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닥터 프랑켄슈타인-31화 (31/230)

#제 31 화. 무릉도원 병원 (5)

오지선은 건우의 결정이 합당하다 생각했는지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녀가 몸을 돌린 사이 다시 눈이 번쩍거리는 건우. 빠르게 장 전체를 살핀 건우의 마스크 아래로 미소가 지어진다.

‘찾았다.’

장간막 쪽으로 누출이 있다. 만약 이대로 닫으면 이 부위가 점점 넓어지며 종국에는 처음 개복 했을 때와 같은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장 전체를 양손에 놓고 살짝 문지르는 건우. 물론 이건 보여주기 위함이다. 크론병을 촉진으로 알아낼 수 있는 의사는 없다.

“문합부 상부에서 60~70cm 부위까지 두 곳에서 장벽의 심한 비후성 변화 확인.”

눈으로 보며 말하는 것이지만 촉진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연기. 오지선이 놀랍다는 휘파람을 분다. 건우가 다시 한번 할머니 얼굴을 본다. 오지선의 실력이 좋은지 아주 편안해 보이는 할머니의 얼굴. 만약 크론병이라면 완전히 낫게 할 순 없지만 대충 확인하고 닫아서 또 생명이 위급하게 만들진 않을 것이다.

차가운 얼굴의 건우가 말했다.

“우측결장 절제, 소장 – 횡행결장 문합술을 시행합니다.”

**

마취의의 일은 수술만 종료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OR내의 기기정리 후, 중환자실로 옮겨진 환자 상태까지 체크를 마친 오지선이 그제야 작은 탈의실에서 수술복을 갈아 입고 나온다.

‘빨랐어, 그것도 엄청.’

갑자기 나타난 일반외과 선생.

마취의의 특성 상 집도의보다 많은 수술 경험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오지선 역시 유명한 외과교수들의 수술도 함께해봤지만 건우만큼 손이 빠른 의사는 처음 보았다. 단지 손이 빠르다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환자의 천공부위를 빠르게 문합하고, 환부를 빠르게 봉합해 닫으면 회복까지 필요한 환자의 부담이 현저히 줄어든다. 그렇기에 많은 외과의들이 빠른 손놀림을 가지길 원하는 것이다.

복도를 걷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오지선. 머리는 산발이고, 얼굴은 푸석하다. 아무도 없는 곳이지만 괜히 민망해진 그녀가 머리 끈을 푼 후 단정하게 다시 머리를 묶는다.

‘크론병이라고?’

사실 아직까지 믿어지지 않는다. 사실 모건우가 그런 말을 했을 때도 믿지 않았다. 이 병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대장내시경검사, 비디오 캡슐 내시경검사, 바륨 X-레이, CT 또는 자기공명영상 등과 같은 검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모건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회장을 절개하는 수술이었다면 또 몰라.’

그때 복도 끝에서 간호사의 얼굴이 보인다. 그리곤 곧 큰 소리가 들려왔다.

“원장님! 과장님! 오지선 선생님 나오셨어요!”

다급한 발소리들. 아마도 원장과 과장이 소식을 듣고 돌아온 모양이다.

“오지선 선생!”

“선생님, 환자는요? 환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오지선이 삐쳐 나온 앞머리를 정리해 귀 뒤로 넘긴 후 눈짓한다.

“중환자실로 옮겨뒀어요. 일단 수술에는 문제 없었습니다.”

원장과 과장은 너무 급했는지 달려오며 질문을 던졌다가 환자가 괜찮다는 말에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휘청거린다.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원장은 다 벗겨져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땀에 흠뻑 젖어 있다.

“하, 말년 할머니 큰일 나는 줄 알고 술상 엎어 버리고 왔는데.”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과장이 바닥에 주저앉는다.

“하, 우리 병원에서 그런 수술이라니.”

과장의 말을 들은 원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렇지! 모건우 선생! 그 선생이 수술했다고요?”

오지선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어디 계십니까?”

“모르겠는데요? 저도 방금 나와서.”

모든 이가 일제히 간호사를 본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간호사가 움찔 놀라며 복도 끝을 가리켰다.

“아까 병리조직 검사결과 본원으로 보내신 후에 잠깐 바람 쐬신다고 나가셨는데요.”

과장이 눈을 크게 떴다.

“병리조직검사요? 그건 왜 합니까? 천공 수술했다고 했잖아요.”

