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56화
6. 아버지와 아들(5)
수술 시간 기록을 위한 타이머를 누른 은비가 물었다.
“몇 시간 후에 콜 할까요, 선생님?”
은비는 PA로 경력이 꽤 많다. 췌장 수술은 수술 시간이 매우 길다. 통상적으로 두세 시간에 10분에서 15분가량 휴식하는 것이 의사의 집중력 유지를 위해 좋으므로 묻는 것이다.
은비의 질문을 들은 건우가 수술용 장갑을 낀 자신의 두 손을 물끄러미 보았다.
‘시리아에서 닥터 램지는 췌장이 파열된 환자의 수술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끝냈었다. 무서운 집중력이었어. 나도 할 수 있을까?’
건우가 손을 내밀어 메스를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일단 해보고.”
“네, 선생님.”
메스를 건네받은 건우가 맞은편에 서 있는 혜선과 중곤에게 말했다.
“거즈 충분히 준비했지?”
“네, 선생님.”
“개복하자마자 혈액이 솟구칠 거다. 복강 내 출혈이 상당히 심하니 준비해.”
그나마 수술 경험이 있는 중곤과 달리 혜선은 상당히 긴장해 있는 표정이다.
가만히 개복을 위해 소독제를 발라둔 장영호의 복부를 노려보고 있는 혜선.
건우가 두 사람에게 정신 차리라는 눈빛을 보내고 절개를 하자, 그의 말처럼 피가 솟구쳤다.
미리 언질을 받았지만 복부에 난 구멍에서 피가 샘솟듯 울컥거리며 쏟아지는 걸 본 혜선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중곤이 재빨리 거즈로 피를 닦아내며 소리쳤다.
“혜선 쌤! 정신 차리고 빨리!”
“아…… 아아…….”
“혜선아!!”
중곤이 여러 번 불렀지만 혜선은 다량의 피를 보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건우가 솟구치는 핏속으로 푸른 눈빛을 번뜩인다.
‘Tail of pancreas(췌미)가 완전히 으스러졌다. 꼬리는 못 살린다.’
혜선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다행히 은비가 있다. 끝없이 나오는 피를 거즈로 마구 닦아내고 있는 은비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혜선 쌤, 수술실에선 이 환자보다 더한 사람도 많아요. 이 정도로 쇼크받으면 안 돼요.”
의사도 아닌 간호사에게 받는 충고. 하지만 대부분의 인턴은 간호사보다 못하다. 다행히 쓸데없는 자존심 같은 건 없는 혜선이 잠시 비틀거린 후 외쳤다.
“죄송합니다!”
즉시 정신을 부여잡고 거즈로 피를 닦아내는 혜선.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다.
하긴 처음 이렇게 출혈이 많은 환자를 보면 쇼크가 오기도 한다. 심한 녀석은 토하기도 하니까 혜선 정도면 괜찮은 수준이다.
건우가 환부를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hepar(간) 주변이랑 cholecyst(담낭), duodenal(십이지장), hepatolienal(비장) 주변도 전부 세척해.”
건우의 지시가 떨어지자 은비가 식염수를 통째로 들이붓는다. 순식간에 피로 얼룩진 장기들이 제 색을 드러낸다. 역시 은비는 능력 있는 PA다.
중곤과 함께 피를 닦아낸 혜선이 외쳤다.
“선생님! 출혈이 멎질 않아요!”
당연히 안 멎지, 이놈아. 상처 난 곳을 꿰매야 멎을 거 아니냐. 그런 것도 설명해 줘야 되냐?
건우가 메스를 들이대며 말했다.
“비켜.”
오지선이 모니터를 보다 물었다.
“출혈 지점 확보됩니까?”
“아뇨.”
“그럼요?“
“최대한 빨리 절개하고 췌장까지 들어갈 겁니다.”
오지선의 눈이 커졌다.
출혈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저렇게 울컥거리며 나오는 핏속을 뚫고 절개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가능하긴 하다. 매우 어려워서 문제지. 건우의 실력을 두 번의 수술을 통해 확인했지만 이번은 상황이 무척 나쁘다.
대형 병원 간담도 췌장암 센터의 노련한 교수들이라면 몰라, 겨우 대학병원 펠로우가 집도할 만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잘못하면 수술 중에 사망한다.’
그럼 어떻게 될까? 오지선은 상황을 모두 지켜보았다.
본원에서 반대하는 수술을 감행하고 수술대 위에서 환자가 사망한다. 그건 정말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고, 어쩌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해고당할지도 모른다.
오지선이 입술을 깨물다 문득 실소를 지었다.
‘내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있었나?’
오지선이 물끄러미 건우를 바라본다.
