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121화
12. Like Dr. Ramsey(10)
“우에에웩!!!”
멈추지 않는 구토. 아까부터 어지러워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구토를 하면서도 비틀거리는 로즈. 밖에서 소리를 듣고 뛰어 들어온 간호사 크리스틴이 등을 쓸어준다.
“로즈, 좀 어때요?”
“…….”
로즈가 말없이 소매로 입가를 닦자, 소매에 잔뜩 묻어 나온 피를 본 크리스틴이 한숨을 쉰다.
“새 환자복 가져다드릴게요.”
“그냥 두세요, 어차피 또 이럴 건데.”
“그래도 그거 그대로 입고 있으면 안 돼요. 갈아입어요.”
크리스틴이 스테이션으로 가 새 환자복을 가지고 오는 동안 비틀거리며 침상으로 돌아온 로즈가 침대 모서리를 꽉 잡고 겨우 앉았다. 가만히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로즈.
“많이 말랐네.”
환자복을 가지고 돌아온 크리스틴이 혼잣말을 하는 로즈를 보며 한숨을 쉰다.
“어제 체중이 40㎏이었어요, 로즈. 신장이 167㎝나 되는데 40㎏이라니. 너무하잖아요.”
잔소릴 하곤 있지만 크리스틴도 안다. 이것은 로즈가 건강 관리를 하지 않아 발생하는 일이 아닌 소장암 말기 환자에게 보여지는 증상이라는 것을.
게다가 점점 구토하는 횟수도 늘고, 출혈도 있다. 강한 빈혈이 일어나 비틀거리는 일도 다반사이다.
로즈가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후 침대에 앉아 옆에 둔 책을 무릎 위에 올렸다.
“전 괜찮아요.”
“안 괜찮으니 하는 말이잖아요, 로즈. 누워만 있지 말고 산책이라도 좀 해요.”
사람은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급속도로 죽어간다. 자신이 죽을병이란 걸 모르는 때에 비해 진행 속도는 더 빨라진다.
그것의 이유는 운동에 있다. 평소 가볍게 걷던 행위도 ‘난 이제 곧 죽을 테니까’라는 마음 때문에 하지 않게 된다. 운동 부족은 심각한 근육 결핍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병세를 더욱 악화시킨다.
크리스틴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수술을 하고 말고는 로즈가 결정할 일이니까 더 설득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운동은 해야 돼요. 어서 일어나요.”
로즈는 약간 귀찮은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을 걱정해 주는 크리스틴의 마음을 알기에 하는 수 없이 일어났다.
잠시 비틀거리긴 했지만 링거 폴대를 붙잡고 눈을 꼭 감고 있으니 어지럽고 앞이 캄캄한 증상이 좀 나아진다.
크리스틴이 그녀의 빈혈이 나아지길 기다렸다가 말했다.
“밖으로 나가진 말고 병원 내에서만 산책해요, 전화기 가지고 있죠?”
로즈가 한쪽에 던져둔 핸드폰을 주머니에 챙긴 후 툭툭 두들긴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할게요.”
“그래요, 어서 다녀와요.”
병실을 나온 로즈가 묵직한 자신의 배를 만져본다. 이렇게 말랐는데 배는 꽉 찬 듯 묵직하다.
음식을 많이 먹어보려 했지만 도무지 소화를 시킬 수가 없다. 소화가 안 되니 배가 묵직하고 거북하다. 이 느낌이 싫어 음식을 기피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체중 감소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바퀴가 달린 링거 폴대에 몸을 의지한 로즈가 천천히 걸으며 병원을 돌아다닌다.
사실 병원은 별 볼거리가 없다. 구경할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몸이 아픈 환자들밖에 없는 곳이니 산책이 재미있을 리 없다.
그나마 외부 환자들이 오는 1층에 가면 사람들의 옷차림을 통해 바깥 날씨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내린 로즈가 폴대를 밀며 천천히 나아간다.
그녀가 산책을 하는 곳은 항상 같다. 바로 아빠가 살아 있을 때 근무하던 응급실. 종횡무진 활약하는 아버지의 멋진 모습을 보는 것이 어린 시절 로즈의 낙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있을 때와 지금은 다르다.
