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110화
11. 성동격서(聲東擊西)(6)
“여긴 밥 안 줍니까?”
“…….”
“지난번에 비슷한 곳에 갔었는데 엄청 맛있더라고요. 여기도 맛있나요?”
“진짜 밥 먹으러 온 건가?”
“제가 원래 밥에 진심인 편이라서요.”
“…….”
반정수는 건우를 노려보다 말했다.
“미안하게 됐군. 내가 조금 전에 식사를 하고 와서. 대신 자네가 집에 갈 때 포장을 해주라 지시하겠네.”
“오, 잘됐네요. 엄마랑 먹으면 되겠다. 가뜩이나 밥맛 떨어지는 자리였는데, 배려 고맙습니다.”
“…….”
당돌하다. 아니, 싸가지가 없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개념이 없는 녀석일까? 아니다, 이놈은 무척이나 치밀한 녀석이다. 어쩌면 지금도 일부러 자신을 도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아들과 문제가 좀 있다고?”
건우가 실소를 지었다.
“그쪽 아드님 아직도 초등학생입니까? 싸웠으면 당사자가 해결해야지 왜 부모님이 나서시는지.”
“허허, 알다시피 내 아들이 워낙 모자란 놈이라.”
“오, 그건 인정합니다.”
“허허…….”
몇 마디 말을 섞을 때마다 이마에 힘줄이 돋는다. 미친개가 따로 없다. 필사적으로 성질을 참아낸 반정수가 말했다.
“간단하게 말하지.”
“복잡하게 말씀하셔도 잘 알아듣습니다. 명색이 의사인데 머리가 나쁠 리는 없잖아요?”
더럽게 깝죽대는 건우의 얼굴을 노려본 반정수가 말했다.
“원하는 게 뭔가?”
건우가 반정수를 마주 바라본다. 악하기만 하고 머리는 더럽게 나쁜 아들과는 다른 사람이다. 뭐, 그러니 연성재단을 만든 회장이 되었겠지만.
“진실을 알리는 것, 나쁜 놈은 벌을 받는 것.”
“…….”
반정수가 맹렬히 머리를 회전한다.
아들 반태민이 실형을 선고받지 않으려면 리베이트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성추행 사건이야 당시 연루된 교수 놈과 그에 동조했던 모든 놈을 잘라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현실은 후자를 해결하는 쪽이 더 어렵게 흘러간다.
반정수가 건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차명계좌, 태민이 것이라는 증거는 자네가 가지고 있겠지?”
건우가 어깨를 으쓱한다.
“글쎄요? 뉴스 보니까 그거 익명의 제보자가 보낸 자료라던데. 왜 저한테 물으십니까?”
“익명의 제보자와 자네는 관련이 없고?”
“글쎄요, 제 주변 누군가가 익명의 제보자일 순 있겠죠. 근데 제가 그걸 알면 익명이 아니잖아요?”
“말장난은 그만두지. 서로 바쁜 사람들인데.”
건우가 히죽 웃었다.
“그렇죠? 의사는 사람 살리기도 바쁜 사람들인데 돈독 오른 미친놈 때문에 참 많은 시간을 빼앗겼네요.”
“…….”
“그게 당신 아들, 반태민 이사장이고.”
반정수가 분노를 숨기며 말했다.
“원하는 걸 말하게. 서로 패를 까고 거래를 하면 될 것을 일을 너무 키웠어.”
건우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장치영 건은 해결 못 하십니다. 이미 증거를 당사자한테 다 넘겼으니까.”
“그건 괜찮아.”
“왜요, 또 당사자들 싹 자르고 대가리들은 피신시키려고?”
“어차피 조사를 해도 당사자들이 죗값을 받을 것이네.”
맞는 말이다. 은폐와 조작을 눈감아준 점은 책임이 있지만, 법적으로 그것을 증명해 내긴 어렵다.
장치영이 아무리 시끄럽게 휘저어도 성추행 사건을 일으킨 교수와 그의 주변인들을 비롯한 몇몇의 위증죄만 처벌받게 될 것이다.
건우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지만 맞는 말씀이네요.”
반정수가 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차명계좌에 대한 증거는 어디 있나?”
“제가 바봅니까? 그게 어디 있는지 알려드리게?”
“넘길 의향은 있나 보군.”
“머리가 좋으시군요.”
반정수가 손바닥을 비볐다.
“좋아, 거래를 할 준비가 됐네. 원하는 걸 말하게.”
몸을 앞으로 내민 반정수. 원하는 게 무엇이든 얼마든 들어줄 생각이다.
미리 건우가 제시할 조건이 무엇인지 김 변호사와 머리를 맞댄 적이 있다.