‘해고당한다고 일자리가 없겠어? 어디 마취 통증 전문 병원이라도 가면 되는 일이지. 이 지긋지긋한 연성대학 병원, 이참에 관두고 만다. 더러운 새끼들.’
오지선이 빠르게 십이지장 하 행각 외연의 후 복막을 절개하는 건우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 환자는 절대 여기서 사망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 그러니 수술에만 집중하세요, 선장님.”
메스로 췌두부를 대동맥이 노출될 때까지 수동한 건우가 실소를 지었다.
“선장이라고 좀 부르지 말죠?”
오지선이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왜요, 선장을 선장이라고 부르는데 뭐가 잘못됐다고. 내가 홍길동도 아니고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를래요.”
하, 그래 마음대로 해라. 당신 역할만 똑바로 해준다면 O.K.
건우가 계속해서 피를 닦아내고 있는 중곤과 혜선에게 말했다.
“우측결장의 mesocolon(결장간막)을 retroperitoneal(후복막)에서 avulsion(박리), passive(수동)한다.”
바로 그때 건우의 푸른 눈빛이 번뜩인다.
‘출혈 지점이 보인다! 이래서 정면에서 안 보인 거였어.’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출혈 지점. 사실 다른 의사였다면 현재도 알 수 없는 곳에 출혈 지점이 있다. 정면에서 보이지 않는 췌장의 뒤쪽이다.
중곤이 거즈로 장기를 누르며 다급하게 말했다.
“선생님! 출혈이 계속됩니다! 이렇겐 수술 못 합니다!”
오지선이 달려와 혈액 팩들을 손으로 꾹꾹 짠다.
“혈액 공급은 어떻게든 버텨볼 테니 빨리만 잡아주세요!”
뚫어지게 장영호의 뱃속을 보던 건우가 말했다.
“pancreas head(췌두부) 후방이다.”
췌장의 모양은 좌우로 길게 되어 있는 장기다. 환자의 오른쪽이 머리, 왼쪽이 꼬리다. 췌두부라 함은 췌장의 머리 쪽을 말함이다.
오지선이 혈액 팩을 짜며 슬쩍 환부를 들여다보곤 물었다.
“어떻게 알아요?”
건우가 검지를 든 후 췌장 후방에 손을 쑥 집어넣는다. 중곤과 혜선이 계속해서 울컥거리며 솟구치는 혈액을 닦아내다 어느 순간 놀란 표정으로 개복 부분을 바라본다.
“어……?”
“추, 출혈이 멈췄습니다!”
오지선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정면에서 보이지 않는 출혈 지점을 정확히 눌렀다. 이, 이게…….’
지금까지 단지 손이 빠른 의사라고 생각했다. 물론 외과의사가 손이 정확하고 빠르다는 건 분명한 강점이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은 오지선의 입장에서 경악할 만한 장면이다.
“저, 정말 잡았다고요?”
건우가 췌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superior mesenteric artery(상장간막 동맥)이 찢어졌던 거다.”
오지선이 건우를 획 돌아보았다.
‘그래서,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목구멍으로 의문 섞인 외침이 튀어나오는 걸 간신히 참은 오지선이 침을 꿀꺽 삼켰다.
‘마, 말도 안 돼!’
건우가 은비에게 손을 내밀자, 즉시 혈관 문합을 위한 도구들을 건네는 은비.
중곤이 얼른 췌두부 후방이 잘 보이도록 췌장을 들어 올려주자, 빠르게 손을 움직이는 건우.
혜선이 건우의 손놀림을 보고 눈이 커진다.
‘소, 손가락으로 출혈 부위를 누르면서 봉합하고 있어! 저게 가능하다고?’
사람의 손가락은 의외로 말을 듣지 않는다. 손가락 하나가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선 그 움직임의 제한이 더 커진다.
하지만 건우는 마치 손가락이 여섯 개인 사람처럼 집게손가락으로 출혈지점을 눌러 지혈을 함과 동시에 찢어진 부분을 봉합하고 있다.
다섯 바늘가량을 꿰맨 건우가 가위로 실밥을 자른 후 말했다.
“출혈 지점 봉합 완료.”
중곤과 혜선이 남은 피를 다 닦아낸 후 뚫어지게 환부를 보다 침을 삼켰다.
“추, 출혈 지점 확실히 잡혔습니다.”
“와…….”
건우가 즉시 은비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중곤.”
“예, 선생님.”
“tomach(위)를 상방으로 당겨라.”
“예!”
“혜선.”
“네, 선생님!”
“transverse colon(횡행결장)을 하방으로 당겨라.”
“예!”
두 보조가 위와 횡행결장을 위아래로 당기자 건우가 췌장하연에서 상장간막 정맥을 주위 조직으로부터 박리한다.
모니터와 건우의 움직임을 번갈아 보는 오지선의 눈이 점점 더 커진다.