그때 아빠는 응급실 전체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의사들이 뒤를 따르고 응급실에 온 환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아빠 손을 거쳤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담당 구역을 정해 자신의 베드에 배정된 환자들만 보는 의사들. 예전과 달리 재미가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빠가 없어도 응급실의 시간은 흐른다. 오직 자신의 시간만이 멈춰 있다. 응급실 간판을 가만히 바라보던 로즈가 누군가가 응급실 밖으로 나오며 열린 문을 통해 안쪽을 보다 눈이 커진다.
수많은 레지던트들이 몰려다니고 있다. 구름 같은 의사 떼거리가 지나가고 나면 그 자리에 있던 환자가 다른 곳으로 이동된다.
의사들이 몰려다니는 곳마다 베드가 비워지고 있다. 그리웠던 광경이지만 현실에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리 없다.
큰 눈동자를 바르르 떠는 로즈가 중얼거린다.
“아…… 빠?”
지금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지? 그럴 리가 없잖아? 변호사 아저씨가 그랬어. 아빠는 시리아에서 폭격을 맞고 죽었다고. 시신을 찾지 못했지만 당시 아빠의 죽음을 본 생존자의 증언이 있었다고. 아빠는 죽었어. 정신 차려, 로즈 램지.
그냥 의사들이 몰려다니는 것뿐이잖아. 아빠가 있을 땐 저 사람들의 맨 앞에 선 아빠가 사람들에게 마구 지시를 했었어. 그때와 다르잖아.
입술을 깨문 로즈가 응급실 자동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F-11 베드 환자, URI(상기도 감염)입니다. AIM(알레르기 내과) 콜 해요.”
로즈의 눈이 커졌다. 아빠가 했을 법한 말들이 들려온다. 아냐, 저건 그냥 응급실에서 자주 들려오는 말일 뿐이야. 그럴 리가 없어.
바로 그때 로즈의 눈에 의사들 무더기에서 홀로 걸어 나온 건우가 멀리 있는 환자를 한번 쓱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 보인다.
“저쪽 burn(화상) 환자는 burn wound sepsis(화상패혈증)입니다. IIM(감염내과) 빨리 콜 해서 검사하고 긴급수술 필요한지 확인해요.”
수첩을 들고 기록하던 의사들이 크게 답한다.
“예!”
로즈의 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저긴 아빠의 자리인데. 저렇게 할 수 있는 건 오직 아빠뿐인데.
로즈가 비틀거린다. 순간 악몽 같은 빈혈이 다시 그녀를 덮쳐온다.
“아…….”
비틀거리며 벽에 기대는 로즈. 눈앞이 캄캄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지러워 마치 물속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기분이 든다. 손바닥으로 눈을 꾹 눌러보았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그때 그녀의 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닥터 모건. EM(응급의학)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구토가 나올 것 같은 어지러움 속에서 헤매던 로즈의 머릿속으로 아빠의 말이 떠오른다.
‘응급의학은 말이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환자가 수술실로 가기 전까지 살려놓는 거야. 살릴 수 있는 환자는 반드시 살려낸다. 그게 응급의학이야.’
저 사람은 아빠가 아니다. 저 사람은 어떤 답을 할까? 로즈의 귓가로 무심한 말투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것도 모르고 응급실에 있습니까? 당연히 수술대 위에 올릴 때까지 살려놓는 거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로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빠…… 아빠…….’
아빠를 향한 한없는 그리움. 이제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아빠와 닮은 의사를 보니 다시 그리움이 고개를 든다.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고통이 더해지자 잠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졌던 빈혈이 나아질 기색이 없다.
결국 벽에 기대 쪼그리고 앉은 로즈. 이대로 가만히 앉아 빈혈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릴 참이다.
몸을 작게 말고 아빠 생각을 하던 로즈가 눈을 뜬 건 10분이나 지난 후였다.
흐릿한 시야가 천천히 돌아온다. 병원의 하얀 바닥이 보이고, 앞에 두 개의 발이 있다.
로즈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건우가 보인다.
“다, 닥터 모건.”
건우가 손을 내민다.
“괜찮습니까?”
가만히 건우의 손을 바라보는 로즈. 손을 잡고 일어나면 간단하지만, 이상하게 이 사람의 손을 잡으면 자신의 가슴이 요동을 친다.
결국 자기 무릎을 잡고 지탱해 일어난 로즈가 건우를 올려다본다.
