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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프랑켄슈타인-103화 (103/230)

닥터 프랑켄슈타인 103화

10. 모건우가 가르치면 다르다(4)

하산병원 원장실.

박승환 원장이 면담을 요청한 성연호 센터장과 마주 앉아 차를 나누다 물었다.

“EM 소속 레지던트와 AN 펠로우, PA 간호를 간담도 췌장 센터로 데려가시겠다고요?

성연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겠습니까?”

“EM에서 가만있겠습니까? 가뜩이나 사람이 부족한 곳인데요.”

“본인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좋지 않겠습니까? 레지던트 시절부터 간담도 센터에서 배운다면 이후 미래를 보장받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원장이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

“AN의 의사는 지난번 모건우 선생 영입 때 법정 싸움을 했던 그 선생이지요?”

“예, 수술실에서는 모르고 있었습니다만, 나와서 신상 명세를 보니 그렇더군요.”

“흠, 모건우 선생이 괜히 데려온 게 아니었군요. 법정 싸움을 한 보람이 있어요. 하지만 AN 소속으로 두고 간담도 센터의 수술에만 부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간담도 센터의 수술들은 보통 장시간입니다. 스케줄을 맞추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다른 곳에 불려 다니며 여러 수술을 하게 되면 의사에게 극심한 피로감을 주게 될 겁니다.”

“음…….”

PA 간호사를 발령하는 건 비교적 쉽지만 각자 소속이 있는 의사들을 간담도 센터 전문 인력으로 배정하는 건 각 과의 동의가 필요하다.

박승환 원장이 생각에 잠겼다 말했다.

“본인들 의사는 확인한 겁니까?”

“거절하겠습니까?”

“허허.”

하산병원 간담도 센터로 발령 날 기회를 걷어차는 의사가 있다면 그건 바보일 것이다. 본인의 경력이 화려해진다는 건 앞으로 빛나는 미래가 보장된다는 뜻이니까.

박승환이 성연호를 보며 물었다.

“단지 레지던트들일 뿐인데 그리 욕심이 나는 인재였습니까?”

성연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R3 선생은 펠로우라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R1 선생은 R3 정도의 침착함을 보였습니다. 지금 이 상태라면 나중엔 더 크게 성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 좋습니다, 센터장님이 이런 부탁을 하시는 건 처음이군요. 본인들 의사 확인하시고, 다시 이야기 나누죠.”

“고맙습니다, 원장님.”

* * *

하산병원 카페테리아.

성연호의 부름에 부리나케 뛰어온 중곤이 잔뜩 얼어 있다가 눈썹을 꿈틀거린다.

“간담도 센터로 말입니까?”

성연호가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예, 저와 함께 일하는 게 어떠신지 여쭤보러 왔습니다.”

절대 거절할 리 없는 제안이기에 오히려 선물을 주는 심정으로 여유롭게 말하는 성연호.

중곤은 잠시 눈을 굴린다. 참 파악하기 쉬운 성격이다. 머리 굴리는 모습이 저렇게 티 나게 보이는 사람도 오랜만이다.

중곤이 고민하다 물었다.

“저…… 거기 소속되면 간담도만 전문으로 수술하게 되는 겁니까?”

“그렇죠, 장시간 수술이긴 하지만 전담으로 하는 것이라, 응급실 근무와는 환경이 다를 겁니다. 우리 의사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참 소중하지요. 간담도 센터로 오신다면 스케줄 조정을 통해 여유로운 여가 시간도 보장받게 되실 겁니다.”

“죄송합니다.”

성연호의 눈이 커졌다. 죄송하다? 거절한단 말인가?

“죄송하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중곤이 고개를 숙였다.

“간담도 센터는 좋은 곳입니다. 멋진 환경과 좋은 근무 환경을 보장받는 것도 좋습니다. 그곳에도 응급실처럼 많이 아프고 도움이 필요한 환자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간담도 센터의 수장인 자신 앞에서 센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부족하다 말하는 중곤 덕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성연호가 말했다.

“그게 뭡니까?”

중곤이 성연호의 뒤를 힐끔 보더니 씩 웃는다. 의문스러운 얼굴의 성연호가 고개를 돌리자, 무표정한 얼굴로 막대사탕을 문 건우가 복도를 걷고 있는 것이 보인다.

건우의 팔에 매달린 혜선이 뭔가를 조르고, 건우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팔을 뿌리치고 있다.

