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닥터 프랑켄슈타인-46화 (46/230)

#제 46 화. 웃지 않는 노인 (8)

이틀 후, 무릉도원병원.

원장이 주차장에 있던 최씨 할아버지를 붙잡고 이야길 나누고 있다.

“최씨 아저씨. 고집 그만 부리고 정선 병원으로 갑시다. 소개장 써 드릴게요.”

“……………………….”

“예전엔 말씀도 좀 하시고 그러시더니 점점 말수도 줄어드시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아저씨.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그래야 에너지가 생기죠. 식사도 제대로 안 하시죠?”

“……………………….”

“정선 병원에 알아봤더니 직장암 수술은 가능하긴 한데, 폐쇄성 직장암이라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할 수도 있답니다. 그래도 말입니다, 아저씨. 2기입니다, 2기. 충분히 수술로 나을 수 있어요.”

원장의 절절한 설득에도 변화 없는 할아버지의 표정. 가만히 원장을 보던 할아버지가 입술을 꿈틀거린다. 머뭇거리며 뭔가 말을 하려는 할아버지. 하지만 쉽게 입을 열지 않고 한참 입술을 달싹이다 말문을 연다.

“원장님.”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걸걸한 목소리. 원장이 얼른 답한다.

“예, 아저씨.”

“어제 할멈이 꿈에 나왔습니다.”

“…………………….”

“원장님 그만 괴롭히고 이제 자기한테 오라고 하더군요.”

“하, 아저씨.”

“내 나이 이제 아흔입니다. 이 나이에 수술은 받아 뭐 하겠습니까? 얼마나 더 살겠다고.”

“그런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아저씨.”

할아버지가 빗자루를 옆에 두고 천천히 걸어 벤치에 앉은 후 한숨을 쉰다. 그리곤 하늘을 보며 말했다.

“이제 지쳤습니다.”

“……………………….”

“그만 할멈 곁으로 가고 싶어요.”

“아저씨…….”

할아버지가 문제가 있다는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

“그 젊은 선생 말이 할멈이랑 같은 병이라고 했어요, 어쩌면 참 다행이다 싶어요. 그때 할멈이 어디가 얼마나 아팠는지, 왜 난 그 고통을 알 수 없었는지 하늘을 원망했는데.”

할아버지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본다.

“하늘이 할멈을 이해하라고 같은 병을 줬나 봅니다.”

원장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성큼성큼 걸어 벤치에 앉았다.

“아저씨, 제가 힘 써서 본원에서 수술하실 수 있게 해드린다니까요. 우리 병원에서 몇 년이나 일하셨는데 그 정도 편의도 못 봐 드리겠습니까?”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보다 부탁할 게 하나 있습니다.”

“부탁이요?”

“예, 할멈 죽었을 때처럼 저도 이 병원에서 장례 해주시면 안 됩니까?”

“……………….”

“부탁 좀 드립니다, 같은 곳에서 죽고 싶어서요.”

“하, 아저씨…….”

할아버지가 슬픈 웃음을 짓는다.

“그저 할멈 품으로 갈 날만 손 꼽아 기다렸는데, 서울까지 올라가서 수술 받는다는 게 참. 전 안 하렵니다, 원장님. 그냥 여기서 수술 받을 수 있다면 몰라.”

“………………….”

원장이 말을 잃었다. 어떻게 해도 설득할 수 없는 걸까? 그때 저 멀리서 큰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한 입 가지고 두 말 하기 없습니다?”

원장과 할아버지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저 멀리서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건우가 가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언뜻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것 같지만 워낙 무표정해서 오히려 싸가지 없어 보인다.

원장이 건우를 보며 물었다.

“뭐가 두 말 하기 없다는 겁니까, 모 선생님?”

건우가 뚜벅뚜벅 걸어와 할아버지 앞에 섰다.

“방금 하신 말씀. 똑똑히 들었습니다.”

“…………………?”

건우가 할아버지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여기서 수술할 수 있다면 치료 받으신다고 했던 거. 분명히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놀란 얼굴로 원장을 돌아보자, 마찬가지로 놀란 얼굴의 원장이 물었다.

