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랑켄슈타인 55화
6. 아버지와 아들(4)
건우가 병원 정문을 열고 내부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한숨을 쉰다.
깡패들이 로비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몸이 도화지도 아니고 뭔 문신을 저렇게 많이 했나 모르겠다. 아무리 개성 시대라지만 저건 정도가 좀 심하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고 과장이 부동자세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것도 보인다.
구진명이 상황을 이야기 중인지 그의 곁에 모여 있던 건달들 중 맨 처음 병원에 들어와 패악을 부리던 깡패 놈이 건우가 들어오는 걸 보곤 눈을 부라리며 달려와 멱살을 잡는다.
“수술을 못 한다고? 다른 병원으로 보낸다고? 그러고도 네놈이 의사냐?”
우악스러운 손에 멱살을 붙잡힌 건우.
가만히 깡패를 노려본 건우가 나직하게 말했다.
“놔라, 이 새끼야. 반말 처하지 말고.”
“이 개 같은 새끼가!”
한 대 칠 기세로 인상을 와락 구긴 깡패. 건우가 주먹을 부르르 떨며 주변에 CCTV가 있는지 두리번거리는 깡패를 노려보며 말했다.
“CCTV 찾냐? 저기 있네.”
“…….”
“돌아가는지 확인은 안 해봤는데 아마 돌아갈걸?”
인상만 구긴 채 건우를 노려만 보는 깡패. 건우가 그의 손을 탁 치며 말했다.
“놔.”
자존심이 상하는지 끝까지 멱살을 놓지 않는 깡패. 결국 구진명이 나섰다.
“성진아, 놔드려라.”
구진명이 지시를 하자, 할 수 없다는 듯 슬그머니 멱살을 놓는 성진.
건우가 구겨진 셔츠를 툭툭 털며 말했다.
“이름이 성진이냐?”
“알아서 뭐 해, 이 새끼야.”
“너 몇 살이냐?”
“먹을 만큼 먹었다, 왜?”
“하, 겁나 싸가지 없네?”
“너만 하겠냐?”
건우가 실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그래.”
“…….”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눈빛으로 건우를 보는 성진.
건우가 의사 가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말했다.
“장영호 씨랑 회식도 자주 했냐?”
“당연하지, 우리 큰형님인데. 얼마나 잘 챙겨주시는 분인데!!”
“어, 이제 회식 못 하겠네?”
성진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금까진 화가 난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진짜 죽일 듯한 눈빛이 된다.
“다시 말해봐.”
건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회식할 때 기름진 거 많이 먹었지?”
“이 새끼가…….”
“이제 못 먹을 거다. 비장을 잘라내야 되거든.”
성진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무식한 이 녀석과 다르게 똘똘한 구진명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선생님, 수술하시는 겁니까?”
구진명의 말을 들은 성진이 건우를 획 돌아보았다. 건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성진을 고갯짓한다.
“이놈 말이 맞죠, 눈앞의 환자를 외면하는 의사가 의사라고 불리면 되겠습니까?”
성진이 놀란 얼굴로 말을 더듬는다.
“지, 진짜…… 수술한다…… 아니, 해준다고? 다른 병원으로 안 보내고?”
건우가 성진의 근육질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어, 그래. 수술한다. 그러니까 반말하지 마라? 확 너네 형님 아프게 째버린다?”
조금 전까지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던 성진이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 물러난다.
건우가 뚜벅뚜벅 걸어 구진명 앞에 섰다.
“바로 수술 들어갈 겁니다. 부친께 수술한다고 연락해 주세요. 아직 환자 의식 있으니까, 수술 동의서는 본인에게 받겠습니다.”
구진명이 건우의 소매를 잡았다.
“진짜 괜찮은 겁니까? 우리 형님, 진짜 살려주실 수 있는 겁니까?”
건우가 구진명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아까 들었죠? 장영호 환자는 췌장이 아작 났습니다.”
“예, 파열됐다고 들었습니다.”
“췌십이지장 절제술은 췌장뿐 아니라 십이지장, 담낭, 담도, 소장과 위장의 일부를 절제해야 합니다. 아주 위험하고 오래 걸리는 수술입니다.”
구진명의 냉정한 얼굴에 파문이 인다.
