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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프랑켄슈타인-70화 (70/230)

닥터 프랑켄슈타인 70화

7. 진실에 대항하는 거짓(3)

서로 다른 장소에서 면접으로 보고 하산병원 1층 카페테리아에 모인 중곤, 은비, 지수. 그런데 어쩐지 세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다.

중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까지 잔뜩 움츠리고 있다.

은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면접 질문이 왜 이래, 기술 면접은 하나도 없고 인성 면접만 하나 봐.”

지수가 너도 그랬냐는 듯 물었다.

“질문이 뭐였어?”

은비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당신이 2인승 스포츠카를 타고 도로를 달리고 있던 도중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주변을 거닐던 사람들은 갑자기 쏟아진 비에 우산이 없어 건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을 지나던 때, 정류장에 세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지수가 놀라며 물었다.

“나도 그 질문이었어! 한 명은 내 생명의 은인인 의사 선생님이고, 한 명은 기침을 하며 안색이 아주 나쁜 고령의 할머니. 마지막 한 명은 내 인생에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 이상형의 이성!”

은비가 손가락을 튕겼다.

“맞아! 이때 당신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라는 질문이었어. 넌 뭐라고 답했어?”

지수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차는 2인승이니 단 한 명을 태울 수밖에 없잖아. 솔직한 마음으론…….”

은비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상형이지.”

지수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한 마음은 그렇지만 면접이잖아. 그건 인성이 모자라 보이지.”

“그래서 뭐라고 답했어?”

“아픈 할머니.”

“오! 나도 그렇게 말했는데.”

“그랬더니 뭐래?”

“그냥 ‘그렇군요, 흠.’ 이러던데?”

“나도 그랬어, 하…….”

잘못 답한 걸까? 고민하고 있는 두 사람.

은비가 아까부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중곤을 찌르며 물었다.

“선생님도 같은 질문 받으셨어요?”

“예…….”

“뭐라고 하셨는데요?”

중곤이 고개를 들었다. 창백해진 안색의 그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순간 오만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중곤은 하산병원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던 만큼 무척 긴장해 최고의 답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여전히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중곤이 말했다.

“생명의 은인인 의사 선생님을 택하면 난 그들에게 은혜를 아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고, 고령의 아픈 할머니를 택하면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고, 이상형을 선택한다면 나는 솔직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중곤이 진짜 머리카락 몇 올이 뜯겨져 나갈 만큼 꽉 머리를 쥐어뜯는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니 의사를 택하면 측은지심이 없는 사람으로 보일 거고, 할머니를 선택하면 은혜도 모르는 인간으로 보일 것이고, 이상형을 선택하면 의사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은비와 지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요?”

중곤이 테이블을 탁 치며 말했다.

“그래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반쪽 진실은 허위보다 무서우니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설마.”

중곤이 사색이 되어 말했다.

“이상형이라고…… 말해버렸습니다. 솔직한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요…….”

“헐…… 그랬더니요?”

중곤이 눈동자를 흔들며 말했다.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냥 ‘흠…… 그렇군요.’ 이러고 끝냈어요……. 저만 여기 못 오게 되는 걸까요? 그, 그럼 안 되는데. 집에다 하산병원 가게 될 것 같다고 큰소리 뻥뻥 쳐놨는데…….”

은비와 지수가 중곤을 위로한다.

“걱정 마세요, 선생님. 면접은 그냥 의례적인 거라고 했잖아요.”

“맞아요, 솔직한 게 무슨 잘못이겠어요.”

말은 그리하고 있지만 두 사람도 중곤이 낸 답은 좀 아니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중곤은 위로가 안 되는지 다시 고개를 푹 숙인다.

지수가 다시 중곤의 어깨를 두드려 주려는 때 면접을 마치고 내려온 건우가 멀리 보인다.

지수가 손을 들며 소리쳤다.

“선생님! 여기요!”

무표정하게 병원을 둘러보던 건우가 지수를 보곤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그래도 자신을 꽂아주려 노력한 건우가 와서인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중곤.

“면접은 어땠습니까, 선생님.”

건우가 자리에 앉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쓸데없는 소리만 하던데.”

“선생님 면접은 원장님이 직접 보셨죠?”

“어.”

은비가 건우 몫의 커피를 미리 사뒀는지 밀어주며 말했다.

“혹시 2인승 스포츠카 질문 받으셨어요?”

건우가 빨대로 커피를 쭉쭉 빨아 마시며 고개를 끄덕인다.

“뭐라고 답하셨어요?”

세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자, 건우가 그들을 둘러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간단하잖아요?”

중곤이 눈을 크게 떴다.

“가, 간단해요, 선생님?”

“인마, 외과의사는 항상 최적의 조건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야 돼. 환자가 수술하는데 다른 장기는 다 깨끗하고 기저질환도 없으면 얼마나 좋겠냐? 근데 그런 환자만 수술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어디서 뭐가 튀어나와도 전체 상황을 보고 최선의 길로 간다. 그게 외과의사의 숙명이다.”

“……뭐라고 하셨는데요?”

