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58화
6. 아버지와 아들(7)
수술에 집중하고 있던 건우가 마치 길을 미리 알고 움직이는 듯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손길, 정확하게 움직이는 간격.
췌공장문합술을 시행 중인 자신의 손이 움직인다.
공장의 장간막 부착부 반대 측을 췌관경에 맞추어 소절개하고, 미측췌에 삽입되어 있는 췌관튜브의 끝을 거상공장 내를 통하여 체외로 꺼낸 후 4-0 나일론 실로 공장장막근 측과 췌실질과의 후벽 봉합을 끝낸다.
췌관의 확장이 없는 것을 확인 후 췌관단단을 공장의 소공으로부터 공장 내로 튜브째로 삽입, 3-0 바이크릴에 의한 담배봉합으로 꿰맨다.
담배봉합사와 췌관튜브의 고정실을 결찰, 마지막으로 4-0 나일론 실로 전벽의 췌공장 봉합을 시행하고 손을 떼는 건우.
“pancreaticojejunostomy(췌공장문합술) 완료…….”
아직 담관공장 문합과 위공장 문합이 남았지만, 놀란 눈으로 피 묻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건우.
‘마치 내 손이 아닌 것 같다.’
말년 할머니나 최씨 할아버지를 수술할 때는 이런 느낌이 없었다. 갑자기 왜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 걸까? 두 수술은 잘못된 길로 접어든 적이 없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췌공장 문합 부위로부터 15㎝ 위로 메스를 가져가는 건우. 본래는 10㎝ 위를 절개해야 한다. 그러자 온몸이 바짝 굳는 것이 느껴진다.
마스크를 쓰고 눈만 드러낸 건우의 눈이 커진다.
‘확실하다. 잘못된 경로로 수술을 시도하면 손이 굳는다.’
닥터 램지가 길을 알려주고 있는 걸까? 정말 그런 걸까? 아냐,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가만히 손을 바라보던 건우가 말했다.
“바로 cholangiojejunostomy(담관공장문합술)와 gastrojejunostomy(위공장문합술)로 들어간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수술실의 분위기와 달리 적막함이 감도는 수술 모니터실.
계속해서 시간을 체크하던 장진규가 중얼거린다.
“일곱 시간째다.”
수술 장면에 집중하고 있던 성연호가 그 소릴 듣고는 놀라며 자신의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다.
“이, 일곱 시간이요?”
장진규가 다시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내과 전문이긴 하지만 간담도 수술을 견학한 적은 꽤 많네. 하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빨라.”
성연호가 말문이 막힌 듯 다시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drainage tube(배액관) 고정과 폐복만 남았는데 일곱 시간이라니.”
장진규는 성연호의 반응을 가만히 살피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센터장.”
다시 시간을 확인하던 성연호가 답한다.
“예.”
“만약에 말이야.”
시간을 보고 있던 성연호가 고개를 돌리자 진중한 표정의 장진규가 묻는다.
“만약에 저기 서 있는 것이 자네였다면, 이 수술 몇 시간에 끝낼 수 있겠나?”
“…….”
“자네도 가능한가?”
성연호는 냉정하게 생각해 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음…….”
성연호가 다시 모니터를 보며 여지를 남긴다.
“하지만 제가 저 나이 때는 불가능했겠죠.”
장진규가 한 걸음 나서며 물었다.
“아까 물어보니 모건우 선생의 나이가 서른여섯이라고 하더군. 그때의 자네였다면 어땠을 것 같나?”
성연호는 건우와는 다른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다. 같은 나이라곤 하지만 이미 그때 임용이 결정되어 수많은 수술 경험을 쌓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은 성연호는 냉정히 생각해 본 후 답했다.
“그때의 저라면 열 시간 내로 끊을 수 있었을 겁니다.”
장진규가 모니터를 눈짓하며 말했다.
“그럼 이 수술은 언제 끝날 것 같나?”
성연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덟 시간 전에 끝날 것 같습니다.”
“음…….”
아들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가는 걸 보고서야 다시 대형 병원 과장의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장진규가 빠르게 움직이는 모니터 속 건우의 손을 보았다.
췌관튜브, 담관튜브를 체외로 유도하고 복벽에 고정한 후 양측 측복부의 소절개구로 드레인을 담환공장 문합부 근방, 췌공장 문합부 근방, 모리슨와에 삽입, 유치하고 있는 건우의 손.
