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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프랑켄슈타인-53화 (53/230)

닥터 프랑켄슈타인 53화

6. 아버지와 아들(2)

한가한 원장이 전화기를 들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뭐요? 타 병원 transfer(전원)이라니요. 아니, 지금 환자 상태가 녹록하지 않다니까요. 지속적인 복통, 압통, 발열, 복부 팽만에 쇼크까지 온 상태입니다. 30분 전에 입원 후 10분 단위로 체크해 본 결과 지속적인 내출혈, 진행성 복막염, 혈액량 감소 등이 나타나고 혈중 아밀라아제 수치도 계속 상승하고 있어요.”

원장이 답답하다는 듯 설명했다.

“아니, 그러니까. 이 환자 transfer(전원)를 어디로 하라는 겁니까? 뭐요? 우리 병원 분원도 아니고 완전히 타 병원으로 보내라는 말씀입니까?”

원장이 수화기를 던져 버릴 기세로 벌떡 일어났다.

“의사가! 눈앞에 환자가 죽어가는데!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내팽개치는 의사가 무슨 의삽니까! 여보세요! 여보세요!!”

상대는 제 할 말을 다 하고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 판단했는지 전화를 끊어 버린다.

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노려보는 원장.

옆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고 과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어떡할까요, 원장님. 모 선생님이 이미 오 선생 콜 한 것 같은데. 지수 씨와 은비 씨가 수술실 준비도 하고 있고요.”

원장이 긴 한숨을 쉬며, 수화기를 놓는다.

“일단 대기하라고 하세요, 본원을 설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반 병원에서도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닌, 외상에 의한 췌장 파열 수술. 어쩌면 10시간 이상이 걸리는 대수술이 될 수도 있다.

무릉도원 병원은 연성대학의 분원이다. 당연히 본원에 보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본원에선 수술대 위에서 사망할 수 있는 환자는 수술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다.

이대로라면 저 조직 폭력배 환자는 이 병원, 저 병원을 돌다 응급차 안에서 사망할 공산이 크다.

잠시 후 입원실.

지수와 은비에게 수술실 준비를 부탁하고, 달려온 오지선이 장영호에게 마취제 알레르기 검사를 하도록 지시한 건우가 고 과장의 말을 듣고 눈썹을 찡그렸다.

“대기?”

고 과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가뜩이나 살벌한 인상에 얼굴에 칼자국까지 있는 구진명의 눈치를 보며 작게 말했다.

“본원에서 허가가 안 나옵니다, 이유는…… 아시죠?”

“…….”

“원장님께서도 그냥 손 놓고 계실 생각은 없으십니다. 일단 다른 병원에 transfer(전원) 가능한지 전화 돌리고 있고, 본원에도 계속 전화로 문의 중이십니다.”

건우의 표정이 차가워진다.

“본원을 설득하는 건 글렀고. transfer(전원) 받아줄 병원이 있겠습니까?”

“일단 정선 쪽은 긴급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회신이 왔습니다.”

건우가 혀를 찬다.

“그 병원은 우리 대학병원 분원이니까 당연히 본원에서 반대하는 환자 안 받겠죠, 다른 병원은요?”

“몇 군데 돌리고 있습니다만, 알아보고 다시 연락 주겠다고 합니다. 일단 필요한 검사만 진행하시고, transfer(전원) 할 때 같이 실어 보내시죠, 선생님.”

건우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하지만 고 과장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냥 샐러리맨일 뿐인데.

“하, 일단 알겠습니다.”

고 과장이 차갑게 노려보는 구진명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입원실을 나가자, 주사를 놓고 있던 오지선이 물었다.

“수술 안 하는 건가요?”

고 과장과 건우의 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구진명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진다.

건우는 그런 구진명을 한번 쓱 본 후 말했다.

“검사부터 합시다.”

수술 전에 검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오지선은 구진명의 얼굴을 힐끔 본 후 더 묻지 않고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와 전화를 건다.

“중곤 쌤. 검사 준비 다 됐나요? 네, 알았어요. 데리고 갈게요.”

오지선이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신입 간호사에게 손짓한다.

