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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프랑켄슈타인-92화 (92/230)

닥터 프랑켄슈타인 92화

9. 상식이 상실된 시대(5)

“모건우 선생님. 간담도 센터에서 콜입니다.”

응급실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전화를 받던 간호사가 마침 앞을 지나던 건우를 붙잡고 수화기를 내민다.

한 시간이 넘게 레지던트들에게 붙들려 있다 이제 간신히 자유가 된 건우가 인상을 쓰며 전화를 받는다.

“모건우입니다.”

-나 성연호요.

“예, 무슨 일 있습니까?”

-이번에 장기이식 수술에 참여할 생각이 있나 해서요.

“저 EM 소속입니다만?”

-EM에서 썩기 아까운 실력이니 그러지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언제까지 답해 드리면 됩니까?”

-오늘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가 있습니다. 가족 동의 얻고 장기 추출 절차 밟으면 한 달 정도 시간은 있습니다.

“예, 그럼 그 안에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연락 주세요.

대기 중인 간호사에게 전화를 넘겨주는 건우. 이상하게 우러러보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간호사.

건우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왜요?”

“아, 아니요.”

뭐야, 그럼 왜 그렇게 봤어? 간호사를 위아래로 본 후 몸을 돌려 할 일을 하러 가는 건우.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간호사가 주변 간호사들에게 호들갑을 떨며 말한다.

“모건우 부교수님 말이야, 실력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간담도 센터장님이 직접 전화해서 수술 참여하라고 할 정도였어? 난 센터장님 콜 받고 통화하는 것도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대단하지 않아?”

간호사들도 지난 몇 달간 건우가 응급실에서 어떤 입지를 다졌는지 알기에 대부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간호사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별 관심 없는 건우가 응급실을 돌며 혹시 자신이 필요한 환자가 있는지 살피던 도중 장진규 내과 과장을 만났다.

“어, 과장님?”

응급실에서 내과 콜을 했는지 내려와 있던 장진규가 환자를 보다 손을 든다.

“잠시만, 진료 중이라.”

뭔…… 응급실 콜 했다고 내과 과장이 직접 내려오냐? 보통 펠로우가 내려오는데.

장진규는 한참 청진을 한 뒤 환자의 검사 지시를 하고 나서야 건우에게로 다가왔다.

“오랜만이군그래.”

“예, 장영호 환자 퇴원 잘했죠?”

“다, 모 선생 덕분이지. 내 평생 그 녀석이 그렇게 얌전히 있는 건 처음 봤네.”

“영월 내려갔습니까?”

“그 녀석 원래 영월이 아니라 정선에 살아.”

“카지노 있는 곳이요?”

장진규의 인상이 굳어진다. 한숨을 쉰 장진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쪽 이권 다툼이 심하거든.”

대충 맨날 거기 먹으려는 다른 지역 깡패들과 전쟁하며 산다고 알아들은 건우가 말했다.

“췌장에 또 충격받으면 힘들 수도 있는데.”

“말려봤지, 하지만 듣질 않아. 그렇다고 예전처럼 억지로 그 짓 못 하게 하면 이번엔 영영 아들 얼굴 못 보고 살까 두렵기도 하고.”

“쯧, 철없기는.”

“허허, 내 아들이 자네 같았으면 좋겠구먼.”

건우가 방금 장진규가 치료하던 환자가 검사실로 이동하는 걸 보고 물었다.

“한가하세요? 뭔 내과 과장님이 직접 응급실로 오시고 그러십니까? 밑에 애들 시키시지.”

장진규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경영인이 아니라 의사네. 의사가 환자를 보는 게 이상한가?”

“그건 아니지만.”

“내 몸이 허락할 때까진 환자를 보고 싶어. 자주는 아니지만 외래진료가 없는 날엔 가끔 내려오는 편이지.”

음, 이 아저씨도 진짜 의사구나. 건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진규가 물었다.

“자네, 성연호 센터장이 계속해서 협진(協診) 요청을 보낸다고 들었는데 한 번을 안 했다더군?”

“그게 무슨 협진 요청이에요, GS도 EM 관할도 아닌 장기이식 환자 수술 들어오라는데. 간담도 센터로 끌고 오려고 꼬시는 거지.”

“하하, 그래서 안 하는 건가? 그럼 GS 의사가 필요한 일이라면 할 텐가?”

“우리 병원에 GS가 버젓이 있는데 왜 제가 합니까?”

“하하, 자네도 참.”

장진규가 저 멀리 검사실 문을 열고 이동되고 있는 환자를 물끄러미 본 후 턱을 쓸었다.

“그럼 말이네. 환자가 EM으로 왔어. 내과에 콜을 했고, 내과에서 협진 요청을 하면 어떤가?”

“EM에요?”