건우가 커피를 쭉 빨아 마신 후 테이블 위에 컵을 올리고 말했다.

“차를 세운다. 트렁크에서 우산을 꺼낸다. 키를 의사에게 주고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난 이상형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집까지 바래다주며 전화번호를 딴다.”

세 사람의 눈이 커진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던 은비가 물었다.

“그, 그건 반칙 아니에요? 2인승 차라고 하면 한 명만 태울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건우가 뭔 소리냐는 눈빛을 던진다.

“면접 보는 사람이 한 명만 태우라고 했습니까?”

은비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건우의 말처럼 그는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했지. ‘한 명만 태운다면 누굴 태우겠습니까?’라고 질문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생각을 틀에 가둔 것이다. 이를 깨달은 지수와 중곤이 탄성을 지른다.

“처, 천재다…….”

“대단하세요, 선생님.”

중곤이 테이블 위에 엎드리며 몸을 들썩인다.

“나도 저렇게 말했어야 되는데! 으허허헉!”

이놈은 아침부터 그러더니 하루 종일 미친놈같이 구네, 라는 표정을 짓는 건우가 물끄러미 중곤을 바라보다 일어났다.

“병원이나 한번 둘러보고 내려갑시다.”

좌절한 나머지 엎드려서 일어날 생각이 없는 중곤의 옷을 붙잡고 질질 끄는 은비와 지수.

그때 성연호와 장진규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자, 은비가 중곤의 발을 툭 찬다.

“과장님이랑 센터장님 오셨어요, 일어나요!”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나 차려 자세를 취하는 중곤. 은비와 지수는 그의 행동이 웃겼지만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다.

장진규가 건우를 보며 웃는다.

“면접은 잘 보셨나?”

건우가 두 사람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말했다.

“뭐, 그런 것 같습니다.”

성연호가 팔을 내밀며 말했다.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시설을 자랑하는 간담도 센터부터 견학시켜 드리지요.”

장진규는 내과 시설도 자랑하고 싶은 듯 보였지만 건우가 GS와 EM 전공이었기에 물러나는 모양새다.

성연호의 안내를 받아 깨끗하고 넓은 병원을 둘러본 건우.

중곤과 지수, 은비는 시설을 볼 때마다 놀라는 얼굴이 되었다.

연성대학재단 본원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멋지고 쾌적한 시설들을 직접 보고 나니 지금껏 왜 그리 본원에 목을 매고 있었나 싶다.

동관, 서관, 신관을 둘러보기만 하는 데에도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만큼 하산병원의 규모는 엄청나다.

장진규가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진료 과목만 52개이고, 암 병원, 어린이 병원, 심장질환 센터와 간담도 센터를 비롯한 21개 센터가 운영 중입니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건 설명 안 해도 되겠지요?”

은비와 지수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중곤은 면접 때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함인지 엄지까지 치켜세우며 병원 자랑 중인 장진규의 기분을 더욱 좋게 해주고 있다.

활짝 웃는 장진규가 말했다.

“자, 이제 ER을 볼 차례군요, 이쪽입니다.”

장진규를 따라 우르르 이동하는 무리들을 한 발 뒤에서 지켜보던 건우가 자신의 옆에 있는 성연호에게 나직한 어조로 물었다.

“오지선 선생의 조사는 어찌 되고 있습니까?”

성연호가 주변을 한번 쓱 둘러보고 낮게 말했다.

“확실히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본사 정보 팀에서 당시 수술실에 있던 사람들을 조사 중에 있습니다.”

“생각보다 늦군요.”

성연호가 실소를 지었다.

“본사 정보 팀이니 이 정도까지 의심 정황을 알아낼 수 있는 겁니다. 일반인은 꿈도 못 꿀 일이죠. 아무튼 원장님께서는 오지선 선생의 의혹을 해소한 후에 영입할 생각이신 모양입니다.”

건우가 고개를 돌려 성연호의 반대편을 바라보며 몰래 웃었다.

됐다, 자신이 생각한 그림대로 일이 흘러가고 있다. 원장이 보기엔 오지선을 영입하는 데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지만 그 결과는 연성대학재단의 본원에 타격을 주게 된다.

잘못을 숨긴 의사를 벌하지 않고 감쌌던 다른 교수들에게도 흠집이 나게 될 것이다.

짐짓 태연한 얼굴로 돌아와 다시 성연호를 보는 건우.

“그렇군요. 믿고 맡기겠습니다.”

“간담도 센터로 올 겁니까?”

“솔직히 말해도 됩니까?”

“그게 서로 좋지요.”

건우가 응급실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제가 무릉도원 병원에 갔을 때 말입니다. 처음 맡은 환자였던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연호가 말없이 건우를 따르며 귀를 기울인다. 건우가 응급실 문 앞에 서서 의료진을 찾는 고령의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의사가 진짜 의사다.”

“…….”

간담도 센터에 적을 둔다고 해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의사는 아니다. 이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건우가 할머니에게 뚜벅뚜벅 다가가며 말했다.

