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101화
10. 모건우가 가르치면 다르다(2)
ER 스테이션에서 전화를 받은 간호사가 외친다.
“2㎞ 앞 도로에서 쓰러져 있던 40대 남성이 119 구조대 차량으로 이송 중입니다! 2분 후 도착합니다!”
커튼을 열고 나오자마자 터져 나오는 외침에 굳은 혜선. 하지만 중곤은 다르다.
빠르게 뛰어나가 응급실 문을 열어두고, 침상이 이동하기 용이하도록 통로를 확보, 빈 베드까지 순식간에 지정하는 중곤의 모습에 멍해진 혜선.
“내가 알던 중곤 선배 맞아……?”
연성대학병원에 있던 중곤과 전혀 다른 사람 같다.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든 것일까? 단순히 응급실에서의 경험일까?
다른 의사들도 미리 응급실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멍하게 서 있는 혜선과 눈을 맞춘 중곤이 얼른 손을 든다.
“뭐 해? 빨리 와!”
“아, 네!”
곧 구급대가 도착하고, 문을 열자마자 의사들과 구급대원들이 힘을 합쳐 환자의 침대를 내린다.
중곤이 침대 뒤를 밀며 외쳤다.
“환자 이동!”
다른 의사들이 양옆으로 붙어 침대를 밀기 시작하자 빠르게 이동 중인 환자.
건우는 달리는 다른 의사들 뒤편에서 걸으며 구조대원에게 물었다.
“상태 전달이요.”
구조대원이 말했다.
“왕복 4차선 도로 보도블록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발견 당시 호흡이 미약했고, 맥박은 분당 50회 미만입니다. 기도 폐쇄로 보입니다.”
건우가 고개를 끄덕인 후 침대를 밀고 가는 중곤에게 소리쳤다.
“상의 찢어.”
“예!”
달리는 말에 올라타듯 이동 중인 침대 위로 뛰어 올라간 중곤이 환자의 복부에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고정한 후 상의를 붙잡는다.
다행히 셔츠를 입고 있어 찢지 않고 단추만 뜯어낸 중곤이 외쳤다.
“심장 수술 흔적 확인!”
중곤이 환자의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찾아낸 후 혜선에게 던진다.
“환자 주민등록증 스테이션에 가져다줘!”
얼떨결에 지갑을 받아 든 혜선. 어쩔 줄 몰라 하는 혜선의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건우가 말했다.
“신원 확인하고 어떤 수술 받았는지 확인하는 거다. 빨리 가.”
“아, 네!”
혜선이 얼른 스테이션에 지갑을 가져다주고 다시 돌아오자, 장비를 덕지덕지 붙인 환자를 바라보는 건우와 중곤의 대화가 들려온다.
“심장마비는 아니고, 기도 폐쇄로 보인다. intubation(삽관) 준비해.”
“예, 선생님.”
건우가 혜선을 힐끔 본 후 손가락을 딱 튕긴다.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혜선이 얼른 달려오자, 건우가 고갯짓한다.
“할 수 있겠어?”
“…….”
솔직히 아직 무리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중곤이 저리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처음부터 어려운 일들을 맡아 동분서주하며 고생한 의사의 성장이 얼마나 빠른지 체감이 된다.
침을 꿀꺽 삼킨 혜선이 말했다.
“해보겠습니다.”
“좋아, 붙어.”
“네!”
지수가 가져다준 도구들을 준비하던 중곤은 건우의 이야기를 듣고 혜선에게 자리를 비켜준다.
긴장 때문에 떨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주먹을 불끈 쥔 혜선이 환자의 머리 쪽에 서서 입을 벌리는 순간 건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intubation(삽관)은 성대만 보이면 어린애도 한다.”
혜선은 물러날 곳이 없는 자리에서 서운함을 느낀다.
‘그걸 누가 몰라요, 선생님? 선생님도 처음부터 잘하진 않았잖아요, 지금 얼마나 긴장되는데. 성대만 보이면 당연히 나도…… 잠깐, 성대라고?’
건우의 말 속에는 항상 힌트가 있다. 성대, 성대부터 먼저 확인하란 뜻이다. 그래, 그거야!
지수가 환자의 오른쪽에 서서 왼손 엄지로 구각을 잡아 당긴다.
혜선이 얼른 오른손으로 환자의 목을 누르자, 다시 건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턱대고 목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 갑상연골을 눌러라. 뒤, 위로, 다음엔 오른쪽으로 눌러.”
