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닥터 프랑켄슈타인-107화 (107/230)

닥터 프랑켄슈타인 107화

11. 성동격서(聲東擊西)(3)

금진 그룹 회장실.

소파 팔걸이를 검지로 톡톡 두들기는 진용철 회장이 턱을 괸 다른 손도 꼼지락거린다.

건우와 식사를 마친 후부터 꼼짝 않고 소파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진용철 회장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수행 비서는 잠자코 그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이봐.”

마침내 진용철 회장이 침묵을 부쉈다.

“예, 회장님.”

“모건우 선생의 부탁 말이야.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수행 비서 역시 밖에서 건우의 부탁을 들었기에 진용철 회장만큼 고민할 시간이 있었다.

“제 생각엔 무릉도원 병원을 살리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음…….”

건우가 부탁한 것은 무릉도원 병원에 소속되어 있는 이 중 세 명의 정보를 모아 달라는 것이었다.

한가한 원장을 비롯해 CS와 NS 선생에 대한 것이다.

진용철 회장이 가만히 생각하다 말했다.

“한가한 원장이면 그 사람이지?”

“예, 2008년까지 연성대학병원 원장을 지내던 사람입니다.”

“반태민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좌천된 케이스였나?”

“반태민이 이사장이 되기 전에 일어났던 사건이었습니다.”

“음, 어떤 사건이었지?”

진용철 같은 사람이 신경 쓸 만한 사건이 아니었기에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모종의 사건이 있었다는 건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수행 비서가 말을 이었다.

“당시 반태민은 차기 이사장 후보였습니다. 하지만 한가한 원장은 이사회에서 그가 병원을 이끌 만한 인성이 부족하다는 발언을 했고, 이사장을 밀고 있던 이사회 인력들에 의해 좌천되었습니다.”

진용철이 인상을 썼다.

“원장씩이나 되는 양반을 그냥 좌천할 수는 없었을 텐데. 뭘 뒤집어씌운 건가?”

“리베이트입니다.”

“음, 기억나는군. 박승환 원장을 그 자리에 앉히기 전에 우리가 데려오려고 눈독 들이던 사람이 한가한 원장이었지?”

“예, 그렇기에 자료가 꽤 많습니다.”

“리베이트 사건은 확실히 누명이 맞고?”

“확신하고 있습니다만, 증거를 모아두진 않았습니다.”

“음.”

“지금이라도 움직여 증거 수집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CS 장치영과 NS 이지훈은 어떻게 할까요?”

진용철이 다시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다.

“모건우 선생이 한가한 원장보단 CS와 NS 의사의 정보 수집에 집중해 달라고 했었어. 뭔가 냄새가 나지?”

진용철은 눈치 빠른 호랑이다. 건우의 말에 다른 속내가 있다는 것 정도는 금방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이다.

진용철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지난번 무릉도원 병원 마취과 의사 사건처럼 이번에도 뭔가 내막이 있는 것 같구먼. 정보 전부 긁어모아서 내 앞에 가져와, 삼일 안에.”

“예, 회장님.”

* * *

강원도 영월 무릉도원 병원.

주말에 내려온 건우가 말년 할머니와 최씨 할아버지의 진료를 본 후 그들을 마중한다.

“할머니, 이제 찐빵 그만 싸오세요. 힘드시잖아요.”

말년 할머니가 빙긋 웃으며 건우의 손을 잡는다.

“선생은 서울에서 매주 내려오는데 그깟 찐빵 찌는 게 뭐가 대수라고. 어차피 장사해야 돼서 매일 하는 게 그 일이야. 내가 하는 일이라곤 그저 반찬 통에 찐빵 담는 것뿐인데.”

“그래도 여기 올 때 버스 타고 오시잖아요. 무거운데 그만 싸오셔도 돼요.”

“아유,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야. 말리지 마.”

“하, 진짜 말 안 들으신다니까.”

건우가 최씨 할아버지를 보며 물었다.

“설사 2회 이상 하시면 바로 전화하시는 거 잊지 않으셨죠?”

“그래, 자네 연락 안 되면 원장 선생님께 연락드리란 것도 기억해. 나 아직 뇌는 멀쩡하거든.”