“간호사님들, 환자 검사실로 좀 옮길게요.”

주춤주춤했지만 일단 자신들의 일이니 곧 달려와 구진명의 병상을 미는 간호사들.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건우가 한숨을 쉰다.

말없이 건우를 노려보기만 하는 구진명. 뭐라고 항의를 할 만도 한데 아까 앞뒤 안 가리고 들이받으려던 깡패 놈과 달리 신중한 타입인가 보다.

그때 먼 병상에 있던 말년 할머니가 건우를 부른다.

“선생…….”

생각에 잠겨 있던 건우가 고개를 획 돌리며 물었다.

“할머니, 어디 불편하세요?”

할머니가 병상에 앉아 양손을 맞잡고 물었다.

“저 청년, 안 고쳐줘? 많이 아파 보이던데.”

일단 할머니가 아픈 건 아니니 안심한 건우가 한숨을 쉰다.

“하, 그게 좀 복잡해요.”

“왜?”

“여긴 연성대학 병원 분원인데, 본원에서 수술 허가를 안 해줘서요.”

“그걸 일일이 다 허가받고 해야 돼?”

하, 보통 사람이 이걸 이해할 리가 없지. 의사인 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가만히 건우를 노려보고 있던 구진명은 건우가 병원 측의 입장에 대해 해명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자신도 이해 안 간다는 말투로 말하자, 살짝 표정을 푼다.

말년 할머니가 손짓으로 건우를 부른다.

“의사 선생, 이리 좀 와봐.”

건우가 짧은 한숨을 쉰 후 터덜터덜 걸어가 할머니 앞에 앉는다. 할머니가 건우의 손을 잡고 말했다.

“선생, 나 수술할 때도 이렇게 복잡하게 허락받고 그랬어?”

“아뇨.”

“왜? 난 긴급한 상황이라서? 저 청년도 급해 보이는데.”

“그게 아니고, 할머니는 난이도 높은 수술이 아니라서 그래요. 저쪽은 10시간도 넘게 걸릴 수 있는 수술이거든요.”

말년 할머니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10시간? 그렇게 힘든 수술이야?”

“췌장이란 게 위치도 후 복부…… 음, 그러니까 몸 아주 깊숙한 곳에 있는 장기예요. 중요한 장기와 혈관이 인접하고 있어서 다른 곳의 문제를 동반할 가능성도 높아요. 방금 저 환자는 바로 병원에 온 것도 아니고, 며칠이나 참고 있다 현재 쇼크 상태까지 와서 더 위험해요.”

“아이고, 그냥 두면 어떻게 되는데?”

“감염, 췌장 누공, 외상성 췌장염, 복강 내 출혈이 온 후 사망할 겁니다.”

“아이고! 그럼 여기가 너무 작은 병원이라 수술 못 하는 거야? 빨리 다른 병원에 연락해야지.”

“원장님이 하고 있으세요.”

“이걸 어째, 아직 젊어 보이는데.”

마음 좋은 말년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원실 문을 바라본다. 저 문을 통해 장영호가 실려 나갔기 때문이다.

건우 역시 장영호가 나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구진명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건우의 성격대로 하자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항의하실 거면 로비 가서 하세요. 거기 한가해서 맨날 병원에 붙어 있는 과장한테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건우의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상대가 조직 폭력배건 학교 선생이건 관계없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환자에게 손을 써볼 수 없는 상황은 어떤 의사에게든 절망감과 허탈함을 주니까.

뚜벅뚜벅 걸어온 구진명이 할머니 곁에 앉아 있는 건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선생님.”

“…….”

“상황은 이해 갑니다, 제가 방법을 제시해도 되겠습니까?”

응? 방법? 조직 폭력배한테 무슨 방법이 있어? 건우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떤 겁니까?”

“서울 하산병원으로 가게 해주십시오.”

서울 하산병원은 강동구에 위치한 대형 병원으로, 연성대학 병원은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 병원이다.

물론 거기가 훨씬 안전한 건 맞다. 문제는 환자를 거기까지 이송하는 중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거긴 왜요?”

“거기 형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건우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의사?”

