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108화
11. 성동격서(聲東擊西)(4)
며칠 후 무릉도원 병원.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차량 여러 대가 주차장으로 잇달아 들어온다.
가장 앞차에서 잽싸게 내린 연성대학병원 원무과장이 뒤차로 뛰어와 문을 연 후 허리를 숙이자, 반태민 이사장이 내리는 것이 보인다.
같은 차의 반대편 문에서 내린 원장이 병원을 보며 혀를 찬다.
“이런 곳도 병원이라고. 도대체 품위 없는 저 낙서들은 뭡니까? 청결해야 할 병원 외벽에 애들 낙서라니.”
원무과장이 동조하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너무 관리가 안됐군요.”
반태민 이사장이 둘을 힐끔 본 후 말했다.
“어차피 다 밀어버릴 건데 무슨 상관입니까?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마시죠.”
원장과 원무과장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진다. 차 소리를 듣고 로비에서 나온 고 과장이 바람처럼 달려와 허리를 숙였다.
“원장님, 이사장님, 오셨습니까!”
반태민이 고 과장을 보며 물었다.
“누구십니까?”
“무릉도원 병원 원무과장 고기만입니다.”
반태민은 고작 시골 병원 원무과장 따위와 말을 섞고 싶지 않은지 인상을 쓰며 스쳐 지나간다.
원장도 그를 보좌하며 따라가고, 본원 원무과장이 고 과장에게 속삭였다.
“한가한 원장은 어디 있습니까?”
“원장실에 계십니다.”
원무과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감히 이사장님이 직접 내려오셨는데 원장실에 들어앉아 기다려요?”
“…….”
원무과장은 고 과장을 위아래로 본 후 이사장과 원장을 따라간다. 예의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세 사람이었지만 감히 싫은 내색을 하지 못한 고 과장은 한숨만 쉬며 병원을 바라본다.
“이제 여기 생활도 정말 얼마 안 남았네. 정이 많이 들었었는데.”
원무과장이 발을 빠르게 놀려 병원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선 자신이 제일 아래니 이사장을 보좌해야 하기 때문이다.
빨리 망할 한가한 원장에게 밖으로 나와 이사장을 맞으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던 원무과장은 문을 열자마자 로비에 보이는 풍경에 멈칫한다.
로비 가운데 딱 버티고 선 두 남자가 반태민, 원장과 대치 중이다.
“모, 모건우?”
원무과장이 중얼거리자, 힐끔 보는 건우.
반태민이 건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표는 수리한 걸로 아는데. 다른 병원 의사가 왜 여기 있지?”
건우가 히죽 웃는다.
“우리 언제 반말하기로 했었습니까?”
이죽거리는 건우의 태도에 원장이 나섰다.
“이봐, 모건우 선생! 이사장님 앞이야, 예의를 갖춰.”
건우가 반태민을 고갯짓하며 말했다.
“방금 이 사람이 자기 입으로 말했잖아요? 사표 수리했다고. 이제 내 상사도 아닌데 내가 왜요?”
“모건우 선생! 자네, 정말 이럴 건가!”
반태민이 건우를 노려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친 개미가 이를 드러내 봐야 개미 새끼일 뿐이죠. 상대할 필요 없습니다. 관계자가 아니니 내쫓으세요.”
원무과장이 얼른 나섰다.
“이사장님 말씀 들었죠? 나가세요.”
자신의 팔을 잡으려는 원무과장의 손을 피한 건우가 말했다.
“이거 왜 이래요? 나 환자로 왔는데.”
원무과장이 멈칫한다.
“환자요?”
“예, 연성대학병원은 돈 안 되는 환자는 가려 받는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
“나 진짜 아침부터 배가 아파서 병원 온 건데요.”
“아니, 서울에 사시는 분이 왜 영월까지 내려와서 배 아프다고 난리 칩니까?”
“어디서 배가 아프든 그건 제 자유 아닙니까?”
“이봐요!”
“어어? 대학병원 원무과장이 환자 밀치네? 기자 부를까요?”
“…….”
반태민이 짜증 난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냥 두세요. 상대를 안 해야지.”
반태민이 건우 옆에 서 있는 의사를 보며 물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뭔가 잔뜩 열이 받아 있는 듯한 얼굴의 의사. 겁도 없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처음 보는 의사를 본 반태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쪽도 다른 병원 의사요?”
장치영이 반태민을 노려만 보고 있자, 원무과장이 얼른 말했다.
“CS 장치영 선생입니다. 저희 병원 소속입니다.”
연성재단 소속의 의사가 감히 자신을 노려본다? 반태민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원장이 속삭인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상대하지 마시고 그냥 가시죠.”
반태민이 원장을 째려본다.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눈으로 묻는 반태민. 하지만 원장은 모든 이가 있는 곳에서 말할 것이 아니라는 듯 딴청을 피운다.