“아름다운 움직임이군.”
마치 한 편의 예술적 춤사위를 보는 듯한 부드러운 손의 움직임.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매우 정확한 곳에서 정지하고 째고, 꿰매는 손. 쓸데없는 낭비가 전혀 없는 움직임이다.
성연호가 심각한 눈으로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게다가 한 번도 휴식이 없었습니다.”
장진규가 그제야 미소를 짓는다.
“대단한 친구야. 이제 닫기만 하면 되니 나오겠군.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겠어.”
장진규가 움직이려 했지만 어쩐지 성연호는 움직이지 않고 모니터만 본다. 장진규가 그런 성연호에게 물었다.
“안 나갈 건가? 끝난 것 같은데.”
성연호가 모니터를 눈짓하며 말했다.
“닫는 것도 집도의가 직접 할 모양입니다.”
“뭐?”
췌장 수술이다. 장시간 수술한 집도의는 폐복 정도는 다른 의사에게 맡기고 빠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모건우는 직접 봉합까지 하고 있다.
“작은 병원이라 그런가?”
“그런 것 같습니다.”
“주변에 의사들이 둘이나 있는데.”
“음, 글쎄요. 사정이 있나 봅니다.”
밖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지 모르는 건우는 장영호의 복부를 닫으며 중곤을 노려보았다. 움찔 놀란 중곤이 자라목이 되자, 으르렁거리는 건우.
“너 수술 경험 있잖아, 왜 이거까지 내가 해야 돼?”
“그, 그게. 이렇게 큰 환부 봉합 경험은 없어서…… 게, 게다가 이 환자는 drainage tube(배액관)까지 몸 밖으로 나와 있는 상황이라…….”
제길, 수술에 집중할 때는 몰랐는데 피로가 제대로 몰려온다. 손은 닥터 램지의 것이라 치지만 다리는 어쩔 것이고, 어깨와 목은 어쩔 것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중간에 한두 번 쉬는 건데, 하…….’
건우가 혜선을 노려보자, 그녀 역시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다. 넌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어, 인마. 몰라, 빨리 끝내고 좀 누워야지 허리 아파 죽겠네.
건우가 수술 시야에서 출혈, 이물이 없는 것을 확인 후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봉합을 하고 말했다.
“장영호 환자 수술 종료.”
은비가 얼른 수술실 타이머를 끄며 말했다.
“총 8시간 13분 걸렸습니다, 선생님.”
건우가 중곤을 째려보며 말했다.
“너 아니었음 8시간 안에 끝냈을 텐데.”
중곤이 어깨를 움츠리고 시선을 피한다.
건우가 그런 중곤을 노려보다 실소를 지었다.
“연습해, 인마. 너도 의사로 살아야 되니까.”
중곤이 건우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인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혜선과 은비, 지수도 소리 높여 말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오지선은 모니터로 예후를 확인 중에 수술실을 나갈 준비를 하는 건우를 바라보았다.
‘췌장 파열 수술을 8시간 13분에 끝냈다. 복강 내 출혈까지 있는 환자를.’
자신이 대전의 병원에서 근무할 때 비슷한 환자의 수술을 맡아본 적이 있다.
당시 집도의는 간담도 교수였고, 췌장 수술 경력만 400회가 넘는 의사였다. 하지만 그때 그는 12시간 37분이 걸렸었다.
‘그런데 저렇게 어린 의사가…….’
만약 봉합을 다른 의사에게 맡기고 나갔다면 도대체 몇 시간 내에 끝냈다고 봐야 할까?
‘일곱 시간 사십 분. 딱 그 정도였어.’
경악할 만한 시간이다. 다른 의사들이 봤다면 크게 놀랐을 것이다.
은비의 보조로 수술복 위에 덧대어 입었던 보조 수술복들을 벗고 있는 건우를 가만히 바라보는 오지선.
‘엄청난 실력이었어.’
마침 몸을 돌리다 오지선과 눈을 마주치는 건우. 오지선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가만히 건우를 바라보고만 있다.
자신에게 할 말이라도 있나 싶어 멀뚱히 오지선을 바라보던 건우가 어느 순간 인상을 쓴다.
“또 뭐, 선장 타령 할 겁니까?”
“…….”
“하지 맙시다, 그거. 낯 간지러우니까.”
