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59화
6. 아버지와 아들(8)
최병훈에게 이끌려 가던 건우가 수술실 옆방에서 나오다 멈칫하는 생소한 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누구지? 환자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강한 힘에 이끌린 건우는 매일 말년 할머니와 최씨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로비 입구의 벤치에 강제로 앉혀진다.
건우가 자신의 팔을 꽉 잡고 있는 최병훈의 손을 째려보며 말했다.
“저기요, 저 범죄자 아닙니다.”
“아, 그럼요.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 손 좀 놓으시죠? 어디 도망 안 갑니다.”
최병훈은 꽤 노련한 검찰수사관인지 건우의 언사로 말미암아, 그의 성격이 보통이 아님을 짐작하곤 즉시 양 손바닥을 보이며 손을 들어 올린다.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전혀 정중해 보이지 않는다만 일단 힘든 나랏일 하는 사람이라니 넘어가자. 건우가 최병훈을 흘겨보다가 그의 뒤쪽 복도 끝에 아까 봤던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
복도에 얼굴이 반만 나와 있는 걸 보니 훔쳐보고 있는 모양이다.
뭐 하는 사람들이야?
순간 건우의 머릿속에 수술 전의 일들이 떠오르고, 기억의 편린들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수술 중에 하산병원 간담도 센터장의 전화가 왔다. 장영호 씨의 아버지는 하산병원 내과의사였지.’
수술 중이라 정신이 없었지만 기억을 떠올리자, 저 두 사람 중 한 명이 장영호의 아버지일 거란 생각이 유추된다. 다시 한번 그들을 훔쳐보는 건우.
그리고 둘 중 한 사람의 얼굴에서 아들의 얼굴을 빼다 박은 노년의 의사를 발견한다.
‘확실하구나.’
최병훈이 자신의 뒤를 힐끔거리는 건우 덕에 고개를 돌리자, 복도 끝에 나와 있던 두 사람이 쑥 들어간다.
“응? 뒤에 뭐 있습니까?”
아무도 없는 복도를 바라보는 최병훈. 건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다시 고개를 돌린 최병훈이 바로 본론을 꺼낸다.
“장영호 씨 말입니다, 상태가 어땠습니까?”
“환자 정보에 대해선 말할 수 없습니다.”
“아까 명함 보셨잖아요, 범죄 수사에 관련된 일입니다.”
“…….”
최병훈이 다시 말했다.
“영장 받아 올까요?”
말하는 꼴을 보니 더 튕기면 진짜 영장을 받아 올 기세다. 헛기침을 한 건우가 고갯짓한다.
“질문하시죠.”
최병훈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장영호에게 외상이 있었습니까?”
“작은 타박상 외에 별다른 외상은 없었습니다.”
“상태가 어땠길래 긴급수술이 들어간 겁니까?”
건우가 최병훈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수술 들어간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최병훈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장영호가 몇 주간 두문불출해서 조사해 보니 안흥면에 있는 동네 내과병원에 갔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거기 의사에게 물어보니 진료 결과 수술이 필요할 것 같아 다른 병원으로 가 보라고 했다더군요. 그의 행적을 거꾸로 밟아 여기 도착해서 아까 간호사분께 여쭤보니 수술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아, 수술을 여덟 시간이나 했었지. 그사이 밖에서 많은 일이 있었구나. 건우는 상대가 내과병원에 방문하고 왔기에 대강의 상황을 짐작하고 있다 생각하고 가감 없이 말했다.
“췌장이 파열되었습니다. 복강 내 출혈도 심각했기에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수술은 잘 끝냈고, 곧 중환자실로 올 겁니다. 아, 중환자실을 나오기 전까진 면회 금지입니다. 아무리 수사관이라도 그건 지켜주시죠.”
“호, 그렇군요.”
최병훈이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말했다.
“내과의에게 물어보니 장영호가 계단에서 굴렀다고 하던데, 선생님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헛소리다. 분명 거짓말이다. 이건 폭행을 당한 것이다. 시리아로 가기 전에 비슷한 환자를 본 적 있다.
그때는 고등학생 남자아이였는데, 수술 후에 알았지만 일진 아이들이 모포로 아이를 덮고 엎드려 있는 아이를 각목으로 내려쳤단다.
이렇게 되면 외상이 적고 내상은 크게 입게 된다.
물론 이건 추측일 뿐이므로 괜히 말해 좋을 건 없다.
“글쎄요, 전 의사지 수사관이 아니라서요.”
“아니, 계단에서 굴러서 나올 수 있는 부상이냐 묻는 겁니다.”
건우가 답을 하려다 다시 복도 끝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장진규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아버지의 슬픈 눈빛을 보는 순간 심장이 찌르르 아파온다.
살짝 얼굴을 찡그리는 건우. 최병훈이 건우의 표정을 살피다 물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건우가 말없이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 물자, 최병훈이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당뇨 있으신가 봅니다?”
