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화. 무릉도원 병원 (7)
마을 이장의 사모가 앞서 걸어가며 쉴새 없이 입을 놀린다.
“오후에 온다더니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그래? 하루 종일 눈 빠지게 기다렸네. 거기 진흙이니까 조심하고, 이쪽, 이쪽이에요.”
이미 어두워진 밤, 여행가방을 든 건우가 무표정하게 사모를 따라 시골길을 걸어간다. 병원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집을 구하려 부동산에 연락하니 이 근처는 부동산이 없단다. 자기들이 보유한 매물이 없으니 이장에게 연락해 보라고 했다. 대신 부동산계약서는 자신들이 처리해주겠다고 한다.
포장된 도로에서 약 오십 미터 가량을 올라간 곳에 있는 고즈넉한 집.
붉은색 삼층 벽돌 집이다. 300에 50인데 이런 집을 준다고? 와, 시골 생활이 좋긴 좋구나. 건물을 빤히 보고 있는 건우를 보고 미소를 지은 사모가 집 한 켠을 가리켰다.
“저기, 2층 집이에요.”
아, 잠깐이지만 착각했다. 300에 50이면 서울에서 원룸 월셋값인데 삼층 전체를 쓰게 해줄 리가 없지. 그래도 이게 어디냐? 2층 집이라는 건 2층이 독채란 뜻인데. 언뜻 봐도 꽤 넓어 보이잖아?
가방을 질질 끌며 2층에 도착하자, 사모가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원래 이 동네가 매매랑 전셋집은 있어도 월셋집은 없거든요. 뭐, 사람이 들어와야 월세를 주지. 이 건물 주인이 우리 시어머니, 동생의 먼 친척인데, 급하게 제주도 내려가서 살게 되는 바람에 전세를 내놨거든요. 근데 집이 하도 안 나가는 거야. 월세라도 괜찮으니 구하는 사람 있으면 주라고 부탁을 하더라고.”
그런 것까진 궁금하지 않아, 이 아줌마야. 그리고 시어머니 동생의 먼 친척이면 남 아니냐?
“방이 몇 갭니까?”
“세 개요. 화장실은 하나지만.”
방 세 개. 대단하다. 300에 50인데 쓰리룸이라니. 현관 앞에 서서 안을 구경하던 건우가 계단 밖으로 고개를 빼며 말했다.
“1층이랑 3층엔 누가 삽니까?”
“아직 아무도 안 살아, 당분간 총각 혼자예요.”
“음.”
조용하겠는데? 라는 생각과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데 이 집에도 나 혼자면 좀 겁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지만 생각보다 집이 너무 좋다.
“이 집으로 하죠.”
사모의 얼굴이 밝아진다.
“좋아요, 그럼 바로 부동산 아저씨 불러서 계약서 쓰죠. 짐 풀고 있어요.”
“부동산으로 안 갑니까?”
“응, 전화하면 오토바이 타고 금방 와요.”
음, 그건 편하군.
“알겠습니다.”
짐이라고 해 봐야 달랑 여행가방 하나다. 필요한 건 이제 천천히 사야지. 설마 택배는 오는 동네겠지? 아참, 제일 중요한 거. 건우가 핸드폰을 꺼내 배달 어플을 실행해 보곤 인상을 썼다.
“젠장, 배달되는 가게가 하나도 없어? 굶어 죽게 생겼네, 하.”
할 줄 아는 거라곤 라면 밖에 없는데 큰일이다. 백선생님 방송이라도 보면서 요리 배워보는 수 밖에.
**
다음날, 무릉도원 병원
아침 일찍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온 건우를 발견한 고과장이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모 선생님. 발령은 오늘이라도 주말이라 정식 출근은 월요일부턴데. 이미 얼굴도 텄는데 오늘은 쉬시지, 풀어야 할 짐도 많을 텐데요.”
여행가방 하나 푸는데 10분도 안 걸렸다. 애초에 어딜 가도 짐을 많이 들고 다니는 성격도 아니다. 건우가 뚜벅뚜벅 걸어 가며 말했다.
“환자 보러 왔습니다, 금방 갈 겁니다.”
툭 내뱉듯 말하는 건우를 보고 활짝 웃은 고과장이 넉살 좋게 따라 붙는다.