반태민이 다시 장치영을 노려본 후 그를 스쳐 지나며 말했다.
“오늘 본인 행동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게 될 겁니다.”
장치영의 눈에 불길이 치솟는다.
건우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죠?”
원장실로 올라가려던 반태민이 멈칫하며 건우를 돌아본다.
“뭐요?”
건우가 어깨를 으쓱한다.
“본인 행동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게 될 거라고요.”
반태민은 건우를 미친놈 보듯 노려본 후 몸을 획 돌려 원장실로 간다. 연성대병원장이 건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대는 것도 상대를 가려가며 했어야지. 쯧쯧.”
자신을 노려보곤 원장실로 올라가는 원무과장을 보며 건우가 씩 웃었다.
“그러게요. 상대 좀 가려가며 덤비시지.”
로비에 장치영과 둘만 남은 건우가 고 과장의 책상 위에 던져둔 두꺼운 서류 봉투를 들어 장치영의 가슴에 민다.
“방금 저 새끼들 봤죠?”
“…….”
“사람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선생님 얼굴 기억도 못 하는 이사장. 저 새끼가 우릴 개미라고 부른답디다.”
장치영의 얼굴이 꿈틀거린다. 어지간히 열이 받은 모양이다. 건우가 장치영의 손을 잡아 서류 봉투를 붙잡게 한 후 말했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여기 다 담겼습니다. 이제 선택하시죠.”
장치영이 2층으로 올라간 이사장 일당들 쪽을 한참 노려본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분노가 올라온 장치영.
한참을 원장실 방향에 시선을 주던 장치영이 건우를 바라본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기다리는 건우를 향한 장치영의 목소리가 울린다.
“거래합시다.”
건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거래 조건은 아시죠?”
장치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시끄럽게 휘젓겠습니다.”
* * *
한가한 원장과 면담을 통해 무릉도원 병원 철거 일정을 통보하고 서울로 올라온 반태민 이사장이 연성대학병원 정문에서 내리자, 교수들이 마중을 나와 있다.
사실 요즘 마음에 들지 않는 일투성이였던 반태민은 그들에게 호통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큰일을 앞두고 잡음이 나와선 안 된다.
정치인이라도 된 것처럼 한 명씩 악수를 하는 반태민. 교수들은 자신들보다 한참 어린 반태민과 악수를 하며 허리를 숙인다.
그때 원무과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헐레벌떡 뛰어와 눈치를 보는 것이 보인다.
눈으로 원무과장을 찾은 직원은 얼른 달려와 과장에게 귓속말을 하고, 원무과장의 눈이 동그래지는 걸 본 반태민이 직감적으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눈치채고 말했다.
“또 무슨 일입니까?”
원무과장이 얼른 달려와 말했다.
“일단 빨리 원장실로 가시죠.”
뭔가 사달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이 중요한 시기에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를 간 반태민이 빠른 걸음으로 원장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자 원무과장이 얼른 TV를 켰다.
뉴스 채널을 틀자, 검찰 마크가 그려진 검찰청 건물이 보이고 여성 앵커의 목소리가 귀를 때린다.
[검찰은 오늘, 2016년 연성대학병원에서 일어난 성희롱 사건에 연루된 교수들과 이를 은폐하기 위해 움직인 직원들을 내부 고발했던 흉부외과 의사 장 모 씨가 사건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검찰에 제출했음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반태민과 함께 앉았던 원장이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반태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이이……!!”
화면이 전환되고, 남자의 그림자 속에 물음표가 그려진 그림이 나온다.
여성 앵커가 다시 말을 잇는다.
[또한 검찰은 2017년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되었던 연성대학병원 신경외과 의사가 사실은 리베이트의 책임을 대신 뒤집어쓰고 시골 병원에 좌천되어 있었으며, 입을 다물고 몇 년 시골에 있는 대가로 교수 임용을 약속받았다는 증거도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제출되었음을 밝혔습니다.]
반태민이 테이블이 부서져라 내려친다.
“이건 또 무슨 이야기야!!!”
원장이 식은땀을 닦은 후 나직하게 말했다.
“기억…… 안 나십니까?”
“무슨 기억!!”
원장은 당장에라도 뭔가를 집어 던지기 직전인 반태민에게서 멀어지려 무거운 엉덩이를 옮기며 말했다.
“CS 장치영 선생이 흉부외과 과장 지용현 교수를 내부 고발했던 사건 말입니다.”
반태민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번뜩 떠오르는 기억. 잔뜩 인상을 찌푸린 그가 말했다.
“그건 당시 사건에 연루된 간호사한테 돈 먹이고, 목격자들 전원 승진시키고 끝난 일 아닙니까? 내부 고발했던 의사 새끼 하나 좌천하고 잠잠했던 이야기가 왜 또!! 그리고 NS 의사 이야긴 또 뭡니까!”