“저는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 곁에 있겠습니다.”

성연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어딥니까?”

건우가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이 손의 주인이 원하는 곳이죠.”

건우가 응급실로 들어가는 걸 바라보며 인상을 쓰는 성연호가 중얼거렸다.

“이 손의 주인이 원하는 곳? 그게 무슨 뜻이지?”

응급실에 도착한 건우의 눈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일행들이 보인다. 하지만 그쪽보단 좀 전에 응급실에 온 할머니에게 다가가는 건우.

“할머니, 어디 아프셔서 오셨어요?”

의사 가운을 입고 있지 않은 건우를 위아래로 본 할머니가 몸을 들썩거린다.

“딸꾹! 나, 나…… 이게 안 멈춰서. 아침부터, 딸꾹! 계속 이러는데 안 멈춰요.”

“아, 그러시구나.”

그때 가운을 입은 응급실 의사가 끼어든다.

“이쪽으로 오세요, 할머니.”

처음 보는 건우를 위아래로 살핀 그는 할머니를 모시고 병상에 앉힌다.

“아, 해보세요. 아~ 좀 더 크게. 좋습니다.”

문진을 하기 위해 병력을 몇 가지 물어보는 의사. 별다른 병력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보조하기 위해 다가온 간호사에게 말했다.

“다섯 시간 이상 hiccup(딸꾹질)이 계속되고 있으니 nasogastric intubation(경비위삽관)으로 해결해야겠네요, 튜브 가져다주세요.”

“네, 선생님.”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던 건우가 인상을 썼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건우를 힐끔 본 의사가 뭐냐는 듯 마주 바라보다 간호사가 건네준 튜브를 받는다.

“자, 할머니. 제가 이 튜브를 할머니 오른쪽 콧구멍에 넣을 거예요. 코를 좀 압박할 건데 너무 불편하시면 말씀하시고요.”

할머니는 약간 겁먹은 얼굴로 튜브를 본다.

“그, 그걸로 뭐 하는 건데요?”

“음, 위의 내용물을 흡인해야 돼요. 위 확장을 해소해야 되거든요.”

“무서운데.”

“하하, 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파요.”

할머니는 안 내키는 표정이다. 그때 할머니 앞에 앉아 있던 의사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목소리가 울린다.

“비켜봐요.”

의사가 뒤를 돌아보며 건우를 확인하곤 인상을 썼다.

“누구십니까?”

“여기서 일할 의사.”

의사의 눈이 커진다. 연배를 보니 분명 자신보다 윗사람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직 외부 영입에 대한 공지를 보지 못했지만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 의사가 주춤거리며 일어나자, 건우가 손을 내밀었다.

“거즈.”

의사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자, 건우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거즈.”

뒤따라온 성연호가 상황을 보고 있다 나서며 말했다.

“넘겨주세요, 우리 병원에서 근무하실 선생님입니다.”

센터장의 확인을 받은 후에야 거즈를 넘겨주는 간호사.

건우가 할머니를 보며 말했다.

“할머니 ‘아’ 해보시고, 혀 내미세요.”

냉정한 인상이긴 하지만 응급실에 온 후 처음 말을 걸어준 사람인 데다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의사라고 증명해 주어 그런지 얌전히 입을 벌리는 할머니.

건우가 거즈로 혀를 잡고 살짝 잡아당긴다.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혀를 붙잡고 시간을 확인한다.

30초가 지나자 혀를 놓는 건우. 그러더니 할머니를 빤히 본다. 할머니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주변 눈치를 보다 물었다.

“치료 안 해요?”

건우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할머니 댁이 어디세요?”

“나, 요기 천호동이요.”

“오, 천호동 살기 좋죠?”

“에이, 별로야. 원래 성남 살았는데 거기가 훨씬 살기 좋아. 여긴 차만 막히고 공기도 나쁘고.”

“하하, 성남이 살긴 좋죠. 성남 어디 사셨어요?”

“학의동.”

“어딘지는 모르겠네요.”

“있어, 살기 좋았어. 그냥 거기 살 걸 괜히 이사 왔나 봐.”

“하하, 여기도 꽤 괜찮아요.”

치료는 안 하고 잡담만 하고 있는 건우를 보고 인상을 쓴 의사가 자기가 나서려 하던 그때 성연호가 팔을 들어 길을 막는다.

의사를 바라본 성연호가 눈짓했다.

“할머니를 봐.”

의사가 뭔데 그러냐는 눈빛으로 할머니를 보다 눈이 커졌다.

“hiccup(딸꾹질)이…… 멈췄다?”

저렇게 간단한 방법으로도 멈출 수 있는 것이었나? 의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성연호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큰 질병이 아니라도 괴로워하는 환자의 곁에서 최선의 도움을 줄 수 있는 곳.”

평소 냉정하고 무표정한 건우와는 다른 얼굴. 환자 앞에 앉아 잡담을 하고 있는 건우에게서 냉정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미소를 지으면서도 한숨을 쉰 성연호가 중얼거렸다.

“괜히 ER만 좋은 일을 해버렸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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