“그, 그렇게까지 해야 됩니까? 췌장만 파열된 건데…… 아까 다른 부위 손상이 있다고 듣긴 했지만 왜 안 다친 부분까지 절제하는 겁니까?”
“방금 말씀드린 기관들은 태아가 처음 뱃속에서 만들어질 때 함께 만들어집니다. 그렇다 보니 같은 혈관에서 혈액을 공급받죠. 췌장을 절제하면 다른 기관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부분을 절제해야 됩니다.”
“아까…… 비장을 들어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걸 절제하면 어떻게 됩니까?”
건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히 있을 게 사라지면 문제는 생기죠. 하지만 사는 데 크게 지장 없습니다. 소화는 좀 안 되겠네요. 근데 그거 안 하면 장영호 씨 죽습니다.”
“…….”
말을 잃은 구진명. 대수롭지 않게 설명하고 있지만 사람의 장기 중 없어도 되는 건 없다. 장영호는 있어야 될 장기를 없애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던 것이다.
구진명이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뒤따라 들어온 수술 팀을 어깨너머로 힐끔 본 건우가 말했다.
“중곤.”
로비를 점령한 깡패 집단들에 주눅 들어 있던 중곤이 얼른 답했다.
“네, 선생님.”
“가서 제모부터 해라.”
“어디까지 합니까?”
“axillary line(양측 액와)를 잇는 선에서 무릎까지, 상복부 정중 절개로 개복할 거다.”
“네, 선생님.”
건우가 저 멀리 복도 끝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오지선에게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환자 혈액형 뭡니까?”
오지선이 손을 크게 머리 위로 동그랗게 말며 말했다.
“O형이요.”
“혈액 충분합니까?”
“네, 일단은요.”
“general anesthesia(전신마취) 준비해 주시고, CT, MRI, Pet-CT 결과 수술실로 가져와 주세요.”
“O.K.”
건우가 지수와 은비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수 씨는 혈관주사 삽입하고 수액, 항생제, 진통제 놔주시고, 은비 씨는 OR 준비해 주세요.”
“네, 선생님.”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다들 흩어지자 또 혼자만 남은 혜선이 울상이 된다. 뭐라도 시켜달라는 표정을 짓는 불쌍한 강아지를 본 건우가 한숨을 쉬었다.
“넌 가서 환자 수술실 들어가면 안전띠 부착하고, 혈압계, 심전도 부착해.”
별거 아닌 일임에도 할 일이 생겨 기쁜 혜선이 밝게 답한다.
“네, 선생님!”
모두가 흩어지자, 고 과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건우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아니, 선생님. 본원에서 허가도 안 나왔는데 이러시면.”
건우가 손을 귀에 대고 크게 말했다.
“뭐라고요?”
고 과장이 움찔하며 깡패들 눈치를 본 후 다시 속삭였다.
“원장님 입장도 좀 생각해 주셔야…….”
건우가 고개를 내밀며 더 크게 말했다.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목소리가 작아서 하나도 안 들리는데요!”
깡패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고 과장은 움찔거리며 슬금슬금 물러난다. 여기서 수술하지 말란 소릴 했다간 당장 칼에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춤주춤 뒷걸음질로 로비에서 빠져나온 그가 원장실로 달려간다.
원장실 문이 부서져라 연 고 과장이 땀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워, 원장님! 모 선생님이 수술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원장은 수화기를 들고 있다 얼굴을 굳혔다. 귀에 대고 있던 수화기를 조용히 내려놓은 원장이 침중하게 말했다.
“벌써 다섯 번째 재고를 요청했지만 본원은 여전히 수술 불가라는 답신을 해왔습니다.”
“그, 그러니까요! 본원에서 허락도 안 했는데 저대로 수술하면!”
원장은 손깍지를 끼고 잠시 고민한다.
“수술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준비야, 팀에서 제대로 준비하고 있긴 합니다만…….”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 봅시다.”
“예, 원장님.”
같은 시각 수술실.
긴급 수술이라 수술실에 들어온 후에야 수술 동의서를 내미는 건우가 장영호에게 말했다.
“여기 사인하세요.”
“으으…….”
“아프죠? 마취하면 안 아픕니다. 근데 여기 사인을 해야 마취가 되거든요?”