“저는 말입니다, 여기 병원에 계시는 의료진들이 환자에게만 신경 쓰실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합니다. 선생님들이 원래 계시던 병원에서 정보를 얻어 싫어하시는 것이나, 좋아하시는 걸 미리 파악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어쩌라고 이 양반아? 건우가 고과장을 힐끔 보며 입원실 쪽으로 걷기만 한다. 하지만 고과장은 계속 따라 붙으며 입을 놀려댄다.
“그래서 말입니다, 제가 또 본원에도 아는 사람들이 쫙 깔려 있거든요. 모 선생님이 귀환하신 지 얼마 안 되었다곤 하지만 그래도 어디 그렇습니까? 사람 들이는 일인데 신경 써야지요. 미리 선생님 취향을 싹 파악해서 손을 써두고 있었습니다.”
건우가 고과장을 힐끔 보았다. 뭐, 알아서 잘 해준다면 나쁠 건 없다.
“본원에 아는 사람이 제가 뭘 싫어한답니까?”
고과장이 자신 있는 얼굴로 말했다.
“관리 아저씨께 다 말씀 드려놨습니다, 하하!”
응? 관리 아저씨가 왜 나와? 건우가 고개를 갸웃하다 입원실로 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불현듯 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관리 아저씨께 뭘 말씀 드렸는데요?”
건우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본 고과장이 손사래를 쳤다.
“아아,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고양이를 무척 싫어하…. 선생님? 선생님!”
고과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을 획 돌려 입구로 달려가는 건우. 젠장, 어쩐지 화단에 아이들이 안 보이더라니. 어디 구석진 곳에 가서 쉬나 보다 했는데! 저 놈의 고기만 처 먹는 과장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발이 마음처럼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 시골에 살아 보지 않아 모르지만, 듣기론 시골 사람들은 키우던 개도 잡아 먹는다던데. 설마 그 예쁜 아이들을 잡아서 동네 잔치를 한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내 오늘 고기만 네 놈으로 국을 끓여주마.
건우가 거칠게 정문을 벌컥 열었을 때, 저 멀리 관리 아저씨로 보이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양 손에 든 귀여운 고양이 엉덩이 두 개가 보인다.
“아저씨!”
귀가 어두운지 듣지 못하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할아버지. 도대체 아기들을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아저씨!”
달려가며 두 번이나 더 부른 후에야 할아버지가 돌아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고양이들이 그의 손에 잡혀 있는 것이 보인다. 숨이 턱까지 차도록 달린 건우가 할아버지 손에서 고양이를 빼앗으며 외쳤다.
“고양이들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예? 다른 애들은 어디 있어요?”
관리 할아버지는 건우를 물끄러미 보다가 저 멀리를 가리킨다. 설마, 벌써 솥 안에 들어가 있는 건 아니겠지? 무서운 눈을 부라리며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획 돌린 건우가 맥이 탁 풀린 표정을 지었다.
저 멀리, 주차장 한 구석, 할아버지가 생활하는 컨테이너 옆에 나무로 만든 고양이 집이 지어져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네 마리의 새끼 고양이와 불안한 눈으로 남은 아기들이 잘 오는지 확인 중인 어미 고양이 얼굴이 보인다.
“하…….”
뒤늦게 달려온 고기만 과장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아니, 무슨 일입니까, 선생님?”
건우가 손에 들고 있는 두 마리의 아기 고양이를 가만히 바라보는 걸 본 고과장이 관리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아이고, 할아버지. 새벽에 말씀 드린 건데 아직도 안 옮겨 두셨어요? 아이들도 화단보단 제대로 된 집에서 사는 게 좋잖아요. 집은 다 만드셨고? 오, 저기 저건가? 그래요, 저기면 출입할 때 안 보이겠네.”
하, 이거였냐. 시골 사람들을 무슨 야만인처럼 생각했던 건우가 민망한 얼굴로 관리 할아버지에게 고양이들을 넘겨 준다.
“여기.”
말 없이 고양이들을 받아 든 관리 할아버지가 넌 뭐냐는 듯 본다. 순간 얼굴이 붉어진 건우가 고개를 꾸벅 숙인다.
“내일부터 이 병원에서 일할 모건우 입니다.”
수염이 잔뜩 난 60대 후반의 할아버지가 건우를 위아래로 보다 몸을 쓱 돌려 컨테이너 방향으로 향했다. 뭐야, 사람 민망하게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네. 하긴 초면에 실례를 한 건 자신이니까.