‘빠, 빨라! 아무리 blunt(무디게) 하게 avulsion(박리) 한다지만 이런 속도라니!’
오지선이 재빨리 시간을 확인했다.
‘출혈 지점을 잡고, pancreas(췌장)을 건드려 볼 수 있는 수준까지 오는 데 겨우 두 시간이라고?’
벌써 다리가 후들거리는 중곤, 혜선과 달리 굳건하게 버티고 서서 환부를 뚫어지게 보며 푸른 눈동자를 빛내는 의사. 그를 보는 오지선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이런 의사가 왜 이런 시골에 있는 거야?’
같은 시각, 병원 로비.
초조한 얼굴로 몇 분에 한 번씩 시간을 확인하던 구진명이 병원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두 명의 남자를 보고는 천천히 일어났다.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점잖은 인상의 남자는 구진명을 보곤 달려와 다급하게 물었다.
“영호는! 영호는 어떻게 됐나!”
구진명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무슨 일인가 했던 깡패들이 엉거주춤 같이 고개를 숙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버님.”
“지금 인사할 상황인가!”
“형님께선 수술 중이십니다.”
영호의 아버지가 놀란 표정이 되어 뒤를 돌아본다. 함께 들어온 50대 중반의 남자가 걸어오며 물었다.
“누가 수술하는 겁니까?”
구진명이 그를 아래위로 본 후 말했다.
“여기 외과의사가 수술 중입니다.”
남자는 너무나 작은 병원 규모를 보고 인상을 썼다.
“이런 규모의 병원에서 췌장 수술을 한다고요?”
그때 고 과장이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 고개를 들었다.
“저…… 장영호 씨 보호자 되십니까?”
영호의 아버지가 얼른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장영호 아비 됩니다.”
“아, 저는 무릉도원 병원 원무과장 고기만입니다.”
하산병원 내과과장 장진규. 명함을 본 고 과장의 눈이 커졌다. 하산병원 교수도 대단한데 내과과장이라고?
고 과장이 침을 꿀꺽 삼키는 동안 장진규와 함께 온 50대 남성도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하산병원 간담도 췌장암 센터장 성연호입니다.”
“헉.”
간담도 췌장암 센터장에 내과과장이라니. 고 과장이 얼어붙을 만한 이름들이다.
성연호가 병원을 둘러보며 물었다.
“지금 수술 중인 것 맞습니까?”
“아, 예! 맞습니다. 우리 모건우 선생님께서 집도 중이십니다.”
“수술 들어간 지 얼마나 됐습니까?”
“두 시간 좀 넘었습니다.”
“음, 출혈 있었죠?”
“예, 여기 검사 결과입니다.”
성연호가 장영호의 복부를 찍은 필름들을 심각한 눈으로 보다 인상을 썼다.
“Tail of pancreas(췌미)는 못 살리겠군요. 이 정도면 출혈이 상당했을 텐데, 아직 출혈 지점을 못 잡았을 수도 있습니다.”
장진규가 이를 악물었다. 아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건 어떤 아버지에게나 이성을 잃을 문제지만 평생 의사 생활을 해왔던 그는 필사적으로 이성을 붙들고 있다.
몇 번 호흡을 가다듬은 장진규가 말했다.
“수술실…… 모니터 볼 수 있습니까?”
고 과장이 머뭇거렸다. 엄연히 환자의 보호자인데 수술실 모니터를 보여주는 건 꺼려진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거절하기가 어려웠던 그는 엉거주춤 수술실 쪽을 가리켰다.
“예…… 이쪽입니다.”
잰걸음으로 수술실 옆 모니터링실로 온 성연호가 개복부가 보이는 모니터를 확인한 후 놀란 표정으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수술실 창문으로 보이는 타이머에 수술이 시작된 지 2시간 33분이 지났다는 표기가 보인다.
“두 시간 반 만에 출혈 부위 잡고, 췌장 절제 가능한 상황까지 만들었다고?”
장진규도 놀란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 상태면 이미 ligamentum hepatoduodenale(간십이지장간막) 절제, CBD(총담관), 고유간 동맥, 문맥 노출. Cholecyst(담낭) 적출 후 ductus hepaticus co㎜unis(총간관) 절리를 끝냈다는 말 아닌가?”
성연호가 침을 삼키며 말했다.
“co㎜on hepatic artery(총간동맥) 주위의 림프절도 곽청되어 있습니다. 우위동맥, 위십이지장 동맥도 결철, 절리되어 있습니다. 이게…… 말이 안 되는데. 수술실 내부 타이머가 고장 난 거 아닙니까?”
성연호와 장진규가 동시에 고 과장을 본다. 고 과장은 갑자기 자신에게 시선이 몰리자, 움찔 놀라며 더듬거린다.
“시, 시계는 멀쩡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