“넘어가시죠.”
“예?”
“그냥 좋아서 먹는 거니까 넘어가자는 뜻입니다. 어쨌든 계단에서 굴러도 그런 부상을 입을 순 있습니다. 확률은 희박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죠.”
최병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구타나 폭행에 의한 가능성 쪽은요?”
“물론 그쪽의 확률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외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환자 본인 진술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음…….”
건우가 슬쩍 최병훈의 눈치를 살폈다. 골똘하게 생각에 잠겨 있는 최병훈.
‘일단 거짓말한 건 없으니까 뭐.’
깡패 새끼를 위해 굳이 거짓말을 해야 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아버지가 듣고 있다 생각하니 괜히 유추한 내용으로 입방아를 찧고 싶지는 않았던 건우가 슬쩍 진술을 피해간다.
최병훈이 가만히 생각하다 물었다.
“혹시 피부 바깥쪽 사진 찍어둔 거 없으십니까? 병원 왔을 때 말입니다.”
“외상으로 인한 장파열이긴 하지만, 외적으로 상처가 눈에 띄지 않는데 뭐 하러 사진을 남기겠습니까? 여긴 경찰서가 아니라 병원입니다. 병원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사진만 남깁니다.”
“음…….”
“일단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현재 장영호 씨 상태는 수술은 잘 끝났지만, 몸에 튜브들을 잔뜩 끼운 채로 중환자실로 옮겨질 거란 겁니다. 손도 다 묶여 있을 것이니 어디 도망갈 일도 없고요.”
최병훈이 놀라며 물었다.
“손을 묶어요? 그가 병원에서 난동이라도 부렸습니까?”
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잠결에 배액 튜브를 뽑아버릴 수도 있어 그런 겁니다.”
“다른 환자들도 그렇습니까?”
“경우에 따라 그럴 수 있습니다. 힘없는 노인이나 소아에겐 그러지 않지만요.”
“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중환자실에 가 봐야 해서 전 이만.”
건우가 일어나자 최병훈이 함께 일어나며 물었다.
“장영호는 아직 중환자실로 오지 않았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건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최병훈을 노려보았다.
“이 병원이 장영호 씨 개인병원입니까? 다른 환자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병원의 중환자실에 다른 환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최병훈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병원 규모를 무시하려 그런 건 아니었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건우가 몸을 돌려 입원실 방향으로 가며 말했다.
“신경 안 씁니다, 그럼.”
입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에 앉아 있던 말년 할머니가 얼른 말을 걸어온다.
“의사 선생, 아까 그 청년 수술이 이제 끝난 거야?”
막대사탕을 물고 있는 건우가 뒤를 돌아본다. 입원실 문 앞에 서서 진짜 중환자실에 다른 환자가 있는지 살피려던 최병훈이 건우와 눈을 마주치곤 슬금슬금 물러나는 것이 보인다.
가만히 그가 사라질 때까지 노려보던 건우가 할머니 앞에 앉았다.
“우리 할머니, 자기 몸이나 걱정해요.”
“나? 난 이제 다 나았어.”
“하긴, 모레쯤 퇴원하셔도 되겠네요. 근데 할머니 병은 완치가 없는 병이니까 조금만 배가 아파도 바로 병원 오셔야 돼요, 아시죠?”
“응.”
“아니다, 전화기 줘봐요.”
“전화기? 어디다 뒀더라…….”
주변을 뒤적인 할머니가 낡은 핸드폰을 넘겨주자, 자기 전화번호를 찍어 내미는 건우.
“이거 제 전화번호니까 어디 이상하면 새벽에라도 전화하세요, 아셨죠?”
“에이, 새벽에 미안하게 어떻게 그래?”
“아오, 저 원래 응급실에서 일했어요. 원래 이쪽 일은 밤낮 없어요. 자다가도 전화벨 울리면 벌떡 일어나서 총알처럼 튀어 나가니까 꼭 하세요.”
말년 할머니가 눈웃음을 짓는다.
“진짜 의사네, 우리 선생.”
말년 할머니의 푸근한 웃음은 언제나 힘이 된다. 엄마보다 훨씬 연배가 높지만 어쩐지 엄마와 있는 기분이다.
할머니가 따뜻하게 잡아주는 손길을 느끼던 건우가 말했다.
“아까 그 사람, 수술 잘 끝났어요. 곧 내려올 거예요.”
“아이고, 잘했네. 수술 시간이 너무 길어서 혹시 잘못됐나 했어.”
“최씨 할아버진 어때요?”
“어, 새로 온 간호사들이 계속 들락거렸는데 별문제는 없나 봐, 조용해.”
조용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자 아까 소란을 피웠던 깡패 놈들이 사라진 것이 마음에 걸린다.
주변을 두리번거린 건우가 물었다.