간호사가 오지선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내자, 그녀가 대신 답한다.

“모건우 선생 말이 환자가 크론병에 의한 천공인 것 같대요. 방금 수술한 환자에게 colonoscopy(장내시경)을 할 순 없으니 빨리 보낸 모양이에요.”

원장이 미간을 좁힌다.

“수술 중에 Ileum(회장)을 절개했나요?”

오지선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뇨.”

원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어떻게 알았습니까?”

“저도 모릅니다.”

“음?”

“모건우 선생에게 물어보시죠. 저도 궁금하거든요.”

원장이 도무지 모르겠단 표정을 짓는 것을 본 과장이 물었다.

“제가 지식이 짧아서, 크론병이 뭡니까, 원장님?”

원장이 모건우에 대해 생각하며 설명한다.

“원인불명, 치료법도 없는 병입니다. 희귀한 질환인데 요즘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죠. 대장이나 소장에 발생하고요.”

“아까 회장에 발생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과장의 질문에 오지선이 인상을 쓴다.

“아, 과장님. 아무리 의사가 아니라도 병원 원무과장이신데 공부 좀 하세요.”

과장이 찔끔하자, 원장이 웃으며 말한다.

“됐어요, 과장님은 자기 할 일 잘하고 계시니까. 회장(回腸)은 소장의 마지막 부분으로 굴곡이 심한 구간입니다. 결국 소장의 일부분이라 보시면 되지요.”

과장이 오지선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치료법이 없다고요? 그 병에 걸리면 어떻게 됩니까?”

“만성 염증으로 인해 장에 줄무늬 흉터가 생깁니다. 이게 장폐색을 일으킬 수 있죠. 장벽 속까지 파고들어가는 깊은 궤양에 의해 농양, 개방성 누공, 또는 천공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항문 피부에 열구가 발생하기도 하죠.”

과장이 어느 정도 의문이 해소되었는지, 팔짱을 낀 후 말했다.

“그 병임을 알고 수술하는 것과 모르고 수술하는 것이 차이가 있을까요?”

오지선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당연하죠! 만약 크론병이라면 수술 마치고 1주 후에 비강위장감압튜브와 복강 내 배액관 제거 후 죽을 먹으면 즉시 엄청난 복통이 올 수 있어요. 장유착성 부분폐쇄가 올 수도 있고요. 하지만 모건우 선생님의 방식대로 당분간 금식 시키고 정맥을 통한 영양공급을 하는 동시에 원내에서 운동하게 하고 체력 향상이 되도록 하면 완화가 가능해요.”

과장이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럼 모건우 선생의 방법대로 했을 때 뭔가 잘못될 건 뭡니까?”

“………………….”

“예?”

“없어요.”

“응? 없어요?”

과장이 만세를 불렀다.

“그럼 된 거 아닙니까? 만에 하나 있을 위험요소도 다 감안하고 수술하셨단 거 아닙니까?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잖아요? 하하.”

과장의 말이 맞다. 하지만 원장과 오지선은 의사다. 그들이 궁금한 건 정말 환자가 크론병이 맞는지, 만약 그렇다면 모건우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것이다. 이건 꽤 중요한 문제다. 괜히 멋있어 보이려고 헛소리나 지껄이는 의사가 온 건지, 아니면 자신들의 상상 이상의 실력 있는 의사가 합류한 것인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지선이 생각에 잠겼다가 간호사에게 물었다.

“언니, 모 선생 바람 쐬러 어디로 간다는 말은 없었어요?”

“어… 그게 환자상태 체크해야 하니 그냥 병원 주변에 있겠다고 했는데.”

같은 시각, 병원 앞 화단.

병동 건물 옆으로 눈만 나온 건우가 주변을 살핀다. 방금 대머리 아저씨랑 정장 입은 아저씨가 후다닥 뛰어 들어가는 바람에 또 고양이에게 소시지를 주다 숨었다. 젠장, 이 놈의 병원은 몇 명 되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이 지나가는 거야?

건우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까 화단에 떨군 소시지를 확인했다. 급하게 떨어뜨리느라 제거하지 못한 끄트머리 포장지만 남아 있는 걸 보니 이미 다 먹은 모양이다. 소시지 포장지가 반들반들한 걸 보니 또 심장이 조금 아프다.

‘얼마나 배가 고팠길래 포장지까지 다 핥아 먹었냐?’