원장이 연신 식은땀을 훔치며 말했다.
“2017년에 이사장님께서 직접 주도하셨던 미국과의 거래 생각 안 나십니까?”
반태민이 인상을 구겼다.
“그게 왜요!”
원장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미국의 Surgical Theater에서 개당 16만 불짜리 미세현미경 열 대를 들여왔었습니다. 단극 및 양극 응고기, 고속드릴 장비, 특수 수술대 및 수술 의자, 환자 두부 고정기 및 360도 회전 가능한 뇌 견인기까지 총 3천만 불의 거래였습니다.”
반태민이 고함을 질렀다.
“내가 그걸 몰라서 묻는 겁니까, 지금!”
모를 수가 없다. 당시 연성대학병원 NS(신경외과)는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반태민은 이 일로 아버지에게 처음 칭찬이란 걸 받아봤었다.
원장이 반태민의 기세에 눌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시 기기 구매에 사용된 비용은 3, 350만 불이었습니다. 이사장님 지시로…… 기록한 겁니다.”
화를 내던 반태민이 그제야 몸을 굳혔다.
당시 미국의 회사와 짜고 숫자 조작을 했었다. 연성재단이 그들에게 실제 지불한 금액은 2,850만 불이었고, 500만 불은 리베이트로 돌려받았었다.
하지만 집요한 검찰이 사건을 파고들며 NS 의사 중 멍청한 놈 하나에게 증언을 요청했었다.
간이 작은 녀석은 신경외과 교수에게 사실을 알렸고, 이사회는 급히 의사를 불러 증언했던 이야기가 뭔지 모조리 털어놓으라고 했었다.
멍청한 의사는 검찰이 말하란다고 자신이 아는 걸 말해 버렸다고 했다. 이사회는 당장 검찰을 찾아가 자신이 잘못 알았다고 진술하게 했고, 검찰은 황당해하며 이사장을 독대했다.
이사장은 자신이 사람 관리를 잘못해 나랏일 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며 정중히 사과했고, 그 의사를 징계하겠다고 약속하며 사건을 막았었다.
물론 그가 다시 입을 놀리면 곤란했기에 한 삼 년만 잠잠해질 때까지 시골에 있다 본원으로 복귀 시 교수 자리를 주겠다며 회유했었다.
“그때 그 사건이란 말입니까?”
“예…… 둘 다 이사장님 지시로 움직인 것이었습니다…….”
“이…… 이이!!!”
지시는 자신이 했지만 그것을 이행한 자들이 일을 허술하게 해 이 사달이 났다고 생각한 반태민이 원장 얼굴에 던져 버릴 만한 물건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그 순간, 테이블 위에 올려둔 그의 전화가 울렸다.
액정에 뜬 이름을 보고 저승사자라도 만난 얼굴이 된 반태민이 급히 전화를 받았다.
“예, 아버지. 아, 안 그래도 전화드리려고…….”
-집으로 와, 한심한 새끼.
“아, 아버지! 제가 어떻게든 수습하겠습니다!”
-한 시간 주마. 당장 들어와.
전화가 끊겼다. 쉴 새 없이 눈동자가 흔들리며 멍한 눈으로 전화를 바라보던 반태민이 이를 갈며 원장과 원무과장을 노려보았다.
“집에 다녀올 테니 그전에 상황 막아낼 방법 생각해 둬요. 만약에 이 사건 제대로 터지게 그냥 두면 둘 다 모가지 날아갈 각오하셔야 될 겁니다.”
한참이나 원장과 원무과장을 노려보던 반태민은 시간을 확인 후 급히 일어나 나갔다.
원장이 대머리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이거 터지면 우리만 모가지 날아가는 게 아니겠지, 반태민 당신도 그럴 거야.”
원장의 중얼거림을 들은 원무과장이 몸을 움찔한다. 모두의 목이 날아갈 위기인 것이다.
원장이 원무과장을 보며 말했다.
“장치영 사건에 연루된 모든 의료진들을 데려오세요. 어떤 이도 증언하지 못하게 미리 막아야 됩니다. 이지훈 사건에 이용된 차명계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원무과장이 땀을 삐질 흘리며 말했다.
“이사장님 차명계좌라 제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 부분은 이사장님이 직접 처리해 주셔야…….”
원장이 한숨을 쉴 무렵, TV 속 여성 앵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검찰은 익명의 제보자는 앞서 전달한 연성대학병원 반태민 이사장의 차명계좌가 본인의 것이 확실하다는 증거가 있음을 밝혔다고 발표했습니다. 만약 해당 사항들이 모두 진실로 밝혀질 경우, 연성대학재단은 운영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HTN 뉴스 강주원입니다.]
원장이 이마를 짚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