“정확히 말하면 GS이긴 하지만 말이야. GS는 요즘 자네 덕에 시간이 생겨서 밀린 수술들 해결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거든. 그쪽은 바쁘니 자네가 도와줬으면 한다면?”

“뭐, 월급 받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환자 있어요?”

장진규가 방금 검사실로 들어간 환자를 눈짓하며 말했다.

“방금 그 환자네.”

“음.”

“어때, 브리핑 들어보겠나?”

언뜻 보기에 30세쯤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 환자였는데. GS(일반외과)와 MED(내과)가 힘을 합쳐야 하는 질환이 있었던 걸까?

건우가 고민하자 장진규가 부드럽게 등을 만지며 말했다.

“이 기회에 내 방 구경도 좀 하고 그러자고.”

음, 내과 과장 방이라. 요즘 원장 방도 들락거리는데 새삼 과장 방이 궁금할 건 없다.

그래도 뭐, 이 아저씨 덕분에 하산병원 왔는데 부탁 한 번 들어주는 거야 나쁘진 않지. 설마 성연호처럼 자신을 내과로 꼬실 생각은 아닐 테니까.

“그러죠, 뭐.”

* * *

처음 와본 장진규의 방.

원장실과 규모 면에선 별 차이가 없다. 원장이 검소한 건지 이 양반이 분수에 넘치는 방을 쓰고 있는 건진 알 수 없지만 무슨 상관인가?

건우가 방 구경을 하고 있는 동안 환자 차트를 찾은 장진규가 말했다.

“방금 확인 결과 R(호흡) 분당 14회, P(정상맥박) 분당 72회, T(정상체온)는 36.1℃, BP는 110/89㎜Hg였어.”

뭐야, 정상이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봤을 때 제대로 한번 볼 걸 그랬다.

“병명은요?”

장진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spontaneous primary peritonitis(원발성 복막염)로 보여.”

“portal hypertension(문맥고혈압)이나 liver cirrhosis(간경화) 있었습니까?”

“아니, 세균성인 것 같네.”

“수액이랑 항생제로 치료해야겠네요.”

“음, 그게 쉽지가 않네.”

음? 뭐가 쉽지가 않아? 외과의사도 아는 처치 방법인데 내과 과장씩이나 되는 양반이.

장진규가 다시 차트를 보며 말했다.

“문진을 해봤는데 말이야. 환자가 처음 통증을 느낀 건 1개월 전이야. 상복부의 거북함과 함께 통증을 느꼈고 구역질도 했다더군. 체한 것으로 생각하고 동네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 먹었다고 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의약 분업이 되었다곤 하지만 처방전이 필요하지 않은 소화제 정도는 판매하니까.

“그래서요?”

“처음엔 통증도 멎고 구역질도 괜찮아졌지만 밤이 되고 나서 다시 통증이 올라왔다고 하네. 복부 전체로 진통이 확대되었고, 다음 날 다시 약국에 가니 진통제도 함께 먹되, 병원에 꼭 가 보라고 했다더군.”

장진규가 잊지 않으려는 듯 펜으로 차트에 문진한 내용들을 기록하며 말했다.

“응급실밖에 운영되지 않는 시간이라 다음 날까지 기다렸는데 밤새 설사를 했다고 하네. 다음 날 집에서 가까운 개인 내과 의원에 갔는데 enteritis(장염) 진단이 나왔다고 해.”

건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개인병원이라도 그렇지. 모르면 큰 병원 보내든가, 망할 돌팔이가.

“그래서요?”

“한 일주일쯤 입원했는데 자네 말처럼 수액과 항생제를 투여받았어. 하지만 나아지지 않았지. 결국 큰 병원에 가 보라는 말을 듣고 대학병원에 갔다고 해. 거기서는 spontaneous bacterial peritonitis(자발성 세균성 복막염) 진단을 받았어. 입원해서 15일간 약물치료를 받았고 처음 일주일간은 통증이 호전되었지만 다시 설사가 시작되었다고 하네.”

“결국 우리 병원까지 온 것이고요?”

“그렇지.”

“대학병원에서 가만뒀을 리가 없을 텐데요?”

“해열제와 진통제를 처방받고, 항생제 주는 것 외에는 그쪽에서도 별 손 쓸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 같아. 나도 내과의라 그런지 이해는 가는군. 병원비가 부담스러워 퇴원을 하긴 했는데 계속 설사를 해대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 병원에 왔다더군.”

음, 이야기만 들어선 모르겠다. 내과의는 신기한 사람들이다. 자신 같은 눈도 없는 사람들이 배도 열어보지 않고 검사만 보고 질환을 알아내 치료하는 사람들이기에 건우 입장에선 외과의보다 더 대단해 보일 때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 환자 오늘 온 거죠?”

“음, 한 시간 전쯤에 응급실로 들어온 환자네. 나도 방금 처음 본 거야.”