“선생? 여기서 직장암 수술을 하겠다고요? 누가 한단 말입니까? 선생, 경험 있어요?”

건우가 할아버지 눈을 보려 숙였던 허리를 펴며 몸을 돌렸다.

“보긴 많이 봤죠. 어쨌든 약속하신 걸로 알고 그만 갑니다.”

뚜벅뚜벅 걸어 병원으로 향하는 건우. 당당하게 말은 했지만 그의 눈이 뜨거워져 있다.

‘젠장, 이야기 훔쳐 듣다가 울 뻔 했잖아!’

할아버지 독백을 훔쳐 듣다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 나오는 줄 알았다. 고과장이 준 사탕이 아니었으면 그 싸가지 없는 흉부외과 의사한테 신세를 질 뻔 했다. 병원으로 걸어 들어온 건우가 여전히 로비를 지키고 있는 고과장을 보았다. 생각에 빠져 있느라 말 없이 빤히 그를 바라보는 건우. 고과장이 괜히 주춤거린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막대사탕을 입에 문 건우는 혼자 생각에 빠져 있다.

‘말 꼬투리 잡아서 우긴다고 수술실에 순순히 들어올 할아버지가 아니다. 설득의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큰 병원엔 가기 싫단 것, 죽어도 이 병원에서 죽고 싶다는 바램. 그건 캐치 했어.’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저 고집 센 할아범을 설득할 수 있는 걸까?

**

오늘은 다솔이와 민서가 마지막 드레싱을 하는 날.

언니가 직접 두 아이를 데려와 건우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선생님, 그 동안 감사했어요. 저희 오늘 올라가거든요. 마지막 드레싱 받으려고요.”

건우가 무심하게 아이들을 보았다. 지금 어디 좀 찢어진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다. 할아버지의 직장암이 더 커지기 전에 빨리 수술해야 한다. 머릿속에 그 생각 밖에 없는 건우가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들어가시죠.”

입원실로 들어가자, 홀로 앉아 있던 말년 할머니가 손을 든다.

“안녕, 애들아.”

이제 절뚝거리지 않는 다솔이와 민서가 얼른 달려가 할머니 손을 잡는다.

“와, 할머니!”

“안녕하세요, 할머니.”

손녀들이 찾아온 것 같이 기쁜 얼굴이 된 할머니.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자주 얼굴을 맞대면 저리 친해질 수 있나 보다. 하긴 그러니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겠지. 어쨌든 할머니가 기뻐하시면 그걸로 됐다.

다솔이는 찰과상이라 지수가 드레싱을 도와주었고, 봉합을 한 민서는 건우가 맡았다. 다솔이는 드레싱을 하는 내내 쉴새 없이 조잘거린다.

“SNS에 할머니 찐빵 집 소개했는데 좋아요 800개나 받았어요! 저 잘했죠!”

옆 병상에 앉은 할머니가 웃는다.

“그거 많이 받으면 좋아?”

“그럼요! 손님들이 그거 보고 찾아온다니까요, 요샌 다 그거 보고 다녀요. 그래서 막 산골짜기에 식당 차려도 맛만 있으면 사람들이 북적북적 한다니까요? 두고 보세요, 할머니 가게에도 사람들 많이 올 거예요.”

“나 입원해 있는데?”

“가게 문 닫았어요?”

“응.”

“헉, 언제 퇴원하시는데요?”

“나?”

할머니가 건우를 돌아본다. 민서의 드레싱을 하던 건우가 무심하게 말했다.

“한 일주일 더 있어야 돼요.”

다솔이가 그 정도는 괜찮다는 듯 손사래 친다.

“에이, 이거 퍼지는데 시간 좀 걸려요. 그 정도는 괜찮아요.”

그래, 뭐가 됐든 할머니 가게 잘되면 좋지. 근데 할머니 건강 해칠 정도면 내가 서울 올라가서 널 죽일 거야, 알았어?

“민서 쪽은 끝났고, 지수씨? 그쪽 다 됐습니까?”

지수가 빠르게 소독을 하며 말했다.

“전 선생님보다 손이 느려서요. 조금만 시간 더 주세요.”