“예, 내과의사로 계시는 걸로 압니다.”

“…….”

“아버님께 말씀드리면 거기서 긴급 수술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처음부터 거길 갔어야죠, 왜 미련하게 지금까지 참다가 이런 동네 병원으로 온 겁니까?”

“…….”

구진명이 말문을 닫는다.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무식한 새끼들. 췌장이 파열됐는데 약국에서 산 진통제를 술에 타 먹고 자는 미친놈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며칠만 빨리 왔어도 이런 상황까진 안 왔을 텐데 답답할 노릇이다.

구진명이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건우에게 다시 물었다.

“하산병원 쪽으로 전원 가능하겠습니까, 선생님?”

“가는 거야, 가는 건데 문제는 거기까지 가다가 잘못될 수 있다는 겁니다.”

“…….”

“일단 아버지께 연락은 하세요.”

“예, 형님 검사 끝나면 여쭤보고 하겠습니다.”

“뭘 여쭤봐요? 당신 형님이란 사람 죽을 수도 있다니까요, 당연히 가족한테 연락해야죠.”

“…….”

구진명이 다시 입을 닫는다. 음, 뭔가 있긴 하네. 하긴 의사 아들이 조직 폭력배라니. 서로 안 보고 살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거야 자기네들 가정사니까 알 바 아니고.

잠시 후 검사를 마치고 병상을 밀고 오는 오지선이 간호사들과 함께 입원실로 돌아왔다.

건우가 그녀를 보며 물었다.

“동반 손상 있습니까?”

오지선이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짧게 한숨을 쉰다.

“없을 리가요.”

“mesenteric injury(장간막 손상)?”

“네.”

췌장 파열 환자 중 77.1%에서 타 장기 동반 손상이 발견된다.

이 중 장간막 손상이 37.1%로 가장 많고, 비장, 소장, 십이지장과 신장 손상이 다음 비중을 차지하며, 하대정맥 손상도 드물게 나타난다.

“다른 곳은?”

“costa(늑골)에 fracture(골절)가 있지만 다행히 위험한 정도는 아니에요.”

“혈액 검사는?”

“serum amylase(혈청 아밀라아제) 수치, 913 Somogi unit. 아주 위험한 상탭니다.”

건우가 마른세수를 했다. 아밀라아제 수치가 너무 높다. 여기서 서울까지 최대 속도로 달려도 두 시간은 걸린다. 환자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 달린다고 해도 말이다.

구진명은 돌아온 장영호에게 다가가 뭔가를 물었지만, 쇼크 상태인 장영호가 제대로 답을 해줄 리가 없다.

잠시 고민하던 구진명이 전화기를 들고 입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인다. 아마도 장영호의 부친에게 알리려는 생각인가 보다.

그래,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아도 알릴 건 알려야지. 그 후에 부친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에 따른 후회는 그의 몫이니 상관할 바 아니다.

오지선이 건우의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다.

“어쩌실 건가요?”

“…….”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본원 허가가 안 떨어지는데.”

하, 답답해 미치겠네. 다시 시계를 본 건우가 고 과장에게 본원에서 온 연락이 없는지 묻기 위해 입원실 문을 열자, 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구진명이 보인다.

“비켜주시죠.”

“선생님.”

“예.”

“전화 좀 받아주시겠습니까?”

답답해 미치겠는데 갑자기 뭔 전화를 받으라는 거야? 건우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뭡니까?”

구진명이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영호 형님 아버님이십니다.”

“…….”

건우가 잠시 핸드폰을 바라보다 손을 내밀자, 그의 손으로 핸드폰이 들어온다.

“예, 전화 바꿨습니다.”

-…….

“여보세요? 안 들리십니까?”

-내 아들 좀 살려주시게.

“…….”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아버지. 그가 생면부지의 의사에게 아들의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이 정도 나이의 의사가 하산병원의 내과의로 있다면 그는 교수일 확률이 높다. 그런 그가 시골 병원 의사에게 애원하는 소리가 들린다.

-부탁하네, 꼭 좀 살려주시게.

건우의 심장이 다시 쿵쾅대며 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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