어미 고양이가 화단 제일 안쪽에 누워 있고, 새끼 고양이 두 마리는 젖을 빨고 있다. 나머지 네 마리는 안전한 화단 안에서 몸을 굴리며 놀고 있다. 건우가 주머니를 뒤져 소시지 세 개를 더 꺼내 포장지를 제거하며 쪼그리고 앉는다.

“오래 기다렸지? 아까 준 게 좀 부족했을 거야. 형이 수술하고 오느라 그랬어.”

고양이들이 귀를 쫑긋거리며 건우를 본다. 하지만 쉽게 다가오진 않는다. 건우가 소시지를 손에 쥐고 흔들며 말했다.

“이리와, 이거 먹자.”

수술 중간에는 오직 환자만 생각했지만 수술이 끝나고 병리조직검사 데이터를 본원에 보내자마자 고양이들 생각이 났다. 밥은 제대로 먹이며 키우는 걸까? 아니, 아이들 꼴을 보니 키우는 게 아니라 그냥 여기 눌러 앉은 아이들 같은데. 새끼를 낳은 어미는 뭘 먹고 영양보충을 하는 걸까? 젖이 나오려면 충분한 영양공급이 필요할 텐데.

“쭈쭈, 여기. 이거 맛있다.”

건우가 팔을 쭉 내밀고 고양이들을 부르고 있는 바로 그 순간. 병원의 알루미늄 문이 벌컥 열리며 큰 소리가 난다. 순간적으로 소시지를 화단으로 던져 넣으며 팔을 앞으로 쭉 뻗은 건우가 한쪽 다리를 번개처럼 옆으로 내밀었다.

“모건우 선생! 응? 지금 거기서 뭘 하나?”

건우가 시뻘개진 얼굴을 숙이며 이를 갈았다.

‘망할 병원 같으니라고. 마음 편하게 고양이 한번 못 챙겨주겠네.’

아직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을 때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까도 저러고 계셨는데. 버스를 오래 타고 오셔서 몸이 굳어 그랬다고 하셨거든요. 수술을 오래 하셔서 또 몸이 굳으신 게 아닐까요?”

흠, 겁나 창피하다. 그래도 뭐 고양이 먹이 주다 걸린 거 보다야 낫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괜히 기지개를 편 건우가 슬며시 팔을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발령 난 모건우입니다.”

원장이 얼른 달려와 악수를 청한다.

“그래! 모건우 선생. 첫날부터 정말 수고 많았네. 자네가 없었다면 정말 큰일날 뻔했어!”

당연하지 이 양반아. 당신이 소고기 뜯으러 간 사이에 이 사단이 벌어졌으니까 말이야. 삐딱한 눈빛을 눈치채지 못한 원장이 손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내가 무릉도원 병원장 한가한 이네.”

악수를 하고 있던 건우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예? 성함이 뭐라고요?”

원장이 활짝 웃으며 악수한 손을 마구 흔든다.

“한가한. 한가한 원장이네.”

“………………….”

젠장 이름 한번 잘 어울리네. 그러니 근무 시간에 소고기에 막걸리나 빨러 다니지. 옆에 있던 50대 중반 아저씨가 한걸음 나서며 허리를 숙였다.

“모건우 선생님, 저는 무릉도원 병원 원무과장, 고기만 입니다.”

“………………….”

고기만? 그래서 고기 뜯으러 간 거냐? 이 사람들 이름이 왜 다 이 모양이야? 뭐… 사람 이름 가지고 뭐라고 하면 안 되겠지만 말이지. 건우가 슬쩍 고개를 숙이자, 원장이 아직도 잡고 있는 손을 잡아 끌며 말했다.

“그래, 밥은 먹었고?”

“밥… 아직 안 먹었습니다만.”

“그럼 우리랑 가지, 아직 안 구운 고기가 잔뜩 있거든.”

“…………………….”

그때 병원 내에서 오지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긴 어딜 가요, 환자 의식도 아직 안 돌아왔는데. 다들 미쳤어요?”

원장과 과장이 동시에 목을 움츠리며 입맛을 다시는 것이 보인다. 음, 이 병원에서 유일하게 정상인은 저 여선생 밖에 없는 건가, 아니지. 저 여자도 대낮부터 술 처 마시고 뻗어 있었잖아? 제기랄, 나만 유일하게 정상인가?

시도 때도 없이 스트레칭을 하는 자신을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는 건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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