“환자 한번 보죠.”

장진규가 손목시계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이면 검사 끝내고 입원실로 올라왔겠군, 가세.”

장진규를 따라 내과 입원 병동으로 가는 건우. 그러고 보니 내과 입원 병동은 처음 와본다.

몸 여기저기 째고 꿰매서 드레싱투성이 환자들만 있는 외과 병동에 비해 조금 평화로운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얼굴색이 좋지 않은 환자들이 여럿 보인다.

병동에 장진규가 나타나자, 마치 회진을 돌 듯 그의 뒤로 따라붙는 내과의사들.

음, 이러니까 꼭 교수가 된 기분이네. 소문이 무성한 건우의 얼굴을 힐끔거리며 왜 그가 내과 과장과 함께 병동을 돌고 있는지 의문 섞인 얼굴이 된 내과의사들.

장진규가 병실 문 앞에 서자 얼른 의사 한 명이 문을 열어준다.

“자, 저기 저 환자네.”

6인실 병동의 문가 자리에 있는 환자는 방금 검사를 끝냈는지 이제야 환자복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있다.

30대 초반의 남자 환자는 무척 수척해 보였고 고통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피부에 윤기가 없고 추위에 장시간 노출된 사람처럼 청색을 띠고 있으며, 입술도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옷을 갈아입다 갑자기 들이닥친 의사들 덕에 반쯤 내린 바지를 부여잡고 허리를 숙인 환자.

장진규가 미안하다는 듯 돌아서며 말했다.

“갑자기 미안합니다. 어서 입으세요.”

건우도 덩달아 돌아선다. 장진규 내과 과장은 환자에게 인간적으로 대하는 부류의 의사인가 보다.

장진규가 내과의사 한 명에게 물었다.

“검사 결과는?”

“anemia(빈혈) 소견이 있고, 백혈구 및 혈소판 감소증. 간 효소치가 약간 상승했고 크리아티닌치 상승도 있습니다. 복부 X-Ray 검사 및 복부 초음파 검사에서 복강에 복수가 있으며 장 팽만과 장벽의 비후가 의심되는 소견을 보였습니다.”

장진규가 눈썹을 찡그렸다.

“이전 병원 검사 자료에 비해 어떤가?”

“더 나빠졌습니다, 과장님.”

“음…… 일단 검사를 더 해보게. 타 병원에서 1개월이나 입원 치료를 받았는데 호전되지 않는다는 건 처음부터 오진이었을 확률이 높네. 1차 진료 병원이 개인병원이야. 물론 대학병원에서도 진단했지만 고통이 시작된 것이 너무 오래되었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고 있으므로 진단을 신뢰할 수 없으니 처음부터 다시 검사하세.”

“예, 과장님.”

장진규가 다시 몸을 돌리자, 옷을 다 입은 환자가 침대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보호자분 어디 계십니까?”

“아…… 어머니 잠깐 화장실 가셨는데.”

“다른 분은 안 계시고요?”

“예……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 처지라.”

“그러시군요, 검사를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 또 합니까? 전 병원에서도 지겹게 받았는데.”

“질환이 호전되지 않는 건 아직 병의 원인을 확실히 찾아내지 못했다는 뜻이 됩니다. 검사를 좀 더 해보셔야 합니다.”

“휴, 알겠습니다.”

장진규도 상황이 답답한지 옆에 있던 건우를 돌아보는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건우의 왼쪽 눈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온 걸 보았기 때문이다.

눈을 비빈 장진규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방금 뭐였지?’

장진규가 주변을 둘러보자, 덩달아 주변을 보는 내과의사들. 그리고 곧 그들의 귀로 어이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X발.”

의사들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환자가 여섯 명이나 있는 병실이다. 게다가 내과 과장이 있는 자리에서 부교수가 욕을 했다. 내과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진규도 꽤 놀랐는지 눈이 커져 있다. 순식간에 무섭게 구겨진 얼굴이 된 건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appendicitis(충수염)잖아, X발! 빨리 수술실 잡아요!”

장진규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건우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따윈 생각할 여유가 없다.

“추, 충수염이라고? 그, 그걸 한 달이나 방치했다고?”

“빨리 수술실 잡아달라고요!”

급박한 상황. 장진규가 급히 고갯짓을 하자 수술실을 잡기 위해 뛰는 내과의사들이 동분서주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멍한 얼굴이 되어 있는 환자.

인상을 구긴 건우가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개인병원은 그렇다 치고, 두 번째로 간 대학병원. 어딥니까?”

잡아먹을 듯이 말하는 건우의 표정에 잔뜩 목을 움츠린 환자가 더듬거리며 말한다.

“여, 경성대학병원인데요…….”

하, 다행이네. 또 연성대학병원이었으면 달려가서 확 불을 질러 버리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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