손을 내민 채 가만히 기다리던 건우가 민망해진 손을 의사 가운 주머니에 넣는 것이 보인다.
로즈의 얼굴을 살핀 건우가 물었다.
“빈혈입니까?”
“네.”
“자주 그럽니까?”
“소장암 말기 환자가 다 그렇죠.”
“…….
로즈가 좀 전에 들렸던 환상 같은 말들을 떠올렸다. 정말 이 사람이 한 말일까? 아니면 빈혈이 너무 심해 헛것을 들은 걸까? 빤히 건우를 올려다보던 로즈가 물었다.
“닥터 모건.”
“네.”
“당신 누구예요?”
건우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잠시 고민한 건우가 그게 무슨 질문이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의삽니다.”
“의사인 건 나도 알아요.”
“알면서 왜 물으시죠?”
로즈가 건우를 노려본다. 자신을 놀리는 것일까? 이상하게 열 받는 화법을 쓰는 사람이다. 한참 건우를 노려보던 로즈가 말했다.
“아빠를 알아요?”
“압니다.”
로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병원에 있는 사람이 아빠를 모를 리는 없겠지. 아빠는 자신만의 영웅이 아니라 병원 전체의 영웅이었으니까.
“배운 대로 써먹는 건가요?”
“인간은 누구나 배운 걸 써먹고 삽니다. 그러려고 배우는 거니까.”
짜증 나는 화법이지만 맞는 말이다. 게다가 그에게 배움을 준 건 아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그럼 계속 그렇게 하세요. 전 이만.”
로즈가 몸을 돌렸다.
아빠가 남긴 유산이 참 많다. 비단 자신의 자랑스러운 아빠일 뿐 아니라 많은 의사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바로 아빠였다.
흐릿한 뿌듯함이 느껴지지만 아빠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
몸을 돌린 로즈가 몇 걸음을 걸었을 때 뒤에서 건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스 로즈.”
로즈가 뒤를 돌아본다.
“네.”
건우가 잠시 로즈를 바라보다 뚜벅뚜벅 걸어와 곁에 선다.
“병실까지 모셔 드리죠.”
“괜찮아요.”
“좀 전에 자신의 상태가 어땠는지 잘 아실 텐데요.”
“…….”
“가시죠.”
건우가 앞을 눈짓한다. 그래, 이 사람은 여기 의사니까. 복도에서 환자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곤란하겠지. 의사로서 호의일 뿐이야.
자기합리화를 한 로즈가 천천히 걷자 보조를 맞춰 함께 걸어가는 건우.
복도를 약 삼십 미터쯤 걸었을 때 건우가 말했다.
“소장암 4기시라고.”
다 알면서 뭣 하러 또 묻는 걸까? 굳은 얼굴의 로즈가 말했다.
“네.”
“생존 확률 17.1%.”
“…….”
로즈가 눈을 부라리며 건우를 노려본다. 하지만 건우는 자신 쪽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건우를 노려본 로즈가 말했다.
“놀리는 건가요?”
“아뇨.”
“그럼 왜 그런 말을 하시죠?”
건우가 천천히 로즈를 돌아본다.
“아빠가 그립습니까?”
“…….”
“아빠가 당신에게 다시 돌아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드디어 로즈가 폭발했다. 링거 폴대를 던져 버린 로즈가 고함을 지른다.
“당신 도대체 뭐야!!! 지금 날 놀리는 거야? 죽은 아빠가 돌아올 확률이 어디 있어!!!”
화가 난 로즈를 물끄러미 보던 건우가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춘다. 당장 뺨을 날려 버릴 기세로 씩씩거리는 로즈의 귀로 건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 그럴 확률은 제로입니다. 그에 반해 당신의 생존 확률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적어도 17.1%나 있으니.”
로즈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건우가 천천히 허리를 펴며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친다.
“그리고 그 확률. 내가 수술한다면 3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던 로즈가 다시 냉소적인 어투로 말했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는 분이군요?”
비틀린 웃음을 짓고 있는 로즈를 가만히 바라보던 건우가 다시 허리를 숙였다. 지지 않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쏘아보는 로즈.
건우가 말했다.
“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
“나는 당신 아버지, 닥터 램지의 마지막을 함께한 의사니까.”
삐뚤어진 마음으로 건우를 쏘아붙이려던 로즈의 몸이 굳었다.
“뭐……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