고과장이 멀어지는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저 쪽에 따로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이 오가는 병원 입구 화단에 저 아이들이 있는 건 아무래도 문제가 되니까요. 고양이를 무척이나 싫어하시는 모 선생님께서는 좀 탐탁지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생명들 아닙니까? 저 정도는 이해해 주실 거죠, 선생님?”
“………………….”
고과장이 빙긋 웃으며 그래 줄 거죠?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죠?”
“안 싫어합니다.”
“예?”
“안 싫어한다고요.”
“뭘요?”
건우가 몸을 획 돌려 병원 방향으로 걸으며 말했다.
“고양이요.”
“에?”
고과장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올 때보다 더 빠르게 사라지는 건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무척 부끄러운 것 같아 보이기도 한 발걸음이다. 고과장이 핸드폰을 꺼내 멀뚱히 액정을 바라보다 실소를 지었다.
“정보가 틀렸나 보네. 뭐, 그럼 고양이들 계속 키워도 되고 좋지 뭘. 룰루~”
고기만 과장은 무척 긍정적인 사람인가 보다.
얼굴이 빨개져서 병원 안으로 들어온 건우가 입술을 일그러뜨린다.
‘제기랄, 창피하게!’
이게 다 혜영 이모의 심장 때문이다. 아까 고양이들 이야기를 듣는 순간 심장이 터져 나갈 뻔 했었다. 인상을 쓰고 가슴을 꽉 쥔 건우. 그때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 안 좋아요?”
깜짝이야, 없던 심장병도 생기겠다! 건우가 고개를 획 돌리자, 입원실 반대편 복도에서 의사가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오지선이 나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오지선은 건우가 붙잡고 있는 왼쪽가슴을 눈짓하며 말했다.
“여기 흉부외과 전문의 있어요. 검사해달라고 하시지.”
슬그머니 손을 내린 건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됐습니다.”
옷을 갈아 입으러 탈의실로 들어가버리는 건우. 혼자 남은 오지선이 아무도 없는 로비에서 슬쩍 손을 들어 올린 후 씁쓸하게 말했다.
“좋은 아침, 하하…….”
잠시 후 중환자실.
건우가 들어오자 간호사가 얼른 일어나 말했다.
“환자 의식 돌아왔습니다, 선생님.”
“V/S는요?”
“괜찮아요, 여기.”
밤새 환자 곁을 지킨 모양인지 30분 단위로 V/S 기록 값들이 적혀 있는 의무기록을 내미는 간호사. 건우가 값들을 확인 후 다시 넘겨주곤 말년 할머니의 옆으로 가자, 눈으로 건우를 쫓는 할머니가 보인다.
“할머니.”
“……………….”
“몇 가지 질문 좀 드릴 거예요. 그냥 고개 끄덕이시거나, 저으시면 됩니다, 아셨죠?”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 할머니 만성 설사 있으셨어요?”
끄덕끄덕.
“혈액성 설사, 그러니까… 변 보시다 피 나오신 적 있어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기 전, 힘이 들어서인지 의자에 앉는 간호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경련성 복통이 주 2회 정도 있었고, 만성설사에 혈변도 보셨다고 해요. 3년쯤 전부터 식욕이 없고 최근 6개월 간 4Kg 정도 체중이 감소하셨어요.”
건우가 살짝 놀란 얼굴로 간호사를 바라보자, 웃음을 지은 간호사가 밖을 눈짓하며 말했다.
“아까 아침에 오지선 선생님이 다 여쭤보고 가셨어요.”
건우가 할머니에게 문진을 한 건 크론병의 증상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언제부터였는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처음엔 간호사가 그걸 알고 증상에 대해 문진한 것으로 오해하고 놀랐었다. 오지선이라면 병의 증상에 대해 알고 있을 테니 물어본 것은 놀랍지 않지만 집도의인 자신보다 먼저 와서 문진을 했다는 점은 놀랍다.
수술실에서 그녀의 실력을 확인한 바 있지만 대낮부터 술을 처 마셨던 행동을 제외하고 의사로서의 업무능력만 따진다면 꽤 괜찮은 의사 같다. 그런 사람이 왜 이런 시골에 박혀 있는 걸까?
“오지선 선생 말입니다.”
“네, 선생님.”
건우가 간호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병원에 왜 온 겁니까?”
“…………………….”
간호사가 자신의 입을 막는 것이 보인다. 응? 뭐야, 그냥 말 돌리면 되지, 삼류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그 발 연기는 도대체 뭡니까,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