최씨 할아버지는 여전히 컨테이너에 산다. 말년 할머니와 꽤 친해졌는지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하는 건 자신에게 맡기라는 할아버지.

떠나는 할머니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던 건우의 눈길이 컨테이너 옆 고양이 집으로 향한다.

이상하다.

자신이 이 병원에 있을 때 CS 장치영은 한 번도 고양이를 보러 나오지 않았는데. 자신이 떠나고 나니 고양이 우리 앞에서 저 인간을 목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의 손에 들린 건 고양이 전용 간식.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 그냥 고양이가 예쁘다고 사람 먹는 소시지를 줬던 자신보다 훨씬 나은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뚜벅뚜벅 걸어 쪼그리고 앉은 장치영의 옆에 선 건우가 가운에 손을 집어넣고 말했다.

“병원 없어지면 뭐 하실 겁니까?”

“…….”

장치영은 고양이 먹이를 다 준 후 손을 털며 일어났다. 건우와 비슷한 표정의 장치영이 돌아보며 말했다.

“글쎄요.”

장치영이 몸을 돌려 병원 쪽으로 간다. 사교성이라곤 칼몬드의 멸치만큼도 없는 새끼.

하지만 지금 건우는 무릉도원 병원을 살려야 한다. 솔직히 마음에 드는 인간은 아니지만 붙잡아야 한다.

“장치영 선생님.”

장치영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예.”

10미터쯤 거리를 두고 마주 선 두 남자. 건우가 잠시 장치영을 바라보다 머리를 긁었다.

“뭐, 포장해서 말하는 거 잘 못 해서 그냥 말하렵니다.”

“뭐죠?”

“그쪽 사건 압니다.”

“…….”

“성희롱 사건 내부 고발.”

장치영의 눈썹이 일그러진다.

“남의 뒷조사 하시는 게 취미인 사람은 세상에 많죠.”

“아, 뭐. 그렇다고 칩시다. 중요한 건 아니니까.”

장치영은 건우의 태도에 약간 화가 난 듯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장치영의 기분 따윈 안중에도 없는 건우가 말을 잇는다.

“나랑 거래 안 하렵니까?”

장치영이 한쪽 눈썹을 찡그린다.

“거래?”

“오지선 선생 사건 압니까?”

갑자기 언급된 오지선의 이야기. 장치영은 얼마 전에 오지선이 누명을 벗었음을 기억하는지 슬쩍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요?”

건우가 고갯짓하며 말했다.

“그거 제가 한 겁니다.”

“…….”

장치영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진다. 고작 의사 나부랭이가 그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

“당신이?”

건우가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장치영은 건우를 가만히 바라보다 물었다.

“그런데요?”

장치영은 건우가 미덥지 않은 듯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음, 이 새끼는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었지. 사람 못 믿을 만도 하다.

건우가 고개를 삐딱하게 꺾으며 말했다.

“거래는 상대가 원하는 걸 주고, 내가 원하는 걸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장치영은 건우를 위아래로 보며 물었다.

“당신이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있습니까?”

“아마도?”

장치영이 한참 건우를 바라보다 물었다.

“그럼 당신이 원하는 건?”

건우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뭔가 사악해 보이는 건우의 웃음에 장치영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최대한 시끄럽게 휘저어주는 겁니다.”

“……?”

건우가 의문스러운 얼굴이 된 장치영에게 한 발 다가오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원하는 걸 얻을 겁니다.”

장치영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진 아십니까?”

다시 CS 의사로 대형 병원에 가게 해달라? 개인병원을 개원하게 해달라? 장치영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왕래가 없어 잘 알지도 못하는 건우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 리가 없다.

장치영은 헛소리 그만하라는 듯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소모성 대화네요. 전 그만 가 보겠습니다.”

몸을 돌린 장치영이 두 걸음쯤 걸었을 때 뒤에서 건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실을 알리는 것.”

걷고 있던 장치영이 멈칫한다. 눈동자가 흔들린 장치영이 돌아보았을 때 가운에 손을 넣은 건우가 고개를 약간 들고 말한다.

“그리고 진실을 가린 자들에게 복수하는 것.”

장치영의 얼굴에 놀람이 번진다. 가만히 건우를 관찰하던 장치영이 실소를 지으며 다시 몸을 돌린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당신이 원하는 것도 얻게 될 겁니다.”