혜선의 머릿속에 의대 시절 배웠던 갑상연골 압박 방법이 떠오른다. 책에서 배운 대로 압박하자, 중곤이 말했다.
“이게 BURP야, 혜선아. 의대에서 다 배웠다. 기억해 내.”
의대에서 배웠던 압박 방법. BURP와 OELM. 전자는 보조자가 돕고, 후자는 시술자가 혼자 하는 방법이다.
건우가 물었다.
“Sellick(윤상연골압박)은 사용하지 않는다, 왜지?”
번개처럼 책의 내용을 떠올린 혜선이 말했다.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윤상연골을 누름으로써 삽관 시 역류를 막고, 백 마스크 환기 시 공기가 위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 성대를 확인할 때는 용이하지 않습니다.”
건우의 답이 들려오지 않는 것을 보니 정확히 짚어낸 모양이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하지만 난 모든 답을 알고 있어. 당황하지 않아야 돼.’
마음을 다잡는 혜선. 어떻게 구강 내의 축과 인두 축, 후두 축을 한 줄로 가깝게 하는가, 그것이 문제다.
두부를 후굴시키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성대를 볼 수 없다. 인체를 떠올리는 혜선.
인체는 구강에서부터 성대까지 마치 롤러코스터를 연상시키는 굴곡을 보인다. 크게 입을 벌려주는 환자야 확인이 쉽지만 의식이 없는 환자는 목구멍이 수축되어 있기에 확인이 매우 어렵다.
바로 그때 중곤의 손이 환자의 머리 뒤로 쑥 들어온다. 환자의 구강을 바라보고 있던 혜선의 눈이 커진다.
환자의 뒤통수를 잡고 30㎝가량을 들어 올리는 중곤의 손짓에 따라 굴곡이 진 구강이 일직선이 된다.
“보, 보입니다! 성대가 보입니다!”
지수가 재빨리 베개 두 개를 뭉쳐 환자의 머리 뒤에 놓고 위치를 조정해 준 후 말했다.
“Sniffing Position(머리는 신전, 목은 굴곡된 상태) 확보 완료.”
시야에 성대를 확보한 혜선이 얼른 튜브를 내밀자, 건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대로 넣으면 나중에 환자 의식 돌아오고 목 아파 죽는다?”
응? 목이 아프다고? 아! 그게 빠졌다. 혜선이 얼른 지수를 돌아보자 눈웃음을 짓고 있는 지수가 스프레이를 내민다.
“리도카인 스프레이입니다, 선생님.”
지수나 중곤은 절차를 모두 알고 있지만 자신이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고 말을 아끼는 중인 것이다.
감사한 눈빛을 보낸 혜선이 튜브에 스프레이를 뿌려 매끄럽게 한 후 말했다.
“삽관.”
쑥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번에 들어가는 튜브. 다 넣고도 정말 자신이 해낸 것인지 의심하는 눈빛이 된 혜선이 가만히 환자를 보는 동안 지수가 건네준 인공호흡기를 부착하는 중곤.
“인공호흡기 부착 완료. V/S 확인 바랍니다.”
지수가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정화되고 있습니다, 흉부외과 콜부터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순식간에 토네이도가 지나간 듯한 느낌을 받은 혜선이 환자 머리 쪽에 서서 굳어 있다. 주변 사람들이 움직이자 서서히 정신이 돌아온 혜선.
“내가…… 해냈다?”
혜선의 시선이 건우를 찾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건우가 무표정하게 말한다.
“잘만 하는데 엄살은.”
또 저 말이 나왔다. 혜선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크게 웃을 때보다 훨씬 더 밝은 표정이 된 혜선이 소리 없이 만세를 부른다.
‘내가 했어! 내가!’
하지만 혜선은 마냥 기뻐하고 있을 수 없었다. 고막을 때리는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C-11 베드 환자, Arrest(심정지)!!!”
팔짱을 끼고 있던 건우가 바람처럼 달리는 것이 보인다. CS에 콜을 하러 스테이션에 갔던 지수도, 흐뭇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봐 주던 중곤도 모두가 달려간다.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이는 혜선 역시 자기도 모르게 뛰어간다.
‘이곳이 하산병원 ER(응급실).’
* * *
직원 휴게실.
EM 소속 레지던트 둘이 간식을 나눠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안경을 쓴 레지던트가 빵을 먹으며 말했다.