건우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는지 다 죽어가던 장영호가 떨리는 손을 내민다. 펜을 넘겨주고 사인을 받은 건우가 오지선에게 눈짓하자, 그녀가 나선다.
“자, 환자분. 이제 전신마취 들어갈 겁니다. 마취하고 나면 편하게 한숨 푹 주무실 수 있어요. 며칠 동안 고통 때문에 통 잠도 못 주무셨죠? 수술이 장시간이니까 아주 푹 주무시고 일어나시면 됩니다, 아셨죠?”
장영호는 어떻게든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듯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건우가 오지선에게 고개를 까딱해 보인 후 수술실을 벗어난다.
밖으로 나온 건우가 손을 소독하기 위해 가운을 벗고 있는 바로 그때, 원장과 고 과장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그들을 힐끔 본 건우가 물을 틀고 손을 씻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못 하게 하셔도 할 겁니다.”
고 과장이 깡패들이 없는 틈을 타 간곡한 어조로 말린다.
“선생님, 이러시면 정말 문제가 커집니다.”
건우가 소독제를 손에 문지르며 말했다.
“살릴 수 있습니다. 저 환자 저대로 나가면 이 병원, 저 병원 돌다 죽습니다. 그건 살인이고요.”
“하, 선생님…….”
건우가 손을 털며 원장과 고 과장을 본다.
“아까 깡패 놈이 그러더군요. 눈앞의 환자를 회피하는 놈이 무슨 의사냐고. 무식한 깡패 놈도 아는 사실인데 많이 배운 우린 왜 모를까요?”
고 과장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진다.
건우가 말했다.
“책임은 제가 집니다. 만약 같이 수술한 사람들까지 징계한다고 하면, 저 하나 해고하고 끝내라고 하십쇼.”
건우가 다시 세정을 시작한다. 물 흐르는 소리만 나는 복도. 어느 누가 와서 뜯어말려도 반드시 살린다.
건우가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뭔데 책임을 집니까? 그럴 위치가 됩니까?”
“…….”
응? 이런 캐릭터였나? 그냥 하하, 허허 하는 캐릭터 아니었어? 어차피 당신이 말려도 난 할 거야. 완력을 써서라도 막는다면 밖에 있는 건달 놈들한테 도와달라지 뭐.
건우가 원장을 바라보자, 그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책임은 원장이 집니다.”
“……?”
뭐냐, 갑자기? 한가한 원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수술 지시는 제가 한 겁니다. 모건우 선생은 그저 지시에 따랐을 뿐입니다, 알겠습니까?”
오, 뭐야. 갑자기 왜 멋진 척하냐? 건우가 원장을 물끄러미 보다 실소를 지었다.
“뭐, 수술만 할 수 있다면 뭐든.”
이 원장. 괜찮은 사람이었네.
건우가 손을 들고 수술실 문을 여는 버튼을 발로 누른다. 건우가 기어이 수술실로 들어가 버리자 고 과장이 애가 타는 속내를 숨기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른다.
“보, 본원에 뭐라고 하실 겁니까, 원장님?”
“…….”
“원장님!”
“할 말이 뭐 있겠습니까?”
“…….”
원장이 물끄러미 불이 켜진 수술실을 보며 말했다.
“그저, 내 할 도리를 다했다고 해야지요.”
“원장님…….”
원장이 몸을 돌려 원장실로 돌아가며 말했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한다. 그것이 의사의 도리다. 그리 말해야지요. 다른 할 말이 무에 있겠습니까?”
원장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수술실 문 안쪽에서 그의 말을 엿들은 건우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꽤 강단 있는 원장이었군. 이름과 다르게 말이야.’
수술실에 들어와선 양팔을 든 채로 수술실 자동문에 기대어 실실 웃고 있는 건우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는 팀원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헛기침을 한 건우가 타월을 들고 대기 중인 은비에게 손을 내밀자, 팔꿈치 위부터 닦아준 후 수술 장갑을 착용시켜 주는 은비.
건우가 양손을 든 채 오지선을 보자, 그녀가 입을 연다.
“Captain(선장), Control Center(관제 센터)는 준비됐으니 이제 출항하시죠?”
젠장, 그 소리 좀 그만해, 이 여자야.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건우가 아까와 달리 마취로 인해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영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장영호 35세, 남성 환자의 pancreatoduodenectomy(췌십이지장 절제술)을 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