오지선은 아직도 말없이 건우를 바라보고만 있다.
혹시나 또 이상한 소릴 할까 싶어 그녀를 노려보던 건우가 수술실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수고했어요, 수술 후 관리가 더 중요하니 중환자실 올려서 집중 케어 합시다.”
건우가 나가자 어깨에 힘을 빼며 축 늘어지는 중곤이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흐아…….”
혜선 역시 힘이 드는지 쪼그리고 앉아 한숨을 쉬었다.
“와…… 이런 수술이라니. 간담도 쪽 선생님들이 존경스럽네요.”
은비가 도구들을 정리하며 웃었다.
“심할 때는 20시간 걸리는 수술도 있어요, 모 선생님 손이 빠르셔서 그렇지 잘못 걸리면 몇 끼 굶는 건 기본인걸요?”
혜선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수술을 20시간이나 한다고요? 지금처럼요?”
은비가 눈웃음을 지었다.
“아뇨, 모 선생님이 휴식 없이 하신 거지, 보통 선생님들은 두 시간에 한 번씩 쉬세요. 커피도 드시고 잠깐 누워 계시기도 하고요.”
중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악마야, 악마. 어떻게 사람이 여덟 시간 동안 꼼짝도 안 하고 수술을 하냐.”
혜선도 이번만큼은 건우의 무식한 체력이 놀랍다는 듯 악마라는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때 수술실 문이 열리며 건우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온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중곤, 혜선이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하는 걸 본 건우가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거기서 뭐 하냐?”
중곤과 혜선이 얼어붙어 크게 답한다.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생님!”
두 사람을 아래위로 보던 건우가 문 옆에 서 있던 지수에게 말했다.
“장영호 씨 중환자실 이송 후에 손 묶어놔요.”
“네?”
“자다가 혹시 자기도 모르게 drainage tube(배액관) 뜯어낼 수도 있으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건우가 다시 중곤과 혜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곤 수술실을 벗어나자 이번엔 다시 주저앉지 않고 또다시 건우가 들어올까 싶어 문 쪽을 보고 있는 두 사람.
은비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빨리 마무리하시고 중환자실로 이동하지 않으면 또 들어오실걸요?”
중곤과 혜선이 움찔 놀라는 것이 느껴진다. 창피해서 말은 안 하는 것 같지만 어쩐지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 은비가 또다시 미소 짓는다.
수술실 밖으로 나와 수술복들을 벗어 쓰레기통에 넣은 건우가 가운을 걸치고 밖으로 나오자, 들어갈 때와 사뭇 다른 로비의 모습에 멈칫한다.
‘뭐야, 깡패 새끼들 다 어디 갔어?’
좀 전까지 로비를 점거하고 있던 건달들이 싹 사라졌다. 자기 형님 혼자 여기 두고 어디 갈 놈들로 안 보였는데 뭐지? 뭐야, 고 과장, 이 로비 지박령도 없잖아?
건우가 로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반대편 복도에서 처음 보는 남자가 기웃거리다 고개를 내미는 것이 보인다. 자신을 보곤 주머니를 뒤져 명함을 꺼내 내밀며 걸어오는 남자.
“안녕하세요, 의사 선생님이시죠?”
“예, 그런데 누구십니까?”
명함을 받기만 하고 읽지는 않은 건우의 물음을 받은 남자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물었다.
“여기 장영호란 사람이 수술받으러 왔다는데, 그 사람 어떻게 됐습니까?”
순간적으로 남자의 몸을 본 건우. 꽤 우람한 것이 운동깨나 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놈도 깡패일까? 건우가 남자를 노려보며 물었다.
“왜 묻습니까?”
혹시 장영호의 반대 세력 깡패일 수도 있다. 병원까지 찾아와 숨통을 끊으려는 자일지도 모른다. 경계하는 얼굴이 된 건우를 보고 실소를 지은 남자가 명함을 눈짓하며 말했다.
“뭐라고 써 있는지 확인 좀 하시죠.”
건우가 남자를 노려보다 명함을 바라보곤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영월지청 검찰수사관, 최병훈?”
최병훈이 씩 웃으며 건우의 팔을 잡았다.
“몇 가지 질문 좀 드려야겠습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누시죠.”
검찰수사관이 여긴 무슨 일일까? 최병훈이 붙잡은 팔에서 힘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