“할머니, 저 밖에 있던 깡패들이랑 얼굴에 칼자국 있는 놈이랑 다 어디 갔어요?”
말년 할머니가 입원실 문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아까 선생 여기 들어올 때 밖에서 훔쳐보던 사람 있지?”
“예.”
“그 사람 나타나고 갑자기 싹 사라졌어.”
“음.”
영월지청의 검찰수사관.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숨어버린 것이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깡패들이 검사들한테도 막 덤비고 그러던데. 그 녀석들은 간이 좀 작은 녀석들인가 보다. 그래, 뭐 그런 놈들이 들락거리면 할머니가 괜히 겁만 먹지. 차라리 없는 쪽이 낫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일단 도움이 된 최병훈에게 비협조적으로 군 것이 약간 미안해지는 건우다.
“최씨 할아버지 좀 보고 올게요.”
“응, 그래.”
중환자실 문을 열자, 최씨 할아버지가 건우와 눈을 맞춘다.
“좀 어떠세요?”
“…….”
“아, 뭐. 이제 말수 좀 느셨나 했더니 여전하시네, 우리 할아버지.”
“자네 괜찮나?”
“음? 뭐가요?”
“아까 밖에 보니 건달 같은 놈들이 다니던데.”
건우가 씩 웃었다.
“건달이건 대통령이건 몸 아프면 의사 바짓가랑이 잡는 거 똑같습니다. 걱정 마세요, 아파서 온 사람들이니.”
“음.”
“몸은 좀 어떠세요?”
“좀 쑤시네. 나 바람 좀 쐬면 안 되나?”
“장난치세요? 여기 어딘지 몰라요? 일반 병동 이동하고 나서도 한참 더 있어야 나가실 수 있어요. 할아버진 보통 환자가 아니라 암 환자라고요.”
“선생이 고쳐줬잖아.”
“아직 고치고 있는 중이라니까 그러시네.”
아이처럼 조르는 할아버지. 그래도 말없이 굳은 얼굴로 돌아다니던 때보다 이렇게라도 대화할 수 있게 변화한 모습이 보기 좋다.
건우가 막대사탕을 입안에서 굴리며 할아버지의 V/S 체크리스트를 확인한 후 말했다.
“얌전히 계세요. 좀 이따 여기에 젊은 환자 한 명 더 들어올 건데, 그 사람 깡패거든요? 걱정은 마세요. 손도 묶어놨고 정신도 없을 테니까. 혹시 할아버지한테 으르렁거리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확 몸에 튜브 다 뽑아버리고 쫓아버리게.”
할아버지가 실소를 짓는다. 요즘 가끔 웃어주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참 좋아진다.
건우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중환자실을 벗어나자, 입원실에 들어와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복도 끝에 숨어 있던 장영호의 아버지임을 눈치챈 건우가 그에게 다가가자, 그가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하산병원 장진규 내과과장이네.”
“모건우입니다.”
성연호가 나서며 악수를 청한다.
“나 하산병원 간담도 센터장 성연호요.”
이미 자신의 소개를 한 건우가 그의 악수를 받으며 말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성연호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수술실 옆 방에서 지켜봤습니다.”
아, 이 아저씨. 수술 중에 전화를 했었지. 그러고 보니 이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몸에 왔던 이상을 탈피할 방법을 빠르게 찾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러셨습니까?”
장진규가 나서며 말했다.
“내 아들을 구해줘서 고맙네.”
“의사가 환자 살리는 건 당연한 일인데요, 뭘.”
“안정기에 접어들려면 얼마나 걸리겠나?”
“적어도 3개월은 걸릴 겁니다. 이송하시겠습니까?”
무릉도원 병원보단 하산병원이 여러모로 환경이 좋다. 긴급수술이 끝났으니 당연히 이송하는 쪽이 좋다. 장진규가 고민하다 말했다.
“아들이 깨어나면 상의해 보고 말해도 되겠나?”
음, 전화로 이야기했던 걸 확실히 지키는 아버지구나, 이 사람은. 더 이상 아들을 자신의 생각대로 휘두를 생각이 없나 보다.
문득 아버지를 가진 장영호가 부러운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시죠.”
“아까 수사관과 대화를 엿들었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 말해줘서 고마웠네.”
“사실만 말했습니다만.”
“허허, 이 사람 성격이 아주 화끈하구먼.”
건우가 고개를 숙인 후 말했다.
“그럼 전 그만 장영호 환자 중환자실 이동 준비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체크하러 가 보겠습니다.”
“아, 그러게.”
건우가 뚜벅뚜벅 걸어 나가자,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장진규가 말했다.
“센터장.”
“예, 과장님.”
“저 친구에 대해 좀 알아보는 게 좋겠지?”
성연호가 씩 웃으며 닫혀가고 있는 입원실 문을 바라보았다.
“하산병원이 원하는 인재군요, 충분히 확인해 볼 가치가 있겠습니다.”
“좋아, 알아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