다시 중곤을 본 성연호가 물었다.

“모건우 부교수를 말하는 겁니까?”

중곤이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인다.

“제안해 주신 점 깊게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센터장님.”

“…….”

한 시간 후, 혜선을 응급실 입구에서 만난 성연호.

혜선은 성연호의 제안을 듣다 중간에 허리를 푹 숙여 버린다.

“죄송합니다, 센터장님!”

“…….”

“귀한 제안 해주셨는데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혜선은 잠시 고민하다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전 모건우 부교수님 밑에서 배우겠습니다.”

“…….”

그때 응급실 문이 열리며 건우의 외침이 들려온다.

“B-19 베드! 수액 조절 어떤 놈이 했어!!!”

혜선의 어깨가 움찔거리더니 손을 번쩍 들고 달려간다.

“저요!!!”

“또 너냐, 이 자식아!”

“죄송합니다!”

손을 든 채 응급실로 달려 들어가는 혜선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보던 성연호가 실소를 흘린다.

“레지던트들은 인연이 안 닿는군.”

AN 의국을 찾은 성연호.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각자 쉬고 있던 의사들이 벌떡 일어난다.

성연호가 창가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일어난 오지선을 보며 씩 웃었다.

“잠깐 시간 되십니까?”

습관적으로 안경을 밀어 올리며 의문스러운 표정이 된 오지선.

성연호가 주변을 쓱 돌아보자 쉬고 있던 의사들이 눈치껏 우르르 자리를 비켜준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간담도 센터로 오라는 제안을 건네는 성연호.

동그란 눈으로 제안을 듣던 지선이 물었다.

“간담도만 전담하는 건가요?”

“예, 아무래도 장시간 수술이 많으니까요.”

오지선이 잠시 고민한 후 물었다.

“만약 도움이 필요한 다른 수술이 있을 땐 어떻게 되나요?”

“간담도 센터 전문 인력이 되시면 다른 수술에 끌려 들어가실 일은 없습니다. 제가 보장하죠.”

“제가 원한다고 해도요?”

“하하, 시간이 안 되실 겁니다. 간담도 쪽도 꽤 바쁘거든요.”

“그럼 죄송합니다.”

“예?”

오지선이 웃으며 말했다.

“저 이 병원 올 때 어떻게 오게 됐는지 혹시 아시나요?”

“아, 뭐…… 자료는 봤습니다.”

“네, 저 빚쟁이예요. 빚 갚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데 채권자가 빚 갚으라는 소릴 안 하네요. 자력으로 갚아낼 때까진 채권자가 부를 때 바람처럼 달려가야 하거든요.”

“그게 무슨.”

오지선이 눈을 찡긋한다.

“저흰 세트거든요.”

“세트요?”

“네, 하나가 가야 나머지가 따라가는 세트.”

“…….”

성연호가 눈썹을 꿈틀거린다. 이쯤 되었는데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리 없는 사람이다.

“모건우 부교수 말씀입니까?”

“네, 하하. 모 쌤이 가신다면 저도 가겠습니다.”

“…….”

“그럼 전 다음 수술 공부 때문에 실례할게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말을 잃은 성연호. 자기 자리로 돌아가 다시 책을 보고 있는 오지선을 물끄러미 보던 성연호는 한숨을 쉰 후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복도를 걷던 성연호는 혼란스럽다.

‘간담도 센터로 오라는 제안을 받은 의사들은 보통 환호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반응은…….’

생소한 반응들. 성연호의 입장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생경한 것들이다.

그때 저 멀리 간호사 두 명이 재잘거리며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성연호가 둘 중 한 명을 보곤 손을 들며 불었다.

“이은비 씨.”

자신의 이름이 들려오자 주변을 둘러보다 성연호를 발견한 은비. 그런데 반응이 이상하다. 인사는커녕 같이 있던 간호사 뒤에 숨어버리는 것이다.

손을 든 채 멀뚱히 그 모습을 보던 성연호가 다가가 물었다.

“이은비 씨?”

지수 뒤에 숨은 은비가 자꾸만 얼굴을 숨긴다. 결국 민망해진 지수가 억지로 밀어내자 성연호 앞에 선 은비가 고개를 푹 숙인다.

“죄송합니다, 센터장님.”

“…….”

뭐가 죄송하다는 걸까? 아직 입도 안 뗐는데.

“뭐가 죄송하신지.”

은비가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말했다.

“제안하시려는 거 아닌가요?”

