로즈가 싱긋 웃은 후 건우를 스쳐 간다.

“아, 점심시간은 끝났나요?”

건우가 힐끔 시간을 본 후 다시 로즈를 바라본다. 잠시 뜸을 들인 건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방금.”

“응급실에 산책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선생님 일하는 거 보고 싶어서.”

건우가 고개를 까딱한 후 앞장선다. 로즈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응급실로 내려온 건우가 다시 일을 시작하자, 로즈가 멀찍이 떨어져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잠시 후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온 중곤과 혜선이 벌써 일을 하고 있는 건우를 보며 인상을 쓴다.

“아, 모 쌤 밥도 안 드시러 오시고 또 일하시네.”

“후, 같이 밥 먹으러 가선 갑자기 사라지더니 식사도 안 하고 또 일을 해? 사람도 아니야, 정말.”

“샌드위치라도 사 가지고 올까요?”

“아서라, 나중에 찾으시면 몰라. 그냥 사다 드리면 ‘금식을 밥 먹듯 하는 환자들 앞에서 음식 냄새 풍기는 의사가 제정신이야!’ 하면서 고함치실 거다.”

“힝, 걱정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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