어차피 그게 가능하다면 최대한 휘저을 생각이었다. 자신을 나락을 떨어뜨린 자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타격을 주는 것. 그게 장치영이 가진 복수심이다.

병원으로 들어가는 장치영을 바라보던 건우가 씩 웃었다.

“새끼, 그런다고 멋져 보일 줄 아냐?”

병원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 건우. 2층 창문 중 하나가 열려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NS 이지훈이 창문을 닫으려다 건우와 눈을 마주치곤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이 보인다.

건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슬쩍 고개를 까딱인다.

“넌 딱 기다려. 썩어 빠진 멍청한 새끼.”

* * *

삼 일 후, 무릉도원 병원.

한가한 원장이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모 선생님.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다짜고짜 원장실로 쳐들어와 병원 기기들을 판매하지 말라 요구하는 건우 덕에 원장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건우는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다 손가락을 두 개 폈다.

“두 달. 두 달만 미뤄주시죠.”

“그러니까 왜요?”

건우가 원장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병원. 이제 그만두고 싶어지신 건 아니죠?”

“…….”

“정든 마을 어른들이나 아이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병원. 계속 유지하고 싶잖아요, 아닙니까?”

“…….”

“남자답게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 딱 잘라 나 이제 쉬고 싶다. 뒷방 노인네처럼 집구석에 틀어박혀서 옛날 드라마나 보며 노년을 즐기고 싶다고 말씀하시면 깨끗하게 물러나죠.”

원장이 인상을 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모건우 선생님.”

건우가 원장을 직시하며 말했다.

“마음의 고향을 지키려는 것뿐입니다.”

“마음의…… 고향?”

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원장실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본다.

“제게는 말입니다. 참 많은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건우가 뒤돌아선 채로 양손을 들었다.

“시리아에 가서 양 손목이 잘렸습니다.”

원장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양 손목이 잘려? 외과의사가 그렇게 큰 부상을 입고도 멀쩡하게 수술을 하고 있다고?

“뭐, 뭐라고요?”

건우가 돌아보며 자신의 푸른 눈을 만진다.

“이 눈도 잃었었습니다.”

원장의 눈이 더 커졌다.

“누, 눈을 다친 게 아니라 잃었다고요?”

건우가 왼쪽 가슴을 툭툭 두들긴다.

“여기도 잃었었죠.”

“…….”

말을 잃은 원장. 이 남자가 하고 있는 말이 전부 정말일까? 건우가 다시 창밖을 보며 말했다.

“어처구니없게 알레르기 성분이 독하기로 유명한 복숭아나무를 버젓이 병원 입구에 심어놓은 괴상한 병원. 이 병원에 왔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겁니다.”

“…….”

“그러니까 여기가 제 고향이죠.”

원장이 건우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원래도 큰 편이지만 오늘따라 더 커 보이는 건우의 등을 바라보는 원장이 말했다.

“도대체 어떡하시려는 겁니까?”

건우가 원장을 돌아보며 눈을 빛낸다.

“나는 내 고향이 사라지는 걸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겁니다.”

건우가 손가락을 풀며 중얼거린다.

“열 받은 개미 새끼가 어떻게 고양이 손아귀에서 쥐를 살리는지 지켜보세요.”

하나부터 열까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원장은 그저 놀란 눈으로 건우를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도대체 모건우 선생, 당신은…….’

같은 시각 금진 그룹 회장실.

분노한 얼굴의 진용철 회장이 수행 비서가 모아온 자료를 보다 서류를 공중으로 획 집어 던지며 고함을 쳤다.

“이런 천인공노할 새끼들을 봤나!”

냉철한 사업가로 부조리한 일들도 많이 해온 자신이었지만 할아버지의 유지는 잊지 않은 진용철.

‘몸이 아픈 사람이 있더라도 마음이 아픈 자는 없게 하라.’

몸과 마음이 아픈 자들을 치료해야 할 의료인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비록 다른 병원의 일이지만 자신의 성정상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만행들을 확인한 진용철이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싹싹 긁어와! 증거가 없으면 만들어 와! 이 찢어 죽일 새끼들!”

바닥에 흩날린 서류를 줍고 있던 수행 비서가 바람처럼 달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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