돈을 원할까? 아니다, 자료 수집 결과 모건우는 돈에 움직이는 타입이 아니다. 그럼 명예? 상대는 하산병원의 부교수다. 연성재단이 그보다 더 큰 명예를 안길 순 없다. 그럼 뭘까?
김 변호사와 반정수가 낸 결론은 건우가 적을 두었던 무릉도원 병원의 존속이었다.
‘병원 터가 아깝긴 하지만 요양병원 부지 일부를 떼서 존속시키면 된다. 어차피 대형 요양병원이 들어서고 외래진료를 함께 보라 지시하면 그런 작은 병원은 운영이 어려울 테니.’
이미 건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산했지만 속내를 감춘 늙은 너구리가 건우에게 말했다.
“말해보게.”
상대가 뭘 원할지 알고 있다는 건 이미 이 거래에서 반쯤 승리했다는 것이다. 기분 좋게 들어줄 건 들어주고, 원하는 걸 얻어낼 요량인 반정수는 자신감에 찬 얼굴이다.
그의 얼굴을 빤히 보던 건우가 몸을 내밀었다. 반정수와 얼굴이 닿을 듯 앞으로 내민 건우가 푸른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제가 중학교 때 말입니다.”
“으응?”
“동네 친구들이랑 쌈질하다 경찰서에 잡혀간 적이 있습니다.”
반정수의 얼굴이 구겨진다. 이 미친놈이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걸까?
무표정한 건우가 말했다.
“어렸으니 당연히 훈방이었죠. 근데 한 가지 조건이 있었어요. 부모님이 데리러 와야 한단 조건이었죠.”
건우가 반정수의 복부를 가만히 바라본다. 왜 저렇게 보는 걸까?
“다른 친구들은 다 엄마, 아빠가 와서 죄송하다고 허리를 숙이고 하나둘씩 집에 갔는데 저희 부모님은 안 오시더군요.”
반정수의 얼굴이 더욱 기괴해진다. 왜 자기 어린 시절 이야길 하는 걸까?
“아버지는 제가 파출소 유치장에서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고 난 후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유치장 안에서 울고 있는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렇게 말했었죠.”
건우가 몸을 다시 뒤로 젖히며 팔짱을 꼈다.
“반성 열심히 했어, 아들?”
“…….”
건우가 검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자식 교육은 그렇게 시키는 겁니다. 뭐가 잘못됐는지 정확히 알려주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 내 자식이라고 싸고돌다 애새끼 대가리가 썩는 겁니다.”
“…….”
건우가 다시 몸을 내미는 순간 다시 그의 푸른 왼쪽 눈이 번들거린다.
“내가 원하는 건, 사회적 책임이 있는 자리에 있는 인간이 자식 교육을 바로 시키는 겁니다.”
반정수의 얼굴이 구겨진다.
“결국, 내 아들을 감옥에 보내야겠단 말인가?”
건우가 슬쩍 고개를 까딱이는 것이 보인다.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꽉 쥔 반정수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무릉도원 병원을 내버려 둔다고 해도 안 되겠나?”
“어차피, 근처에 요양병원 지을 거잖아요? 거기서 외래진료 보기 시작하면 병원 망하는 건 순식간이겠죠?”
“…….”
자신이 거래에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눈앞의 능구렁이 같은 녀석은 자기 머리 위에 있었다.
“질문을 바꾸지.”
“예, 근데 제가 배가 고파서 그런데 빨리 좀 끝내주실래요? 우리 엄마도 굶고 있어서 말입니다.”
“내가 어쩌면 되겠나?”
‘거래를 하자’라는 태도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라는 태도로 바뀌었다.
건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영월에 요양병원 짓지 마세요. 다른 곳도 많은데 왜 하필 거깁니까? 교통도 불편한데.”
“…….”
땅값이 싼 강원도라고 해도 미리 선점해 둔 부지 규모가 크다. 손해를 가늠해 본 반정수가 이를 갈았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나? 그 작은 병원이 뭐라고?”
“고향이거든요.”
“고, 고향?”
“마음의 고향도 고향이니까. 그냥 그렇게 아시면 됩니다.”
반정수가 이를 갈며 건우를 노려보았다.
“그거면 되겠나?”
“그냥은 안 되고, 문서로 남겨주시죠. 무릉도원 병원을 한가한 원장님의 개인병원으로 등록해 주시고, 재단에선 운영에서 손 떼겠다는. 아, 물론 부지를 비롯한 시설물은 다 양도해 주시는 조건으로.”
“…….”
“뭐, 싫으시면 안 해도 됩니다. 강요는 안 합니다.”