“천천히 하세요, 다솔이는 좀 묶어놔야 되니까.”

“하하.”

다솔이가 눈을 흘겼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건우가 착한 민서에게 말했다.

“다솔이는 시간 좀 걸린다, 넌 다 했으니 나가도 돼.”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민서는 고과장과 병원비 계산 중인 언니에게 갈 생각인지 입원실 밖으로 나갔다. 고과장에게 서울 병원으로 가서 실밥 제거를 하기 위한 서류들을 받고 있는 언니를 기다리던 민서는 무료했는지 병원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다 컨테이너 옆 고양이 집을 발견하곤 달려가 쪼그리고 앉았다.

“와, 귀여워…….”

그때 컨테이너 뒤에서 최씨가 고개를 내밀었다. 도시락 사건 때 안면이 있어 그런지 민서는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

최씨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서가 물었다.

“저기, 저 여기서 고양이 좀 더 봐도 되나요?”

다시 고개를 끄덕인 할아버지가 사료 주머니에 바가지를 넣어 고양이 사료를 푼다. 민서를 물끄러미 본 할아버지는 네가 주라는 듯 바가지를 내민다.

“아, 감사합니다!”

고양이 밥을 주는 게 좋은지 신이 나 보이는 민서. 고양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며 귀여워 라는 말을 백 번쯤 한 후에야 일어난 민서가 예의 바르게 일어나 다시 허리를 숙인다.

“덕분에 잘 놀았습니다, 할아버지.”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예의 바른 민서를 좋게 보았는지 할아버지가 말을 건다.

“부모님께 교육을 잘 받았나 보네.”

민서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아뇨, 저 할아버지께 교육 받았어요.”

“부모님은?”

“돌아가셨어요, 저 할머니랑 살아요.”

언뜻 이해가 안 간다.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교육은 할아버지에게 받았는데 할머니랑 산단다. 민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의 표정이 익숙한지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할아버지는 2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지금은 할머니 혼자시고요.”

이제야 이해가 된 할아버지가 혀를 찬다.

“쯧, 할머니가 많이 힘드시겠군.”

민서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우리 할머니 엄청 바빠요.”

“음?”

민서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바다를 참 좋아했어요. 속초 바닷가만 가도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그때마다 외국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라고 중얼거리셨어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고 싶은 일을 다 못하고 가셨구먼.”

민서가 빙긋 웃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대신 하고 계세요. 해외여행 갈 때 꼭 할아버지 사진을 들고 가서 바다를 보여주세요. 또, 할아버지 사진 놓고 좋아하는 음식도 나눠 드시고, 이야기도 나누시고 그래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하고 싶었지만 못해본 것들을 대신 다 해볼 거래요.”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할아버지가 못 해본 걸 대신…….”

민서가 밝게 말했다.

“네! 멋지죠? 우리 할머니.”

“………………….”

“할머니는 할아버지 대신 다 해보고, 하늘나라 가서 떠들어 줄 거래요. 필리핀의 바다가 얼마나 예쁜지, 당신이 죽고 난 후 새로 나온 먹거리들이 얼마나 맛있는지.”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린다. 민서는 자기가 너무 말이 많았다고 생각했는지 허리를 숙였다.

“죄송해요, 제가 우리 할아버질 너무 좋아해서, 할아버지들만 보면 이래요.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만 가볼게요.”

할아버지는 민서를 지그시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민서는 다시 한번 꾸벅 인사를 해 보이곤 병원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러다 병원 정문에 팔짱을 끼고 서서 무표정하게 자신을 보는 건우를 마주치곤 움찔한다.

“아, 선생님. 잠깐 고양이 좀 보느라고… 시간이 너무 지났나요?”

건우는 민서와 컨테이너 앞에 서서 물끄러미 민서를 보고 있는 할아버지를 번갈아 보다 씩 웃으며 민서의 어깨를 두드려 준다.

“잘했어, 강아지.”

“…………네?”

건우가 민서의 턱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우쭈쭈, 아 잘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사탕을 물고 강아지들에게나 하는 행동을 하는 건우. 민서가 영문 모를 표정을 짓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