중곤, 혜선, 지선과 평소에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가 보다. 성연호가 웃으며 말했다.

“다 들으셨군요. 보기 좋게 차였습니다.”

“저도 죄송합니다.”

성연호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역시 모건우 부교수 때문인가요?”

“네, 저 모 쌤 수술엔 꼭 들어가야 돼요.”

“세트라서요?”

“아? 하하…… 대충 그런 거죠.”

성연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가 보세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가자, 지수야.”

도망가듯 자리를 피하는 간호사들을 본 성연호가 검지로 머리를 긁으며 웃는다.

“하하, 이거 원. 모건우 선생의 주변을 공략하면 답이 나올 줄 알았더니.”

모두에게 거절당했다. 웃기는 꼴이 되었지만 성연호는 오히려 웃는다.

“주변인에게 신뢰받고 있구나, 모건우 부교수는.”

역시 자신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위안 삼은 성연호가 원장실로 올라가며 허무한 웃음을 흘린다.

“원장님께 뭐라고 해야 될까? 꼴이 우습게 됐군, 하하.”

* * *

응급실.

겨우 두 살가량 된 아기를 데려온 젊은 어머니가 의사를 붙잡고 말했다.

“저기, 우리 아이가 세탁기에서 떨어져서 머리에 혹이 나서요.”

“소아 응급센터는 저쪽입니다, 보호자님.”

“여기선 안 되나요?”

“어…… 안 될 건 없지만 아무래도 소아 전문 쪽으로 가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어머니?”

의사는 말을 하면서도 눈으로 아이를 살핀다. 혹시나 위급한 상황일까 싶어 확인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를 고쳐 안으며 말했다.

“아유, 잠깐 세탁하는 동안 세탁기 위에 뒀는데 떨어졌어요. 괜찮겠죠?”

“바닥 재질이 어땠나요?”

“콘크리트였어요.”

의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콘크리트 바닥이었다고요?”

어머니는 울상을 지으며 아이 머리를 보여준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이렇게 부딪혀도 머리에 혹이 나면 일단 괜찮다고 들었어요. 우리 애 괜찮겠죠, 선생님?”

의사가 뭐라 말을 하려는 찰나, 불쑥 튀어나온 손. 중곤이 끼어든 것이다. 어머니는 의사 가운을 입은 중곤이 손을 내밀자 아기를 건넨다.

“우쭈쭈, 우리 아기. 아주 예쁘게 생겼네. 나중에 크면 연예인 해도 되겠어. 그래도 인터넷은 하지 말자, 바보 된다, 응?”

아기를 예뻐해 주는 듯하면서 어머니의 무지를 탓하는 중곤. 어머니의 표정이 민망해진다.

중곤이 물었다.

“구토, 의식상실 같은 거 있었습니까?”

“아뇨? 그냥 울기만 했어요.”

중곤이 머리를 살피고 아이 눈을 확인 후 한 걸음 뒤에 대기하고 있던 혜선에게 말했다.

“두부 CT 준비해 줘.”

“네, 선생님.”

중곤이 어머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혹 생기면 괜찮다는 건 미신입니다. 2세 이하 아이는 중등도 위험인자로 분류돼요. 영, 유아는 호소가 적을 뿐, 증세가 나빠지고부터는 이미 상당히 병세가 진행되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어머니가 겁먹은 얼굴이 되자, 처음 그들을 맞이한 의사가 끼어들었다.

“저, 김중곤 선생님. 소아 응급실로 가시게 해야…….”

중곤이 답을 하기도 전에 의사의 뒤에 검은 그림자가 진다. 중곤이 뒤를 보라는 듯 눈짓하자 의사가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가 그대로 굳었다.

“모, 모건우 부교수님…….”

건우가 삐딱한 눈으로 의사를 노려보다 말했다.

“당신 자식이라도 그렇게 말할 겁니까?”

“그, 그게.”

건우가 한참 의사를 노려본다. 말문이 막혀 우물쭈물하는 의사를 한껏 노려봐 준 건우가 아기를 안고 있는 중곤을 돌아보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빨리 검사하러 안 움직여?”

중곤이 헐레벌떡 뛰어가며 외쳤다.

“지금 갑니다요!!!!!!!”

건우는 다시 의사를 노려봐 준 후 몸을 돌린다. 잠깐 마주한 것만으로 식은땀이 줄줄 난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모건우 군단 페이스는 정말 따라가기 힘들다니까,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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