이게 강요잖아, 이 새끼야! 라고 소리칠 뻔한 반정수가 목구멍을 뚫고 나오는 욕을 겨우 참아낸다. 가만히 건우를 노려보던 반정수가 밖을 보며 말했다.
“김 변호사.”
즉시 문이 열리며 김 변호사가 고개를 내밀자, 반정수가 이를 뿌드득 갈며 말했다.
“방금 조건 들었나?”
“예, 회장님.”
“이행하게.”
“즉시 진행하겠습니다.”
건우가 몸을 건들거리며 물었다.
“김 변호사님. 그거 얼마나 걸려요?”
“서류 작업까지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건우가 핸드폰으로 날짜를 확인하며 말했다.
“어, 검찰에 차명계좌 증거 넘기기로 한 날짜가 오 일 뒤인데.”
“그전까지 처리하겠습니다.”
“진즉 그러시지.”
“…….”
김 변호사도 건우를 노려본다. 허허, 여기 있다간 눈빛에 몸이 뚫려 죽을 판이네?
건우가 다시 반정수를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자네의 조건은 다 들어줬네. 이제 증거를 넘기게.”
“하하, 말만 하셨죠. 실제로 이루어진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오 일 뒤에 넘기겠단 건가?”
“조건만 잘 지키시면 오 일 안에 검찰로 증거가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 알았네.”
“이야기 끝나셨죠?”
“그래.”
“그럼 가 보겠습니다. 아! 음식 포장은요?”
“…….”
“약속하셨잖아요?”
반정수가 이를 갈아대며 말했다.
“밖에다 말하게. 계산은 내가 할 테니.”
“오, 역시 자기 말에 책임을 지실 줄 아시네요, 아들과는 다르게. 그럼 전 그만 가 보죠.”
건우가 방을 벗어나자, 아까 그 경호원들이 엉거주춤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가만히 경호원들을 노려보던 건우가 다시 방문을 벌컥 열자, 얼굴이 시뻘게진 반정수가 또 뭐냐는 얼굴로 올려다본다.
“저기 영감님.”
“……뭐?”
회장인 자신에게 감히 영감님이라고 부르는 의사. 어디까지 자신을 능멸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건우가 푸른 눈을 번들거리며 말했다.
“일은 변호사한테 맡기고 병원부터 가 보시죠? 연성대학병원 가시면 되잖아요?”
속이 뒤집어져서 안 그래도 수액이라도 맞고 싶은 심정인 반정수가 더욱 뒤집어지는 속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왜?”
“영감님 위암 1깁니다.”
반정수의 눈이 커진다.
“뭐??”
건우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솔직히 알려 드리고 싶지 않은데, 제가 사정이 좀 있어서요.”
품을 뒤져 막대사탕을 꺼낸 건우가 감히 회장 앞에서 사탕을 입에 문다. 왼쪽 가슴을 문지른 건우가 어정쩡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는다.
“안 알려 드리고 가면 오늘 밤에 아파 죽을지도 몰라서. 검사받으시는 건 영감님 자유시니까 알아서 하시고. 그럼 전 갑니다.”
건우가 문을 닫고 복도를 걷는다. 곧 뒤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자, 씩 웃으며 요정을 나서는 건우.
복도 끝에서 건우를 지켜보던 김 변호사가 반정수가 있는 방문을 열자, 테이블이 뒤집어져 있고 다기들이 바닥에 깨져 있다.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는 반정수를 보곤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지은 김 변호사가 말했다.
“무릉도원 병원의 일은 즉시 진행하라 지시했습니다. 그보다 모건우, 저자의 마지막 말. 확인해 보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뭘 확인해! 나 열 받게 하려고 깝죽대는 거지!”
“회장님. 자료 조사 중에 발견한 것입니다만, 모건우 선생이 내린 진단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답니다.”
성질을 내던 반정수의 움직임이 굳었다.
“뭐?”
“모건우 선생은 아픈 곳을 귀신같이 알아낸다고 했습니다. 한번 검사를 받아보시는 것이 어떠신지.”
반정수가 눈알을 굴리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자기 몸에 이상이 있는 건 문제가 다르다.
“원장한테 전화해서 검사 예약해 두라고 해.”
“잘 생각하셨습니다, 회장님.”
김 변호사가 나가고 난 후 홀로 남은 반정수가 자신의 복부를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이를 갈았다.
“이것도 날 놀린 거라면 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요정 주차장으로 내려와 포장한 음식을 차에 던진 건우가 운전석에 타며 화려한 요정 건물을 올려다본다. 실소를 지은 건우가 중얼거린다.
“그것만 막으면 아들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건우가 가만히 요정을 노려보다 전화를 들었다.
“장치영 선생님. 접니다. 오 일 뒤에 움직이세요. 아직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