“솔직히 김중곤 선생이랑 정혜선 선생 좀 불쌍하지 않아?”
젊은 나이에 벌써 탈모가 진행된 맞은편 레지던트가 커피를 들며 되묻는다.
“뭐가?”
“특히 그 정혜선 선생 있잖아. 아침에 봤는데 눈 밑이 시커멓게 죽어 있더라.”
“하하, 예전에 김중곤 선생 보는 느낌이지?”
“맞아, 그 선생도 딱 그랬지. 정혜선 선생이 우리 병원 온 게 이제 두 달 좀 넘었나?”
“음, 대충 그쯤 됐을 거야.”
“인턴 딱지 뗀 지 석 달도 안 된 레지던트 1년 차인데 너무 막 굴리는 거 아냐?”
머리가 벗겨진 레지던트는 잠시 생각해 본 후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오히려 부럽던데.”
“응? 너 누가 그런 식으로 굴려 먹는다고 생각해 봐라. 어떻게 그게 좋아? 변태야?”
“변태는 무슨. 한번 생각을 해봐.”
탈모 레지던트가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대며 말했다.
“너 처음 intubation 했을 때 기억나?”
“음, 당연하지. 얼마나 빌빌거렸는지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 솔직히 그때 나 가르쳤던 펠로우 선생님이 친절한 분이라 다행이지, 모건우 부교수님 같은 분께 배웠으면 손이나 달달 떨다 결국 욕 처먹고 튜브 빼앗겼을걸?”
“뭐, 그건 나도 그렇긴 한데. 너 그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나?”
안경 레지던트가 잠시 생각해 본 후 말했다.
“레지던트 2년 차 말이었던 것 같아.”
탈모 레지던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처음 CPR(심폐소생술) 해본 건?”
“그것도 비슷한 때였지. 하, 지금이야 당황하지 않지만 그땐 어찌나 당황했었는데. 내 손으로 환자 죽일까 봐.”
탈모 레지던트가 몸을 내밀며 말했다.
“그렇지? 나도 레지던트 2년 차 끄트머리에 했어. 그런데 정혜선 선생은?”
“…….”
“레지던트 3개월 차야. 응급실 생활 1년도 채우지도 않은 선생이 석 달 동안 그런 경험을 쌓은 거라고.”
“…….”
“지금이야 당연히 우리 경험이 많지. 하지만 정혜선 선생이 2년 차가 되면 어떨 것 같아? 그때 우린 4년 차겠지. 그때도 아직 우리가 앞서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안경 레지던트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음, 확실히 엄청난 경험을 무서운 속도로 쌓고 있긴 하지.”
탈모 레지던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그래서 난 중곤, 혜선 선생이 부럽다. 솔직히 우리 지도 교수님은 어려운 건 자기가 직접 하려고 하잖아. 어떤 면에서 보면 솔선수범하시는 것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경험을 쌓고 배워야 할 우리들에게서 기회를 빼앗는 것이기도 해.”
“에이, 우리 교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데.”
친절하고 무리한 일을 시키지 않는 자신들의 지도 교수. 안경 레지던트는 언제나 무표정하고 육두문자까지 써가며 가르치는 건우와 지도 교수를 비교해 본 후 몸을 부르르 떤다.
“아무리 경험 쌓게 해준다고 해도 모건우 부교수님 따라갈 자신은 없다, 난.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쳐.”
“하하.”
그때 휴게실 문을 열고 시체처럼 걸어 들어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혜선이 보인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지켜보던 두 사람이 여분의 우유와 빵을 내밀며 말했다.
“힘들죠?”
혜선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좀 그런 것 같네요, 하하.”
한없이 밝기만 했던 혜선이 지친 모습을 보여 그런지 더 안쓰럽게 보는 탈모 레지던트가 우유를 따주며 말했다.
“좀 마셔요.”
“감사합니다.”
혜선이 우유에 빨대를 꽂아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그녀의 전화가 울린다. 액정에 떠오른 이름을 보곤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는 혜선이 외쳤다.
“예, 부교수님! 예! 바로 가겠습니다!”
우유와 빵을 던져 버린 혜선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우사인 볼트 같은 속도로 휴게실 밖으로 뛰는 걸 본 안경 레지던트가 황당한 얼굴로 탈모 레지던트를 툭 친다.
“저래도 부러워?”
“…….”
“난 절대 못 해. 아니, 안 해. 실력 좋고 경험 많은 의사 실컷 하라고 해. 난 평범한 의사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